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든의 애완동물, 플로이드 월러스, Bolden's Pets, F.L. Wallace, 1955
*원문링크: http://www.gutenberg.org/files/28460/28460-h/28460-h.htm
선물을 풀어놓는 손이 떨렸다. 지구라면 독감이라고, 센타우루스 은하계Centaurus system라면 크란켄kranken에 걸린 거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반 다마스Van Daamas고, 리 볼든은 손떨림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인류가 여기까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역 질병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새로운 행성에 정착하는 데는 언제나 다양한 고난이 따랐다.
하지만 볼든은 어떤 병이든 크게 개의치 않고 선물을 세는 데 집중했다. 병세를 느낀 지 약 한 시간이 되었다. 개척지로 돌아가면 바로 처치를 받을 것이다. 반나절만 비행하면 되는 거리다. 본부에는 최고의 의료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그는 선물이 최대한 많아 보이게 쌓아 올렸다. 전파 탐지 고글 다섯 쌍, 고속력 카빈총 일곱 자루, 총탄 일곱 박스. 선물을 홀수에 맞춰 주는 것이 원주민의 법칙이고, 이는 꼭 지켜야 했다.
반 다마스의 원주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선물더미를 바라보았다. 그의 허벅지에는 특이한 모양의 활과 화살통이 묶여있었다. 하나만 빼고 화살은 전부 빨간색, 노란색 등의 밝은 색이었다. 볼든은 혹시 화살이 빗나가면 찾기 쉽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화살 한 개는 꼭 짙은 푸른색이었다. 볼든은 이전에도 이 점을 눈여겨봤었다. 모든 원주민은 언제나 칙칙한 색의 화살을 딱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반 다마스의 원주민은 산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바람을 전혀 막아주지 못하게 생긴 얇은 로브를 입고 있었다. “가서 우리 쪽과 회의하고 오지요.” 그가 영어로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볼든은 몸을 떨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그는 원주민의 언어로 답했지만, 몇 마디 후 언어 능력의 한계가 와서 다시 자신의 언어로 말을 이어야 했다. “선물은 가져가세요. 어떤 쪽으로 결정하든 상관없이 준비한 것이니까요.”
원주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고글을 집어 들었다. 그는 고글을 쓰고 안개 덮인 언덕을 내다보았다. 반 다마스의 원주민은 볼든이 아는 어떤 종족보다도 전파 탐지 기술이 필요 없었다. 산등성이에서 정착해 살아왔기 때문에 안개를 뚫고 보는 시력이 인간에 비할 데 없이 좋았다. 하지만 모순되게 선물 중 고글을 가장 좋아했다. 그들에겐 시야를 더욱 넓히는 것이 어떠한 강력한 무기보다 가치 있는 일이었다.
원주민은 고글을 이마에 대고 내다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볼든이 덜덜 떠는 것을 보고 손을 가져가 들여다보았다. “손이 아픈가요?” 그가 물었다.
“약간이요.” 볼든이 말했다. “내일 아침이면 괜찮아질 거예요.”
원주민은 선물을 모아 들고 “가서 상의하고 오지요”하고 멀어졌다.
리 볼든은 헬리콥터에 앉아 기다렸다. 그는 이 원주민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몰랐다. 협상 대표로 오긴 했지만, 그저 다른 이들보다 영어 잘하기 때문에 선택된 것일 수도 있었다.
원주민 의원들이 의회를 열어 지구인들의 정착을 도울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 선물을 마음에 들어한다면 도와줄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 밖에 할 일이 없었다. 덜덜 떨면서. 그의 양손은 점점 감각을 잃어갔다. 발도 마찬가지였다.
원주민은 손에 사각 라탄 바구니를 들고 안갯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볼든은 이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고글, 카빈총, 총탄에 대한 답례가 겨우 선물 한 개라니. 환율이 좋지 않았다. 답변도 그럴 것 같았다.
원주민은 바구니를 내려놓고 볼든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회의는 잘 되었나요?” 볼든이 물었다.
“방문하기로 결정했어요.” 원주민이 손가락을 내밀며 답했다. “오에서 칠일 후에 갈 거예요.”
예상 못했던, 기분 좋아지는 답변이다. 라탄 바구니 하나가 최신 기술을 자랑하는 제품 여럿과 동급이라는 말인가? 결론적으로는 그랬다. 원주민의 계산법은 인간과 달랐다. 그들에게는 고글 하나가 카빈총 하나보다 가치 있었고, 바늘 한다스가 총탄 한 박스와 같았다.
“방문을 결정했다니 정말 잘됐군요. 바로 개척지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전하겠어요.” 볼든이 말했다. 바구니 안에는 뭔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는데, 바구니가 워낙 촘촘해서 안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머무는 게 나을 거예요.” 원주민이 충고했다. “산 쪽에서 폭풍이 몰려오고 있어요.”
“폭풍을 돌아서 비행해 갈게요.” 볼든이 답했다.
아프지 않았다면 제안에 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빨리 개척지로 돌아가 치료를 받을 생각뿐이었다. 낯선 행성에서는 아주 미약한 병세도 어떻게 발전할지 몰랐다. 게다가 산등성이를 뒤덮은 짙은 안개를 뚫고 원주민 부족을 찾는데 이틀이나 허비했다. 본부는 그가 한시 빨리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최대한 멀리 돌아가세요.” 원주민이 말했다. “큰 폭풍이에요.” 그는 바구니를 선실 높이까지 들어 뚜껑을 열었다. 안에서 동물 한 마리가 꿈틀꿈틀 기어 나와 선실 안으로 사라졌다.
볼든은 어두운 내부에서 빛나는 두 눈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았다. 잘 모르는 생명체가 선실 내를 돌아다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험난한 폭풍을 뚫고 비행해야 하는데 말이다. 원주민은 동물을 바구니 안에 두었어야 했다. 하지만 동물과 바구니를 같이 주게 되면 선물이 두 개가 되고, 원주민은 절대로 선물을 짝수로 주는 법이 없었다.
“해치지 않아요.” 원주민이 말했다. “순한 애완동물이에요.”
그가 아는 한 반 다마스에는 애완동물은 물론이고 길들인 가축도 몇 되지 않았다. 볼든은 선실 불을 켰다. 부족마다 야영지 바깥쪽 울타리에 항상 두는 것을 보았던 신비한 동물이었다. 원주민들이 이 동물로 뭘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고, 원주민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혹은 못했다).
식용 동물은 아닌 것 같았고 노동력은 분명 아니었다. 남자의 말과는 달리 애완동물도 아니다. 지구인은 원주민이 이 동물을 만지는 것도, 혹은 동물이 부족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지구인에게 이 생물체를 건넨 적도 없었다. 개척지의 과학자들은 이 새로운 습득에 분명 기뻐할 것이다.
“만져봐요.” 원주민이 말했다.
볼든이 떨리는 손을 내밀자 동물은 친근한 노란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다가왔다. 크기는 작은 개와 비슷하지만 생김새는 전혀 달랐다. 윤기 있는 복슬복슬한 계피 색 털옷을 입은 작고 날씬한 곰에 가까웠다. 볼든은 깨끗한 냄새가 나는 털을 쓰다듬었고 손가락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물은 꿈틀거리며 그의 손가락을 핥았다.
“당신 맛을 봤어요.” 원주민이 말했다. “이제 괜찮아질 거예요. 당신 거예요.” 그는 뒤를 돌아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볼든이 비행선에 올라타 엔진을 켜는 동안 동물은 그의 옆 좌석에 올라와 앉았다. 굉장히 친근한 동물이라 원주민들이 왜 항상 울타리에 가둬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직상승해 산 위까지 올라가 다가오는 폭풍을 피해갈 길을 찾아 둘러보았다. 안개 때문에 봉우리가 어딘지 분간이 어려워 약간 하강해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비행했다. 그는 막힌 시야가 허락하는 한에서 최대한 속도를 높였지만, 아직 충분히 멀어지지 못했을 때 폭풍이 그를 따라잡았다. 폭풍 위로 넘어가 보려 했지만 폭풍의 꼭대기까지 닿지 않았다.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지역이라 비행선 주변으로 치는 엄청난 번개에 레이더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조종대를 잡은 그의 양 팔이 아파왔다. 양 손은 차갑지 않았는데 감각이 없었다. 양다리는 납처럼 무거웠다. 동물이 그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서 밀어내야 했다. 그러느라 잠깐 한눈을 판 것이 오히려 머리를 맑아지게 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일단 착륙해 폭풍이 잠잠해지기 기다려야 했다. 착륙할 곳을 찾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는 감각이 돌아올 때까지 손을 움직여가며 비행선을 서서히 낮추었다. 한쪽 편에 협곡 벽이 우뚝 서 있는 걸 깨닫고 그쪽에서 멀어져 더 살펴보았다.
드디어 피난처를 찾아 고정장치를 내렸다. 바람이 덜 거센 쪽의 좁은 계곡이었다. 큰 재난이 닥치지만 않는다면 하룻밤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좌석을 눕혀 침대로 만들고는, 뭘 먹기에는 너무 지쳤다는 결론을 내리고 바로 잠을 청했다. 잠에서 깼을 때는 아직도 폭풍이 거세게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작은 동물이 그의 옆에서 졸고 있었다.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한 기분이 들었다. 원주민은 동물에게 뭘 주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동물은 주는 대로 다 잘 받아먹었다. 인간만큼 잡식이었다. 다시 눕기 전에 옆좌석도 침대로 만들어 주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동물은 그에게 최대한 가까이 붙어있으려 했고 그도 그 편이 좋았다. 동물의 따듯한 온기가 편안했다.
졸다 깼다를 반복하며 폭풍이 잠잠해지기 기다렸다. 하루 반이 걸려 드디어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픈지 이틀, 개척지를 떠난 지 나흘이 되는 날이다.
컨디션이 훨씬 좋았다. 손의 감각은 거의 돌아왔고 시야도 흐릿하지 않았다. 그는 무릎 위에 웅크리고 앉아 노란 두 눈으로 그를 진지하게 올려다보는 생물체를 바라보았다. 그가 약간의 신호만 주어도 온몸에 비비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비행 중에 동물이 그의 위를 올라타게 둘 수는 없었다. “이리와, 애완동물.” 그가 말했다. 달리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우리 멀리 가야 해.”
그는 동물을 반쯤은 들고 반쯤은 끌어 선실 뒤쪽으로 데려가 좁은 간이 울타리를 만들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고 만족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다. 물론 전에는 그럴 힘도 시간도 없었다. 게다가 선물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면 원주민이 언짢아했을 것이다. 기다린 편이 나았다.
애완동물은 갇혀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동안 작은 소리로 끙끙댔다. 엔진 소리가 울리자 끙끙대는 소리는 잦아들었다. 볼든은 직상승해서 산 봉우리 위로 통신이 잡힐 때까지 올라갔다. 원주민들의 동의와 자신의 병세에 대해 간단히 보고 후 집을 향해 출발했다.
열 시간 동안 최고 속도로 비행했다. 허기는 농축 식품으로 간간히 달랬다. 동물이 가끔씩 낑낑댔고 볼든은 벌써 동물의 울음소리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른 게 아니라 그저 곁에 있고 싶어 했다. 그는 그저 최대한 빨리 본부에 도착하고 싶었고.
하강하는 헬기에서 내려다본 개척지의 무계획적으로 뻗어나간 얼기설기한 모습이 너무나 반가웠다. 격납고에서 기계공들이 달려 나왔다. 그들이 열어준 문으로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바로 쓰러졌다. 손과 다리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나아진 게 아니었다.
케슬러 의사 선생이 마이크로 스크린을 통해 그를 살펴보았다. 의사의 얼굴이 비현실적으로 왜곡되어 보였다. 마이크로 스크린은 그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구형의 전기장이다. 무균복 위로 목에 두른 원통형 목걸이에서 쏘는 것이다. 전기장은 주변에 닿거나 지나가는 모든 생물체를 박멸시켰다. 무균복은 무통기 불침투성 소재로, 그의 몸 나머지를 완전히 감쌌다. 손을 덮은 부분은 얇고 발바닥 쪽은 두터웠다.
볼든은 한눈에 흘낏 상황을 파악했다. “심각한가요?” 묻는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예방 처치일 뿐이에요.” 의사가 울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마이크로 스크린은 시각뿐 아니라 청각도 왜곡했다. “예방 처치일 뿐이에요. 무슨 병인지는 아는데, 아직 어떻게 치료하는 게 최선일지 결정을 못 내렸어요.”
볼든은 코웃음을 쳤다. 마이크로 스크린과 무균복은 굉장히 심각한 예방 처치였다.
의사는 벽에 세워진 작은 기계를 끌고 와 볼든의 손을 좁은 구멍에 고정했다. 마이크로 스크린 안으로 접안렌즈가 들어왔고, 케슬러는 손가락 끝에서부터 시작해 천천히 올라가며 팔 전체를 관찰했다.
죽 올라가다 드디어 멈추고는 물었다. “여기서부터 감각이 없나요?”
“그런 것 같아요. 건드려보세요. 네, 그 밑으로는 감각이 없어요.”
“좋아요. 그러면 일단 이 이상 퍼지는 건 막은 셈이에요. <죽음의 거품Bubble Death> 병이에요.”
볼든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의사가 웃었다. “걱정 마세요. 엑스레이 현미경으로 봤을 때 보이는 모양 때문에 붙은 이름일 뿐이에요. 처음 행성을 발견한 탐험 그룹이 이 병으로 사망한 건 사실이지만, 당신은 괜찮을 거예요.”
“그들도 항생제는 있었어요. 신약도 있었고요.”
“그래요. 하지만 몇 가지 기본 제품만 가지고 있었죠. 그땐 정보도 부족했고 이런 장비들도 없었어요.”
의사는 안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볼든은 안심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는.
“일어나 앉아서 한 번 들여다보세요.” 케슬러가 볼든 쪽으로 접안렌즈를 구부리며 말했다. “어둡고 가는 섬유질 같은 선이 신경이에요.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게 보이죠?”
볼든은 의사가 초점을 맞춰주는 화면을 보았다. 매 신경선마다 수천만 개의 작은 구가 둘러싸 서로 접촉하지 못하게 고립된 것이 보였다. 그래서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것이었다. 구형 병원균은 정말 거품처럼 보이긴 했다. 적어도 아직 신경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진 않은 것 같았다.
그가 들여다보는 동안 의사는 본인이 쓸 접안렌즈를 하나 더 꺼내 기계 옆에 붙은 노브를 돌렸다. 팔 옆에 있던 렌즈에서 거의 투명할 정도로 얇은 바늘이 나와 그의 살을 뚫었다. 볼든은 렌즈의 시계 안에 바늘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아프지 않았다. 천천히 바늘은 뻗어나가는 신경 근처까지 들어갔지만, 신경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바늘 안쪽은 비어 있었고 케슬러가 노브를 쥐자 작은 바늘이 구들을 빨아들였다. 바늘에서 주둥이 같은 것이 뻗어 나와 신경 주변을 기어 다니며 병원균을 흡입했다. 한쪽 구역이 깨끗해지자 주둥이는 다시 바늘로 들어갔다. 그러자 볼든은 바늘이 느껴졌다.
의사가 처치를 마치고 볼든의 팔을 몸통 옆에 뉘인 뒤 기계를 벽에 돌려놓고 작은 캡슐을 빼내 바깥으로 이어지는 구멍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앉았다.
“이게 치료 방법인가요?” 볼든이 물었다. “병원균을 긁어내는 것?”
“전혀요. 그러기에는 신경이 너무 무수히 많아요. 기계가 열 대 쯤 있고 그걸 돌릴 인력도 충분했다면 한쪽 팔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한계예요.” 의사는 몸을 의자 등에 기댔다. “아니요, 샘플을 좀 더 얻은 거예요. 병원균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실험하는 중이에요.”
“더 얻었다고요? 그럼 전에도 샘플을 뽑았군요.”
“물론이죠. 휴식이 필요한 상태라 한동안 재웠어요.” 공중에 떠 있던 의자가 네 다리 위로 내려왔다. “병세가 약해요. 아니면 면역력이 강하거나. 첫 증상을 보인 지 삼일이 지났는데 병이 그다지 진행되지 않았거든요. 탐색팀은 그것보다 빠른 시일 내에 전원 사망했어요.”
볼든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결국에는 치료제를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까?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의사가 말했다. “병원의 특수 장비를 무시하지 마세요. 이미 음파 가속기에 병원균을 넣어 분석하는 과정에 들어갔어요. 일반적인 속도의 열 배로 생활 주기를 가속해서 볼 수 있어요. 오늘 하루가 지나지 전에 어떤 항생제나 신약이 가장 효과적일지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아직까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병원균이지만, 분명 이겨낼 수 있어요.
볼든의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 생각이 일어났지만 의사가 설명을 이어가는 동안 말없이 듣고 있었다.
병원균은 가장 외부의 신경부터 공격했다. 의료구조팀이 탐색팀을 발견했을 때 그들의 몸은 한창 부패가 진행되어 있었고 병원균은 비활동 상태였다. 그러나 균이 뇌에 도달하고 얼마 뒤 사망했을 거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 신경은 병원균이 이동하는 경로일 뿐, 치명적 타격은 없었다.
여기까지가 좋은 소식이다. 그는 완치되거나 혹은 죽을 것이다. 영구적 장애를 안고 살 일은 없다. 음파 가속기 또한 희망을 주었다. 기기로 단세포 생물의 자연 공명 지수를 알아내 서서히 음파의 템포를 올리면 의사는 한 세대가 몸에서 생식하는 동안 열 세대를 실험실에서 관찰할 수 있다. 사실 이 병으로 치료를 받는 것은 볼든이 처음이지만, 우려한 것보다 상황이 좋았다.
“결론적으로 현 상태는 이렇습니다.” 케슬러가 말했다. “이제는 과거 경과를 알아보죠. 먼저 방문했던 모든 곳을 확인해야 해요.”
“비행선에 자동 기록된 데이터가 있어요.” 볼든이 말했다. “제가 착륙한 모든 곳의 기록이 있을 거예요.”
“맞아요, 하지만 아직 우리 쪽 위치 정보가 부정확해요. 데이터를 보고 비행선의 위치를 오차범위 300미터 내로 알아낼 수 있기까지는 수년이 더 걸릴 거예요.” 의사는 커다란 사진 지도를 펼쳤다. 표시된 구역이 몇 군데 있었다. 그는 볼든의 눈 위로 입체경을 씌워주고 연필을 건넸다.
“연필 쓸 수 있겠어요?”
“아마도요.” 그의 손가락은 뻣뻣하고 감각이 없었지만, 연필로 표시하는 건 가능했다. 케슬러가 지도를 가까이 가져오자 자세한 지형이 눈 앞에 뛰어올랐다. 어떤 부분은 실제로 있을 때보다 더 생생하게 보였다. 지도에는 안개가 없었기 때문이다. 볼든은 지도 위에 몇 가지를 수정해 넣었고 의사는 지도를 치운 뒤 입체경을 벗겨주었다.
“치료제를 찾기 전까지는 이 장소들은 피해야 하거든요. 방문한 곳 중 특이한 점이 있었나요?”
“전부 산악지대였어요.”
“그러면 평지에서는 아마도 문제가 없겠군요. 동물은요?”
“가까이 온 건 없었어요. 새들이 좀 있었죠.”
“아마 벌레일 거예요. 병균의 숙주와 감염 과정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아볼 테니, 환자는 안정을 취하세요. 여기는 지구만큼 안전합니다.”
“네.” 볼든이 답했다. “애완동물은 어디 있죠?”
의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동물을 데려온 건 정말 잘 한 일이에요. 생물학자들은 원주민 야영지에서 그 동물을 한 번 본 뒤로부터 내내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거든요.”
“관찰하는 건 괜찮아요.” 볼든이 말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안돼요. 저에게 준 개인적인 선물이에요.”
“개인적인 선물이 확실한가요?”
“원주민이 그렇다고 했어요.”
의사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전달할게요. 과학자들이 좋아하진 않겠지만 원주민의 협조를 얻으려면 최대한 그들 방식에 맞춰야죠.”
볼든은 미소를 지었다. 동물은 적어도 육 개월 간은 안전했다. 생물학자들이 궁금해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새로운 행성에는 호기심을 가질 대상이 충분히 많았다. 그의 애완동물이다. 그는 짧은 시간이지만 벌써 생물체에 큰 애착을 느꼈다. 동물은 다섯 행성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존재다. 아무런 쓸모도 없지만 단 하나의 덕목을 지닌 존재. 인간을 좋아하고 인간이 좋아하는 존재. 바로 애완동물이다. “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 아직 얘기 안 해주셨어요.”
의사는 어깨를 으쓱했지만, 형체가 불분명한 무균복 아래 동작은 보이지 않았다. “동물이 길을 쏘다니게 뒀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옆방에 두고 관찰 중이에요.”
의사는 드러내는 것보다 걱정이 컸다. 병원은 작았고 동물을 둔 적은 없었다. “동물은 보균자가 아니에요. 동물을 받기 전부터 아팠거든요.” “그전부터 감염 상태였던 건 아는데, 원인이 뭘까요? 그 말이 맞다고 해도 동물이 당신과 접촉한 건 사실이니 현재 감염 상태일 수 있어요.”
“이 행성에 사는 생물들은 병균의 위협을 받지 않는 것 같아요. 원주민들도 제가 간 모든 곳에 갔었지만 아무도 감염되지 않았어요.”
“그런가요?” 의사가 문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럴지도요. 아직은 단정 짓기 일러요.” 그는 벽에서 선을 뽑아 무균복에 연결해 팔다리를 벌리고 섰다. 곧 옷이 하얗게 달아올랐다. 짧은 찰나 동안 옷 안에 완전히 밀봉되었다. 실험실 밖에서도 이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해야 한다. 의사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했다. “수면을 좀 취해보세요.” 그가 말했다. “상태에 변화가 생기면 벨을 누르세요.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알려주세요.”
“그럴게요.” 볼든이 말했다. 그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몹시 피곤했다.
간호사는 무균복이 허락하는 한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소리에 볼든은 잠에서 깼다. 저녁이었다. 거의 하루 종일 잔 것이다. “어느 간호 사시죠?” 그가 물었다. “예쁜 분인가요?”
“완치되면 모든 간호사가 예뻐 보일 거예요. 자, 이거 삼키세요.”
페기 간호사였다. 그는 간호사의 손에 든 것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이걸 다요?”
“물론이죠. 일단 목으로 넘기고 나서 제가 다시 빼낼 거예요. 줄이 아프지는 않아요.”
그녀는 작은 기기로 그의 몸을 훑으며 다른 손에 든 눈금판을 읽었다. 그는 그 정보가 어딘가에 있는 통합 차트에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기는 신경의 흐름을 재서 간접적으로 병세의 진행을 확인하는 것으로 보였다. 벌써 새롭게 병을 진단하는 방식을 개발한 것이다. 그는 치료 부분에도 이런 발전이 있기를 바랐다.
간호사는 그가 삼킨 기기를 능숙하게 빼낸 뒤 기록을 읽고 벽에 있던 용기에 넣었다. 그리고는 음식을 트레이에 가져왔다.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았지만 간호사가 강경하게 식사부터 해야 한다고 해서 일단 먹었다. 마비 상태에 맞는 음식이 나왔다. 전부 액체였다. 영양은 좋을지 몰라도 맛은 영 아니었다.
간호사는 트레이를 치우고 돌아와 그의 옆에 앉았다.
“이제 얘기를 나눠보죠.” 그녀가 말했다.
“지금 어떻게 되어가는 상황이죠?” 그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주사는 언제 맞나요? 아직 아무런 처치도 받지 못했어요.”
“의사가 무슨 처방을 내릴지는 저도 몰라요. 저는 간호사일 뿐이에요.”
“그런 말 마세요.” 그가 말했다. “당신도 의사인 거 알아요. 조금만 쪼면 케슬러 의사의 자리도 넘볼 수 있잖아요.”
“쪼이는 건 저도 충분히 제 몫을 받고 있답니다.” 그녀가 밝게 말했다. “그래요, 저도 의사예요, 하지만 지구에서만 그렇죠. 행성-밖 인턴십을 마치기 전까지는 여기서 의료 행위를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반 다마스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 만큼이나 잘 아시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그녀가 말했다. “겁먹지 말고 들으세요, 사실 지금 상황은 예상대로에요. 우리가 보유한 항생제나 신약, 혹은 둘의 복합물 중 효과를 나타내는 건 아직 없어요. 새로운 방법을 찾는 중이에요.”
예상대로라는 말은 맞았다. 하지만 반대이길 하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옆에 앉아있는 형체 불명한 옷의 덩어리를 보며 페기의 원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그들이 아직 자신을 환자 개인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아마 병이 퍼지는 걸 막는데 주력하고 있을 것이다. “저는 가망이 있나요?"
“생각하는 것보다 좋아요. 약이 효력을 발휘하게 도와줄 첨가제를 찾고 있어요.”
새로운 행성에서 특히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데, 그쪽으로는 아직 생각을 못해보았다. 전에 센타우루스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 감염에 신약과 아스피린을 같이 투입해 완벽히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각각을 썼을 땐 아무런 효용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항생제에 어느 물질을 첨가할지 알아내는 건 반복적인 실험과 시행착오 밖에 없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요?” 그가 물었다.
“현재로선 그 정도예요. 심각한 문제 아니라고 달래려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는 병균이 퍼지는 것보다 열 배도 넘는 속도로 임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곧 돌파구를 찾을 거예요.”
그녀는 일어났다. “밤에 먹을 수면제를 드릴까요?”
“몸 안에 이미 수면제가 있는걸요. 영구적인 걸로.”
“그래서 제가 당신을 좋아한다니까요, 정말 긍정적이군요.” 페기는 그의 목에 무언가를 둘러주며 말했다. “혹시 궁금하다면, 우리는 오늘 밤새도록 접안렌즈를 들여다보고 있을 거예요. 방에 사람 한 명을 넣어줄 수 있는데, 최대한 많은 인력이 그쪽에 붙어있는 걸 선호할 것 같아서요.”
“그렇죠.” 그가 말했다.
“이건 신체 모니터예요. 필요한 게 있으면 벨을 눌러요. 몇 분 안에 누가 올 거예요.”
“고마워요.” 그가 말했다. “오늘은 패닉 하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균복을 연결해 한 번 번쩍인 뒤 방을 나갔다. 그녀가 가고 나자 신체 모니터가 더 이상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밤을 무사히 보내려면 긍정적인 힘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들은 밤새 연구실을 지킬 테지만, 정말 상황이 희망적인 걸까? 페기가 한 말을 다시 곱씹어보았다. 항생제나 신약 중에 효과를 나타내는 게 없었다. 그녀는 의도치 않게 이 정보를 알려주었다. 음성 반응이었다. 거품 병원균은 배양기에서 성장을 멈추는 대신 속도를 높였다. 낯선 행성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하필 그에게 이 일이 일어난 건 불운이다.
그는 생각을 비워내고 잠을 청해보았다. 설핏 잠이 들기도 했다. 번뜩 깼을 때 처음에는 그의 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팔이 깊은 곳에서부터 불타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통제가 가능했다. 감각은 없었지만 움직일 수 있었다. 내부 신경은 아직까지 괜찮은 듯했다. 그러나 외부 신경은 병원균이 점점 침범하고 있었다. 이제는 손목이 아니라 팔꿈치 너머까지 올라왔다. 어깨 몇 센티미터 밑으로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병세는 악화되고 있었다. 의사들이 절단 수술을 고려했다면, 지금은 이미 너무 늦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부르면 간호사가 올 테지만 그를 살릴지도 모르는 일을 멈추지 않길 바랐다. 병원균은 어깨를 넘어 가슴과 등까지 퍼질 것이다. 목 위로 올라와 입술을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눈꺼풀을 마비해 눈을 깜박이지 못할 것이다. 실명할지도 몰랐다. 그리고는 곧 뇌로 진입할 경로를 찾아낼 것이다.
그 결과로 신진대사의 폭발적 촉진이 일어나고, 중추 신경계가 감염되면 조정 기관이 하나씩 무너지며 빠른 속도로 모든 신체 작용이 멈추거나 혹은 미친 듯이 일어날 것이다. 그의 몸은 불에 타거나 아니면 픽 꺼져버릴 것이다. 죽음은 폭발적으로 일어나거나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찾아올 것이다.
그것이 간호사를 부르지 않은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는 소리 때문이었다.
아주 낮게, 반은 골골대고 반은 어르는 듯한 으르렁 소리였다. 원주민이 준 동물이 옆 방에 갇혀서 울음소리를 냈다. 볼든은 스스로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다음 행동을 했다. 그의 몸을 지배한 것은 본능 혹은 논리적 사고였다. 하지만 본능과 논리는 근본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인간의 사고에 적용 불가능한, 두 개의 분리된 개념이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걸을 수 없어서 바닥을 굴러 갔다. 손이 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기어가는 것도 어려웠고, 무릎과 팔꿈치로 몸을 지탱해야 했다. 아프지 않았다. 뼛속부터 불타는 느낌을 제외하면 아픈 곳은 없었다. 그는 문까지 가서 무릎으로 일어났다.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으려 했지만 쥐어지지 않았다.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턱을 손잡이에 괴어 당겨 내렸다. 문이 열리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가까워지자 동물은 더 큰 소리로 낑낑댔다. 구석에서 노란 눈이 빛나며 그를 보았다. 그는 울타리까지 기어갔다.
잠겨있었다. 동물은 기대감에 부르르 떨며 울타리 옆에 몸을 눌러 그에게 다가왔다. 손이 마비되어 잠금쇠를 풀 수 없었다. 동물이 그의 손가락을 핥았다. 그러자 좀 쉬워졌다. 몸의 감각은 없었지만 어떻게 잠금을 푸는 건 성공했다. 문이 회전하며 열렸고 풀려나온 동물이 그를 바닥으로 넘어뜨렸다.
잘했다는 확신이 들어서 이에 개의치 않았다. 원주민이 동물을 준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멸종의 코 앞에서 근근이 살아남고 있는 원주민들이 쓸데없는 동물을 키울 리 없다. 동물은 확실히 쓸모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비비는 동물의 털에서 작고 푸른 불꽃이 튀었다. 동물은 더 이상 낑낑대지 않고 그르렁 거리며 그의 손과 팔을 핥고 다리 사이를 굴러다녔다.
잠시 후 그는 침대로 기어갈 만큼의 체력을 회복해 동물에 기대 부축받으며 갔다. 그는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서 지쳐 쓰러졌다. 마비된 몸에 피가 잘 통하지 않았다. 동물은 마치 그에게 묶인 듯 따라 올라와 그의 몸에 녹아들려 했다. 그가 원했다고 해도 밀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는 몸을 움직여 더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그는 죽지 않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볼든은 의사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깬 채 기다렸다. 케슬러의 퀭한 얼굴은 환자를 위한 억지 미소로 굳어 있었다. 그가 마이크로 스크린을 통해 본 얼굴이 어떤지 알았다면 미소를 지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을 거다. “잘 이겨내고 있군요.” 그가 억지로 짜낸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도 잘 진행 중이랍니다.”
“그렇겠죠.” 볼든이 말했다. “어쩌면 병원균의 성장을 돕지는 않는 항생제를 발견하는 단계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네요?”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웠는데.” 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숨길 수가 없군요.”
“그냥 림프액을 주사하고 강력한 신약이라고 말해도 됐을 텐데요.”
“그런 방식은 의료계에서 몇백 년 전에 사라졌어요.” 의사가 말했다. “병세가 좋아지는 기미가 없으면 오히려 상태가 악화되죠. 새로운 행성에 정착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위험은 실존해요. 다가오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해요.”
그는 자신 없는 태도로 볼든을 바라보았다. 마이크로 스크린 때문에 그의 시각도 왜곡되었다. “그렇게 안 보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잘 진행되고 있어요. 칼슘 소금과 항히스타민제 두 종을 특정 신약에 섞으면, 병원균이 원래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지 않아요. 이제 첨가물을 바꿔서 실험해보면 (칼슘 대신 칼륨 소금이라든가) 금방 병원균을 멈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결과가 효과적일지 크게 믿음이 가지는 않네요.” 볼든이 말했다. “사실, 전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로 보여요. 신경 유발 쪽을 조사해보는 게 어때요.”
“무슨 얘기죠?” 의사가 가까이 다가와 볼든 옆에 수상하게 불룩 튀어나온 부분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어지러우세요? 평소와 다른 이상이 있나요?”
“환자에게 소리치면 안 되죠.” 볼든은 야단치듯 손가락을 좌우로 저었다. 그의 손가락이 자랑스러웠다. 아직 감각은 없지만 마음대로 움직이는 건 가능했다. “의사 선생님, 환자는 원주민에게 배우고 의사는 환자에게 배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요.”
그러나 케슬러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는 공중에 들린 볼든의 손을 보고 있었다. “거의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네요.” 그가 말했다. “몸속 면역 체계가 병균과 싸우고 있나 봐요.”
“네, 물론 면역 체계가 있긴 하죠.” 볼든이 말했다. “원주민들의 것과 같은 거예요. 하지만 몸속이 아니라 밖이에요.” 그는 시트 아래 동물 위에 손을 얹었다. 동물은 그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했다. 떠날 필요 없었다.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게 알려드릴 수 있어요, 선생님. 원주민들도 병균에 취약해요. 그래서 제가 감염된 걸 한 번에 알아본 거예요. 그래서 저에게 치료제를 주고 설명해 주었지만, 저는 너무 늦을 뻔할 때까지 이해하지 못했죠. 바로 이거예요.” 그는 시트를 걷었고, 그의 다리 위에서 평화롭게 쉬고 있던 동물이 고개를 들어 그의 손가락을 핥았다. 그는 동물의 혀가 닿는 감촉을 느꼈다.
긴 설명 후 의사는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비위생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는 건 인정했다. 케슬러는 엑스레이 화면을 통해 볼든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했다. 그는 마지못해 기계를 벽 쪽으로 밀어두었다.
“감염된 부분이 확실히 줄어들고 있군요.” 그가 말했다. “전에 감염됐던 부위 중 병원균을 아예 찾을 수 없는 곳도 있어요.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네요. 당신 말에 따르면, 동물이 혀로 살 아래를 파고드는 것은 아니라서 핏속으로 투입되는 물질이 없을 테고요. 동물이 곁에 머물기만 하면 되는 것 같네요.” 그는 마이크로 스크린 뒤에서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제안한 전기적 비유는 맞는 것 같지 않군요.”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을 말했을 뿐이에요. 원리가 맞는지는 몰라도, 괜찮은 추측 같은데요.”
“병원균이 신경계 근처에 모여드는 건 맞아요.” 의사가 말했다. “그리고 신경계가 부분적으로는 전기적 반응인 것도 맞죠. 신경 반응을 늘릴 수 있으면 이온 분리에 따라 균이 죽을 수도 있겠죠.” 그는 볼든과 동물을 탐구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쩌면 동물에게서 신경 에너지를 빌리는 것일 수 있겠네요. 만약 그렇다면 전류를 통해서 병을 통제할 수 있는지 실험해볼 수 있어요.”
“실험대상이 저는 아니겠죠?” 볼든이 말했다. “이미 실험체는 충분히 한 것 같아요. 건강한 사람을 데리고 하세요. 저는 원주민의 방법을 쓸게요.”
“지금 환자의 상태에 실험을 할 마음은 없어요. 아직 완전히 회복한 건 아니에요.” 그러나 그는 방을 나가며 실제 속마음을 내비쳐 버렸다. 무균복을 연결해 번쩍하는 걸 잊고 나간 것이다.
볼든은 의사의 실수에 미소를 짓고는 동물의 털을 쓰다듬었다. 그는 곧 완전히 나을 것이다.
그러나 회복은 예상보다 더뎠고, 실험을 지속하던 의사는 이에 은근히 만족하는 듯했다. 감염균은 전류로 죽일 수 있지만 전류가 위험할 정도로 세서 이를 사람에 적용할 방법이 없었다. 아직은 동물만이 효과적인 방법이다.
케슬러는 병원균이 중간 보균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진드기나 모기가 가장 유력했다. 보균자를 밝혀내려면 오랜 시간 동안 산악 지대를 조사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복잡한 격리 조치는 필요 없었다. 마이크로 스크린을 내리고 무균 복도 벗었다. 볼든은 병균을 퍼뜨릴 수 없다.
동물 또한 마찬가지다. 동물은 기생충 하나 없이 깨끗했다. 깨끗하고 사랑스럽고, 접촉을 좋아했다. 반 다마스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질병에 이렇게 간단한 치료제가 있다는 건 볼든에게 행운이었다.
정착지 한편에 위치한 작은 병원을 떠나려면 아직 며칠 더 기다려야 했다. 침대 위에 앉아있는 게 허락됐고, 이제는 방에서 걸어 다니는 것도 가능했다. 그의 활동량이 점점 늘어나자 동물은 침대에 누워 그를 눈으로 따라가는 것에 만족했다. 이제는 처음처럼 정신없이 뛰어다니지 않았다. 볼든이 간호사에게 말했듯, 길들여지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 의사가 볼든의 몸에서 단 한 개의 병원균도 발견하지 못한 날이 왔다. 볼든의 살아난 체력과 감염되었던 부위에 돌아온 감각이 진단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는 건강했다. 페기가 와서 그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것은 즐거웠다.
“준비 다 된 것 같네요.” 페기가 의욕적인 그를 보고 웃었다.
“하나만 빼고요.” 그가 말했다. “이리와, 애완동물.” 동물은 자고 있던 침대에서 고개를 들었다.
“애완동물?” 페기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이름을 붙여 주어야죠. 오랫동안 데리고 있었잖아요.”
“애완동물이 이름이에요.” 그가 말했다. “아니면 뭐라고 부를까요? 의사 선생님? 영웅?”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둘 다 별로네요, 당신 생명을 살리긴 했지만.”
“그래요, 하지만 그저 본능적으로 그런 거예요. 중요한 건 애완동물을 찾을 때 원하는 점을 이 생물체가 모두 지니고 있다는 점이죠. 순하고 온화하고, 때때로는 발랄하고. 오직 사람 곁에서 만져주기만을 원하고. 게다가 굉장히 깔끔해요.”
“그래요, 애완동물이라고 불러요.” 페기가 말했다. “어서 가자, 애완동물.”
동물은 그녀의 말은 들은 체도 않았다. 볼든이 부르자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다가왔다. 그는 볼든에게 최대한 딱 붙었다. 볼든은 아직 힘이 없어서 천천히 걸었고, 처음에는 동물도 속도를 맞출 수 있었다.
출발할 때는 거의 정오 무렵이었다. 해가 굉장히 밝았고 반 다마스는 매우 살기 좋은 곳으로 보였다. 그렇다, 죽음을 뒤로하자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볼든은 들떠서 페기와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었다.
볼든은 그에게 동물을 준 원주민과 마주쳤다. 오일에서 칠일이라고 약속한 시간에 맞춰 도착한 것이다. 나머지 원주민은 정착지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을 테다. 볼든은 멀리서도 원주민을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에 답으로 원주민은 손에 든 활을 움직이며 두 사람 뒤 병원 방향을 바라보았다.
활의 움직임은 약간 위협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볼든은 이를 무시했다. 그러나 뭔가 빠졌다는 느낌에 아래를 보았다. 동물이 그의 옆에 없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동물은 먼지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일어나서 비틀거리며 그에게 다가오려 노력했다. 한 바퀴를 돌고, 그를 한 번 보고, 다시 다가왔다. 혀가 입에서 굴러 나왔고 끙끙댔다. 그때 원주민이 활을 심장 정중앙에 맞추며 바닥에 꽂았다. 짧은 꼬리가 바닥을 쿵 때리고는, 죽음이었다.
볼든은 멈춰 서있었다. 페기가 그의 팔을 잡았다. 원주민이 동물에게 다가가 내려다보았다. 잠시 그렇게 침묵하고 서 있었다. “어차피 곧 죽을 운명이었어요.” 그가 볼든에게 말했다. “속에서부터 기가 다 빠져나갔어요.”
볼든은 동물 위로 몸을 구부렸다. 밝은 노란 눈이 햇빛 아래 텅 비어 보였다. “자신의 생명을 당신에게 준 거예요.” 반 다마스의 원주민은 화살을 부러뜨리며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
짙은 푸른색의 화살이었다.
행성의 정착지마다 볼든의 애완동물이 생겼다. 과학적 명칭이 붙기는 했지만, 뭐였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원주민 부족에서 그랬듯 동물들은 마을 한쪽 편 사람과 동떨어진 곳 울타리 안에 살았다.
한동안 동물 치료법이 비과학적이라는 말이 있었다. 전기 치료법을 개발해 동물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어쩌면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행성에 정착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가능한 방법이 있는데 새로운 방법을 개발할 여력이 없다. 게다가 기존 방법도 매우 효과적이다. 흔한 다른 병의 치료제만큼 완치율이 높다.
그러나 동물은 절대 애완동물이 될 수 없다. 비록 이 노란 눈을 가진 생물체의 작지만 총명한 머리가 원하는 것이 그것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동물의 가장 가치 있는 점이 바로 실격의 원인이기도 했다. 강점도 약점이 될 수 있다. 동물의 신경계는 건강한 사람에게는 너무 강력해서, 인간 신체의 섬세하게 잡힌 평형을 이상한 방식으로 흩트렸다. 에너지의 전가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직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지만, 있다는 건 분명했다.
그래서 <죽음의 거품>에 걸려 신경 근처를 점령한 병원균을 몰아낼 추가 에너지가 필요할 때에만 볼든의 애완동물을 가지는 것이 허락되었다.
결국에는, 죽는 것은 동물이다. 원주민들이 잘 알다시피 빠른 죽음을 주는 것이 유일한 마지막 도리다.
동물의 가치는 인정되고 존중받았다. 아이들은 울타리 근처로 가서 놀고 싶어 했지만, 높고 튼튼한 벽으로 막았다. 어른들은 지나가면 따뜻한 고개 인사를 건넸다.
볼든은 절대로 그 근처로 가거나 동물에 대한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가 동물의 가치를 발견한 첫 지구인이 된 것을 슬퍼해서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별로 기쁘지 않은 발견이다. 그는 아직도 푸른 활을 보관하고 있다. 지역의 기술자들이 부러진 걸 고쳐줄 수 있다고 했지만, 거부했다. 이대로 보관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