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 글/품위 있는 사람들, 헨리 버너

품위 있는 사람들, 헨리 버너, The Nice People, Henry Cuyler Bunner, 1890

monglim 2017. 6. 1. 17:51

*원문 링크: http://www.classicreader.com/book/2895/1/

 

 

 “뭐 품위 있는 사람들이긴 하네.” 나는 아내의 말에 동의하며, 내 말투가 ‘품위’ 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식했다. 

“애 셋도 남들보다 훨씬 잘 키웠겠어” 

“애 둘” 아내가 내 말을 정정했다. 

“남편이 셋이라고 했어.” 

“부인은 둘이라고 했어, 여보” 

“셋이랬는데.” 

“그 새 잊어버린 거지. 부인이 분명히 둘이라고 했어, 아들 하나 딸 하나.” 

“음, 나는 그런 자세한 얘기까지는 안 했는데.” 

“그러니까 여보, 그분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거겠지. 애 둘.” 

“그런가 보다.” 

나는 속으로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근시들이 멀리 얼굴이 안 보이는 사람을 알아보는 방안을 강구해내듯, 기억력이 안 좋으면 집중해서 듣고 최대한 정확하게 저장하는 습관을 들여놓게 된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하지만 브루스터 브리드 씨가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고, 부인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는 동안 장모님이 아이들을 봐주고 있다고 오후에 한 이야기를 잊어버릴 정도의 시간은 아니었다. 

아내가 다시 말했다. 

“애 둘. 지금 제니 고모네 맡겨놨고.” 

“남편은 장모라고 했는데.” 나도 다시 대답했다. 아내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남자들이 애들 이야기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도 고모와 장모의 차이는 안다. 

“그렇지만 참 품위 있는 사람들은 맞는 것 같지?” 아내가 물었다. 

“물론이지. 자기네 애들에 대해서 좀 헷갈려하는 것만 빼고는.” 내가 대답했다. 

“흠. 그런 말은 안 하는 게 나아.” 아내가 말했다.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전날의 이러한 대화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아침 브리드 부부가 기분 좋고 우아한 모습으로 방에서 내려와 꾸밈없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맞은편에 앉았을 때, 나의 사회적 뇌는 그들이 ‘품위 있는’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보냈다. 남편은 스물여덟에서 서른 정도의 나이로, 날씬한 몸집과 기품 있는 몸가짐에 깔끔한 테니스 복장을 하고 프렌치 스타일로 수염을 기른 잘 생긴 남자였다. 부인은 보기 좋은 옷을 차려입은 ‘품위 있는’ 모습으로, 오래도록 남는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였다. 둥글둥글한 몸집, 거무스름한 피부,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 하얀 치아와 까만 눈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는 스물다섯 정도로 보였는데, 스무 살 때는 더 예뻤을 것으로, 그리고 마흔에도 여전히 예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다. 

 

오렌지 산 꼭대기에 위치한 제이코버스네 여름 별장에서, 품위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만큼 우리가 진심으로 환영할 만한 일은 없었다. 지난 일주일간 우리는 매일 아침 식사 시간마다 왜 소중한 시간을 제이코버스네 별장에 모인 이 나태한 사람들과 보내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튼에서 온 남 말하기 좋아하는 두 중년의 뒷담화꾼 태브 부인과 후젠캠프씨, 딱딱한 회계사인 남편과 깐깐하고 트집잡기 좋아하는 아내 비글 부부, 한 때 수수료를 받고 주식 파는 일을 해본 경험으로 모든 상장 회사에 관한 전단을 돌리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투자를 권유하는 은퇴한 사업가 핼킷 소령과 모여서, 대체 어떤 즐거운 사교적 교류를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주변의 활기 없는 얼굴, 좁은 속과 황폐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얼굴을 보며 그 날 아침에 떠나기로 결정한 참이었다. 그러다가 아우로라 여신의 구름 털과 같이 가벼운 제이코버스 부인의 비스킷과 정직하게 내린 커피를 마시면서 탁자 위에 꽂아둔 끝무렵의 아잘레아 꽃 향기를 맡고는 딱 하루만 더 머물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고는 우리가 ‘우리의 전망대’라고 부르는 곳으로 아침 산책을 나갔다. 그곳으로 가자 태브와 후겐캠프와 할킷과 비글 부부가 아무리 노력한들, 우리를 떠나보내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식사 후 아내가 브리드 부부에게 함께 ‘우리의 전망대’를 보러 가자고 초대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 후젠캠프-비글-태브-할킷 선수단은 제이코버스네 베란다에 나오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브리드 부부는 성스러운 광경의 진가를 알아줄 거라는 믿음이 들었다. 우리는 천천히 들판을 거닐어 작은 숲을 지났고, 나는 브리드 부인의 환희에 찬 탄성을 들으며 브리드 씨에게 위쪽을 보라고 가리켰다. 

“세상에! 아름다워라!” 그가 외쳤다. 

 

우리는 산등성이에 서서 앞에 20킬로미터가 넘도록 굽이치는 녹색지대와, 그 뒤로 넓게 펼쳐진 옅은 푸른색 뒤로 흐릿한 보라색 선으로 보이는 스태튼 섬까지 바라보았다. 작은 마을과 군락들이 우리 아래 군데군데 보였다. 능선과 언덕, 고지대와 저지대, 숲과 들판이 하나의 거대하고 고요한 녹색 바다로 합쳐져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위대한 자연의 광경이 지닌 특유의 고요함이었다. 일요일에 퍼져있는 고요함, 생각을 멈추고 나무 위로 솟아난 첨탑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성스러운 고요함이다. 우리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발아래 펼쳐진 나무들 사이, 구름이 산의 밑자락까지 드리운 드넓은 그늘 아래 서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브리드 부인이 물었다. 

“여기가 바로 당신들의 전망대군요? 우리에게도 이 전망을 나눠주다니, 정말 좋은 분들이세요.”

 

우리는 잔디에 자리를 잡았고, 브리드는 자연에 영향을 받아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카누를 탔었고, 그래서 앞의 넓은 땅에 보이는 모든 강과 계곡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는 몇몇 지점들을 찾아내어, 파사익Passaic 강과 하켄색Hackensack 강이 흐르는 곳을 알려주었다. 높은 능선에 가려져 우리 눈에는 그저 녹색 파도에 그어진 선들과 같이 보였다. 그러나 넓은 능선과 언덕 뒤에는 작은 마을들이 있었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시골의 삶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인류를 바라보는 것과 같지요. 우리가 주변의 사람들보다 너무 멀리 올라서버리면 다른 이들의 한쪽 면만을 보게 되니까요.” 그가 말했다. 

 

아, 태브와 후젠캠프의 험담와 소령의 끝없는 주식 권유에 비해 이런 대화가 어찌나 소중하던지! 나는 아내와 시선을 교환했다. 

브리드씨가 입을 열었다. 

“제가 매터혼Matterhorn 산을 등반했을 때는요…” 

그의 부인이 끼어들었다. 

“아니, 여보. 당신 매터혼을 등반했었는지 몰랐는데요.” 

“그, 그게 오 년 전 일이었어요.” 브리드 씨가 다급히 말했다. 

“내, 내가 얘기 안 한 건… 내가 산 반대쪽에 있었을 때… 그게 꽤 위험한 일이었어서… 그러니까 제가 하려던 말은… 그때의 광경이…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는 거죠.” 

머리 위로 구름이 지나가며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그늘은 산등성이를 지나 산 아래쪽에 다시 나타났고, 빠르게 미끄러지는 얼룩은 황금빛 녹색지대를 지나 동쪽으로 사라졌다. 나와 아내는 다시 한번 시선을 교환했다. 

왜인지, 그늘은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브리드 부부가 나란히 좁은 길을 걸었고 나는 아내와 함께 걸었다. 

아내가 내게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결혼한 첫 해에 남편이 매터혼 산을 등반하는 게 정상인 것 같아?” 

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여보. 결혼한지도 한참 됐고, 나는 그 위에 끝내주는 농장이 있다고한들 등반하지 않을 테니까.”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잖아.” 아내가 말했다.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별장에 다다랐을 때 제이코버스씨가 나를 불러냈다. 그는 말을 꺼냈다. 

“알다시피, 제 아내가 전에 뉴욕서 살았잖아요.” 

나는 몰랐던 사실이지만 대답했다. 

“그렇죠.” 

“아내가 말하길 거기는 거리에 숫자들이 요 쪽 저쪽으로 왔다리갔다리 하게 되어있다네요. 한쪽에 34 거리가 있으면 다른 쪽에는 35 거리가 있는거시, 맞아요?” 

“그게 규칙으로 알고 있어요.” 

“그라면… 제가 할라는 얘기는… 선새임 부부가 갱장히 친밀하게 지내는 이 새 부부 말이에요, 좀 아는 바가 있어요?” 

“제이코버스 씨, 저는 당신 별장에 머무르는 사람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요.” 목소리에 약간의 짜증이 섞인 것을 느끼며 말했다. 

“제가 그중 누구와 친분을 갖건…” 

제이코버스가 끼어들었다. 

“네, 네, 그란 문제가 아이라요! 선생님 인간관계를 문제 삼는 거이 아이라, 그들에 대해서 좀 아시냐고요?” 

“아뇨, 모릅니다만.” 내가 대답했다. 

“그게 제가 묻는 다예요. 그러니까, 어제 방을 구하러 남자가 왔을 때, 선새임은 그때 없었어요, 아내한테 도로 34번지에 산다고 했단 말이죠. 그라고 어제는 부인이 35번지에 산다고 말했대요. 남자가 아파트에 산다고 했거든요. 도로 양쪽에 있는 아파트라는 거는 없지 않아요?” 

“무슨 도로였는데요?” 나는 피로감을 느끼며 물었다. 

“121번 도로요.” 

나는 더욱더 피곤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럴 수도 있죠. 거긴 할렘이네요. 할렘에서 어떤 식으로 하는지 누가 알겠어요.”

 

나는 아내의 방으로 올라갔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내는 얘기를 듣더니 물었다. 

“오늘 밤에 그 젊은이와 얘기를 나눠봐야겠어. 이에 대해 직접 설명할 바가 있는지.” 내가 대답했다. 

아내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보, 부인 쪽은 홍역을 앓았었는지 아닌지도 몰라.” 

“아니 세상에! 어렸을 때 당연히 앓았겠지.” 내가 소리쳤다.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그 애들 말이야.” 아내가 말했다. 

 

그날 밤 저녁 식사 후에, 아니 점심 식사인가(제이코버스네는 저녁을 한낮에 먹었다), 나는 베란다 끝에서 평화롭게 담배를 피우는 브리드 씨에게 저녁 산책을 제안하려고 긴 베란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도중에 할키트 소령과 마주쳤다. 

“당신 친구 말이요,” 그는 집 저쪽 편에 서서 자기 얘기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주인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좀 많이 이상한 친구 같아. 나한테 지금 사업을 접고, 투자할 곳을 찾는 중이라고 했단 말이지. 그래서 내가 다음 달에 상장하는 자본금 사백만짜리 캐피톨라인 트러스트 회사에 투자해야 된다고 그렇게 강조를 해서 알려줬는데… 당신한테도 말해줬잖소. ‘글쎄요’ 하고 말하더군. ‘시간을 두고 좀 생각해봐야겠어요.’ ‘아니!’ 내가 말했지. ‘캐피톨라인 트러스트 회사는 자네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이거 완전 공짜로 먹는 거야.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고.’ ‘오, 일단 기다려보죠.’ 그렇게 말하더라고. 대체 뭐가 문제인 친구인지 모르겠어.”

 “소령님, 저는 그 친구가 얼마나 수완이 좋은 사업가인지 몰라요.” 나는 다시 브리드가 있는 베란다 끝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소령은 캐피톨라인 회사의 주식 판매량에 티끌만큼의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주식이 좋은 투자 기회인 것은 틀림없었다. 구매자가 몇 천 달러의 자본만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어쩌면 브리드가 투자를 하지 않는 건 내가 안 하는 것만큼 이상한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한 정황들에 하나의 증거가 더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날 저녁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을 때, 아내가 머리를 침대에 누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모든 결혼한 남자들에게 익숙할 이 광경을 더 잘 묘사할 방법을 모르겠다. 나는 마지막 머리 다발이 말려 올라갈 때까지 기다린 후에 입을 열었다. 

“브리드와 얘기를 좀 나눠봤어. 꼬치꼬치 캐물을 필요도 없었어. 우리가 궁금해하는 눈치를 챘는지, 무척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하더라고. 애들에 대해서는 당신 말이 맞았어. 그러니까, 내가 잘못 알아들었나 봐. 둘만 있는 게 맞대. 매터혼 산에 관한 건 더 간단한 문제더라고. 그가 산에 이미 깊숙이 들어가서야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깨달아서 다시 돌아올 수가 없었대. 그리고 부인한테 이야기 안 한 이유는 그러니까, 그때 여기 남겨두고 갔었고, 당시 상황상…” 

아내가 소리쳤다. 

“여기 남겨뒀었다고! 나도 오후 내내 그쪽 부인과 앉아서 바느질하다 왔는데, 제네바에 남아 있었다고 그랬어. 그리고 돌아와서 함께 베이즐로 갔고, 거기서 아기가 태어났다고… 확실해 여보, 내가 물어봤거든.” 

“그가 강 이쪽 편에 남겨뒀다고 한 걸 내가 잘못 알아들었는가 봐.” 나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아내가 말했다. “불쌍한 여보, 내가 너무 몰아붙였어? 그런데, 있잖아, 태브 부인이 말하길 아내가 남편이 커피에 설탕 몇 개를 넣는지도 모르더래. 그건 좀 이상하지, 안 그래?”

그랬다. 사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브리드 부부에게 생긴 적대감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그들은 조금 늦은 시간에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왔는데,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비글스 부부는 접시에 남은 음식을 모두 집어 들더니 티를 내며 식당을 나갔고, 후젠캠프씨는 접시에 피시볼 하나를 그대로 남긴 채 일어나 떠나버렸다. 마치 아탈란타[각주:1] 그를 쫓아오던 사냥꾼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사과 하나를 떨어뜨렸듯, 후젠캠프씨도 피시볼을 남겨 그와 불결한 것 사이를 가르려는 것 같았다. 

나와 아내는 브리드 부부가 내려오기 전에 이미 아침 식사를 마친 상태였다. 우리는 대화 끝에 이러한 불필요한 편 가르기에 동참하지 않기로 했다. 

 

제이코버스네 머무는 남자들은 아침 식사 후에 여성들을 피해 건물의 구석을 돌아가서 담배나 파이프를 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리는 기억하는 한 단 한 번도 열매를 맺은 적이 없는 포도나무 넝쿨이 뒤덮은 정자 아래 앉았다. 넝쿨의 이파리는 무성해서 화창한 여름 아침에 집 한편의 헝클어지고 반쯤 죽은 꽃밭에서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시야에서 가려주었다. 

제이코버스 씨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저도, 남의 사생활에 끼아 들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치만서도 나도 내 집에 머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권리가 있다고요. 그래서 내가 묻는 거이, 이걸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일게 아니라, 그러니까… 결혼 증명서를 가지고 있는지 말이요?” 

브리드 씨의 답변이 들렸다. 

“아니요. 그러는 주인장은 가지고 있으세요?” 

 

일단 던진 대답 같았다. 하지만 그로 충분했다. (홀아비인) 소령과 비글씨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포도넝쿨 정자 반대편에 선 제이코버스씨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도 우리와 같이 말이 없었다.

 

기혼인 독자가 있다면, 당신의 결혼 증명서는 어디에 있는지요? 알고 있나요? 브리드 씨를 제외한 네 명의 남자는 각자의 결혼 서약서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른 채 포도넝쿨 양쪽 편에 있었다. 모두가 하나씩 (소령은 세 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 당신의 것은 어디 있나요? 들러리의 주머니에? 그의 책상에, 아니면 (당시에 조끼가 유행이었다면) 하얀 조끼의 주머니 안에 든 채 세탁되어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남아서? 어디 있는지 얘기할 수 있나요? 과연 알 수 있을지… 그 흥미로운 종이를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놓은 타입의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5분 같은 30초의 끔찍한 침묵이 지나고, 브리드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이코버스씨, 지금 지불하게 당장 계산서를 가져다주시겠어요? 6시 기차를 타고 떠나렵니다. 그리고 짐을 실어갈 수 있도록 마차를 좀 불러줄 수 있겠습니까?” 

“떠나라는 얘기를 한 건 아인데요….” 제이코버스씨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브리드 씨가 말을 잘랐다. 

“계산서 주세요.” 

제이코버스가 항의했다. 

“하지만, 그랄 거 없이…” 

“계산서 주세요!” 브리드 씨가 말했다.

 

나와 아내는 언제나와 같이 아침 산책을 나갔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전망’을 바라보았을 때는 브리드 씨가 이야기해준 그 보이지 않는 마을들만 눈앞에 떠오를 뿐이었다. 우뚝 솟은 언덕이나 사람의 자존감의 높이로는 볼 수 없는 봉우리와 언덕의 맞은편의 모습들 말이다. 우리는 브리드 부부가 떠날 때까지 자리를 피해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돌아갔을 때 마침 제이코버스네 일꾼 피트가 마차에 브리드네 짐을 싣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베란다로 올라서고 있을 때, 브리드 부인이 아픈 듯 브리드 씨의 팔에 기대서 내려왔다. 울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의 예쁜 검은색 눈 주위로 어두운 그늘이 져 있었다. 

아내는 부인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갔다. 

“여보, 저 드레스 좀 봐. 차려입은 걸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질 줄 꿈에도 몰랐던 것 같은데.” 아내가 속삭였다. 

예쁘고 섬세한, 화사한 드레스로, 얇은 줄무늬가 우아한 옷이었다. 모자도 같은 색상(흰색과 밤색)의 얇은 줄무늬 실크로 재단되어 있었으며, 손에는 드레스와 맞춘 양산이 들려있었다. 

“하루에 두 번씩 새 드레스로 갈아입었는데. 이번 드레스가 가장 예쁜 걸. 오… 왜인지… 그들이 떠난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아내가 말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떠나고 있었다. 층계를 향해 가던 브리드 부인은 아내 쪽을 바라보았고, 아내는 브리드 부인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추방된 부인은 자신의 처지에 깊은 굴욕감을 느꼈는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버렸고 햇살을 피하기 위해 양산을 펼쳤다. 그의 예쁜 모자와 드레스 위로 쌀알이 (한 컵 정도의 쌀알이) 흩어내려와 치마를 타고 바닥에 둥근 원을 그리며 떨어졌다. 그리고는 밝은 아침 햇살 아래 불규칙한 띠를 그렸다. 

브리드 부인은 내 아내의 품에 안겨서, 어린 마음이 찢어질 듯 울고 있었다. 

“오, 이런 불쌍한, 불쌍한 아이들 같으니라고!” 브리드 부인이 어깨에 대고 우는 동안 아내가 말했다. 

“대체 왜 우리한테 얘기 안 한 거예요?”

“우-우-우-우-리는 시-시-시-신혼부부로 아-알려지기 싫었어요.” 브리드 부인이 울먹였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끔찍한 거짓말을 해-해-해야 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게 어-어떻게 다 뒤섞여 버릴지. 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제이코버스 씨가 명령했다. 

“피트! 짐 도로 갖다 놔. 이 부부는 원하는 만큼 여기서 묵을 거야. 브리드 씨” 

그는 크고 거친 손을 내밀었다. 

“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브리드 씨가 그의 때 묻은 손을 신사답게 잡는 것을 보고 그에 대한 내 마지막 의구심도 사라졌다. 

두 여자는 ‘우리의 전망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각자 팔로 서로의 허리를 안은 채. 이 상황에서 피어난 자매간의 정에 깊이 감동한 모습이었다. 

브리드 씨는 제이코버스, 비글, 소령과 나를 향해 말했다. 

“여러분, 이 골목 끝에 좋은 뉴저지 맥주를 파는 술집이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 꼭 필요할 것 같군요.” 

 

우리 다섯 남자는 줄을 지어 거리를 걸어갔다. 두 여자는 햇살이 거대한 능선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아름다운 언덕을 향해 갔다. 제이코버스의 베란다에는 둥글게 흩어진 쌀알이 빛나고 있었다. 제이코버스네 비둘기 두 마리가 날아와 목구멍 깊은 곳에서 기쁜 울음소리를 내며 빛나는 곡식을 집어 들었다.

 

  1. 그리스신화 아탈란타: Calydon의 멧돼지를 쏴죽인 용맹하고 걸음걸이가 빠른 여자 사냥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