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 글/앞서 온 남자, 폴 앤더슨

앞서 온 남자, 폴 앤더슨, The Man Who Came Early, Poul Anderson, 1956

monglim 2018. 7. 2. 16:55

원문링크: http://vvikipedia.co/images/c/c7/Poul_William_Anderson_-_The_Man_Who_Came_Early.pdf

| *북유럽어 발음은 https://forvo.com/search/ 참고했습니다

 

 

 

그래요. 사람이 이 정도 살다 보면 이상한 이야기를 하도 들어 웬만한 것에는 놀라지도 않게 됩니다. 미타가르드Mittagard 왕의 높은 의자 앞에는 금으로 된 짐승이 지키고 있어, 일어서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한다고 해요. 거기서 보초를 서던 필리프 에릭손에게 들은 이야기죠, 술만 안 마시면 꽤 멀쩡한 친구예요. 그는 물 위에서도 타는 그리스의 불[각주:1]도 직접 봤다고 했죠. 

 

그러니까, 신부님이 예수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제가 믿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영국과 프랑스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정말 풍요로운 곳이었죠. 그렇게 많은 왕국을 다스리는 걸 보면 대단한 신은 맞나 봅니다… 그리고 신부님 말에 의하면 세례를 받는 모든 이에게 하얀 예복을 준다고요? 저도 하나 있으면 좋겠네요. 물론 이 저주받은 아이슬란드의 축축한 날씨에서는 금방 곰팡이가 슬겠지만, 집의 신께 작은 제물을 바치면… 제물은 안된다고요? 여보세요 신부님! 저도 이제는 전처럼 치아가 좋지 않아 정 필요하다면 말고기를 포기하겠지만,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집의 신이 굶주리면 얼마나 난동을 부리는지 안다고요. 

 

… 그럼, 한 잔 더 하면서 얘기를 계속해볼까요. 맥주는 마실만 한가요? 직접 만든 거예요. 잔은 수년 전에 영국에서 가져온 거죠. 그때는 나도 젊었죠… 시간은 참 잘 흘러요, 참 잘 흐르죠. 그 후에 저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 곳, 아버지의 농장을 물려받고 나서는 한 번도 여기를 떠난 적이 없어요. 젊었을 때는 바이킹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진짜 부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죠. 바로 농장과 가축이에요. 

 

여기 불 좀 피워줘, 햘트! 추워지고 있어요. 요즘에는 내가 어렸을 때보다 겨울이 더 혹독해 진건 아닌가 생각해요. 살몬데일Salmondale의 토르브랜드도 동의하는데, 그는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아서 신들이 분노한 거라고 믿어요. 토르브랜드를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신부님. 고집이 센 양반이에요. 반면에 저는 열린 편이죠, 적어도 들어볼 의향이 있어요.

… 자 그러면. 한 가지는 제가 지적을 해야겠네요. 이 년 후에 종말이 온다는 건 틀린 말이에요. 제가 알아요.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이야기가 많이 길어질 거예요, 좀 끔찍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종말이 오기 전에 제가 늙어서 안전하게 묻힐 거라는 게 위안이 되는군요. 빙하의 거인들이 오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예요… 오, 그래요, 천사가 전쟁의 나팔을 불기까지요. 제가 신부님의 설교를 주의 깊게 듣는 이유 중 하나는, 저는 이미 예수가 토르를 이길 걸 알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머지않아 아이슬란드가 기독교 국가가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기는 쪽으로 붙는 게 낫죠. 

 

아뇨, 제가 예언을 들은 건 아니에요. 오 년 전 일이고, 저의 가족과 이웃도 증언할 수 있는 사건이죠. 그들은 낯선 방문자가 하는 이야기를 거의 믿지 않았어요. 저는 대부분 믿어요, 왜냐면 거짓말쟁이가 혼자서 그렇게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을 것 같거든요. 저는 제 딸을 굉장히 사랑해요, 신부님. 그래서 그 사건 후 좋은 신랑감을 주선해줬죠. 딸은 거부하진 않았지만, 남편과 먼 농장으로 간 후 지금까지도 저와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남편은 딸의 과묵함과 우울함에 질려 아일랜드인 첩을 들였다고 해요. 그걸로 그를 비난하지는 않지만, 매우 슬퍼집니다. 

 

이제 술은 마실만큼 마셔서 전부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군요. 신부님이 제 말을 믿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어요. 자… 여기요! 잔 좀 채워줘요, 이야기를 다 끝내려면 목이 탈 테니까.

 

그러니까, 모든 일의 시작은 오 년 전 초여름이었어요. 그때 제 부인 량빌과 저는 미혼인 자식 둘과 살고 있었죠. 막내아들 헬기는 열일곱 번의 겨울을 났고, 딸 토르가나는 열여덟이었어요. 딸은 미인이라, 벌써 구혼자가 여럿 있었죠. 하지만 모두 거절했고, 저는 딸에게 강요하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헬기는 굉장히 활발한 아이로, 손도 잘 쓰고 굉장히 빠른 소년이었어요. 지금은 노르웨이의 왕 올라프의 병정이 되어 있죠. 물론 둘 외에도 열 명 정도의 식구가 있었어요. 아일랜드에서 온 노예 둘, 여자들 일을 돕는 하녀 둘, 그리고 고용 일꾼도 대여섯 됐어요. 우린 작은 농장이 아니거든요. 

 

제 농장 못 보셨죠? 서쪽으로 3킬로미터 정도 가면 만이 나오고, 남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곳이 레이캬비크Reykjavik 마을이에요. 롱 요쿠Long Jokull 쪽으로 점점 지대가 높아지기 때문에 제 농장에는 언덕이 많죠. 하지만 소들이 뜯기 좋은 풀이 자라는 땅이고, 해변으로 종종 나무가 떠내려와요. 거기서 나무를 건지려고 헛간을 지었죠, 배를 보관하는 창고도 있고요. 

전날에 폭풍이 몰려왔어서, 저는 헬기와 떠내려오는 나무를 주우러 갔어요. 당신은 노르웨이 출신이라 우리 아이슬란드인들에게 목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죠. 이 곳에는 작고 삐쩍 마른나무 몇 그루뿐이라 언제나 목재를 수입해와야 해요. 외국에서는 종종 분쟁이 나면 적의 집에 불을 지르고는 한다죠, 하지만 여기서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이에요. 물론 아예 없는 일은 아니지만요.

 

저는 이웃들과 사이가 좋은 편이라 작은 휴대용 무기만 들고 갔어요. 나는 도끼, 헬기는 칼, 그리고 일꾼 둘은 창을 들었죠. 전날 밤하늘의 횡포 후 세상은 말끔했고, 젖은 풀 위로 햇살이 밝게 비추고 있었어요. 저는 안뜰에 건강한 소와 양들이 늘어져 있는 풍요로운 풍경과 건물의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내가 꽤 괜찮게 살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농장을 뒤로하고 산등성이를 넘어 물가로 걸어갔고 아들 헬기의 머리카락은 낮은 서풍에 휘날리고 있었죠. 그 날 기억이 놀라울 정도로 뚜렷해요, 다른 기억보다 훨씬. 

 

우리가 물가에 다다랐을 때, 바다는 흰색과 회색의 묵직한 파도를 세상의 끝을 향해 치고 있었어요. 하늘 위로 갈매기가 날면서 울음소리를 내서 해변에 떠내려온 대구가 놀라 퍼덕이며 도망쳤죠. 해변에 적지 않은 양의 찌꺼기가 밀려와 있었어요. 심지어 꽤 큰 목재 덩어리도 있었죠… 아마 밤중에 싣고 있던 배가 부서지면서 온 거 같아요. 꽤 괜찮은 수확이었어요, 물론 저는 조심스러운 사람이라 원래 주인의 유령이 우릴 쫓지 않도록 나중에 제물을 바쳤어요. 

 

변에서 목재를 건져 헛간으로 끌고 가는데, 갑자기 헬기가 놀라 소리를 질렀어요. 저는 헬기가 가리키는 곳을 보며 도끼를 꺼낼 준비를 했죠. 당시에는 적진 사람이 없었지만, 언제나 떠도는 무법자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자는 위험하지 않아 보였어요. 그가 검은 모래 위로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보니 무기가 없는 듯해서 무슨 사정인지 궁금했죠. 덩치가 크고 차림이 이상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코트와 바지와 신발 차림이었지만, 옷의 모양이 특이했고 바지를 가죽끈으로 묶은 것이 아니라 바지폭이 좁아서 고정되는 방식이었죠. 그리고 처음 보는 헬멧이었어요. 목까지 내려오는 사각진 모양에 코 보호대는 없었고, 가죽 끈으로 고정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건 믿기 어렵겠지만, 쇠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한 통으로 주조된 거예요!

 

그는 우리와 가까워지자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뛰어오더니, 팔을 휘적이며 뭐라고 말을 했어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언어였어요, 저는 굉장히 많은 언어를 접해봤는데도요. 약간 개가 짖는 것 소리 같았어요. 수염을 깨끗이 밀고 검은 머리도 짧게 자른 걸 봐서 프랑스인인가 했어요. 푸른 눈에 잘 정돈된 이목구비가 젊고, 잘생긴 청년이었어요. 피부를 보니 대체로 실내에서 지낸 듯했어요. 몸은 남자답고 다부졌지만요. 

“배가 난파한 걸까요?” 헬기가 물었어요. 

“옷이 깨끗하고 말라있어.” 제가 답했어요. 

“그리고 수염이 별로 자라지 않은 걸로 봐서 오래 떠돈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근처에 멀리서 온 손님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는데.” 

 

우리는 손에 든 무기를 내렸고, 그는 다가와 숨을 고르려 노력했어요. 저는 그의 코트와 그 밑에 입은 셔츠가 레이스가 아닌 뼈와 같은 단추로 잠그는 방식으로 두꺼운 직물로 짠 형태인걸 봤어요. 목 부위에는 긴 천을 감아 코트 안에 넣었어요. 옷은 모두 갈색 계열이었어요. 신발도 처음 보는 모양이었는데, 굉장히 솜씨 좋게 만든 구두였어요. 코트에는 여기저기 놋쇠가 달려 있고, 양 소매에 짧은 줄무늬 세 개가 있었어요. 그리고 흰색 글씨가 쓰인 검은색 밴드를 차고 있었고, 헬멧에도 같은 글자가 있었어요. 룬 문자가 아니라 로만 글씨 ‘MP’였어요. 두꺼운 벨트를 차고 있었는데, 엉덩이 쪽에 칼집에 든 쇠몽둥이 같은 것이 있었고, 진짜 몽둥이도 차고 있었어요. 

 

“마법사인가 봐요. 저런 표식들을 봐서는?” 일꾼 시규르드가 중얼거렸어요. 

“장식용이거나, 마술을 쫓기 위한 걸 수도 있지.” 저는 이렇게 달래고는, 낯선 이에게 말했죠. 

“나는 볼스테드Bollstead의 오스팍 울손이라고 합니다. 여기 무슨 일로 오셨소?” 

그는 번뜩이는 눈을 하고 가슴을 헐떡이며 서 있었어요. 엄청 멀리서부터 뛰어온 것 같았죠. 그러더니 신음소리를 내며 얼굴을 파묻고 주저앉았어요.

“아.. 아픈가 봐요. 집으로 데려가야겠어요.” 헬기가 말했어요. 그의 눈이 반짝였어요, 여기서는 새로운 얼굴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거든요. 

“아니… 아니에요… 잠시만 쉬게 해주세요.” 낯선 자가 올려다보았어요. 

그는 스칸디나비아어를 꽤 잘 했어요, 억양이 심하고 낯선 단어가 많아서 알아듣기 쉽지 않았지만요. 

다른 일꾼 그림이 창을 들어 올렸어요. 

“바이킹이 여기까지 온 거요?” 그가 물었어요. 

“바이킹이 언제 아이슬란드에 왔었다고 그러니? 반대라면 몰라도…” 저는 비웃었죠. 

새로 온 자는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흔들었어요.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물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도시는 어떻게 되었나요?” 

“무슨 도시요?” 저는 인내심을 가지고 물었어요. 

“레이캬비크요! 어디 갔어요?” 그가 신음을 내뱉었어요. 

“당신 온 길로 다시 남쪽으로 8킬로미터 정도 가야 해요. 아니면 레이캬비크 만을 말하는 거요?” 

“아니요! 해변에 허름한 헛간 몇 채 밖에 없었는데…” 

“햘마르 브로드노즈의 마을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다가는 크게 다칠 거요.” 제가 말했어요. 

“하지만 원래 도시가 있었다고요!” 그가 외쳤어요. 눈빛이 흔들렸죠. 

“저는 길을 건너고 있었는데, 폭풍이 몰려왔고 쿵하고 뭐가 치더니 나는 해변에 서 있고 도시는 사라졌어요!” 

“미쳤군.” 시규르드가 뒷걸음을 치며 말했어요. 

“조심해요… 입에서 거품이 나기 시작하면, 발작이 온다는 뜻이에요.” 

“당신들은 누구죠? 그런 옷을 입고 뭘 하는 거죠? 그 창은 뭐예요?” 낯선 자는 정신없이 중얼거렸어요. 

“어쩐지 미친 게 아니라 놀라서 겁을 먹은 것 같아. 뭔가 사악한 일을 겪은 거야.” 헬기가 말했어요. 

“나는 저주받은 사람 근처에 있을 수 없어요!” 시규르드는 이렇게 소리를 꽥 지르더니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돌아와!” 제가 외쳤죠. 

“거기 가만히 기다리지 않으면 이가 바글거리는 네 머리를 쪼개버릴 줄 알아!”

그 말에 그는 멈췄어요. 그는 대신 복수해줄 가족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가까이 오지는 않았어요. 그 사이 낯선 자는 비교적 침착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을 가라앉혔죠. 

“원자 폭탄이었나요? 전쟁이 시작된 거예요?” 그가 물었어요. 

그는 ‘원자 폭탄’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어요. 이제는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만, 아직도 정확한 뜻은 모르겠어요. 그리스의 불의 한 종류인 것 같아요. 전쟁에 대해서는, 어느 전쟁을 말하는지 몰라서 그렇게 답했죠. 

“어젯밤에 심한 폭풍이 쳤어요. 그리고 보아하니 당신도 폭풍에 휩싸였던 것 같군요. 어쩌면 토르의 망치에 맞아 당신이 있던 곳에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죠.” 제가 설명했어요. 

“하지만 여기가 어딘데요?” 그가 물었어요. 처음의 충격이 가셨는지 목소리가 조금 차분해졌어요. 

“말했잖소. 아이슬란드의 할스테드Hfflstead라고.” 

“하지만 내가 있던 곳이 거긴데!” 그가 중얼거렸어요. 

“레이캬비크…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내가 정신을 잃은 동안 원자 폭탄이 모든 걸 파괴한 건가요?” 

“파괴된 건 없어요.” 저는 말했어요. 

“지난달에 올라스비크Olafsvik에 난 불을 말하나 봐요.” 헬기가 말했어요. 

“아뇨, 아뇨, 아뇨!” 그는 손에 얼굴을 파묻었어요. 잠시 후 그는 얼굴을 들고 말했어요. 

“보세요. 저는 아이슬란드의 미군 기지에 배치된 제랄드 로버츠 중사예요. 저는 레이캬비크에 있다가 번개 같은 것에 맞은 것 같아요. 어느 순간 해변에 서 있길래, 겁이 나서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그게 다예요. 자, 이제 다시 군 기지로 돌아갈 방법을 알려주시겠어요?” 

 

신부님, 대충 이런 말을 했어요. 물론 우리는 반도 이해하지 못해서 그에게 몇 번이나 다시 반복하게 하고 단어도 하나씩 설명해달라고 했죠. 그런데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저 그가 그린란드보다 서쪽에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왔고, 아이슬란드가 적에 맞서는 일을 돕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이 곳에 왔다는 것 정도만 알아들었죠. 저는 이걸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뭔가 실수이거나 착각한 거라고 봤죠. 우리가 이 말을 믿었다는 걸 알면 그림은 우리를 멍청이 취급하며 이 자를 죽여버렸겠지만, 저는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설명을 하면서 점점 침착을 찾았어요. 그는 아픈 사람 치고는 너무 이성적인 말투로 말했어요. 

“잘 들어보세요. 어쩌면 우리가 자초지종을 밝혀낼 수도 있잖아요. 전쟁이 난 것에 대해 못 들었나요? 전쟁이… 그러니까 제 말은, 미국 사람들은 처음에 독일인들에 맞서 아이슬란드를 지키기 위해 왔어요. 그게 언제죠?” 

헬기는 고개를 저었어요. 

“저는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네요. 그리고 러시아인은 대체 누구죠?” 그가 말했어요. 나중에야 러시아가 바로 가르다리키Gardariki를 말한다는 걸 알게 됐죠. 

“혹시, 늙은 마법사들을 말하는 건가…” 

“아일랜드에서 온 수도사들을 말하는 거요.” 제가 설명했어요. 

“노르웨이 사람들이 왔을 때 여기 몇몇이 살고 있었는데, 쫓겨 나갔죠. 벌써, 흠, 백 년도 더 전 일이에요. 당신네 사람들이 수도사들을 도와준 적이 있소?” 

“들어본 적도 없는걸요!” 그가 말했어요. 숨이 목에 걸린 듯했어요. 

“당신들.. 당신 아이슬란드인들은 노르웨이에서 온 게 아닌가요?” 

“그래요, 백 년 전쯤 일이죠.” 나는 인내심 있게 대답했어요. 

“하랄드 페어헤어 왕이 노르웨이 땅을 모두 점령한 뒤에…” 

“백 년 전이라고요!” 그가 속삭였어요.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어요.

“지금이 몇 년이죠?” 

우리는 당황해서 그를 바라봤어요. 

“음, 거대한 연어 사냥 후 이 년이 지났소.” 제가 답했어요. 

“예수 탄생 후 말이에요” 그가 쉰 목소리로 다시 물었어요. 

“아, 기독교인이요? 흠, 어디 보자… 전에 포로로 데리고 있던 영국 주교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가 말하길… 그러니까… 아마 그 기독교 남자가 천년 정도 전에 살았다고 한 것 같아요. 더 적을 수도 있고.” 

“천 년…” 그는 고개를 저었어요. 그리고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생기 없는 유리 같은 눈으로 (네, 여행을 많이 다녀서 저도 유리를 본 적이 있답니다) 가만히 서 있었고, 우리가 뜰 안으로 데려가는 대로 어린이처럼 조용히 따라왔죠. 

 

신부님, 직접 보셔서 알겠지만, 제 아내 량빌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데, 토르가나가 엄마의 미모를 물려받았어요. 딸은 키가 크고 날씬하고, 금발의 머리는 용의 금고 안만큼이나 풍성하게 반짝이죠. 당시에는 미혼이었기에 머리를 올리지 않아 어깨 위에서 금발이 흘러내렸죠. 크고 푸른 눈에 작은 하트 모양 얼굴, 그리고 새빨간 입술이 예뻤어요. 성격도 밝고 착해서, 많은 남자들의 흠모 상대였죠. 딸의 구혼 거절에 크게 상처받은 스베리 스노라손이 바이킹에 합류했을 때, 제 딸이 박복하다는 걸 알아챌 만큼 밝은 사람은 없었죠. 

 

우리는 제랄드 샘손을 데리고 (제가 물어보자, 아버지 이름이 샘이라고 했어요) 집으로 갔고, 시규르드와 그림이 남아 떠내려온 목재를 마저 줍기로 했죠. 어떤 사람들은 마법이 두려워 기독교인을 집으로 들이기 싫어하지만, 나는 열린 사람이고 헬기는 새로운 것이라면 뭐든 환영했죠. 우리의 손님은 들판 위를 장님처럼 헤매며 따라왔지만, 마당으로 들어오자 서서히 깨어나는 듯했어요. 그는 마당을 둘러싼 건물을 살펴봤죠. 마구간과 창고에서부터, 훈제소와 부엌과 욕실과 제단실, 그리고 홀까지. 그리고 우리 토르가나가 그때 문 앞에 서 있었어요.

 

둘은 잠시 시선이 마주쳤고, 저는 딸의 얼굴이 붉어지는 걸 봤지만 당시에는 그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어요. 우리는 마당을 달려오는 개들을 축 처진 신발로 차 밀어냈죠. 일꾼 둘이 마구간을 청소하다 말고 멈춰서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지만, 내가 쓸모없는 사람은 제물로 바치기에 딱이라고 말하자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갔어요. 기독교에는 없는 좋은 전통이에요. 저는 아직 사람을 제단에 바친 적은 없지만, 그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유용하였는지 몰라요. 

 

홀에 들어선 후 가족들에게 제랄드의 이름과 만난 경위를 이야기했죠. 량빌은 하녀들을 보내 홀 중심에 위치한 구덩이에 불을 피우고 맥주를 가져오게 했고, 그동안 나는 제랄드를 높은 의자로 데려가 옆에 함께 앉았어요. 토르가나가 맥주가 담긴 뿔잔을 가져왔죠. 

 

제랄드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얼굴을 찌푸렸어요. 나는 조금 기분이 상했어요, 내 맥주는 맛이 좋기로 꽤 유명하거든요. 그래서 맛에 문제가 있는지 물었죠. 그는 웃더니 그게 아니라 그는 시지 않고 거품이 많은 맥주에 익숙하다고 했어요. 

“그런 맥주는 어디서 만들려나?” 저는 약간 짜증을 내며 말했어요. 

“어디든지요. 아이슬란드에서도, 아니…” 그는 앞을 멍하니 바라보았어요. 

“아니… 빈란드에서도요.” 

“빈란드는 어디요?” 제가 물었어요. 

“제가 온 서쪽 나라요. 당신들도 아는 줄 알았는데… 잠시만요…” 그는 고개를 저었어요. 

“봅시다. 레이프 에릭손이라는 남자의 이름을 들어봤나요?” 

“아니오.” 제가 말했어요. 그 후로 저는 바로 이 이름이 이야기의 증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왜냐하면 레이프 에릭손은 유명한 대장이 되었고, 저는 비야르니 헤르욥손이 전한 새로운 땅을 발견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든요. 

“그의 아버지, 붉은색의 트포일르는요?” 제랄드가 물었어요. 

“아, 그는 물론 알지요.” 제가 말했어요. 

“사람을 죽이는 바람에 노르웨이에서 여기로 왔다가, 같은 이유로 다시 아이슬란드를 떠나 그린란드에서 새로 가정을 꾸린 그 치를 말하는 게 맞다면…” 

“그렇다면 여긴… 레이프가 여정을 떠나기 조금 전의 시대군요.” 그가 중얼거렸어요. 

“10세기 후반이군.” 

“이보시오.” 헬기가 말했어요. “우리가 이제껏 참을성 있게 기다려줬건만, 이제는 수수께끼 놀이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이런 장난은 잔치나 술자리에서 할 거리지. 당신이 어디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제대로 좀 말할 수 없어요?” 

제랄드는 몸을 떨며 얼굴을 가렸어요. 

“좀 있게 둬, 헬기.” 토르가나가 말했어요. 

“지금 너무 괴로워하는 거 안 보여?” 

 

그는 다친 개가 착한 사람을 만나 지을 것 같은 표정으로 토르가나를 올려다보았어요. 천장의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에 홀은 초를 켜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밝았지만 앞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는 안되었죠. 그럼에도 둘의 얼굴이 붉어지는 게 보였어요. 

제랄드는 한숨을 깊게 쉬더니 몸의 여기저기를 뒤졌어요. 그의 옷에는 주머니가 많았어요. 그는 작은 종이 상자를 꺼내 안에 든 흰색 막대기를 입에 물었어요. 그리고는 다른 상자에서 나무 막대기를 꺼내 긁자 끝에서 불꽃이 피어올랐죠. 그렇게 피운 불을 입에 문 막대기에 붙이더니, 연기를 훅 들어마셨어요. 

우리는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기독교 의식인가요?” 헬기가 물었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의 입술이 실망한 미소로 비틀렸어요. 

“당신들이 좀 더 놀랄 줄 알았는데, 겁을 먹거나.” 

“처음 보긴 해요.” 저는 인정했어요. 

“하지만 우린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침착한 편이죠. 그 불 막대기는 꽤 유용하겠는데. 무역하러 온 거요?” 

“전혀 아니에요.” 그는 한숨을 쉬었어요. 연기가 그를 진정시킨 것 같았어요. 좀 이상했죠, 왜냐면 홀에서 나는 연기에는 기침을 하면서 눈이 메워했거든요. 

“사실을 말하면… 믿지 못할 거예요. 저도 믿기 어렵거든요.” 

우리는 다음 말을 기다렸어요. 토르가나는 입을 벌린 채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어요. 

“그 번개가 쳤을 때…” 제랄드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어요.

“저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는데, 번개가 저를 딱 때린 것 같아요, 천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죠. 그리고 저는 과거로 온 거예요.” 

그는 이렇게 말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신부님. 그래서 그렇다고 했죠. 

“이해하기 어렵죠.” 그가 동의했어요. 

“하느님 제발 제가 꿈을 꾸는 중이길! 하지만 이게 꿈이라면, 깰 때까지 이 상황을 견뎌야겠죠… 그러니까, 보세요. 저는 예수 탄생 1932년 후, 아직 당신들이 발견하지 못한 서쪽 땅에서 태어났어요. 제가 스물세 살이 되었을 때, 저는 군대에서 아이슬란드로 배치받았죠. 근데 번개가 쳤고, 지금은… 지금은 예수가 태어난 지 천년도 되지 않은 시대인데, 제가 여기로 온 거예요! 제가 세상에 태어나기 천 년이나 전에, 제가 있다고요!” 

 

우리는 말없이 앉아 있었어요. 저는 망치로 성호를 긋고 뿔에 든 술을 길게 한 모금 들이켰죠. 하녀 중 한 명은 울먹이기 시작했고, 량빌이 쏘아붙이는 소리가 다 들렸어요. 

“가만히 좀 있어. 이 불쌍한 사람은 제정신이 아닐 뿐이야. 위험하지 않아.” 

저는 동의했지만, 마지막 말에는 확신이 없었어요. 신들은 광인을 보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죠. 그리고 신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에요. 또는 제랄드가 갑작스레 광폭해지거나, 강한 저주를 받은 몸이라 우리에게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었죠. 

 

제랄드는 앞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저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무의식적으로 이를 잡아 태웠어요. 그는 이를 보고 소름 끼쳐하며 여기 이가 많은지 물었죠. 

“물론이죠.” 토르가나가 말했어요. “없으세요?” 

“없어요.” 그가 비틀린 웃음을 지었어요. “아직까지는…” 

“아.” 딸이 한숨을 쉬었어요. “몸이 많이 안 좋은 가봐요.” 

토르가나는 분별 있는 애였어요. 량빌과 헬기, 그리고 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죠. 이 남자는 너무 몸이 안 좋아서 이조차 못 살 정도였던 거예요. 우리에게 그의 병이 옮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문제는 다 머릿속 병이었고, 어쩌면 번개에 맞아서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했죠. 어쨌든 지금은 현실의 문제가 되었으니 함께 해결해볼 수 있었죠. 

 

나는 제의식을 담당하는 고디[각주:2]로서, 이 낯선 자를 쫓아내지 않을 의무가 있었어요. 게다가 그가 만약 불 피우는 막대기를 많이 들여올 수 있다면 무역 사업으로 돈을 벌 가능성이 컸죠. 그래서 저는 제랄드에게 침대로 갈 것을 권했어요. 우리는 힘으로 항의하는 그를 억지로 접이식 침대에 눕혔고 그러자 지쳐 금세 잠이 들었죠. 토르가나는 자기가 그를 돌보겠다고 했어요. 

다음 날 저는 제물로 말을 바치기로 했어요. 전날에 운 좋게 목재를 찾기도 했고, 제랄드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액운을 털기 위해서였죠. 게다가 제가 고른 짐승은 늙고 쓸모가 없었고, 우리는 고기가 부족했거든요. 제랄드는 하루 종일 안뜰에서 우울하게 늘어져 있었는데, 저녁을 먹으러 돌아오자 딸과 함께 웃고 있는 걸 보았어요. 

 

“슬슬 건강을 되찾고 있는 것 같군요.” 제가 말했어요. 

“아 네. 더… 최악일 수도 있었죠.” 그는 일꾼들이 탁자를 세우고 하녀들이 음식을 들여오는 동안 내 옆에 앉았어요. “저는 언제나 바이킹 시대에 매력을 느껴왔고, 쓸 만한 기술도 몇 개 있어요.” 

“음, 갈 곳이 없으면 여기서 얼마간 지내도 괜찮아요.” 제가 말했어요. 

“일 할 수 있어요.” 그는 의욕적으로 말했어요. 

“밥 값은 할게요.”

저는 이 말에 그가 정말 먼 곳에서 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어떤 멀쩡한 사람이 자기 땅이 아닌 남의 땅에서 일하겠어요, 게다가 수당을 받으면서? 하지만 그는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의 태도와 매너를 갖췄고, 평생 잘 먹고 자란 게 확실했죠. 저는 그가 선물도 없이 빈 손으로 왔다는 건 문제 삼지 않았어요. 어쨌든, 그의 배는 난파되었으니까요. 

“어쩌면 당신네 미국까지 갈 길을 마련할 수 있겠네요.” 헬기가 말했어요. 

“배를 빌리면 돼요. 그 왕국을 볼 수 있다면 나도 기꺼이 같이 가겠어요.” 

“아니요.” 제랄드는 으스스하게 말했어요. 

“그곳은 없어요. 아직은.” 

“아직도 당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시규르드가 퉁명스럽게 말했어요. 

“미친 얘기지. 고기 좀 건네주쇼.” 

“그래요.” 제랄드가 말했어요. 그는 많이 침착해져 있었어요. 

“증명할 수 있어요…” 

“그렇게 멀리서 왔는데 어떻게 우리말을 쓸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제가 말했죠. 저는 사람을 앞에 두고 대놓고 거짓말쟁이라고 하지는 못하겠어요, 서로 자기 자랑을 얼마나 과장되게 늘어놓는지 장난을 치는 중이라면 몰라도, 하지만… 

“저의 시간과 장소에서는 다른 말을 써요.” 그가 답했죠.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언어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고, 저는 여기로 배치받으면서 아이슬란드어를 배웠거든요.” 

“당신은 기독교지만,” 제가 말했어요. 

“우리가 제물을 바치는 걸 양해 바라오…” 

“저는 큰 이의 없습니다.” 그가 말했어요. 

“그다지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었거든요. 구경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는 거죠?” 

저는 신 앞에서 말을 망치로 때려 말이 기절하면, 목을 베어 피를 버드나무 가지에 뿌리는 과정을 설명해줬어요. 의식이 끝나면 시체를 도살해 잔치를 여는 것도. 그는 재빨리 말했어요. 

“그때 제 존재를 증명해 보일 수 있겠네요. 저는 말을… 번개로 죽일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어요.”

“그게 뭐요?” 저는 궁금했어요. 우리는 모여들어 그가 칼집에서 쇠로 된 몽둥이를 꺼내 보여주는 걸 구경했죠. 사실 좀 미심쩍었어요. 굉장한 실력의 대장장이가 세공한 듯 보이긴 했지만, 사람이나 잡을 수 있을까 싶게 생겼거든요. 

“뭐 이따가 한 번 보죠.” 제가 말했어요. 

 

그는 주머니 속의 다른 물건들도 모두 꺼내놨어요. 굉장히 둥글고 얇은 동전들, 작은 열쇠, 안에 심이 들어 글을 쓸 수 있는 막대기, 표식이 있는 종이가 잔뜩 든 납작한 가방. 그가 진지하게 그 종이가 돈이라고 얘기했을 때는 토르가나 마저 웃음을 터뜨렸죠. 이 중 가장 좋아 보이는 물건은 손잡이로 날이 접혀 들어간 칼이었어요. 제가 칼을 보고 감탄하자 그는 제게 선물했죠. 난파당한 사정에 몹시 후한 행동이었어요. 저는 보답으로 옷과 좋은 도끼를 주고, 필요한 만큼 여기서 지낼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죠. 

아뇨, 그 칼은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아요. 왜 없어졌는지는 차차 얘기하죠. 안타까운 얘기예요, 정말 좋은 칼이었거든요, 작기는 했지만. 

 

“원래 있던 곳에서는 무슨 일을 했소?” 헬기가 물었어요. 

“상인?” 

“아니요.” 제랄드가 말했어요. 

“저는… 기술자였어요… 그러니까, 기술자가 되기 위해 배우고 있었죠. 기술자는 이것저것 짓고 만드는 사람이에요. 다리, 도로, 도구 등등… 세공사와는 달라요. 그래서 제가 가진 지식이 이 곳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저는 그의 눈에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요, 시간만  주어진다면 왕이 될 수도 있어요!” 

“아이슬란드에는 왕이 없소.” 저는 퉁명스럽게 말했어요. 

“우리 선조들은 왕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이 곳으로 온 거요. 물론 가문끼리 충돌이 있거나 새로 법을 만들 때는 왕 앞에서 모이지만, 각자의 갈등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죠.” 

“하지만 잘못을 저지른 자가 굴복하지 않으면요?” 그가 물었어요. 

“그럼 대결로 결판을 짓는 거죠.” 헬기는 답하고, 이어서 눈을 반짝이며 최근에 있었던 죽음으로 끝난 싸움에 대해 얘기해주었어요. 제랄드는 슬픈 표정으로 총을 만지작거렸어요. 그는 불을 뿜는 막대기를 총이라고 불렀죠. 

“옷이 고급스러워 보여요.” 토르가나가 조용히 말했다. 

“부모님이 부지를 많이 가지고 있나 봐요.” 

“아니요.” 그가 말했어요. 

“우리… 우리 왕은 모든 군인들에게 이런 옷을 줘요. 우리 가족은 땅은 없고, 다른 가족들도 많이 사는 건물에 집을 세 들어 살았어요.” 

 

저는 돈을 가지고 재수 없게 구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가 지금껏 부정직하게 행동해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땅도 없으면서 윗사람처럼 높은 의자에 우리와 함께 앉다니 말이죠. 토르가나는 제가 성을 내는 것을 감추기 위해 얼른 대답했죠. 

“나중에는 본인 농장도 생길 거예요.” 

어둠이 내리자 우리는 제단으로 갔어요. 일꾼들이 그 앞에 미리 불을 피워놔서, 문을 열자 일렁이는 불꽃에 나무로 된 오딘[각주:3]의 조각상이 앞으로 튀어나올 듯 보였죠. 제랄드는 제 딸에게 그 조각상이 서투르다고 중얼거렸고, 제 아버지가 직접 만든 것이라 그에게 화가 더욱 치밀었어요. 예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쨌든, 저는 그가 제단 위로 말을 이끄는 것을 돕게 뒀어요. 저는 피를 담을 그릇을 들고 그에게 이제 짐승을 희생할 때라고 일렀죠. 그는 총을 꺼내더니, 끄트머리를 말의 귀에 대고 꽉 쥐었어요. 탕 소리가 나더니, 짐승이 부르르 떨면서 머리에 구멍이 난 채 쓰러졌죠. 아까운 뇌를 전부 흩뿌리면서. 화산 근처에서 나는 날카롭고 쓴 냄새가 코를 찔렀어요. 우리는 모두 놀라 펄쩍 뛰었고, 한 여자는 비명을 질렀고, 제랄드는 자랑스러워 보였어요. 저는 최대한 정신을 차려 평소처럼 제사 의식을 이어갔어요. 제랄드는 피를 여기저기 흩뿌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뭐 어쨌든 그는 기독교인이었으니까요. 약간의 고기와 수프 말고는 별로 먹지도 않았어요. 

 

나중에 헬기가 총에 대해 묻자 그는 활을 쏘는 거리에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만 마법은 아니고, 그저 우리가 아직 모르는 기술이라고 답했어요. 

그리스의 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기에 저는 그의 말을 믿었어요. 총이 싸움에는 꽤 유용하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쇳덩이를 그렇게 쓰는 것이 별로 효율적이지는 않아 보였어요. 다음 총알을 만들려면 몇 달이 걸릴 텐데 말이죠. 

저는 총보다는 그 남자가 걱정거리였죠. 

 

다음날 아침 저는 그가 토르가나에게 자신의 집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보았어요. 산처럼 높은 건물과, 하늘을 나는 말 없이 달리는 마차 등등. 그가 사는 도시에는 거의 구백만의 인구가 산다고 했어요. 뉴요르비크인가 뭔가 하는 도시였죠. 저도 남들만큼 사람들이 과장 들여 늘어놓는 자기 자랑을 듣는 걸 좋아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심했다 싶어서 그에게 따라와서 길 잃은 송아지를 데려오는 걸 도우라고 퉁명하게 말했죠. 

 

언덕을 하루 정도 같이 돌자 제랄드는 소의 머리와 꼬리도 구별 못하는 얼간이라는 걸 파악했죠. 한 번은 가축을 거의 잡을 뻔했지만, 그가 멍청하게 소의 앞 길을 가로막아 도망치게 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어요. 저는 최대한 예의를 끌어모아 그에게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풀을 베거나 도리깨질을 할 수 있는지?” 물었고, 그는 한 번도 농장에서 일한 적이 없어 못한다고 말했죠. 

“안타깝네요.” 제가 답했어요. 

“아이슬란드에서는 다들 할 수 있어요, 아니면 추방 감이죠.” 

그는 제 말투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어요. 

“저는 다른 걸 할 수 있어요.” 그가 답했어요. 

“도구를 주시면 금속 세공을 잘한다는 걸 보여드리죠.” 

이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희 집안에 괜찮은 대장장이가 없었거든요. 

“금속 세공은 아주 가치 있는 일이죠.” 제가 말했어요. 

“많은 도움이 될 거요. 부러진 칼과 휘어진 화살촉이 있어서 고쳐야 하거든요. 그리고 말들에 말굽을 씌워주는 것도 좋겠어요.” 그가 말굽을 다는 법을 모른다고 실토하자 많이 실망스러웠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집에 다다랐는데, 토르가나가 화를 내며 왔어요. 

“아버지, 손님을 그렇게 대접하는 법이 어딨어요!” 딸이 말했죠. 

“일꾼처럼 일을 시키다니, 정말!” 

제랄드는 미소 지었어요. 

“일하고 싶어요.” 그가 말했어요. 

“저는 새로운… 밑천이 필요해요.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당신들이 베풀어준 친절에 보답하고 싶고요.” 

이 말에 저는 기분이 좀 풀어져서, 그에게 미국에서는 다른 방식을 쓰는 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했죠. 내일부터 대장장이 일을 시작하면 되고, 저는 그에게 임금을 주겠지만 장인은 중요한 존재이므로 우리는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어요. 이에 집안사람들은 별로 기뻐하지 않았죠.

 

그 날 저녁 그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어요. 사실이든 아니든, 재미있었죠. 그는 말솜씨가 유려하지는 않았어요, 두 문장도 시구를 이루지 못했거든요. 미국은 굉장히 거칠고 퇴보한 곳인 것 같아요. 그는 군대에서 군사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고 했죠. 헬기는 그런 일은 들어본 적이 없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르다니 굉장히 용기 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했지만, 제랄드는 사람들이 그가 아닌 왕을 무서워해서 그의 말을 듣는다고 했어요. 그가 미국에서는 군대 소집 기간이 이년이고, 추수 때도 전쟁에 징집될 수 있다고 했어요. 저는 그렇게 힘이 세고 잔인한 왕 아래서 벗어난 게 잘되었다고 했죠. 

“아니에요.” 그가 그리움에 잠긴 듯 답했어요. 

“우리는 자유로운 사람들이에요,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하지만 하고 싶은 행동을 마음껏 할 수는 없는 것 같아 보이는데요.” 헬기가 말했어요. 

“음, 사람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마음대로 죽일 수는 없죠.” 그가 말했어요. 

“상대방이 나의 가족을 죽였어도?” 헬기가 물었어요. 

“그래도 안돼요. 그건… 왕이 우리를 대신해서 정의를 찾아야 할 일이에요.” 

제가 웃었어요. 

“당신 얘기들은 정말 재밌어요.” 제가 말했죠. 

“하지만 그건 좀 말이 안 되네요. 어떻게 왕이 모든 살인을 다 알고 복수해줄 수 있겠어요? 후손을 가질 시간도 없겠구먼!” 

그러자 온통 웃음이 터져서 그는 답을 할 수 없었죠. 

 

다음 날 제랄드는 펌프질을 도와줄 노예를 한 명 데리고 대장장이에게 갔어요. 저는 그 날 햘마르 브로드노즈와 양에 관한 문제를 얘기하기 위해 레이캬비크로 가서 하루 종일 집에 없었죠. 저는 하룻밤 자고 가라고 그를 집으로 초대했고, 그와 토르가나에게 이미 한 번 거절당한 빨간 머리의 우울한 스무 살짜리 아들 케티크과 함께 말을 타고 안뜰로 왔어요. 

 

저는 제랄드가 홀 안 벤치에 우울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았어요. 원래 입고 온 옷은 재와 불꽃에 더러워져 제가 준 옷을 입고 있었죠.

얼간이 같으니라고, 왜 그러고 있는 거지? 그는 낮은 목소리로 제 딸과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땠어요?” 저는 들어가며 말했죠. 

일꾼 그림이 킬킬 웃으며 말했어요. 

“화살촉 두 개를 만들긴 했는데요, 불을 내서 한바탕 소동이 나고 헛간이 다 타버렸지 뭐예요.” 

“어떻게 된 일이요?” 제가 외쳤어요. 

“대장장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제랄드는 발끈하며 일어섰어요. 

“제가 집에서 쓰던 도구들은 다르고, 더 좋은 것이었어요.” 그가 답했어요. 

“여기서는 다른 걸 써요.” 

 

얘기인즉슨 그가 불을 너무 뜨겁게 달구고, 망치는 때려야 할 곳 빼고 다른 곳만 때리고, 강철을 식힐 때를 몰라 불림을 망쳤다는 거예요. 대장장이 일은 원래 배우는데 한참이 걸리는 일이죠, 하지만 아직 수습생 실력도 안된다는 걸 미리 얘기했어야죠. 

“그럼,” 저는 날이 서서 말했어요. 

“대체 무슨 일을 해서 밥값을 할 수 있다는 거요?” 햘마르와 케티크에게 이미 이 낯선 이에 대한 얘기를 잔뜩 늘어놓았는데 그들 앞에서 저를 바보로 만든 것에 짜증이 났어요. 

“오딘만이 아시겠죠.” 그림이 말했어요. 

“염소 떼를 쫓으러 같이 말을 탔는데, 그렇게 말을 못 타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실을 잣거나 천을 짜는 일이라도 할 수 있는지 물었는데, 못한대요. 

“그게 남자에게 물을 일이에요!” 토르가나는 불같이 화를 냈어요. 

“그런 질문을 한 것만으로도 그는 당신을 죽여 마땅해요!” 

“그렇죠.” 그림이 웃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던 걸요. 그래서 운하 위 다리라도 복구하려고 갔는데요. 뭐, 톱도 겨우 다룰까 말까 한 수준이고, 손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을 뻔했지 뭐예요.” 

“우리는 그런 도구를 안 쓴다고 했잖아요!” 제랄드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어요. 

저는 손님들에게 앉으라고 권했죠. 

“돼지를 잡거나 굽지도 못하겠죠.” 제가 말했어요. 

“못해요.” 거의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였어요. 

“이봐요, 그럼… 대체할 수 있는 게 뭐요?” 

“저는…” 그는 말문이 막힌 듯했어요. 

“원래 군인이었잖아요.”

“그래요 맞아요!” 그가 다시 얼굴이 환해지며 말했어요. 

“다른 기술이 없어서야 아이슬란드에서는 별 쓸모없는 일이군요.” 저는 불평했어요. 

“하지만 어쩌면, 동쪽으로 가면 왕이 호위병으로 받아줄 수도 있겠네요.” 사실 호위병이 되려면 주인에 맞는 품격을 갖춰야 해서 속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그 말을 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케티크 햘마르손은 토르가나가 제랄드 옆에 딱 붙어 편을 들어주는 게 거슬렸던 모양이에요.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어요. 

“싸움도 별로일 것 같은데.” 

“격투 훈련을 받았어요.” 제랄드가 울적하게 말했죠. 

“그럼 나와 한 판 붙어볼래요?” 케티크가 물었어요. 

“기꺼이!” 제랄드가 내뱉었어요. 

 

신부님, 사람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나이가 들수록, 신부님이 말하는 것처럼 삶이 선과 악,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그저 다 뒤섞인 거대한 회색이지요. 이 쓸모도 열정도 없는, 여자의 일을 할 수 있냐는 질문이나 받고 도끼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는 남자가 마당에서 케티크 햘마르손과 붙어 그를 연속 세 번이나 내동댕이쳤어요. 케티크가 달려오는 순간 옷깃을 잡아버리는 무슨 기술이 있었어요… 젊은 케티크가 점점 분노를 넘어 살의를 띄기 시작하자 저는 이만 경기를 멈추고, 양쪽을 다 칭찬한 뒤, 맥주잔을 채웠죠. 하지만 케티크는 저녁 내내 시무룩하게 벤치에 앉아있었어요. 

 

제랄드는 자기가 가진 것 같은 총을 만드는 것에 대해 얘기했어요. 더 크게 만들어서, 배도 난파시키고 군대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했죠. 그걸 포탄이라고 불렀어요. 그는 대장장이의 도움과 여러 가지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숯은 쉽게 구할 수 있고, 황은 화산 근처에서 구하면 되는데, 초석이라는 건 대체 무엇인지?

 

게다가, 이제는 저도 의심이 많아져서, 그걸 어떻게 만드는지 자세히 캐물었어요. 정확히 어떤 비율로 어떻게 섞어야 하는지 아는지? 아니요, 그가 인정했어요. 총의 크기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지? 그가 적어도 사람 한 명 크기라고 하자 저는 웃으며 어떻게 그 정도 크기의 쇳덩이를 주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 정도로 철을 많이 모을 수는 있는지 물었어요. 그는 이에 대한 답도 가지고 있지 않았죠. 

“여기엔 도구를 만들 도구를 만들 도구도 없어요.” 그가 말했어요. 저는 그가 이어서 한 말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느님 아버지, 저는 혼자서 천 년의 역사를 이룩할 수는 없다고요.” 

 

그는 마지막 불꽃 막대기를 꺼내 불을 붙였어요. 헬기도 전에 한 번 들어마셨다가 괴로워했지만, 그는 아직까지 제랄드를 친구로 대했어요. 아들은 다음날 아침 배를 타고 아이스 피요르드에 가자고 제안했어요. 거기서 제가 받아내야 할 돈이 좀 있었거든요. 햘마르와 케티크도 함께 하겠다고 했고, 토르가나가 하도 강력하게 주장해서 같이 가는 걸 허락했어요. 

“좋지 않아.” 시규르드가 중얼거렸죠. “땅의 거인[각주:4]들이 배에 여자가 타는 걸 싫어하는 건 다들 아는 건데. 불운을 가져온다고.” 

“자네 아버지들이 이 섬에 여자들을 어떻게 데려왔다고 생각하나?” 제가 웃었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 싶어요. 그는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가끔 맞는 말을 했죠. 

그때 저는 모직과 목재를 교역하기 위한 노르웨이행 배의 공동 소유자였어요. 올라프 트리그바손이 얄 하콘에 저항해 어수선하던 시절 바이킹의 공격을 받기 전까지는 꽤 쏠쏠한 사업이었죠.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요.. 도둑, 자객, 정직한 상인들을 뽑아먹으려는 쓸모없는 강도들은 다들 목을 메달아 버려야 해요. 그들이 약간의 정직함이나 용기가 있었더라면 진작에 풍요로운 아일랜드로 갔겠죠.

 

어쨌든, 선박은 해외에 있었지만 우리는 세 척의 작은 배도 있었기에 그중에 하나를 타기로 했죠. 저, 토르가나, 헬기, 햘마르, 케티크, 그리고 그림과 제랄드가 함께 갔어요. 우리가 배를 띄우자 낯선 이가 차가운 물에 몸을 움츠렸어요. 결국에는 발을 말리려고 양말과 신발을 벗어두더군요. 그는 우리에게 목욕탕이 있다는 걸 듣고 굉장히 놀라워했어요. 우리가 야만인이라도 된다고 생각했나 보죠? 그럼에도, 그는 소녀처럼 예민한 구석이 있어서 곧 우리 발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피해 앉았죠. 

순풍이라 돛을 올렸어요. 제랄드는 도우려고 했지만, 물론 무슨 선이 뭔지 몰라 다 꼬아놓기만 했죠. 그림은 화를 내고 케티크는 심술궂게 비웃었어요. 그래도 배는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고, 그는 제가 노를 젓고 있는 곳으로 다가와 옆에 앉았어요. 

밤새 생각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게 다가와서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건넸죠.

 “제가 온 곳에서는… 이 배보다 발전된 밧줄과 키로 작동해요. 그 방식을 사용하면, 바람에 맞서서도 지그재그로 움직여 나아갈 수 있어요.” 

“아, 이 잘난 선원 나으리께서 이제 우리에게 충고를 해주시는군!” 케티크가 빈정댔어요. 

“가만히 좀 있어요.” 토르가나가 날이 서서 말했어요. 

“제랄드가 얘기하게 두세요.” 

그는 토르가나를 짜증 난다는 듯 슬쩍 쳐다보았고, 저는 제랄드의 말을 한 번 들어보고 싶었어요.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어요.” 제랄드가 말을 이었죠. 

“전에 이런 방식의 배를 타봐서 몰 줄 알아요. 첫째로는, 돛이 사각으로 활대 끝에 매달린 게 아니라, 삼각으로 되어 한쪽 코너를 활대에 묶어 돛대를 감싸 내려오게 해요. 그리고, 지금 노가 잘못되어 있는데 이 방식대로 하면 대 가운데에 막대기로 이은 키가 있어서 노를 조절할 수 있게 돼요.” 그는 이제 의욕적으로 토르가나의 외투에 손톱으로 설계도를 그리며 설명해나갔어요. 

“이 두 가지와, 이 정도 크기의 배면 사람 키 정도로 깊은 용골이 있으면 바람을 가르며 이렇게… 나아갈 수 있죠. 그리고 돛대와 뱃머리 사이에 돛을 하나 더 걸 수도 있고요.” 

 

신부님, 이 제안에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들이 있었고, 그가 몰고 온 불운과 불행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더라면 저도 고려해봤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한 단점도 보여서, 이에 대해 합리적으로 지적했죠. 

제가 말했어요. 

“첫 번째로 보이는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키와 깊은 용골로는 해변이나 얕은 강으로 배를 몰 수 없어요. 당신 온 곳에서는 항구가 많을지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아무 해변이나 배를 댈 수 있어야 하고,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르니 재빨리 배를 띄울 수 있어야 해요. 두 번째로는, 당신 말대로라면 바람이 없을 경우에 돛대를 내리고 노를 꺼내기 어렵게 되죠.” 

“선박은 물에 띄워두고, 작은 배를 타고 뭍으로 가면 돼요.” 그가 답했어요. 

“그리고, 배 위에 선실을 지어 사람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 수도 있어요.” 

“선실이 있으면 노 젓는데 방해가 돼요.” 내가 말했어요. 

“배가 말도 안 되게 넓거나 노 젓는 사공들이 밀다가드의 노예 사공처럼 갑판 아래 들어가 앉아야 할 텐데, 자유로운 뱃사공들이 그걸 용납할 리 없죠.” 

“꼭 노가 있어야 하나요?” 그는 어린아이처럼 물었어요. 

선체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파도가 세게 치는 우현 위를 돌던 갈매기들도 비웃는듯한 울음소리를 냈죠. 

“당신 온 곳에는 순한 바람은 없소?” 햘마르가 코웃음 쳤어요. 

“며칠간 계속 바람이 자면 어쩌려고, 식량은 점점 떨어져 가고.” 

“선박을 몇 주 어치의 식량을 실을 크기로 지으면 되죠.” 제랄드가 말했어요. 

“왕이라면 가능할 지도요.” 헬기가 말했어요.

“그러면 왕의 배는 잔잔한 바다에 가만히 있다가 여기서 욤스보리Jomsborg 사이에 상주하는 모든 바이킹 부대의 공격을 받을 테고. 그리고 뭍에서 야영하는 동안 배를 바다에 세워두는 거에 관해서는, 그렇게 하면 뭘로 지붕을 삼고 혹시 내륙에 갇히게 된다면 어디에 숨지요?” 

제랄드는 축 늘어졌어요. 토르가나는 그에게 부드럽게 말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도전을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해요. 저는 굉장히 좋은 생각 같아요.”

 

그는 지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기운을 끌어모아 흐린 날에도 북쪽을 찾을 수 있는 돌에 대해 얘기했어요. 줄에 메달면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는 돌멩이가 있다는 것이었죠. 저는 그가 돌멩이를 구해올 수 있다면 굉장히 좋을 거라고 친절하게 말했어요. 아니면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알려주면, 상인에게 부탁해가져다 달라고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고, 곧 입을 다물었어요. 케티크는 입을 열었다가 토르가나가 매섭게 째려보자 다시 입을 닫았어요. 그의 얼굴에서 제랄드를 거짓말쟁이로 생각한다는 것이 빤히 보였죠. 

 

잠시 후 바람이 반대로 불어서 우리는 돛을 내리고 노를 잡았어요. 제랄드는 서툴렀지만 힘과 의지는 누구보다 강했어요. 그러나 손이 너무 부드러워서 곧 피가 흘렀죠. 저는 좀 쉬라고 권했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계속했어요. 

 

무겁게 삐그덕거리는 솔핀 아래에서 뻘겋게 젖은 노 자루를 쥐고 앞 뒤로 움직이는 그를 보며 저는 깊은 생각에 빠졌어요. 그때 저는 미래를 알지 못했으니 제가 보기에 그는 그저 모든 일을 잘못된 방식으로 하려는 사람일 뿐이었고, 토르가나의 시선이 자꾸 그쪽에 머무는 게 못마땅했어요. 땅도 돈도 능력도 한 푼어치 없는 남자는 제 귀한 딸과 맞을 리 없죠. 그의 이야기가 사실이든 정신 나간 소리든 간에, 저는 그가 솔직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가 이 곳에 오게 된 것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은 분명했죠. 제 면도기를 쓰다가 턱에 상처가 많이 난 것이 눈에 띄었어요. 그는 이런 방식으로 면도를 한 적이 없어서 그냥 수염을 기르겠다고 했죠. 노력 하나는 인정했어요. 제가 만약 그의 입장이라면 해낼 수 있을까 생각했죠. 꿈에서만 보던 이 고대의 나라에 홀로 불시착해서, 고향과 영원히 떨어져 버렸다면. 

 

그런 고난이 토르가나의 마음을 흔들었는지도 몰라요. 여자들은 참으로 미묘한 존재예요, 신부님. 여자들과 연이 없는 신부님이나, 6개 나라에서 반 백명의 여자들과 자본 저나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저는 여자들 스스로도 본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생명의 탄생과 죽음, 삶이야말로 그 누구도 영원히 파악 못할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수수께끼인데, 이에 대해서는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훨씬 가까이 다가가 있죠. 

 

역풍이 심해지자 납빛의 바다는 두터운 먹구름 아래 요동쳤고, 배는 잘 전진하지 못했어요. 해 질 녘 즈음에는 더 이상 노를 저을 수 없어 사람이 없는 만에 배를 대고 좌초된 물가에서 어떻게든 야영을 쳐야 했죠.

 

우리는 장작과 부싯돌을 싣고 왔어요. 제랄드는 지쳐서 비틀거렸지만, 어떻게든 돕고자 그의 작은 막대기를 꺼내 부싯돌보다 훨씬 쉽게 불을 붙였죠. 토르가나는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배는 강하게 불어닥치는 바람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못했어요. 토르가나의 망토가 날개처럼 퍼덕였고 머리카락은 불꽃 위에서 미친 듯이 휘날렸어요. 밝은 밤의 계절이어서 하늘은 흐릿하고 어슴푸레한 푸른색이었고, 바다는 꾸깃해진 철판 같고 땅은 꿈에서 나온 듯 현실감이 없었어요. 우리는 망토로 몸을 싸매고 둘러앉아, 꽁꽁 언 손을 불 위에 녹이며 말이 없었죠. 

 

저는 사기를 북돋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가지고 있던 제일 세고 질 좋은 에일을 담은 맥주통을 내오라고 했어요. 한 사악한 노르웨이인이 가르쳐준 방법인데, 누구나 자기만의 치부는 있기 마련이죠. 구멍으로 줄줄 흘러나온 맥주에 코를 박고 마실 수록 뱃속은 비어 가는 것 같아서, 술기운이 금방 올라왔어요. 저는 별 이유 없이 래흐너 헤어리브릭스의 장송가를 열을 내며 비난한 기억이 나요.

 

토르가나는 쭈그리고 있던 제랄드 쪽으로 다가갔어요. 저는 딸의 손가락이 그의 머리카락을 아주 부드럽고 가볍게 스치는 것을 보았어요. 케티크 햘마르손도 놓치지 않은듯했죠. 

“당신 나라에서는 시가 없나요?” 토르가나가 물었어요. 

“이런 건 없어요.” 그가 올려다보며 답했어요. 둘은 서로에게 시선을 고정했어요. 

“우리는 읊기보다는 부르는 쪽이에요. 이곳의 하프 같은 기타라는 악기가 있는데, 그게 지금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 아일랜드의 음유 시인이시군!” 햘마르 브로드노즈가 말했어요. 

그때 제랄드가 미소를 짓고 자기 나라 말로 무언가를 이야기한 게 이상할 만큼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 뜻은 모르지만요. 

“Only on me wither’s side, begorra.” 아마 마법 주문이었나 봐요. 

“그럼 불러봐요.” 토르가나가 요청했어요. 

“어디 보자, 노르드어로 바꿔서 불러야겠네요.” 그가 말했어요. 잠시 후, 그는 바람을 맞으며 어둠 속에 선 토르가나를 바라보며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듣기 좋은 멜로디였죠. 

 

이 계곡에서 당신이 떠난다고 말하네요. 

그대의 밝은 눈과 달콤한 미소가 난 그리울 거예요. 

그대와 언제나 함께하는 햇살이, 

그동안 내 하루를 밝게 비추었죠… 

 

나머지는 잊어버렸지만, 조금 부적절했던 건 기억이 나요. 

그가 노래를 끝내자, 햘마르와 그림이 불 쪽으로 가서 고기가 다 구워졌는지 봤어요. 저는 딸의 눈에 눈물이 맺힌 걸 보았죠. 

“정말 아름다워요.” 딸이 말했어요. 

케티크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았어요. 불꽃이 그의 얼굴에 강렬하고 현란한 색채를 뿌렸어요. 그는 상처받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 드디어 이 작자가 할 일을 찾았네요. 앉아서 여자들을 위해 예쁜 노래를 부르면 되겠어요. 오스팍 아저씨, 그렇게 부리세요..” 

토르가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헬기는 손을 칼에 가져갔어요. 저는 제랄드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걸 봤어요.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요. 취소하세요.” 

케티크는 일어섰어요. 

“아니, 나는 정직한 농민들에게 기생해서 사는 한량에게는 사과하지 않겠어.” 

그는 분노에 차 있었지만, 모욕을 우리 가족에게서 제랄드 한 명에게로 은근히 돌릴만한 정신은 있었죠. 그렇지 않았다면 그와 그의 아버지 둘이서 우리 넷을 상대해야 했을 거예요. 그러자, 제랄드도 일어서서 주먹을 양 옆에 꽉 쥐고 말했죠.

“옆으로 가서 담판을 짓겠소?” 

“물론!” 케티크는 뒤를 돌아 해변으로 몇 미터 걸어갔고, 제랄드도 배에서 방패를 꺼내 따라갔어요. 토르가나는 괴로운 표정으로 서 있다가, 그의 도끼를 들고 뒤따라 쫓아가 소리쳤어요. 

“무기도 안 가지고 갈 거예요?” 

제랄드는 멈춰 서서 멍한 표정으로 돌아봤어요. 

“그건 안 쓸 거예요. 주먹으로 하죠.” 그가 중얼거렸어요. 

케티크는 몸을 크게 키우며 칼을 들었어요. 

“그 나라에서는 노예처럼 싸우는데 익숙했나 보지.” 그가 말했어요. 

“내 사과를 받고 싶다면, 제대로 담판을 지어주지” 

제랄드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섰어요. 그는 눈이 먼 사람처럼 토르가나를 멍하니 바라봤어요, 마치 어떻게 할지 알려달라는 듯이요. 딸은 도끼를 건넸어요. 

“제가 이 자를 죽여야 하나요?” 그가 속삭였어요. 

“네.” 토르가나가 답했어요. 

그때 저는 딸이 그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죠. 그게 아니라면 그가 치욕을 당하건 말건 왜 상관했겠어요? 

헬기가 그의 헬멧을 가져왔어요. 그는 헬멧을 쓰고, 도끼를 받아 앞으로 걸어나갔어요. 

“어떻게 되는 거요.” 햘마르가 내게 물었죠. 

“당신은 이 낯선 자의 편인가요, 오스팍?” 

“아니요.” 제가 말했어요. 

“그는 내 가족도, 의형제도 아니에요. 이건 내 싸움이 아니요.” 

“잘됐군요.” 햘마르가 말했어요. 

“나는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아요, 친구. 언제나 좋은 이웃이었지.”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가 싸움터를 그었어요. 토르가나는 내게 제랄드에게 칼을 빌려줘서 방패도 함께 쓸 수 있게 하라고 했지만,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도끼가 낫겠다고 말했어요. 그와 케티크, 둘은 서로 앞에 서서 태세를 취하더니, 싸움을 시작했어요.

 

이건 규칙에 따라 싸우고, 처음으로 피를 본 사람이 이기는 그런 결투가 아니에요. 이건 죽음이 걸린 승부예요. 케티크는 손에 든 칼을 휘두르며 빠르게 나아갔어요. 제랄드는 뒤로 물러나며 서투르게 도끼를 휘둘렀죠. 도끼는 케티크의 방패를 맞고 튕겼어요. 케티크는 씩 웃더니 제랄드의 다리를 겨냥했어요. 저는 피가 찢어진 반바지를 적시는 걸 봤어요. 

 

처음부터 일방적인 살인이었어요. 제랄드는 도끼를 써본 적이 없었어요. 심지어 한 번은 도끼의 면으로 때리기도 했죠. 만약 케티크의 칼이 헬멧에 맞아 무뎌지지 않았고 그의 발이 빠르지 않았다면 시작하자마자 바로 목이 잘렸을 거예요. 그는 곧 십 수개의 상처를 입고 휘청거렸죠. 

 

“싸움을 멈춰요!” 토르가나는 소리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어요. 헬기는 딸의 팔을 잡고 뒤로 당겼어요. 하도 몸부림치고 저항해서 그림이 거들어야 했죠. 저는 아들의 얼굴에 수심이 일고 일꾼의 얼굴에는 심술궂은 미소가 퍼지는 걸 봤어요. 

제랄드는 고개를 들어 딸을 봤어요. 그 틈에 케티크의 칼날이 내려와 그의 왼쪽 팔을 그었어요. 케티크는 으르렁거리며 그를 끝장낼 준비를 했고, 제랄드는 총을 꺼냈어요. 총은 번쩍이는 빛과 탕 소리를 냈어요. 케티크는 쓰러져서 잠시 몸을 떨더니, 곧 조용해졌어요. 아래턱은 날아가고 뒤통수가 없었어요. 

 

그 후로 오랜 침묵이 이어졌어요. 오직 바람과 바닷소리만이 들려왔죠. 

얼마 후 햘마르가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한 발짝 나섰어요. 그는 무릎을 꿇고 아들의 눈을 감겨, 복수의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표시를 했어요. 그는 일어나며 말했어요. 

“사악한 짓이었소. 당신은 추방되어야 마땅해요.” 

“마법이 아니에요.” 제랄드가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이건… 활 같은 거예요.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원래 맨주먹으로 싸우려고 했다고요.” 

저는 둘 사이로 가서 이건 왕이 결정 내릴 문제라고 했지만, 햘마르가 케티크의 목숨에 대한 속죄금을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하지만 저는 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요!” 제랄드가 항의했어요. 

“그렇다고 해도, 케티크의 가족이 받겠다고 하면 속죄금은 내야 해요.” 제가 설명했어요. 

“당신의 그 무기 때문에 금액은 두 배가 될 것 같지만, 그건 왕이 판단할 문제예요.” 

햘마르는 아들이 여럿 있었고, 제랄드가 그와 적수인 가족의 사람은 아니니 동의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는 차갑게 웃으며 재산도 없는 자가 어디서 은화를 구할지 물었죠. 

토르가나는 쌀쌀하고 차분한 태도로 나서서 우리가 내겠다고 말했어요. 저는 입을 열었다가, 딸의 눈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어요. 

“그렇게 하지요.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럼 이 싸움에 가담하겠다는 거요?” 햘마르가 물었어요. 

“아니에요.” 저는 답했어요. 

“이 남자는 내 가족이 아니오. 하지만 제가 그가 쓰도록 선물을 주기로 하면, 어떻겠어요?” 

햘마르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는 눈가에 짙은 슬픔을 드리운 채, 저를 오랜 동지 보듯 바라봤어요. 

“얼마 후 이 남자가 당신의 사위가 될 수도 있겠군요.” 그가 말했어요. 

“저도 눈치가 있어요, 오스팍. 그럼 그는 당신의 가족이 되는 거죠. 지금 그가 필요할 때 돕는 것만으로도 그를 당신 편에 두는 거예요.” 

“그래서요?” 헬기가 아주 조용하게 말했어요. 

“그래서, 저는 당신의 우정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나에게는 형제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아들들이 있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제랄드 샘손의 복수를 바랄 것이고, 그럼 우리 두 가족은 적이 되어 혈투가 이어질 거예요. 종종 있어왔던 일이지요.” 햘마르는 한숨을 쉬었어요.

“저도 오스팍 당신과 평화를 지키기 원하지만, 당신이 이 살인자의 편을 든다면 별수 없어요.” 

 

저는 잠시 생각에 잠겼어요. 헬기가 두개골이 갈라진 채 누워있는 모습, 안뜰에 있는 나머지 아들들이 보지도 못한 낯선 사람 때문에 싸움에 휘말려 드는 과정, 떠내려오는 나뭇가지를 주우러 갈 때마다 갑옷을 입고 매일 밤 창을 든 적수들에게 공격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잠을 청하는 것을 상상했어요. 

“그래요.” 제가 말했어요. 

“당신 말이 맞아요, 햘마르. 저는 돕지 않겠어요. 이건 당신과 그 둘 사이의 문제예요.” 

우리는 이에 악수를 했어요. 

토르가나는 작게 울음을 터뜨리며 제랄드의 품 속으로 안겼어요. 제랄드는 그런 그를 가까이 안았어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그가 천천히 물었어요. 

“나는 더 이상 당신을 돌봐줄 수 없어요.” 제가 말했죠. 

“하지만 아마 다른 농민이 정착할 수 있게 도와줄 테고, 햘마르는 법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니 왕이 당신을 추방하지 않는 이상 공격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적어도 여름까지는 시간이 있다는 뜻이죠. 그전까지 아이슬란드를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같이 쓸모없는 사람이요?” 그가 씁쓸하게 답했어요. 

토르가나는 몸을 돌려서는 저에게 겁쟁이, 위선자, 등등 모든 악담을 퍼부었어요. 저는 딸이 분노를 쏟아내게 내버려둔 뒤 손을 어깨에 올렸어요.

“우리 가족을 위해서야.” 제가 말했어요. 

“집과 가족은 신성한 거야. 남자들은 죽고 여자들은 울지만, 혈족들이 살아남는 이상 우리 이름은 기억되는 거라고. 너의 욕망을 위해 남자들을 싸움터로 보낼 수 있겠니?” 

토르가나는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었어요. 저는 오늘까지도 딸의 대답이 무엇이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아요. 먼저 입을 연 건 제랄드였어요. 

“안되죠.” 그가 말했어요. 

“오스팍, 당신 말이 맞아요. 제 시대에서는 아니지만, 당신 시대에서는 맞는 말이군요.” 그는 나와 악수를 하고, 헬기와도 악수를 했어요. 토르가나의 볼에 입을 맞췄어요. 그리고는 뒤를 돌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요.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험프백 펠 지역의 소작인 토르바 할손의 농장에 가서 몸을 숨겼는데,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미리 털어놓지 않았대요. 동쪽으로 가는 길을 찾기 전까지 눈에 띄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길 바랐나 봐요. 하지만 당연히 소문이 퍼졌죠. 전에 그가 미국에서는 땅 한쪽 끝과 저쪽 끝에서 서로 얘기하는 방법이 있다고 자랑한 게 생각나네요. 그래서 여기를 우습게 봤나 봐요, 외진 뜰에 고독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말을 퍼뜨릴 수 있는지 몰랐겠죠. 토르발드의 아들 흐롤루프가 일이 있어 모피 부츠 가게에 갔다가 당연히 낯선 이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곧 서쪽 섬 전체가 아는 이야기가 되었죠.. 

 

만약 제랄드가 낯선 농장에 처음 가면 사람을 죽인 일을 알려야 한다는 걸 알았더라면, 적어도 왕을 만날 때까지는 안전했을 거예요. 햘마르네는 법의 보호 안에 있는 사람을 공격할 정도로 막 나가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그 일을 비밀로 했기 때문에 그는 자동으로 살인자가 되었고 그 말인즉슨 바로 법의 수호 밖으로 쫓겨났다는 뜻이죠. 햘마르와 그의 가족들은 험프백 펠로 가서 그를 끌어냈어요. 그는 총을 쏘며 언덕으로 도망갔어요. 한 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생긴 그들은 복수할 사유만 늘어난 채 그를 쫓아갔죠. 어쩌면 제랄드는 그의 이상한 무기가 우리를 겁먹게 하리라고 생각했는지 몰라요.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쓸데없는 걱정으로 여긴다는 걸 몰랐던 거죠. 

 

결국에 그는 사지로 몰려 무기도 빼앗겼어요. 그러자 그는 죽은 이의 칼을 뺏어 마지막까지 용맹하게 싸웠어요. 그 후로 울프 햘마르손은 다리를 절게 되었어요. 그는 용기 있게 싸웠어요. 그의 적수들도 인정했죠. 미국이라는 곳의 사람들은 기분 나쁜 작자들이지만, 용기 하나는 인정해요. 

 

그는 살해당했고, 시체가 되어 돌아왔어요. 그가 마법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령이 되어 돌아올까 두려워 시체와 모든 소지품을 함께 불태웠어요. 그때 그가 준 칼도 함께 잃어버린 거예요. 무덤은 여기서 북쪽의 황무지에 있어요. 유령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가능한 멀리 보내버리고 싶어 했거든요.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그는 천천히 잊혀가고 있죠. 

 

이게 제가 보고 들은 이야기예요, 신부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랄드 샘손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가 정말 다른 시간에서 왔다고 생각해요. 그의 잔혹한 운명은 누구도 추수 전에 벼가 익게끔 할 수는 없음에서 비롯된 거죠. 하지만 저는 지금으로부터 천 년 후, 마차가 끌지 않아도 되는 마차가 하늘을 날고, 폭탄 한 방에 도시가 날아가기도 하는 미래를 생각해요. 종말이 가까워진 때에 젊은 미국 군인들이 밟을 아이슬란드 이 땅을 상상해봐요. 그들 중 몇몇은 황야의 풀 사이를 걷다가 언덕을 보고는 어떤 고대의 병사가 거기 누워있을까 궁금해할지도 모르죠. 어쩌면 사람들이 자유롭던 그의 시대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지도요.

 

 

  1. Greek fire [본문으로]
  2. godi. (아이슬란드어 goði) 종교와 절차 관련 임무를 수행하는 지도자. [본문으로]
  3. Odin. 게르만과 바이킹의 신들 중 가장 높은 신. [본문으로]
  4. landtroll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