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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 짧은 감상

monglim 2021. 12. 15. 17:26

*최대한 스포일러를 빼고 씁니다

 

몇 개월 전에 한 번 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꽤나 위험한(?) 일이지만, <티탄>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기록하고 싶었다. 훌륭한 영화에 종류를 나눈다면, 이 영화는 “말하고 싶게 만드는” 류다. 나는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회 차 상영으로 보았다. (자극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영화에 번뜩 잠이 깨기 좋은 시간이다) 영화는 물론 아주 이른 아침부터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더욱 재미있던 것은 영화가 끝난 뒤 한바탕 대화의 장이 열린 영화관이었다. 영화제에서 영화가 끝나고 그렇게 활발한 대화가 오가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게 만들 정도였다. 확실히 아침 9시에 상영한 <티탄>은 나 말고도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충격과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티탄>이 아침 일찍 상영했다고 말했나요?) 그 의견 또한 다양했다. “정말 너무 좋지 않았어?”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게 대체 뭐야? 개연성이 하나도 없잖아!”라는 불평도 들려왔다.

나에게 영화의 가장 놀라운 지점이 바로 개연성이었다. 영화는 분명히 하나의 서사를 따라간다. 그러니까, 이미지적 영화는 아니다. 기승전결이 있으며 주인공은 분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러나 목적성이 불분명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장면 장면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히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주인공 알렉시아가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하나의 씬 안에서조차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는 분명 그를 움직이게 하는 폭발적 동력을 지녔고, 빠른 속도로 눈앞의 것을 해치우며 나아간다. 그리고 미처 따라가지 못한 관객은 당황한 채 남아있다.

영화가 첫눈에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장면 장면이 논리가 아닌 감각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알렉시아는 자동차 앞에서 춤을 추는 일이 끝나고 샤워를 하다가 옆 사람의 젖꼭지 피어싱에 머리카락이 낀다. 그때 머리카락을 잡아 빼며 상대가 느꼈던 날카로운 고통의 감각은, 후에 알렉시아가 부둣가에서 여자와 사랑을 나눌 때 젖꼭지를 아프게 깨물어서 여자가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이어진다. 감각에서, 감각으로. 그렇게 본능적으로 이어지는 서사이기에, 머리를 쓰기보다는 몸으로 느끼면서 따라가야 받아들이게 되는 영화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충격의 여운이 가시고 곰곰이 곱씹어보면 실은 무척이나 고전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의 신선한 충격의 근원은 바로 논리가 아닌 감각으로 이어지는 서사. 몇 년 전, 대중음악에서 의미보다는 사운드에 집중한 작사가 트렌드가 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둘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형식적 새로움에 호불호가 갈린 반응은 분명 신선한 충격이 된 트렌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궁금하고 기대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