옮긴 글/머나먼 곳으로의 여행, 커트 보니것

머나먼 곳으로의 여행, 커트 보니것, The Big Trip Up Yonder, Kurt Vonnegut, 1954

monglim 2016. 10. 14. 14:43

*원문 링크: http://www.gutenberg.org/ebooks/30240?msg=welcome_stranger

 

 

 

 

 

포드 할아버지는 지팡이의 구부러진 끝에 손을 올리고 그 손 위에 턱을 괸 채, 방 안을 가득 채운 1.5미터 크기의 텔레비전 화면을 성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화면에는 뉴스 아나운서가 오늘의 사건 사고를 보도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30초마다 지팡이를 바닥에 쿵 찍으며, "망할, 백 년 전에 이미 다 한 거라고!" 하고 소리를 질렀다.

 

 

에메랄드와 루는 서기 2185년에는 사라져 버린 가치인 사생활을 찾아 잠시 발코니로 피했다가 돌아와 가장 뒷줄에 가서 앉았다. 둘 앞으로는 루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형수,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손주며느리, 손녀와 손주 사위, 증손자와 증손주 며느리, 조카와 질부, 증조카와 증질부, 고조-조카와 고조-질녀, 그리고 가장 앞에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약간 늙고 등이 굽은 할아버지를 제외하면, 안티-제라손anti-gerasone이 생기기 전 기준으로 모두가 비슷한 연령대로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 정도) 보였다. 할아버지는 안티-제라손이 출시될 때 이미 일흔이었기 때문에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 후로는 102년이 지나도록 전혀 늙지 않았다.

아나운서가 말했다.

"한편, 아이오와 주 의원 블러프스는 며칠 전 벌어진 참혹한 사고로 인해 여전히 난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200여 명의 구조원은 지친 상태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183세의 엘버트 해거든 씨를 구하기 위해 땅을 파헤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해거든 씨는 이틀 째 깔린 상태로…"

"밝은 것 좀 틀어주면 좋겠어." 에메랄드가 루에게 속삭였다.

 

 

"조용!" 할아버지가 소리 질렀다.

"TV 보는데 다음번으로 아가리를 여는 놈은 돈 한 푼 못 받을 줄 알아라."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이 늙은 할아비가 <머나먼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고, 너네가 인디애나폴리스의 경기장에서 바둑판무늬 깃발을 흔들 때 말이야." 그는 감상에 젖은 듯 훌쩍였고, 그의 예비 상속인들은 소리 하나 내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집중했다. 그들은 지난 오십 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할아버지가 미래에 떠날 <머나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기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아나운서가 소식을 이어갔다.

"와이안도트 대학의 학장인 브레이나드 키스 불라드 박사는, 오늘 진행된 발표회에서 대부분의 질병은 인류에 대한 지식이 물리적 세상에 대한 지식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코웃음을 쳤다. "망할! 백 년 전에 이미 다 한 말이라고!"

아나운서가 계속했다.

"다음은 시카고 소식입니다. 시카고의 산부인과에서 특별한 축하 파티가 열렸습니다. 파티의 주인공은 바로 신생아 로웰 W. 히츠로, 히츠는 오늘 아침 이 병원에서 태어난 이천오백만 번째 아기가 되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신생아 히츠가 시끄럽게 우는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루가 에메랄드에게 속삭였다

"망할! 백 년 전에 이미 다 한 말이라고!"

"방금 들렸다!"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그는 텔레비전을 꺼버렸고 상속자들은 공포에 질려 아무 말 없이 빈 화면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거기, 너 말이야…"

"별 뜻 없이 한 말이었습니다, 할아버지." 103세의 루가 말했다.

"내 유언장 가져와. 어디 있는지 알잖아. 다들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잖아. 어서 가져와라!" 할아버지가 굵게 마디진 손가락을 날카롭게 튀겼다.

루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고, 어느새 바닥에 깔린 침구를 피하며 포드 가족 아파트의 유일한 개인실인 할아버지 방을 향해 복도를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할아버지 방 외에는 화장실과 거실, 그리고 원래 식탁을 두는 공간으로 설계된 창문 없는 넓은 복도가 있었고, 복도 끝에 간이 부엌이 있었다. 복도와 거실에는 여섯 개의 매트리스와 네 개의 침낭이 흩어져 있었고, 거실에는 할아버지가 지정한 일순위 커플이 사용하는 간이침대가 있었다.

옷장 위에 놓인 할아버지의 유언장은 첨언과, 첨삭과, 비난과, 조건과, 경고와, 충고와, 개똥철학을 수백 번도 더 더해 더럽고, 얼룩지고, 헤지고, 구멍이 숭숭 난 모습이었다. 루는 문서가 두 장에 빽빽하게 채워 넣은 50년 동안의 일기이자, 매일 벌어지는 불화의 혼란하고 해독 불가한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루는 오늘이면 벌써 열한 번째로 상속권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다시 상속자가 되려면 적어도 여섯 달 정도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에메랄드와 그가 쓰던 거실의 간이침대 역시 박탈될 것이다.

"얘야!" 할아버지가 불렀다.

"갑니다, 할아버지." 루는 서둘러 거실로 나가서 유언장을 건넸다.

"펜!"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 말과 동시에 각 부부가 내민 열한 개의 펜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그 질질 새는 거 말고." 그가 루가 내민 펜을 밀어내며 말했다.

"아, 여기 좋은 펜이 있네. 잘했다, 윌리." 할아버지는 윌리가 내민 펜을 받아 들었다. 모두가 기다리던 단서다. 이제 루의 아버지인 윌리가 새로운 일순위가 된 것이다.

142세의 나이에도 루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윌리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해 애를 썼다. 그는 곧 자기 차지가 될 간이침대를 슬쩍 바라보았다. 이제 루와 에메랄드는 다시 복도로, 그것도 최악의 자리인 화장실 문 앞으로 물러나야 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누리는 권력의 드라마를 놓치는 법이 없었고, 익숙한 역할을 연기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마치 난생처음 유언장을 본다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따라가며, 성당 오르간의 저음같이 깊고 과장된 모노톤으로 소리 내어 읽어 나갔다.

"나, 헤롤드 D. 포드는 코네티컷 주 뉴욕시 알든빌리지 건물 257번지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 문서를 나의 최종 유언장으로 공시는 바로, 이에 따라 이전 시점에 작성된 모든 유언과 부록은 무효화됨을 알린다."

그는 거드름을 피우며 코를 휑 풀고는,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중요한 단어는 몇 번씩 강조해가며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특히 장례식에 대한 복잡하고 긴 절차는 특별히 반복해서 읽었다.

절차에 대한 설명의 끝에 다다르자 깊은 감동에 젖었고 루는 할아버지가 유언장을 꺼내게 된 이유를 잊진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휘몰아치는 감정을 의연하게 억제하고 일 분 동안 천천히 유언장을 지우더니 소리 내어 문장을 읊으며 다시 적어나갔다. 하도 많이 들었던 문장이라 루는 대신 얘기해줄 수도 있었다.

"더 좋은 세상으로 떠나기 전, 이 눈물 젖은 속세에서 나는 많은 고통을 겪어왔다." 할아버지가 소리 내며 적어나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 사람은 바로…"

그는 범인이 누구였는지 기억해내려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대답하듯 루를 쳐다보았고, 그는 체념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기억이 났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장을 이어나갔다. "나의 증손자, 루이스 J. 포드이다."

"그냥 손자입니다, 할아버지." 루가 말했다.

"트집 잡지 말아라. 넌 이미 충분히 죄가 깊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으나, 잘못 적은 부분을 고쳤다. 그 후로는 실수 없이 상속권을 박탈하는 문구를 적어나갔다. 그 이유는 불경과 트집 잡기라고 기록했다.

 

이어지는 문단은, 다들 한 번씩 주인공이 되어본 부분이었다. 루의 이름이 지워지고 윌리가 아파트의 상속자이자, 가장 중요한 개인실 더블 침대의 주인으로 대체되었다.

"됐다!"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문서 마지막에 적힌 날짜를 지우고 새로운 날짜와 시간까지 적어 넣었다.

"자, 이제 <맥가비 가족> 볼 시간이다." <맥가비 가족>은 할아버지가 60살 때부터 총 112년 동안 시청해온 텔레비전 시리즈였다.

"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 죽겠어." 그가 말했다.

루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화장실 앞에 놓인 그의 새로운 고통의 침대에 몸을 뉘었다. 에메랄드가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지금 어디 있는지 궁금해졌다.

잠시 깜빡 졸던 루는, 누군가 화장실을 가려고 그를 넘고 지나가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잠시 후, 뭔가를 세면대 구멍으로 흘려보내는 듯 꼴깍꼴깍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갑자기 에메랄드가 잠시 미쳐서 할아버지에게 뭔가 해코지를 하려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엠?" 그는 벽에 대고 속삭였다. 아무 답이 없자 문을 밀었다. 낡은 잠금장치는 빗장이 느슨해 제대로 잠기지 않는지라 잠시 버티다가 문이 확 안으로 밀려버렸다.

"모티!" 루는 숨이 멎을 듯 놀라 외쳤다.

갓 결혼해서 포드 가족 집으로 부인을 데려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루의 증조-조카인 모티머는 화들짝 놀라 루를 바라보았다. 모티는 문을 발로 차 닫아버렸지만, 루는 이미 그의 손에 든 것을 보았다. 바로 할아버지의 거대한 대용량 사이즈 안티-제라손 병이었고, 모티는 병을 반쯤 비워내고 수돗물로 채우는 중이었다.

잠시 후 모티가 화장실에서 나와 루를 한 번 확 째려보더니 말없이 그의 예쁜 신부 곁으로 가서 앉았다.

루는 충격에 휩싸여 어쩔 줄 몰랐다. 할아버지가 오염된 안티-제라손을 마시게 둘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을 털어놓는 순간, 할아버지는 지금도 견디기 힘든 아파트 안 삶을 더욱 비참한 수준으로 끌어내릴 것이 분명했다.

루는 거실에서 맥가비 가족의 삶이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모습을 즐겁게 감상하며 쉬는 포드 일가를 바라보았다. 에메랄드도 함께 있었다. 그는 조용히 화장실로 돌아가 최대한 문을 굳게 잠그고 할아버지의 약병 속 액체를 따라내기 시작했다. 선반에 놓인 22개의 작은 병에 담긴 온전한 안티-제라손으로 다시 병을 채울 계획이었다.

병에는 2리터가 넘는 양이 들어있는 데다가 구멍이 워낙 작아서 병을 비우는 데만 영겁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루는 너무 긴장해서, 안티-제라손의 거의 맡을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우스터소스와 비슷한 냄새가 화장실 문 열쇠 구멍과 바닥의 틈을 타고 흘러나가 아파트 전체를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액체는 일정하게 꾸룩꾸룩 소리를 내며 흘러내려갔다. 갑자기 거실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더니 뒤따라 웅성이는 소리, 바닥에 의자 다리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텔레비전 아나운서가 말했다. “이렇게 우리들의 이웃 맥가비 가족의 삶의 29,121번째 챕터가 끝이 납니다.”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누가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잠시만요." 루는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필사적으로 병을 흔들어 액체가 흘러나오는 속도를 높여보려 했다. 그의 손바닥에서 젖은 유리가 미끄러졌고, 무거운 병은 바닥의 타일에 떨어져 산산조각났다.

문이 밀려 열리고, 큰 충격에 말을 잃은 할아버지가 범죄 현장을 바라보았다.

루는 두피와 목 뒤로 따끔거리는 끔찍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억지웃음을 짓고, 정신줄을 잡아보려 애쓰며 할아버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드디어 말했다. "그래, 얘야. 청소할 게 있어 보이는구나."

그게 다였다. 할아버지는 뒤를 돌아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포드 가족은 눈 앞에 벌어진 일을 믿지 못하며 침묵에 겨 루를 바라보다가, 너무 오래 보면 끔찍한 죄가 전염될까 두려워 서둘러 거실로 돌아갔다. 모티는 뒤에 남아 루를 이해할 수 없다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모티도 거실로 돌아가자, 복도에는 에메랄드만 남았다.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불쌍한 자기... 제발 그런 표정 짓지 마! 다 내 잘못이야. 내가 할아버지에 대해 계속 잔소리를 해서 당신이 이런 짓을 하고 만 거야."

루는 겨우 목소리를 되찾아 말했다. "아니야. 정말 아니야. 진짜로, 엠, 나는 그냥…"

"나한테 설명 안 해도 돼. 난 무슨 일이 생기든 당신 편이야."

그는 루의 뺨에 입을 맞추고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살인을 하려던 것도 아니잖아. 이게 할아버지를 죽이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야. 하느님이 부르실 때 갈 수 있도록 준비해주는 것일 뿐이야."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엠? 할아버지가 어떻게 하실까?" 루는 텅 비어버린 목소리로 물었다.

 

루와 에메랄드는 할아버지의 반응이 걱정되어 겁에 질린 채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성스러운 침실에서는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동이 트기 두 시간 전에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 여섯 시, 간이 부엌에서 그들 세대가 아침 식사를 할 시간이 되자 둘은 일어나야 했다. 아무도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주어진 식사 시간은 이십 분이었지만, 잠을 자지 못한 탓에 몸이 둔해져서 계란 맛 가공 미역을 두 숟가락 떴을 뿐인데 벌써 자녀 세대에게 부엌을 넘겨줄 시간이 되었다.

가장 최근에 상속권을 빼앗긴 사람이 하기로 정해진 규칙에 따라 둘은 할아버지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식사는 트레이에 올려 침대로 가져간다. 둘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이 일의 가장 어려운 점은 할아버지가 많은 돈을 들여 구입한 진짜 계란과 베이컨, 그리고 마가린을 다뤄야 하는 것이다.

에메랄드가 말했다. "어쨌든 나는 진짜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먼저 걱정하지 않을 거야."

"어쩌면 어제 봤던 게 나라는 걸 잊어버리셨을 수도 있어." 루가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의 손목시계에 들어가는 크리스털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죠." 아들 에디가 메밀 맛 가공 톱밥 케이크를 무신경하게 만지작대며 말했다.

"아빠한테 빈정거리지 마라. 그리고 입에 뭐 넣고 이야기하는 거 아니야." 엠이 말했다.

"이걸 입에 넣고 아무 말도 안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요." 73세의 에디가 불평했다.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할아버지 아침 식사 가져갈 시간이에요."

"그래, 시간 됐지? 트레이 줘, 엠." 루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몸을 움츠렸다.

"같이 가."

용기를 내 겨우 미소를 띤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방 앞에 다다르자, 포드 일가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침실 앞에 반원을 그리고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엠은 문을 두드리며 밝은 목소리로 불렀다.

"할아버지, 아-침 식사 준-비 됐어요."

대답이 없자 그는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그의 주먹질에 문이 휙 열렸다. 방 가운데에 위치한, 포드 가족의 달콤한 미래를 상징하는 커튼이 둘러진 부드럽고 깊고 넓은 침대는 비어있었다.

포드 가족에게는 조로아스터교[각주:1]나 세포이의 반란[각주:2]만큼이나 생소한 죽음의 기운이,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심장을 눌렀다. 놀란 상속자들은 집안의 우두머리인 할아버지의 생명의 흔적을 찾기 위해 가구 아래와 커튼 뒤쪽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몸뚱이 대신 쪽지 하나를 남겨 놨을 뿐이었다. 루는 서랍장 위, 2000년도에 열린 세계 박람회에서 기념으로 산 소중한 서진 밑에 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루는 비틀거리며 소리 내어 쪽지를 읽어 내려갔다.

"'내가 평생을 먹여주고 보호해주고,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준 누군가가 어젯밤 미쳐버린 개와 같은 모양새로 나를 배신하고 내 안티-제라손을 오염시키고 말았다. 나는 더 이상 젋지 않다. 예전과 같이 삶의 고통을 감내할 힘이 없다. 그래서 어젯밤의 쓰라린 경험 후 작별 인사를 하고자 한다. 이 세상의 문제는 가시로 된 망토처럼 곧 사라지고 나는 평화를 만날 것이다. 너희가 이 글을 찾을 때면 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윌리가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5000마일 스피드웨이 경주>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떠나셨네."

"<태양계 시리즈>도." 크고 슬픈 눈망울의 에디가 말했다.

"맥가비 부인이 시력을 되찾는지도." 모티가 더했다.

"이게 다가 아니야." 루는 이어서 읽어 내려갔다.

"나, 헤롤드 D. 포드는 이 문서를 나의 최종 유언장으로 공시하며, 이에 따라 이전 시점에 작성된 모든 유언과 부록은 무효화됨을 알린다."

윌리가 소리쳤다. "안돼! 또 유언장이야!"

루는 계속 읽었다. "'내 모든 재산을 자녀들에게, 종류와 성격에 따라 나누지 않고 세대 구분 없이 똑같이, 함께 사용할 공동 재산으로 증여한다.'"

"자녀들?" 에메랄드가 말했다.

루가 손으로 휩쓰는 동작을 하며 집 전체를 가리켰다. "우리 전부가 이 모든 걸 다 함께 소유한다는 뜻이야."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침대로 향했다.

"똑같이 나눠 쓰라고?" 모티가 말했다.

최고 연장자가 된 윌리가 말했다. "사실은, 이제까지 해오던 시스템이랑 똑같아. 가장 연장자들이 이 방을 쓰고 그리고…"

"연장자 좋네요!" 엠이 소리쳤다.

"루도 똑같이 소유권이 있는 거예요. 연장자 중에서도 일을 하는 사람 이어야죠. 아버님은 여기서 하루 종일 졸면서 연금만 기다리면 되지만, 불쌍한 루는 하루 종일 일하고 녹초가 되어서 돌아와서…"

"평생 한 번도 사생활이라고는 가져본 적 없는 사람한테 주는 건 어때요?" 에디가 열을 내며 말했다.

"젠장, 나이 많은 사람들이야 옛날에 어렸을 때 개인 공간 많이 누렸잖아요. 나는 복도의 빌어먹을 막사에서 나고 자랐다고요! 그러니까…"

"그래?" 모티가 반박했다.

"그래, 너도 참 힘들었겠지, 내 마음이 다 아프다. 이제 복도에서 신혼을 보내는 게 어떤지 한 번 경험해볼래?"

윌리가 위압적으로 소리쳤다. "조용! 다음으로 입 여는 사람은 여섯 달 동안 화장실 앞자리를 쓸 줄 알아. 이제 내 방에서 다 나가. 생각 좀 해야겠다. 

그의 머리 위로 살짝 비껴간 벽에 화병이 날아와 산산조각 났다.

 

다음 순간 난투극이 시작되었고, 각 커플은 다른 커플을 방에서 몰아내기 위한 싸움을 벌였다. 매 순간마다 그때의 전략에 따라 연합이 생겨났다 없어졌다를 반복했다. 엠과 루는 복도로 내던져졌다가,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과 모여 다시 방으로 쳐들어갔다.

아무런 결론도 짓지 못하고 두 시간째 싸움이 지속되고 있을 때, 경찰과 TV 중계차의 카메라맨이 들이닥쳤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포드 가족들을 실어내는데 약 삼십 분이 걸렸고 아파트에는 다시 고요와 적막이 찾아왔다.

한 시간 후에는 동해안의 50억 인구가 싸움의 막판 몇 분을 찍은 영상을 즐겁게 시청했다.

빌딩 257 76층에 위치한 포드 가족의 쓰리룸 아파트의 고요 속에서도 텔레비전 세트가 홀로 켜져 있었다. 아파트는 다시 한번 싸움의 아우성과 비명으로 가득 찼다. 단지 이번에는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무해한 소음이라는 것이 달랐다.

경찰서의 텔레비전에서도 싸움은 방송되고 있었다. 포드 가족과 경찰은 직업의식을 가지고 집중해서 시청하는 중이었다.

엠과 루는 이웃한 두 칸 짜리 방에서 각각 간이침대에 발을 뻗고 누워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

루가 벽에 대고 불렀다. "엠, 거기도 개인 세면대 있어?"

"응. 세면대, 침대, 조명… 전부 다 있어. 우리는 할아버지 방이 좋은 줄 알고 살았는데 말이야. 이게 얼마 만이야?"

엠은 손을 뻗어 보았다.

"나 사십 년 만에 처음으로 손 떨림이 멈췄어. 봐봐!"

루가 말했다. "기도하자. 변호사가 일 년 형을 받아내려 노력 중이야."

엠이 꿈꾸듯 말했다. "세상에! 독방에 가려면 누구한테 가서 비벼야 되는 걸까?"

간수가 말했다. "자 자, 다들 조용히 하세요. 아니면 당신네 전부 여기서 쫓아낼 테니까. 그리고 감옥이 얼마나 좋은지 밖에 알리는 사람은 다시는 못 돌아올 줄 알아요!"

그 말에 죄수들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던 싸움 장면이 끝나면서 아파트의 거실이 잠시 어둑해졌다가, 아나운서의 얼굴이 구름을 뚫고 나오는 해와 같이 등장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이제, 안티-제라손 제약사에서 보내는 특별한 메시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150세가 넘은 분들을 위한 메시지예요. 안티-제라손이 개발되기 전에 노화를 겪는 바람에, 얼굴 주름과, 뻣뻣한 관절, 옅고 가늘어진 머리숱으로 사회생활에 문제를 겪고 계십니까? 만약 그러시다면, 더 이상은 남들과 다르고 남들보다 못한 것 때문에 고통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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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의 말을 꼼꼼히 받아 적고 있는 것은, 전날 밤에 윌리에게 건네받은 할아버지의 펜이었다. 그는 빌딩 257이 잘 보이는 길 건너 <알든 빌리지 공원>이라고 불리는 사각 아스팔트의 땅에 위치한 선술집 <여가시간>에 있다가 몇 분 전에 돌아왔다. 청소부를 불러 아파트를 정리하고는, 자녀들이 형을 받을 수 있도록 동네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했다. 그는 1년보다 하루라도 적게 형을 받아내 본 적이 없는 천재 변호사였다. 모든 일을 끝마치고 누워서 편하게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간이침대를 텔레비전 앞으로 옮겨왔다. 오랫동안 바라 꿈이었다.

할아버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쉐-넥-테이-디. 됐어!"

그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 보였다. 얼굴의 근육이 풀어지자, 급한 성미가 그린 거친 주름들 아래 가려져 있던 다정함과 침착함이 드러났다. 마치 이미 수퍼-안티-제라손 샘플의 효과를 이미 본 것 같았다. 텔레비전에 재미있는 것이 나오자, 그는 전과 같이 입꼬리를 겨우 당기는 수준이 아닌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인생은 아름다웠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있을지, 미래가 너무나 기대되었다.

 

 

 

 

 

 

  1. 고대 페르시아의 민족 종교 [본문으로]
  2. 1857-1858년에 인도인 용병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영 항쟁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