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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디네> 사랑이 운명이 되려면

monglim 2021. 1. 2. 15:25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요즘 사랑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사랑의 개념이나 의미 같은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의 힘이나 박애주의적 사랑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다시 그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것에 대해서. 사랑이 진행 중인 기간에만 유효한 무한함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 사이의 약속들, 영원함에 대한 속삭임의 부질없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부질없음을 겪고 또 겪으면서도 또 별 수 없이 사랑에 빠지고 마는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운디네>는 바로 이러한 "운명적 사랑", 혹은 "사랑이 정의한 운명"에 관한 영화다.

 

평범한 여자의 특별한 사랑

 

영화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 운디네는 이별을 통보받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마도 방금 전 헤어지자고 이야기한 (엑스) 연인 요하네스에게 운디네는 "사랑한다고 했잖아, 영원히"라고 이야기한다. 아니, 질문한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을 떠난다면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고 사뭇 비장하게 이야기한다. 자신이 일을 하러 가보아야 하니 30분만 이 카페에서 그대로 앉아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심각한 운디네의 태도와 "죽인다"는 강한 표현에 그가 혹시 전문 킬러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나는 영화에 대해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러 갔다)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는 박물관에서 강의를 하는 것을 본다. 운디네는 지적이고 차분한 모습으로 베를린의 역사와 건축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전문 암살가나 폭력성이 강한 특수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여자다. 방금 실연을 당한 평범한 여자. 일이 끝나자마자 카페로 뛰어나간 운디네는 떠나버린 요하네스의 빈자리를 본다. 그가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운디네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영화는 이 사랑이 운명적인 만남임을 강조한다. 요하네스를 찾느라 혼비백산이 된 운디네를 부르는 알 수 없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어항 속 잠수부 피규어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운디네의 얼굴과 잠수부 피규어를 번갈아 보여주는 카메라의 줌 워크는 긴장이 넘친다. 나중에 이 피규어는 크리스토프에게서 운디네에게로, 그리고 다시 운디네에게서 크리스토프에게 건네 지며 사랑의 증표이자 운명의 상징물이 된다. 얼음이 되어 우두커니 서 있는 운디네에게 크리스토프와 사랑이 찾아온다. 가만히 있는 운디네에게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랑은 운명이니까. 크리스토프의 실수로 수족관이 깨지고, 둘은 나란히 누워 쏟아지는 물을 흠뻑 맞는다. 운디네는 피를 흘리면서도 일어날 생각이 없다. 크리스토프의 직업은 물론, 산업 잠수부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의 설정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후반부까지 보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그 사랑을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작은 우연과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없으면 죽을 것 같았던 옛 애인과 헤어진 자리에서 다른 남자와 마주쳐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설명하면 납득되지 않는 경과가, 잠수부 피규어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실제로 잠수부인 남자와 만나 깨진 수족관에 머리를 맞는 사고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 나면, 후에 이어진 장면에서 열렬히 사랑하는 둘의 모습을 의문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사랑의 유효기간

 

그렇지만 모든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있는 동안 의미 있던 모든 사소한 것들은 사랑이 끝나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뜻하지 않은 잠수 사고 후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크리스토프. 그가 병원에 있는 동안 운디네는 몇 가지 충격적 사건을 겪고 떠난 후이지만 크리스토프에게는 오직 운디네가 사라졌다는 사실만 남아있을 뿐이다. 눈을 떠보니 사랑했던 연인이 사라졌고, 그의 행방은 알 길이 없다. 마치 지난 사랑이 허상이었다고, 한바탕 꿈이었다고 해도 반박할 증거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이미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온 운디네의 아파트에서 둘이 남긴 흔적을 찾는다. 실수로 와인을 쏟아 벽에 남은 흔적은 운디네와의 사랑이 실재하는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다. 난데없이 쳐들어온 그를 보고 새로운 세입자들은 당황하지만 횡설수설하는 그를 이해한다는 듯 다독인다. 끝난 사랑의 흔적을 붙잡고 헤매는 일은 특수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영원할 수 없는 걸까? 여기에 답을 하려면 먼저 운디네가 왜 죽어야 했는지, 그리고 전 남자 친구 요하네스를 왜 죽여야 했는지에 먼저 답을 해야 한다. 크리스토프가 사고를 당하던 때로 돌아가 본다. 운디네는 크리스토프와의 (마지막이 되어버린) 만남 후 그를 배웅하러 가는 길에 길에서 요하네스와 그의 새로운 연인과 마주친다.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운디네는 크리스토프의 품에 안겨 요하네스를 돌아본다. 그 후 요하네스가 운디네의 일터로 찾아와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하고, 운디네는 말없이 웃으며 그를 보내버린다. 그리고 그날 밤, 운디네는 크리스토프에게서 그의 과거에 대해 묻는 전화를 받고 온전히 솔직하지 못한 태도에 대해 크리스토프의 비난을 받는다. 그러고 나서 크리스토프는 연락이 두절되는데, 그를 찾아간 운디네는 사실 크리스토프는 운디네와 헤어진 날 오후에 사고를 당했으며 계속 뇌사 상태였다는 사실을 듣는다. 그러니까 크리스토프가 운디네에게 전화를 걸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뒤 운디네는 요하네스를 찾아가 그를 죽이고, 자신도 강에 들어가 자살한다.

 

사랑이라는 환상, 환상과 같은 운명

 

크리스토프가 운디네에게 전화를 걸 수 없는 상태였다면, 둘의 싸움과 크리스토프의 비난은 운디네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일종의 상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서 없으면 죽어버릴 것이라 믿었던 요하네스와의 사랑이 끝난 이유는 요하네스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운디네의 입장에서) 크리스토프와의 사랑이 위기를 맞은 이유는 요하네스가 그의 삶에 다시 들어왔기 때문이다. 운디네는 요하네스를 없애고, 자신이 죽음으로써 크리스토프와의 사랑을 영원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시간이 흘러 2년 후, 크리스토프는 늘 곁을 지켰던 잠수부 친구 모니카와 연인이 되었고 둘 사이에는 태어날 아기가 있다. 이는 운디네와의 "운명적 사랑"과는 대조되는 "현실적 사랑"이다. 크리스토프는 여전히 운디네와의 사랑에 시달린다. 오랜만의 잠수 작업 중 물속에서 운디네를 본 그는 밤중에 호수로 달려 나간다. 모니카는 무작정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크리스토프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크리스토프는 물속에서 운디네를 만나고, 잠수부 피규어를 건네받은 채 수면 위로 올라온다. 운디네와의 사랑이 진실이었다는 증표이자, 운명적 사랑의 완성. 운디네가 죽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이별이 없다. 크리스토프는 운명적 사랑의 증표를 손에 쥔 채 현실을 살아가면 된다.

<운디네>는 그러니까, 동화적 사랑의 반대편을 이야기한다. 운명적 만남, 사랑, 그리고 Happily ever after로 얘기되는 영원한 행복. 그것이 동화적 사랑이라면 <운디네>는 말한다.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기에, 영원한 행복이란 없다고. 주인공 운디네는 한 사랑을 영원한 것으로, 운명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을 보여주었고 크리스토프는 스스로 ever after을 살아갈 것이다.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알 수 없게 지워놓았다. 운디네가 들은 환청, 크리스토프가 본 환상은 손에 만져지는 피규어, 물속에 사는 거대한 메기와 운디네의 이름이 새겨진 그라피티 등과 만나 현실과 환상의 분간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놓는다. 사랑이 빠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운명에 대한 환상. 의미 부여를 통해 그 환상을 실제로 만들어버리는 것 또한 사랑의 역할이라면, <운디네>는 그것을 한 시간 반 동안의 체험으로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그래서 나는 운명적 사랑을 믿는가? <운디네>를 보고 난 뒤에 생각해보면 이건 잘못된 질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생겨나는 것이 운명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니까 운명을 믿고 말고는 그 시점에 내가 사랑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운명은 적어도 한시적으로는, 혹은 언제나 누군가에게는, 실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