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 글/고양이는 회색, 안드레 노튼

고양이는 회색, 안드레 노튼, All Cats Are Gray, Andre Alice Norton, 1953

monglim 2016. 12. 16. 15:43

*원문 링크: http://www.gutenberg.org/files/29019/29019-h/29019-h.htm



 

 

일반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에 비해 없는 사람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깊은 우주에서는 입장이 뒤바뀔 때가 있다. 적어도 인간에게는 말이다.

 

 

"우주의 방랑자 스티나." 우주 잡지 표제 기사 제목 같은, 참으로 진부한 문구다. 그런 기사를 쓰려고 몇 번이나 시도한 경험이 있으므로, 나름 전문가의 의견이다. 하지만 스티나는 그런 기사에 소개될만한 화려한 배경의 여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달만큼이나 무색무취한 사람이었다. 망으로 감싸 머리에 딱 붙인 스타일을 고수하는 머리카락마저도 회색빛이었고 모양 없는 펑퍼짐한 회색 우주복 말고 다른 옷을 입은 것을 본 적도 없었다.

 

스티나는 드러나지 않는 배경 같은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여유 시간을 프리랜서 우주 항해사들이 자주 가는 우주 항구 술집의 냄새나고 연기가 자욱한 구석에 틀어박혀서 보냈다. 주의를 기울여 보아야지만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구석에 앉아서 오가는 대화를 그저 듣고, 기억해두는 모습을. 그는 웬만하여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우주 항해사들은 그가 입을 열 때면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좀처럼 없는 말을 들을 기회를 잡은 행운의 몇몇은, 스티나를 두 번 다시 잊지 못했다.

 

스티나는 이 항구에서 저 항구로 떠돌며 지냈다. 복잡한 기계를 잘 다루는 전문 기술을 지닌 덕에 어렵지 않게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동안 일자리를 구했다. 그는 점점 자신이 다루는 전지한 기계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조용하고 흐릿하며, 개성 없는 모습으로.

 

하지만 법 넬슨에게 요반의 달 의식에 관해 알려준 것이 바로 스티나였고, 그가 건넨 경고의 말이 육 개월 뒤에 법의 생명을 구했다. 어느 깊은 밤 킨 클라크가 테이블 위로 내보인 돌멩이가 슬리타이트 원석임을 알아본 것도 스티나였다. 그 정보는 제트기 하나를 남기고 파산 직전이던 이들에게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부를 안겨준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화성의 여제>호 사건을 해결한 것도 바로 스티나였다.

 

그의 놀라운 기억창고와 사진적 기억력 덕을 본 이들은 모두 한번쯤 보답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스티나는 그들이 떠미는 금전은 물론이고 운하수 한 잔조차도 얻어마시려고 하지 않았다. 법 넬슨만이 그에게 거절당하지 않고 무언가를 주는 데 성공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뱃을 데려온 것이 바로 법 넬슨이었다.

 

요반 사건이 있고 약 일 년 후, 어느 늦은 밤 그는 술집 <자유낙하>에 들러 스티나가 앉아있던 테이블에 뱃을 내려놓았다. 뱃은 스티나를 보더니 그르렁거렸다. 스티나는 태연하게 눈을 마주 보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 후로 둘은 언제나 함께였다. 마른 회색 여자와 거대한 회색 수고양이. 뱃은 대부분의 우주 항해사들이 평생 동안 가보는 우주의 술집들보다 더 많은 술집의 내부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고양이는 향기풀 주스에 맛을 들여서, 다른 것 없이도 유리잔에 입을 대고 꿀꺽꿀꺽 잘도 마셨다. 그리고 스티나가 고른 테이블이라면 어디서나 제 집처럼 편하게 자리 잡을 줄 알았다.

 

 

이건 스티나, 뱃, 클리프 모란, 그리고 우주 항로의 전설이 된 <화성의 여제>호에 관한 이야기이다.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보장한다. 내가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전달한 장본인이니, 나름 전문가의 의견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시작된 그날 밤, 술집 <리겔 로열>에 클리프 모란이 최악의 상태와 최악의 기분으로 들이닥쳤을 때 그곳에 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사람을 뱀처럼 꼬이게 만들 정도로 연속되는 불운을 겪고 있었다. 그의 우주선이 압류되었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클리프는 베나포트의 뒷골목에서 시작해 힘겹게 삶을 개척해온 사람이었다. 우주선을 잃게 된다면 다시 뒷골목 인생으로 돌아가 영영 썩게 될 것이다. 그날 밤 그는 잔뜩 성 이난 채로 삶의 문제들을 술로 잊기 위해 테이블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주문한 첫 번째 술병이 도착함과 동시에 그의 테이블에 손님이 찾아왔다. 스티나가 자신의 구석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의 어깨에는 뱃이 제복의 어깨 장식처럼 둘러져 있었다. 뱃이 가장 좋아하는 자리였다. 스티나는 테이블을 건너와 묻지도 않고 클리프의 옆에 앉았다. 그는 이에 너무 놀라 슬픔도 잊어버렸다. 스티나는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하기보다는 혼자 있기를 선택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가니메데[각주:1] 의 돌-인간(Man-stones)이 술집에 쿵쾅거리며 등장을 했다고 해도, 우리의 흘낏거리는 시선을 그때만큼 사로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스티나는 긴 손가락이 달린 손을 뻗어 클리프가 주문한 술병을 옆으로 치우고 입을 열어 단 한 문장을 내뱉었다.

“<화성의 여제>호가 나타날 때가 되었어요.”

 

클리프는 얼굴을 찌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제트기의 외장만큼이나 강인했다. 베나포트의 뒷골목에서 시작해서 우주 항해사가 되는 것은 웬만큼 강한 몸과 마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화성의 여제>호는 우주 항해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이었다. 그러나 그 유기선이 지난 오십 년간 이상한 항로를 표류하는 동안 수많은 이들이 그 우주선을 거두려 했음에도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대한 재산을 실은 유람선은 우주 한복판을 항해하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선원과 승객들에게서 버려졌고,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시 듣거나 목격한 바가 없었다. 그 이후로도 우주선은 가끔씩 출몰했고, 올라타는 데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우주선에 타는 모험을 무릅쓴 이들은 그대로 사라지거나, 서둘러 도망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늘어놓으며 그저 우주선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할 뿐이었다. 그러나 유람선을 거두어들이는 이는 (혹은 우주 한복판에서 내부를 털 수라도 있다면) 엄청난 액수의 로또를 맞는 것과 같았다.

 

클리프가 주먹으로 탁자를 쾅 치며 말했다.

“좋아! 내가 찬 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

 

스티나는 법 넬슨이 처음 뱃을 데려왔을 때 고양이를 보던 눈빛으로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본 것은 여기까지다. 이후의 이야기는 몇 달 후, 은하계 반대편의 술집 여기저기서 전해 들은 것을 이어 붙였다.

 

클리프는 그날 밤에 바로 떠났다. 우주선의 압수 영장이 나와있는 상태에서 더 기다리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그는 우주로 출발한 뒤에야 우주선에 승객들이 타고 있는 걸 발견했다. 다름 아닌 스티나와 뱃이었다. 우리는 그때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알 길이 없다. 장담컨대 스티나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때가 처음으로 스티나가 자신의 정보에 자신도 이익을 취해보려고 한 결정이었고, 그래서 우주선에 올라탄 것이다. 그게 다였다. 이 설명이 클리프를 납득시켰는지도 모르고, 혹은 별 상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셋은 밤하늘에 채광창을 어슴푸레하게 빛내며 유령선의 자태를 드러낸 여제호를 함께 목격하였다.

 

유령선은 코에 달린 경고등을 비롯해 전등이 켜진 채로 항해하고 있어서 굉장히 기이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마치 살아있는 우주의 플라잉 더치맨[각주:2] 같았다. 클리프는 능숙한 솜씨로 우주선을 몰아 그 옆에 나란히 대고는 큰 문제없이 자석 줄을 유령선의 잠금장치에 연결했다. 몇 분 후 그들은 유령선에 올라탔다. 선실과 복도에 여전히 공기가 남아있었다. 공기에 부패한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기에 뱃은 냄새를 쫓아 탐욕스럽게 킁킁거렸고, 보다 덜 민감한 사람의 코에도 느껴질 정도였다.

 

클리프는 곧바로 조종실로 향했지만 스티나와 뱃은 선상을 탐색하러 떠났다. 닫힌 문이 장애물이 되어 둘 앞을 가로막았다. 스티나는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가며 하나씩 열고 앞으로 나아갔다. 다섯 번째 문 뒤에는 어떤 여자라도 더 둘러보지 않고는 지나치지 못할 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여제호가 처음으로 크루즈를 떠났을 때 타고 있던 승객들이 누구였는지 알지 못한다. 정말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그때 등록된 여객 목록을 확인하면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방바닥에는 두 개의 여행가방이 호화로운 실크 꾸러미를 쏟아낸 채 놓여있었고, 화장대에는 크리스털과 보석상자, 그리고 여자들이 쓰는 여러 가지 귀중품들이 가득 쌓여 스티나를 유혹했다. 그는 화장대 앞에 서서 거울을 슬쩍 올려보고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는 오른쪽 어깨너머로 침대 위에 놓인 거미-실크 소재의 커버를 볼 수 있었다. 얇고 가벼우며 풍성한 천 한복판에 보석함에서 쏟아져 나온 듯한 반짝이는 보석 더미가 놓여있었다. 뱃은 침대의 발 쪽으로 뛰어 올라가 고양이들이 으레 그러하듯 납작 엎드린 자세로 그 보석 더미,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를 노려보았다!

 

스티나는 손을 더듬어 잡히는 대로 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병마개를 따면서 거울에 비친 침대를 바라보았다. 보석이 박힌 팔찌가 더미에서 튀어올라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짤랑이는 소리를 내며 유혹의 노래(Siren Song)를 불렀다. 마치 심심한 손 하나가 장난을 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뱃은 하악질을 했지만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않았다. 아직 다음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스티나는 병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그는 지난 수년 동안 모험담을 자랑하던 남자들 중 아주 극소수의 몇몇만이 해낼 수 있는 행동을 했다. 그는 놀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서두르는 기색 없이 방 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그리고 침대 근처로 다가갔지만 보석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약 오 분 동안 무지와 무관심을 연기했다. 그러자 다음 행동을 취한 것은 뱃이었다.

 

뱃은 침대에서 뛰어내려 무언가와 충분한 거리를 유지한 채, 문까지 뒤따라 갔다. 그리고 큰 소리로 두 번 울었다. 스티나는 그를 따라가서 문을 더 활짝 열었다.

 

뱃은 사냥감을 쫓는 사냥개와 같은 몰입력으로, 복도를 따라 달려갔다. 스티나는 복도를 탐색하는 듯 서두르지 않는 걸음걸이로, 뱃을 따라 산책하듯 걸어갔다. 그들 앞에서 움직이는 무엇은 스티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뱃은 그 모습에 당황하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조종실까지 쫓아갔는데, 보이지 않는 무엇의 발치 가까이까지 (아마도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만약 발이 있다면 말이다) 뒤 따라붙어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뱃이 문간에 웅크리고 앉아 더 나아가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스티나는 계기판에서부터 클리프 모란이 앉아 있는 조종석까지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두꺼운 카펫 위로 스티나가 신은 부츠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고, 몇 년간 아무도 누르지 않아 느리고 서투른 버튼의 반응을 테스트하며 콧노래를 부르던 클리프는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치채지 못했다.

 

인간의 눈에는 조종실에 그 셋만이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뱃은 여전히 시선으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쫓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을 불신하고 배척하기로 판단을 내린 듯했다. 뱃은 한두 발짝 다가가더니 하악질을 하며 척추의 털을 한 올 한 올 곤두세워 혐오감을 극명하게 표시했다. 그 순간 스티나는 클리프의 수그린 어깨 앞에 희미한 선이 흔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마치 어떠한 투명한 것이 둘 사이의 공간을 지나간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왜 클리프 앞에서만 모습을 드러내고 의자의 등받이나 계기판 앞, 복도의 벽, 또는 누워서 전리품을 가지고 놀던 침대 위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뱃에게만 보이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 순간 스티나를 지금껏 잘 보조해온 기억창고가 반쯤 잊고 있던 문을 열었다. 그는 신속한 동작으로 한 번에 우주복을 뜯어 벗어버리고는 가까운 의자에 헐렁한 옷을 던져 걸었다.

 

뱃은 이제 심하게 하악 거리며, 그의 사냥 노래인 쉰소리를 점점 크게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스티나의 발 근처로 점점 물러나며, 싸우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도전적으로 맞서 눈 앞 무언가에게서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뱃이 그것을 도발해서, 걸려있는 우주복 앞으로 쫓아오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만 했다. 그것이 유일한 기회였다.

 

“대체 무슨....” 클리프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맞이한 광경은 꽤나 이상했을 것이다. 팔과 어깨를 드러낸 스티나가 평소에는 망으로 꽁꽁 묶고 다니던 머리를 풀어헤친 채, 가늘게 뜬 눈과 앙다문 입을 하고 빈 공간을 노려보며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는 광경. 뱃은 배를 대고 웅크린 채, 악마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빈 공기로부터 주춤주춤 물러나는 광경.

“총 던져요.”

스티나가 침착하게 (마치 지금도 <리겔 로열>의 술자리에 앉아 있다는 듯) 명령했다.

 

클리프 역시 조용히 명령에 따랐다. 스티나는 흔들림 없이 공중에서 작은 무기를 잡아 조준했다.

 

그가 경고했다.

“그대로 있어요! 뒤로 와, 뱃, 뒤로 데려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목청이 찢어지는 듯하게 분노와 혐오가 섞인 울음소리를 내며, 뱃은 스티나의 부츠 사이로 몸을 피했다. 스티나는 엄지와 검지를 눌러, 우주복을 향해 발사했다. 무언가가 발사를 가로막은 듯, 옷은 그을린 의자에 걸려있는 남은 쪼가리들을 빼고는 재와 파편이 되어 날렸다. 뱃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고막을 찢는 울음소리를 냈다.

 

“무슨…?” 클리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스티나는 왼손으로 경고하는 손짓을 했다.

“기다려요!”

 

그는 아직 긴장한 채 뱃을 관찰했다. 고양이는 흰자위를 보이며 입에는 거품을 문 채 미친 듯이 달려 조종실을 두 바퀴 돌았다. 그러다가 문 앞에서 갑자기 뚝 서서는, 몇 분간 조용히 어깨너머를 돌아보고 서서 세심하게 냄새를 맡았다.

 

스티나와 클리프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주총을 쏘았을 때 나는 냄새가 아닌, 진한 기름기가 벤 악취였다.

 

뱃은 거의 발끝으로 서서 카펫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들고 스티나를 지나쳐 자신 있게 나아가더니 타지 않고 남은 우주복 쪼가리의 냄새를 맡고 하악질을 두 번 했다. 죽은 적을 향해 그렇게 예의 표시를 한 뒤 다시 평온하게 앉아 신중한 태도로 털을 핥기 시작했다. 스티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조종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무슨 일인지 이제 설명 좀 해줄 수 있을까요?”

클리프가 그의 손에서 총을 뺏으며 소리쳤다.

 

“회색.”

스티나가 멍하니 말했다.

“회색이었나 봐요. 아니면 내가 그렇게 볼 수는 없었을 거야. 나는 색맹이에요. 회색만 볼 수 있죠. 내게는 세상이 온통 회색이에요. 뱃도 그렇듯이, 뱃의 세상도 온통 회색이죠. 하지만 대신 뱃은 사람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의 빛을 볼 수 있고… 이제 보니… 나도 그런가 봐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며 클리프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자랑스러운 자기애의 공기를 풍기며 턱을 들었다. 그는 풀린 머리를 뒤로 넘겼지만, 다시 망에 말아 넣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게 우리 사이를 지나갔을 때 내가 볼 수 있었던 거예요. 우주복과는 다른 빛깔의 회색이라서 윤곽이 드러난 거죠. 그래서 우주복을 벗어서 그게 그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린 거예요. 그게 유일한 기회였어요, 클리프.”

 

“내 생각엔 처음부터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자기를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기다렸다 공격하려고 한 거죠. 하지만 뱃이 존재를 발견하자 행동을 취한 거예요. 그래서 나는 우주복 앞에서 모습을 보이길 기다렸다가 보내버린 거죠. 알고 보면 굉장히 간단해요…”

 

클리프는 약간 긴장한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회색이라는 그것이 무엇이라는 거죠? 그 부분이 이해가 안 가는데요.”

 

“내 생각에는 여제호를 유기선으로 만든 장본인인 것 같아요. 이 우주에서, 혹은 어딘가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이겠죠.”

그는 손을 저었다.

“그건 인간이 볼 수 있는 스펙트럼을 넘어서는 색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우주선이 표류하는 동안 계속 여기서 머물렀나 봐요. 그리고 호기심이 충족되면 살인을 하는 것 같군요.”

그는 선실에서 본 광경과 보석 더미에서의 이상한 행동을 통해 그가 그것을 발견하게 된 계기를 빠르게 설명했다.

 

클리프는 총을 집어넣지 않고 있었다.

“우주선에 더 타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는 그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스티나는 뱃을 바라보았다. 그는 앞발의 두 발가락 사이에 특별히 더 많은 공을 들여 목욕을 마치고 있었다.

“아닐 거예요. 하지만 만약 있다면 뱃이 알려줄 거예요. 내 생각에 뱃은 그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그것’은 더 없었고 이 주 뒤 클리프, 스티나, 그리고 뱃은 여제호를 루나 검역 정박소로 몰고 왔다. 그리고 이것이 스티나 이야기의 결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한 결혼에는 뒷이야기가 필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나는 그의 회색 세상에 대해 잘 알고 그 세상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을 찾은 것이다. 뱃이 아닌 누군가를. 그들은 진정한 사랑으로 맺어지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스티나는 리겔에서 제조된 타는 듯한 붉은 빛깔의 망토를 두르고 값비싼 요반의 루비들을 손목에 빛내고 있었다. 클리프는 웨이터에게 세 자릿수 금액의 계산서를 써주고 있었다. 그리고 뱃은 앞에 향기풀 주스가 담긴 유리잔들을 일렬로 세워두고 앉아 있었다. 나들이를 나온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1. 목성의 최대 위성 [본문으로]
  2. Flying Dutchman: 유명한 네덜란드의 유령선. 희망봉 부근에서 날씨가 궂은 날 출몰했다고 하는 유령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