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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 허버트 조지 웰스, The Star, H.G. Wells, 1897
    옮긴 글/별, 허버트 조지 웰스 2017. 3. 13. 20:02

    *원문링크: http://www.online-literature.com/wellshg/17/

     

     

    새 해 첫날, 거의 같은 시각에 세 관측관에서 새로운 사실을 공표했다.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들 중 가장 바깥 행성인 해왕성이 매우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오길비[각주:1]는 이미 지난 12월에 해왕성의 궤도가 느려진 것 같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대다수가 해왕성의 존재조차 모르는 세상에서 이러한 소식은 큰 뉴스거리가 될 수 없었기에, 이후에 혼란에 빠진 행성 근처에서 아주 희미하고 미약하게 빛나는 점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가지는 일반인도 없었다. 그러나, 과학계 종사자들은 새롭게 발견된 사실을 처음부터 중요하게 다루었다. 새로운 물체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크기와 밝기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 또 일반 행성들의 규칙적인 움직임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 그리고 해왕성과 위성의 이상 궤도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기 전부터 그랬다. 

     

     과학 전공자를 제외하고 태양계가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태양과 그 주변을 도는 점 같은 행성들, 먼지 같은 소행성들과 분간조차 힘든 혜성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빈 광활함을 유영하고 있다. 인간의 관측소에서 내다볼 수 있는 거리까지만 재도, 해왕성의 궤도 뒤로 빛도 소리도 온기도 없는 텅 빈 공간이 2억 마일 곱하기 백만 마일이 넘도록 이어진다. 이는 가장 가까운 별에 도달하기까지 여행해야 하는 최소 예상 거리다. 아주 희미한 불꽃보다도 희박한 혜성 몇 개를 제외하면, 20세기 초 이 수상한 방랑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우리가 아는 한 우주의 심연에 어떠한 물질도 등장한 적이 없었다. 이 새롭고 거대한 물질 덩어리는, 크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천체의 암흑 속에서 경고 없이 나타나 태양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튿날이 되자 그것은 웬만한 천체망원경으로도 관측할 수 있는 크기가 되어, 사자자리의 레굴루스[각주:2] 근처에 겨우 지름을 확인할 수 있는 작은 점으로 보였다. 얼마 후에는 오페라글라스를 통해서도 관측이 가능해졌다. 

     

     새해 셋째 날, 지구의 북반구와 남반구에 거주하는 신문 구독자들은 천체의 이상 출현이 어떠한 중요성을 가지는지에 대한 기사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행성의 충돌"이라는 제목을 단 한 런던 신문의 기사는, 새로운 이상 행성이 해왕성과 곧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저명한 학자 두셰인의 예측을 실었다. 각국의 대표 기자들은 앞다투어 이 이야기에 파고들었다. 따라서 1월 3일이 되자 전 세계 대부분의 대도시에서는 당장 하늘에서 벌어질 현상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막연한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태양이 지고 밤이 오자, 지구 곳곳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그들이 본 것은 (언제나와 같이 친숙하게) 밤을 밝히는 별들이었다. 

     

     런던에 새벽이 찾아오자 폴룩스[각주:3]가 지고 머리 위 별들이 희미해졌다. 겨울 새벽이었다. 창백한 필터를 씌운듯한 태양의 바랜 빛이 켜켜이 쌓여갔고 창문에 가물거리는 가스등과 양초의 노란빛으로 잠에서 깨어난 집을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하품을 하던 경찰은 보았다. 시장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은 우두커니 멈춰 섰다. 일찌감치 일터로 향하던 일꾼도, 우유배달원도, 신문 카트 운전자도, 방탕한 밤을 보내고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향하던 사람들도, 집 잃은 방랑자도, 순찰을 돌던 보초병도, 그리고 시골에서는 논밭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던 농부와, 살며시 집으로 숨어 들어가던 밀렵꾼도, 그러니까 새벽이 빠르게 다가오던 대륙 전체에서 곳곳의 사람들이 (그리고 바다에서 날씨를 살피던 뱃사람도) 보았다! 하얗고 큰 별이 서쪽하늘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을!

     

    그것은 하늘의 어떤 별보다도 밝았다. 저녁샛별이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보다도 밝았다. 크고 하얗게 빛나는 물체는 날이 밝은 지 한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반짝이는 점이 아닌 작고 동그랗고 또렷한 원형이 되었다. 아직 과학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천체에 떠오른 불길한 상징이 예고하는 전쟁과 역병에 대해 퍼뜨렸다. 강인한 보어인들도, 거무스름한 호텐토트 인들도, 황금 해안의 아프리카인과, 프랑스인, 스페인인, 포르투갈인도 모두 일출의 따뜻한 빛을 받으며 서서 새로이 등장한 이상한 별이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세계 곳곳의 관측소에서는 떨어져 있던 두 별이 서로에게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억눌려있던 흥분 상태가 마침내 폭발하였고, 지금껏 보지 못한 진귀한 광경이자 하나의 종말을 기록하기 위해 각종 사진 도구와 분광기를 챙기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나의 세계이자, 지구보다 훨씬 큰 크기의 자매 행성인 해왕성이 한순간에 죽음의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해왕성은 먼 우주로부터 온 낯선 별에 정통으로 부딪혔고, 충돌로 인한 열기는 자비도 없이 두 단단한 행성을 하나의 거대한 백열광 덩어리로 만들었다. 창백하고 거대한 백색 성은 동이 트기 전 두 시간 동안 지구를 돌았고, 태양이 떠오르자 비로소 서쪽으로 지며 모습을 감추었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이를 보며 경이에 젖었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매일 습관처럼 별을 관찰하는 뱃사람이었다. 그들은 먼 바다에 나가 있느라 새로운 존재의 등장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었고, 별이 꼬마 달과 같은 모습으로 천구의 절정까지 올라 머리 위에 떠 있다가 밤과 함께 서쪽으로 지는 모습이 처음으로 존재를 알게 된 것이었다. 

     

     별이 유럽의 하늘 위로 떠올랐을 때에는 새롭고 거대한 별이 떠오르는 것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언덕의 경사, 지붕 위, 공터 등이 빽빽했다. 별은 백색 불꽃과 같은 하얀빛을 발하며 떠올랐고, 전날 밤 이미 별의 존재를 보았던 이들은 그 광경에 소리를 질렀다. 

    "더 커졌어." 그들은 소리쳤다. "더 밝아졌어!" 서쪽으로 지고 있던, 약 1/4 정도로 차오른 초승달은 별에 비해 크기는 비교할 것 없이 컸지만, 밝기는 새로운 별의 작은 원에서 나는 빛에 미치지 못했다. 

     

     "더 밝아졌어!"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외쳤다. 하지만 어둑한 관측소에서 별을 관측하던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더 가까워졌어!" 그들은 말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더 가까워졌다”는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고, 딸깍이는 전보를 통해 전해졌고, 떨리는 전화선의 와이어를 따라 흘렀으며, 수천 도시에서 검댕 묻은 얼굴을 한 조판공들이 활자판을 꺼내 들었다. 사무실에서 글을 쓰던 사람들은 번뜩 깨달음이 오자 펜을 내동댕이 쳤고, 말을 퍼뜨리던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이 소식이 내포한 무서운 가능성에 대해 뒤늦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더 가까워졌어.” 이 소식은 막 잠에서 깨어난 아침의 거리를 빠르게 내달렸고, 서리로 뒤덮인 조용한 마을의 길에도 울려 퍼졌으며, 공식 발표가 이루어지기 전 미리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현관의 노란불 아래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더 가까워졌어요.”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잔뜩 상기된 얼굴로 홀에서 춤을 추던 아름다운 사람들은, 누군가 농담처럼 던진 소식을 듣고는 지적인 호기심을 연기했다. 

    “가까워졌다고요! 정말 놀라워라! 그런 걸 알아내는 사람들은 굉장히 똑똑한 사람들이겠죠!” 

     

     겨울밤을 버텨내던 외로운 부랑자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고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더 가까워져야지, 아직도 밤이 부자들의 자선회만큼이나 차가운데 말이야. 진짜 가까워진 게 맞긴 한지, 별 온기는 못 느끼겠는걸. 전이랑 달라진 게 없어.” 

     

     “새 별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답니까?” 죽은 이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던 여인은 울부짖었다.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난 학생은 창문에 낀 서리 너머 하얗고 밝게 빛나는 거대한 백색 성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구심력, 원심력.” 그는 주먹에 턱을 괴고 말했다. 

    “날아오던 행성을 멈춰서, 구심력을 빼앗아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원심력이 지배하고, 행성은 태양으로 떨어지겠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 행로 사이에 있게 될까? 그렇게 되면…” 

     

     태양은 언제나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길로 사라졌고, 그 후에는 서리 낀 어둠과 함께 다시 별이 떠올랐다. 그것은 노을 진 하늘 위로 거대한 모습을 자랑했고, 엄청나게 밝아진 모습에 달은 사라지고 유령 같은 노란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도시에서는 유명인이 결혼식을 올렸는데, 신부와 함께 돌아온 그를 환영하기 위해 거리가 온통 불빛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하늘마저도 불을 밝히고 있네요,” 한 아첨꾼자가 말했다. 염소자리 아래에서는, 흑인 연인 둘이 짐승과 사악한 혼령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풀숲에 함께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저건 우리의 별이야.” 그들은 서로에게 속삭였고, 별의 밝은 광채에 이상한 평온함을 느꼈다. 

     

    위대한 수학자는 자신의 연구실에 앉아 앞에 쌓인 종이 뭉치를 밀어냈다. 계산은 끝났다. 작고 하얀 병에는 그가 잠을 자지 않고 나흘 밤까지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약이 아직 조금 남아있었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매일을 고요하고, 명징하고, 언제나와 같은 차분한 태도로 강의를 하고는 집에 돌아와 이 수학식을 푸는데 몰두했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으며, 약 때문에 조금 핼쑥하고 멍해 보였다. 그는 얼마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더니 창문으로 다가가 탁 소리와 함께 블라인드를 열었다. 도시의 지붕과 굴뚝과 첨탑들 위 하늘 한가운데에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힘겨운 적수를 대면하는 사람의 눈빛으로 별을 바라보았다. 

    “너는 나를 죽일 수 있겠지만,” 얼마간의 침묵이 지나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 작은 뇌로 너와 온 우주까지 다 파악했어. 나는 변하지 않아. 여전히.” 

     

     그는 작은 약병을 바라보았다. 

    “이제 다시는 잠을 잘 필요가 없겠군.” 그가 말했다. 

    그는 다음날 정오에 1분의 오차도 없이 강의실에 들어섰고, 평소의 습관대로 모자를 테이블 끝에 올려둔 뒤, 조심스럽게 커다란 분필 하나를 골라냈다. 이는 그가 손가락 사이에 만지작거릴 분필이 없으면 강의 진행을 못할 거라고 학생들이 웃음거리로 삼는 습관으로, 한 번은 분필을 몽땅 숨겨버려 그를 완전히 당황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그는 회색 눈썹 아래 빛나는 두 눈으로 강의실에 둘러앉은 젊고 신선한 얼굴을 응시했고, 평소와 같은 일상적인 톤으로 입을 열었다.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는 제가 준비한 강의들을 예정대로 끝마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러분, 아주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인류 역사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지금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교수가 미쳐버린 걸까? 눈썹을 치켜들고 입가에 미소를 띤 학생들도 있었지만, 한두 명은 집중한 채 그의 차분한 회색빛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말했다. “흥미로운 일을 하나 제안하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명확하게, 이 결론에 이르게 된 수학식과 계산을 설명하면서 오늘 수업시간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음과 같이 가정을 해본다면…” 

     

     그는 칠판으로 몸을 돌려, 항상 하던 대로 다이어그램을 그렸다. 

    “‘인류 역사의 종말’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야?” 한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속삭였다. 

    “들어봐.” 다른 학생이 강연자를 고개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은 곧 이해하게 되었다. 

     

     *** 

     

    그날 밤 별은 더 늦은 시간에 떠올랐다.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동하던 별은 사자자리를 통과해 처녀자리 쪽에 가까워졌다. 별이 떠오름과 함께 환해진 별의 빛에 하늘은 밝은 푸른빛이 되었고, 하늘 꼭대기 근처의 목성, 카펠라, 알데바란, 시리우스, 그리고 곰자리의 별들을 제외한 다른 별들은 그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하얗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날 밤 대부분의 지역에서 별 주변에 희미한 후광이 비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별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더 커져 있었다. 열대의 맑고 굴절된 하늘에서는 달의 사분의 일 크기까지 되어 보였다. 영국은 아직 땅에 서리가 낄 정도의 겨울 날씨였지만, 밤은 한여름의 달밤만큼이나 밝았다. 그 차갑고 맑은 빛에 글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도시의 등은 노랗고 희미하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날 밤 세상은 잠들지 못했다. 기독교 국가에서는 짝짓기 철의 벌 떼 소리 같은 침울한 웅성거림이 시골의 차가운 공기를 뒤덮었고, 도시로 갈수록 그 정도는 동요를 넘어 격정적인 수준이 되었다. 수천 개의 종탑과 첨탑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잠들지 말고, 죄짓지 말고, 교회에 모여 기도하라고 부르고 있었다. 지구가 자전하며 밤이 깊어질수록 머리 위로 점점 커지고 밝아지는 별이 눈부시게 떠오르고 있었다. 

     

    도시의 거리와 집은 불을 밝혔고, 배가 정박한 정박 소도 훤했으며, 고지대로 올라가는 모든 길이 밤새도록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문명이 사는 곳의 바닷가에서는, 엔진이 맹렬히 돌아가는 선박과 돛을 펄럭이는 배가 사람과 동물을 잔뜩 싣고 북쪽을 향해 넓은 바다로 나아갔다. 위대한 수학자의 경고가 수백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결과였다. 새로운 행성과 해왕성은, 불타는 하나의 몸체가 되어 소용돌이치며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태양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일 초가 흐를 때마다 몇 백만 마일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매 초마다 무시무시한 속도는 점점 더 높아졌다. 현재 상태로만 간다면 사실 지구와는 몇 백만 마일 떨어진 곳을 지날 것이라 지구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별의 행로에는, 아직은 약한 영향권 안이었지만, 거대한 행성인 목성과 위성들이 태양을 빠른 속도로 공전하고 있었다. 매 순간이 흐를 때마다 불타는 별과 거대한 행성의 서로를 향한 인력은 증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목성은 원래의 공전 궤도에서 벗어나 타원형으로 선회하게 될 것이며, 불타는 별은 목성의 힘에 끌려 태양을 향하던 원래의 직선 궤도에서 “곡선을 그리며" 어쩌면 지구와 충돌하거나, 적어도 지구와 매우 가까운 곳을 지날 것이다. 

    “지진, 화산 폭발, 싸이클론, 쓰나미, 홍수, 그리고 대기 온도 상승 등 그 여파는 우리의 예측 수준을 벗어납니다"라고 위대한 수학자는 예언하였다. 

     

    천상에서는 그의 예언을 실행하기 위해 차갑고 창백하게 빛나는 외로운 별이 종말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눈이 아파올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많은 이들은 별이 다가오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그날 밤부터 기후 변화로 날이 풀려 중 유럽과 프랑스, 영국을 뒤덮었던 서리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밤새 기도를 하는 사람들과 배로 달려가는 사람들, 고산지대로 도망치는 사람들을 묘사했다고 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그 별에 대한 공포로 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서는 안된다. 사실은 여전히 의심과 부정이 다수를 이루는 세상이었고, 잠시 잡담을 나누거나 밤 경치를 감상할 때를 제외하고 열에 아홉은 원래대로 자신의 바쁜 일상을 살고 있었다. 도시의 가게는 한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평소와 같이 문을 열고 닫았고, 의사와 장의사도 일에 부지런히 임했으며, 공장에는 노동자들이 모여들었고, 군인들은 삽질을 했고, 학생들은 학업을 이어갔고, 사랑꾼들은 서로를 찾아 헤맸으며, 도둑들은 잠복과 도망을 반복했고, 정치인들은 작당모의를 했다. 신문 인쇄소는 밤새도록 기계음을 우렁차게 울리며 돌아갔고, 많은 목사들은 어리석은 혼란 때문에 성스러운 교회 문을 열어둘 생각이 없었다. 언론은 서기 1000년에 (그때에도 종말을 예견한 바가 있었으므로) 배운 교훈을 강조했다. 별은 가스 덩어리일 뿐이었지, 혜성이 아니었다. 그리고 별이 지구와 부딪히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상식은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경멸과 조롱이 섞인 시선으로 종말을 확신하는 이들을 심판하려 했다. 그날 밤 그리니치 표준시로 7시 15분이 되었을 때, 그 별은 목성에 가장 가까워질 예정이었다. 그때가 되면 어떠한 미래가 펼쳐질지 알게 될 것이다. 위대한 수학자의 암울한 예언을 자기 홍보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상식은 약간의 열띤 토론 끝에, 결국 변함없는 확신을 자랑하며 사람들을 잠자리로 이끌었다. 야만과 미개의 짐승들도 이미 새로운 등장에 흥미를 잃고 몇몇 울부짖는 개들을 제외하고는 별에 대한 관심을 버린 채 다시 그들의 일상적인 밤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드디어 유럽의 하늘 위로 별이 떠올랐을 때 별이 전날보다 한 시간 늦기는 했으나 변함없는 크기로 떠오른 것을 확인해서 과학자를 비웃기 위해 잠에 들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위험은 이미 지나갔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그 후 웃음소리는 잦아들었다. 별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섭도록 꾸준한 속도로 점점 커졌고, 자정의 하늘 꼭대기에 가까워졌으며, 빛이 점점 밝아져서 밤이 두 번째 날이 될 정도였다. 만약 구부러진 경로를 가지 않고 지구를 향해 직진했다면, 혹은 목성에 의해 속력을 잃지 않았다면, 지구까지의 거리를 하루 만에 돌파했을 것이다. 그러나 별이 지구까지 다다르는 데에는 총 5일이 걸렸다. 다음날 밤에 그것이 영국인들의 하늘 위로 떴을 즈음에는 달의 삼분의 일 크기까지 커져있었고, 서리는 정말 녹아버렸다. 그것이 미국의 하늘 위로 떴을 때는 이미 달의 크기에 가까워져 있었고, 맨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눈이 부셨으며, 굉장히 뜨거웠다. 그로 인해 뜨거운 바람이 점점 더 거세게 불어왔다. 버지니아 주, 브라질, 그리고 세인트 로렌스 계곡에서는 짙게 깔린 먹구름, 간간히 치는 보랏빛 번개, 그리고 전례 없는 규모로 다가오는 해일 뒤로 별이 때때로 빛을 내비쳤다. 마니토바[각주:4]는 빙하가 녹아 어마어마한 홍수로 덮여버렸다. 지구 곳곳의 산맥에서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했고, 고지대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강물은 거세고 탁했으며, 강물의 상류에는 부서진 나뭇가지와 짐승과 사람의 몸이 함께 떠내려왔다. 강물은 유령같이 희미한 불빛 아래 서서히, 서서히 수위가 높아지더니 드디어 계곡을 떠내려오던 사람과 동물을 뒤로하고 둑을 넘어버렸다. 

     

    아르헨티나와 남태평양 해변에서는 인류가 기록한 역사상 가장 높은 파도가 밀려왔고, 폭풍으로 바닷물이 내륙 수십 킬로미터까지 들어와 도시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또 밤 사이 기온이 너무 올라가서 태양이 뜨는 것이 그늘이 지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아메리카 대륙의 북극권에서부터 최남단의 케이프 혼까지 지진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점점 강해지는 지진에 산사태가 일어나고, 지면이 균열하고, 집과 건물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코토팍시[각주:5]의 한쪽 산맥 전체가 무너져 내리며 하나의 거대한 천재지변이 되었으며, 끓어오르는 용암은 빠른 속도로 높고 거대하게 분출되어 하루 만에 바다까지 도달했다. 

     

    별은 눈부신 빛으로 달을 가려버리며 태평양을 향해 전진해왔고, 오는 길에 폭풍우가 옷자락처럼 휘날리며 따라왔으며 점점 커지는 파도는 의욕적으로 거품을 내뿜으며 힘차게 섬 위로 퍼부어 섬에 살던 사람들을 쓸어 가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과 용암과 같은 뜨거운 공기를 내뿜으며, 빠르고 끔찍한 모습으로) 파도가 왔다. 50피트가 넘는 높이를 자랑하는 파도는 굶주림에 울부짖었고, 아시아 해변으로 들이닥친 물의 벽은 중국의 평야로 밀려들었다. 이제 태양보다 크고 뜨겁고 밝아진 별은, 붐비는 드넓은 대지 위로 자비 없는 빛을 비추었다. 도시와 마을의 절, 나무, 도로, 논과 밭에서는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무력하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낮은 웅성거림과 함께 홍수가 왔다. 그날 밤, 빠르고 하얀 벽과 같은 홍수는 도시를 덮었고 열기로 뜨거워진 팔다리는 땀에 젖은 채 가쁜 숨을 헐떡이며 도망치려 하던 수백만의 사람들도 함께 쓸어갔다.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중국은 새하얀 빛으로 밝혀졌지만, 일본과 자바, 그리고 동아시아의 섬들은 거대한 별의 도착을 환영이라도 하듯 화산에서 분출되는 연기와 재가 하늘을 뒤덮는 바람에 짙은 붉은색의 불덩이로 보였다. 위쪽에서는 용암과 뜨거운 가스와 재가, 아래쪽에서는 끓어오르는 홍수가 일었고, 지구 전체가 지진의 충격으로 흔들리고 덜컹거렸다. 그 후에는 티베트와 히말라야에 태고적부터 쌓여있던 눈이 녹아내려 수억 개의 물길이 되어 버마와 힌도스탄의 평원으로 흘러내렸다. 인도 정글의 정상점들은 뒤엉킨 모습으로 수천 곳에서 불타 오고 있었고, 그 아래 뿌리 사이로 빠르게 흐르는 물 위에 꺼져가는 불꽃이 검붉게 타오른 잔재로 남아 새까맣게 떨어져 내렸다. 혼란스러운 난국에서 수천만의 사람들은 넓어진 강을 따라 마지막 희망이 있는 곳, 바다를 향해 도망쳤다. 

     

    별은 이제 무시무시한 속도로 커지고, 뜨거워지고, 밝아지고 있었다. 열대의 바다는 푸른빛을 잃었고, 끊임없이 치는 검은 파도에서는 증기가 유령 같은 모습으로 소용돌이치며 올라왔으며, 군데군데 폭풍에 난파된 배들을 볼 수 있었다.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 유럽에서 떠오르는 별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지구가 자전을 멈춘 것 같다고 느꼈다. 홍수와 무너지는 집과 산사태로부터 도망쳐 고지대와 저지대에 위치한 수천 개의 공터에 대피해있던 사람들은 떠오르는 별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시간은 끔찍한 긴장감 속에서 흘렀고, 별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알던 별자리들이 다시 나타난 것을 보았다. 영국에서는 땅이 계속해서 떨리긴 했지만 하늘은 뜨겁고 맑았으며, 열대지방에서는 시리우스, 카펠라, 그리고 알데바란이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열 시간 정도 늦게 거대한 별이 떠올랐을 때에는 태양도 가까이 붙어서 함께 떠올랐고 그 하얀 몸통의 한가운데에 검은색 동그라미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시아의 하늘에서는 별의 움직임이 천체의 움직임에 뒤쳐지기 시작했고, 인도 위를 지날 때에는 갑자기 빛이 가려졌다. 인도의 평야는 인두스강의 하구에서 갠지스강의 하구까지 얕은 물로 차 있었고, 그 위로 절과 궁전, 둑과 언덕, 그리고 사람들이 서 있었다. 뾰족탑마다 무리지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열기와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은 한 명씩 탁한 물속으로 떨어져 갔다. 나라 전체가 울부짖는듯한 상황에서, 갑자기 그림자가 그 절망의 불구덩이를 뒤덮더니, 식어가는 공기 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고 구름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강한 빛에 앞을 거의 보지 못하는 상태로 별을 보려 애썼고, 검은색 원이 빛 사이를 천천히 가르는 것을 보았다. 바로 별과 지구 사이를 지나는 달이었다. 이 잠깐의 유예에 사람들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동쪽에서 설명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태양이 솟아올랐다. 그렇게 별과 해와 달은 함께 빠른 속도로 천체를 가로질렀다. 

     

    이제 유럽인들은 별과 태양이 가까이 붙어 떠오르다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가 점점 속도를 늦추어 마침내 멈추며, 하늘 꼭대기에서 하나의 불꽃 덩어리가 되어 불타오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달은 더 이상 별을 가리지 않았고 오히려 별의 빛에 가려 숨어버렸다. 겨우 목숨을 건진 이들은 배고픔과 피로, 열기와 절망이 뒤섞여 멍한 상태로 하늘을 보면서도, 몇몇은 그 광경의 의미를 이해한 듯했다. 별과 지구는 가까이 다가갔었고 서로에게 일격을 가했지만, 별은 지나간 것이었다. 별은 벌써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며, 태양을 향한 여정의 끝을 달렸다. 

     

    그 후 구름이 모여들어 하늘을 가렸고, 천둥과 번개가 온 세상을 촘촘한 이불처럼 뒤덮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세찬 비가 지구 모든 곳에 내렸고, 구름을 향해 화산이 붉게 타오르던 곳은 떨어진 진흙으로 뒤덮였다. 물은 내륙에서 흘러내려 진흙투성이 잔해를 남겼고, 지구는 떠 있던 모든 것, 사람과 동물과 그들의 자식의 시체가 떠내려오는 바람에 폭풍우가 지나간 해변 같았다. 이어진 며칠간 내륙에서는 계속해서 물이 흘러내려 흙과 나무와 집을 쓸어내리고 제방을 쌓고 거대한 계곡을 파냈다. 별과 열기가 지나가자 며칠간 어둠이 계속되었다. 그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도 몇 주 몇 달간, 지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별은 지나갔고, 배고픔과 서서히 되찾은 용기를 연료 삼아 일어난 사람들은 폐허가 된 도시, 땅에 휩쓸린 곡창, 물난리가 난 밭으로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폭풍우를 피한 소수의 배들은 부서지고 망가진 상태로 항구의 흔적이 남은 곳으로 돌아왔다. 폭풍이 가라앉자 전보다 날이 더워졌고 태양은 커졌으며 삼분의 일 크기로 줄어든 달은 한 주기를 도는데 80일이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 사람들 사이에 자라난 형재애와, 법과 책과 기계를 지키기 위해 해야했던 노력과,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그리고 배핀만의 해변에 일어난 이상기후로 인해 그곳을 방문한 선원들이 초록과 풍요로 변한 땅을 보고 놀라 보고도 믿기 어려워한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겠다. 혹은 인류의 대이동과, 북극과 남극이 열대기후가 된 지구에 대해서도 묘사하지 않겠다. 이 이야기는 오직 별이 왔다가 떠나간 것에 대한 것이다. 

     

    화성의 천체학자들은 (화성에도 천체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과는 매우 다른 종족들이긴 하지만) 물론 이러한 일에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의 태양계를 지나 태양을 향하던 그 미사일의 크기와 온도를 고려하면, 그것이 지구에 얼마나 작은 손상을 끼쳤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것은 지구를 겨우 피해갔고, 지구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대륙과 바다는 익숙한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유일한 차이는 양쪽 극점에 줄어든 흰색(언 상태의 물로 알려져있다) 부분이다.” 

    인류에게 닥친 최악의 참사도 수백만 마일 뒤에서 바라보면 얼마나 사소해 보이는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1. Ogilvy. 작가의 다른 소설 War of the Worlds에 등장했던 천문학자로, 팬덤을 가지고 있다. http://waroftheworlds.wikia.com/wiki/Ogvily_the_Astronomer [본문으로]
    2. Regulus. 사자자리(Leo)에 있는 1등성. [본문으로]
    3. Pollux. 쌍둥이자리(Gemini)의 1등성. [본문으로]
    4. Manitoba. 캐나다 중부의 주. [본문으로]
    5. Cotopaxi. 남미 에콰도르 중앙부, Andes산맥 중의 화산; 세계 최고의 활화산(5,897m).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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