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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피리 부는 이들, 필립 K. 딕, Piper in the Woods, Philip K. Dick, 1953옮긴 글/숲 속의 피리 부는 이들, 필립 K. 딕 2019. 4. 18. 18:35
원문링크: http://www.gutenberg.org/files/32832/32832-h/32832-h.htm
“그러니까, 웨스터버그 하사관, 본인이 왜 식물이라고 생각하죠?” 헨리 해리스 박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말하며 책상 위에 놓인 카드를 힐끗 보았다. 기지의 지휘관 콕스의 묵직한 글씨체로 휘갈긴 내용은: 선생님, 이 친구가 제가 얘기한 친구입니다. 진료해서 대체 왜 이런 망상을 하는지 알아내 주세요. 그는 Y-3 혹성의 새로운 점검용 정거장의 수비대에서 왔는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면 안 되거든요. 특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해리스는 카드를 밀어놓고 책상 맞은편에 앉은 젊은이를 올려다보았다. 청년은 불편해 보였고 해리스가 물은 질문을 피하는 것 같았다. 해리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웨스터 버그는 멀끔한 청년이었다. 순찰복을 입고 금발 머리로 한쪽 눈을 가린 모습은 사실 꽤 잘생긴 편이었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에, 건강한 체구, 카드에 따르면 훈련소에서 나온 지 이 년밖에 되지 않았다. 디트로이트 태생. 9살에 홍역을 앓았음. 관심사는 제트 엔진, 테니스, 여성. 26세.
“그러니까, 웨스터버그 하사관. 본인이 왜 식물이라고 생각하죠?” 해리스 박사가 다시 물었다.
하사는 수줍은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그는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선생님, 저는 식물이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식물이 된 지 며칠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언제나 식물이었던 건 아니군요?”
“아닙니다. 최근에 식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식물이 되기 전에는 무엇이었나요?”
“그야, 선생님, 다른 이들과 똑같았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해리스 박사는 펜을 들고 몇 줄 끄적여보았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식물이라고? 이렇게 건강해 보이는 청년이! 해리스는 금속테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는 다시 안경을 쓰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하사관, 담배 피워요?”
“괜찮습니다, 선생님.”
박사는 담배에 불을 붙인 뒤, 팔을 의자 끝에 기댔다. “하사관, 사람이 식물이 되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특히나 그렇게 단기간에. 솔직히 말하면, 내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네, 선생님, 드물다는 걸 압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째서 흥미를 가지는지 이해하겠군요. 식물이라고 하면, 이동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동물의 반대인 개념으로서의 식물이라는 건가요? 아니면 뭔가요?”
하사는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가 중얼거렸다.
“그러면, 어떻게 식물이 되었는지는 알려줄 수 있나요?”
웨스터버그 하사는 머뭇거렸다. 그는 바닥을 노려보다가, 우주선 기지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책상 위의 파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천천히 일어서며 말했다. “그것도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선생님.” 그가 말했다.
“안된다고요? 왜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요.”
방에 정적이 흘렀다. 해리스 박사도 일어나자, 둘은 서로를 마주 보고 서게 되었다. 해리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턱을 비볐다. “하사관, 대체 누구랑 약속을 했다는 건가요?”
“그것도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박사는 이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문을 열어주었다. “알겠어요, 하사관. 이제 가봐도 좋아요.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더 도움을 드릴 수 없어 죄송합니다.” 하사는 천천히 문 밖으로 나갔고 해리스는 그의 뒤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사무실 반대편에 있는 화상전화기 쪽으로 갔다. 그는 콕스 지휘관의 문자를 눌렀다. 잠시 후 기지 지휘관의 두텁고 온화한 얼굴이 나타났다.
“콕스, 해리스예요. 얘기를 나눠 보았어요. 자신이 식물이라는 말 외에는 하지 않는군요. 또 어떤 일이 있었나요? 어떠한 행동 패턴을 보였죠?”
“음, 처음으로 눈치챈 건 그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거였대요. 수비대의 지휘관이 보고하길, 웨스터버그는 수비대 바깥으로 나가서 그냥 하루 종일 앉아있었다는군요. 그냥 앉아있었대요.”
“햇빛을 쬐면서?”
“네. 그냥 햇빛을 쬐면서 앉아있대요. 그리고 저녁이 되면 다시 들어온대요. 제트기 수리 건물 안에서 일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햇살을 받아야 한다고 했대요. 그리고는-“ 콕스는 머뭇거렸다.
“네? 그리고요?”
“그리고는 일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답니다. 시간 낭비라고요. 중요한 건 밖에서 앉아 명상하는 것뿐이라고요.”
“그리고요?”
“그래서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묻자, 그때 자신이 식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대요.”
“그와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겠군요. 그리고 순찰대에 영구 제대 신청을 했다고요? 이유는 뭐라던가요?”
“같은 이유예요, 이제 식물이 되었기 때문에 순찰대원으로 일할 의지가 없대요. 그냥 태양 아래 앉아있고 싶대요. 들어본 중 가장 황당한 이유예요.”
“알겠습니다. 그의 숙소에 가봐야겠네요. 저녁 식사 후에 가볼게요.” 해리스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행운을 빕니다.” 콕스가 우울하게 말했다. “하지만 대체 사람이 식물이 되는 게 말이 되나요? 우리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하자, 우리를 보면서 미소를 짓더군요.”
“어떻게 되는지 알려줄게요.” 해리스가 말했다.
해리스는 천천히 복도를 걸어내려 갔다. 여섯 시가 지났으니,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난 뒤였다. 그의 머릿속에 희미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확신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해 복도 끝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의 옆으로 간호사 두 명이 빠르게 지나갔다. 웨스터버그는 제트기 폭발로 부상을 입어 이제는 거의 회복한 사내와 방을 함께 쓰고 있었다. 해리스는 숙소 구역으로 들어선 뒤 멈추어서 방문에 적힌 번호를 확인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로봇 도우미가 미끄러져 오며 물었다.
“웨스터버그 하사관의 방을 찾고 있어요.”
“오른쪽 세 번째 방입니다.”
해리스는 앞으로 걸어갔다. Y-3은 아주 최근에야 주둔지를 짓고 수비대가 이주한 곳이었다. 바깥 우주에서 행성계로 들어오는 우주선을 정박하고 검사하는 가장 주요한 체크포인트였다. 수비대는 위험한 박테리아, 곰팡이 등이 행성계로 들어와서 감염이 생기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환경이 좋은 혹성이었다. 따뜻하고, 수분이 많고, 나무와 호수와 햇살이 가득했다. 아홉 개 행성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수비대였다. 그는 세 번째 문에 다다르며 고개를 저었다. 문 앞에 멈춰 서서 손을 들어 올려 두드렸다.
“누구세요?” 안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웨스터버그 하사관을 만나러 왔어요.”
문이 열렸다. 뿔테 안경을 쓴 느릿한 청년이 손에 책을 들고 나왔다. “누구시죠?”
“해리스 박사예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웨스터버그 하사관은 자고 있습니다.”
“깨워도 될까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해리스는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책상, 카펫, 조명, 그리고 침대 두 개가 있는 깔끔한 방이 보였다. 한쪽 침대에는 웨스터버그가 위쪽을 보고 팔을 가슴 위로 접은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깨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느릿한 청년이 말했다.
“깨울 수가 없어요? 왜?”
“선생님, 웨스터버그 하사관은 해가 진 이후로는 깨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안 깨어납니다. 깨울 수가 없어요.”
“강직증인가요? 정말?”
“하지만 아침에는 해가 뜨자마자 침대에서 뛰쳐나가 밖으로 갑니다. 밖에서 하루 종일 있어요.”
“그렇군요. 어쨌든 고마워요.” 박사가 말했다. 그는 복도로 나가 문을 닫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복잡하군.”그가 중얼거렸다. 그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나갔다.
따뜻하고 화창한 날이었다. 하늘은 구름 없이 맑았고 시냇물을 따라 난 삼나무 사이로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병원 건물에서 시냇물이 흐르는 언덕까지 가는 길이 있었다. 시냇물 위로는 반대쪽으로 건너가는 작은 다리가 있었고, 목욕가운을 입은 몇몇 환자들이 그 위에 서서 흐르는 물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해리스가 웨스터버그를 찾는 데만 몇 분이 걸렸다. 청년은 다른 환자들처럼 다리 근처에 있지 않았다. 그는 더 아래쪽, 삼나무를 지나 양귀비와 잔디가 무작위로 자라난 햇살이 밝은 목초지에 있었다. 그는 시내의 둑, 납작한 회색 돌 위에 앉아 뒤로 기댄 채 입을 살짝 벌리고 위를 보고 있었다. 그는 해리스가 아주 가까지 다가갈 때까지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해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웨스터버그는 눈을 뜨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체구를 생각하면 놀랍도록 우아하고 흐르는 듯한 동작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여기에는 어쩐 일로 오셨나요?”
“아무것도요. 그냥 햇살을 쬐러 왔어요.”
“여기, 제 돌에 같이 앉으세요.” 웨스터버그가 옆으로 움직여 자리를 내어주자 해리스는 바위의 뾰족한 끝에 바지를 긁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앉았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말없이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서 웨스터버그는 뒤로 기대 손을 얹고 눈을 꼭 감은 채 위를 바라보는 이상한 자세를 다시 취했다.
“날이 좋네요.” 의사가 말했다.
“네.”
“여기는 매일 와요?”
“네.”
“안보다 밖이 좋은가 봐요.”
“안에 있으면 안 되거든요.” 웨스터버그가 말했다.
“안돼요? 안된다니, 무슨 뜻이에요?”
“선생님은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지 않습니까?” 하사가 말했다.
“그리고 하사관은 햇살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건가요?”
웨스터버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사관,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앞으로 평생을 이렇게 살 계획인가요, 납작한 돌 위에서 햇살을 쬐며?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웨스터버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장은요? 순찰대원이 되려고 학교를 몇 년이나 다녔잖아요. 순찰대에 굉장히 들어가고 싶어 했잖아요. 점수도 잘 받고 좋은 직무를 받았어요. 그걸 다 포기하는 기분이 어때요? 다시 돌아오기 힘들 거예요. 알고 있나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포기하려고요?”
“그렇습니다.”
해리스는 잠시 말문을 잃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그는 담뱃불을 끄고 청년을 보았다. “좋아요, 하사관이 직장을 포기하고 태양 아래 앉아있기로 한다고 치죠. 그러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나요? 누군가 하사관의 일을 대신해야 할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일은 해야 해요, 하사관의 일도 누군가 해야 하죠. 하사관이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할 거예요.”
“그렇겠네요.”
“웨스터 버그, 모두가 당신처럼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모두가 태양 아래 앉아있기만을 원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누구도 우주에서 들어오는 우주선을 정비하지 않을 거예요. 박테리아와 유해한 광물이 행성계로 들어와서 집단 죽음과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거예요. 그렇지 않은가요?”
“모두가 저처럼 생각한다면 아무도 우주에 나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나가야 하잖아요. 무역도 해야 하고, 광물도 캐고 새로운 제품과 식물을 들여와야 해요.”
“왜요?”
“사회를 지속하기 위해서요.”
“왜요?”
“그건-“ 해리스는 손짓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사회 없이 존속할 수 없으니까요.”
웨스터버그는 이에 답하지 않았다. 해리스가 그를 바라보았지만, 청년은 답이 없었다.
“그렇지 않나요?” 해리스가 말했다.
“그럴지도요. 이상한 일입니다, 선생님. 저는 훈련을 마치기 위해 수년간 고생했습니다. 수업료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설거지, 주방일. 저녁에는 공부하고, 배우고, 외우고, 계속해서 일하고 또 일했죠. 그리고 지금은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아십니까?
“무슨 생각이요?”
“진작에 식물이 되었다면 좋았을걸 합니다.”
해리스 선생은 일어섰다. “웨스터버그, 안으로 돌아오면 내 사무실에 들러주겠어요? 괜찮다면 테스트 몇 가지를 해보고 싶군요.”
“충격 상자요? 예상했습니다. 네, 괜찮습니다.” 웨스터버그는 미소를 지었다.
해리스는 기분이 언짢아진 채 바위를 떠나 짧은 둑을 건너갔다. “하사관, 세 시쯤 괜찮아요?”
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스는 언덕을 오르고 길을 따라 다시 병원 건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었다. 평생을 고생한 청년. 경제적 불안정. 순찰대에 취직한다는, 이상화된 목표. 드디어 도달해보니 너무 벅찬 것이다. 게다가 Y-3 혹성에는 하루 종일 눈에 들어오는 녹색 식물이 너무나도 많았다. 혹성의 식물상에 원초적 동일시와 투영을 하게 된 것이다. 부동성과 영구성은 안정성에 대한 개념으로 읽혔을 것이다. 변치 않는 숲이라는 가치.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당직 로봇이 바로 그를 멈춰 세웠다. “선생님, 콕스 지휘관이 화상 전화로 급하게 찾습니다.”
“고마워요.” 해리스는 급히 사무실로 향했다. 콕스의 문자를 누르자 지휘관의 얼굴에 초점이 맞춰졌다.
“콕스? 해리스예요. 밖에서 그 청년과 이야기 중이었어요.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네요. 패턴이 보여요,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거예요. 그러다 마침내 원하는 것을 갖게 되자 이상화했던 것이 무너지면서-“
“해리스!” 콕스가 소리쳤다. “조용히 하고 내 말 먼저 들어요. Y-3에서 방금 보고가 들어왔어요. 이 쪽으로 급행 로켓을 보낼 거예요. 지금 오는 중이에요.”
“급행 로켓요?”
“웨스터버그 같은 케이스가 다섯 명이나 더 발생했대요. 다들 자기가 식물이라고 하고 있어요! 수비대 지휘관은 걱정이 되어 죽으려 해요. 어서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면 수비대는 무너져버릴 거예요. 내 말 알아들었어요, 해리스? 이게 무슨 일인지 알아내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지휘관님. 알겠습니다.” 해리스가 중얼거렸다.
일주일이 끝날 즈음에는 환자가 스무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물론, 모두 Y-3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콕스 지휘관과 해리스 박사는 언덕 꼭대기에 우울한 얼굴로 서서 시냇물을 내려다보았다. 열여섯 명의 남자와 네 명의 여자가 움직임도, 말도 없이 둑에 앉아 있었다. 콕스와 해리스가 온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거기 앉은 스무 명의 사람들은 미동도 없었다.
“이해가 안 가요.” 콕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해리스, 이건 종말의 시작인가요? 이렇게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건가요? 저렇게 햇살 아래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그냥 앉아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니.”
“저 붉은 머리의 사내는 누구죠?”
“울리치 도이치예요. 수비대에서 서열 두 번째였죠. 하지만 지금 모습을 봐요! 입은 벌리고 눈은 감은 채 앉아서 졸고 있어요. 일주일 전만 해도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 수비대의 지휘관이 퇴직하면 그 자리에 올라갈 예정이었어요. 길어봤자 일 년이었죠. 평생을 그 자리를 위해 노력해온 사람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햇살을 쬐고 있군요.” 해리스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저 여자. 짧은 갈색 머리. 성공적인 커리어 여성이에요. 수비대의 사무직 중 최고 책임자였죠. 그리고 그 옆의 남자. 청소부죠. 그리고 저기 풍만한 스타일의 귀여운 여자. 갓 졸업하고 온 비서예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다 있어요. 그리고 아침에 연락받기를, 오늘 중으로 세 명이 더 올 거래요.”
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건- 저들이 진심으로 저기 앉아있는 길 원한다는 거예요. 완전히 이성적이에요. 다른 일을 할 수 있지만, 할 마음이 없을 뿐이에요.”
“그래서요? 어떻게 할 건가요? 뭔가 알아낸 게 있나요? 당신만 믿고 있어요. 어디 들어봅시다.” 콕스가 말했다.
“직접 대화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어요. 하지만 충격 상자를 쓰자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죠. 안으로 들어가서 보여드릴게요.”해리스가 말했다.
“좋아요.” 콕스는 몸을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뭐든지 나온 게 있다면 보여주세요.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예요. 고위직까지 기독교가 퍼졌을 때 티베리우스(Tiberius, 제2대 로마 황제)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해가 간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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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는 조명을 껐다. 방이 완전한 암흑이 되었다. “첫 번째 릴을 보여드리죠. 대상자는 수비대에 배치된 최고의 생물학자 중 하나예요. 이름은 로버트 브래드쇼. 어제 들어왔어요. 브래드쇼의 정신이 굉장히 우수한 쪽으로 특징적이기 때문에 충격 상자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비이성적인 부분이 많이 억눌려있었거든요.”
그가 버튼을 눌렀다. 프로젝트가 웅웅 소리를 내며 켜지자, 반대쪽 벽에 밝은 색상의 3D 이미지가 나타났다. 너무나 진짜 같아서 그 사람이 실제로 거기 있는 것 같았다. 로버트 브래드쇼는 덩치가 크고, 진회색 머리에 사각턱을 가진 50대 남성이었다. 그는 손을 팔 위에 포개고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목과 손목에 붙인 전극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기 제가 다가갑니다. 보세요.” 해리스가 말했다.
그가 영상-이미지에 나타나서 브래드쇼에게 다가갔다. “자, 브래드쇼 씨, 이건 당신을 전혀 아프게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거고요.” 그의 이미지가 말했다. 이미지는 충격 상자의 제어장치를 돌렸다. 브래드쇼는 몸이 경직되고, 다문 턱에 힘이 들어갔지만, 그 외에는 변화가 없었다. 해리스의 이미지는 그를 잠시 관찰하다가 제어장치에서 한 발짝 떨어졌다.
“내 말이 들립니까, 브래드쇼 씨?” 이미지가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입니까?”
“로버트 C. 브래드쇼입니다.”
“직책은 무엇입니까?”
“Y-3의 기지의 헤드 생물학자입니다.”
“지금 거기에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테라(Terra, 지구)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에 있습니다.”
“왜죠?”
“수비대의 지휘관에게 제가 식물이 되었음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사실인가요? 당신이 식물이라는 건.”
“네, 비 생물학적인 방식으로 사실입니다. 물론 인간의 형체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식물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행동학적 반응이자, 세계관(Weltanschauung)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부언해주세요.”
“온혈 동물, 영장류가 어느 정도 선까지 식물의 심리 상태를 채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요?”
“저는 여기 해당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요? 그들도 그에 해당하나요?”
“그렇습니다.”
브래드쇼의 이미지가 입술을 비틀며 머뭇거렸다. “보이시죠?” 해리스가 콕스에게 말했다. “강하게 갈등하는 모습이에요. 완전히 깬 상태라면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네?”
“저는 식물이 되라고 배웠습니다.”
해리스의 이미지가 놀람과 흥미의 감정을 드러냈다. “무슨 말이에요, 식물이 되라고 배웠다는 게?”
“그들은 제 문제를 알고는 식물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제 저는 자유롭습니다, 제 문제들로부터.”
“누가? 누가 가르쳤어요?”
“피리 부는 이들이요.”
“누구? 피리 부는 이들? 피리 부는 이들이 누구예요?”
답이 없었다.
“브래드쇼 씨, 피리 부는 이들이 누군가요?”
길고 고통스러운 침묵 끝에 무겁게 닫힌 입술이 열렸다. “그들은 숲 속에 살아요...”
해리스는 프로젝터를 끄고 불을 켰다. 그와 콕스는 눈을 깜박였다. “거기까지가 답니다.”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이만큼 알아낸 것도 운이 좋았어요. 무엇도 말하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그들이 말하지 않도록 약속하게 한 게 바로 그거였어요, 누가 식물이 되라고 가르쳐 주었는지 말이에요. Y-3 혹성의 숲 속에 사는 피리 부는 이들이 말이에요.”
“스무 명 모두에게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나요?”
“아니요. 대부분은 심하게 거부해요. 이 정도도 캐내지 못했어요.” 해리는 얼굴을 찌푸렸다.
콕스는 생각에 잠겼다. “피리 부는 이들. 그래서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모든 이야기를 알아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건가요? 그게 계획이에요?”
“아니요. 전혀. Y-3에 직접 가서 피리 부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낼 거예요.” 해리스가 말했다.
작은 순찰용 우주선은 조심스럽고 정확하게 착륙했다. 우주선의 제트 엔진이 콜록거리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조용해졌다. 승강구가 미끄러지며 열리자 헨리 해리스 박사는 햇볕에 그을린 갈색 비행장 한가운데 착륙한 자신을 발견했다. 비행장의 끝에는 높은 신호 탑이 있었다. 비행장을 둘러 긴 회색 건물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순찰대의 점검용 정거장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금성의 순항선이 주차해 있었다. 광대한 초록색의 선체가 거대한 라임 같았다. 정거장의 기술자들이 달라붙어서 선체에 붙어있을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생물체나 독을 찾고 확인하기 위해 구석구석 꼼꼼하게 보고 있었다.
“하차하세요, 선생님.” 조종사가 말했다.
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슈트케이스 두 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발아래 땅은 뜨거웠고, 눈부신 햇살에 눈을 깜박였다. 하늘에 목성이 떠 있어서, 거대한 행성으로부터 상당한 빛이 혹성 쪽으로 반사되어 왔다.
해리스는 슈트케이스를 들고 비행장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비행장의 종업원은 벌써 순찰선의 짐칸을 열어 그의 가방을 꺼내고 있었다. 종업원은 그의 뒤를 따라온 수레에 가방을 내리고는, 작은 수레를 익숙함에서 오는 지루한 동작으로 조작했다.
해리스가 신호 탑 입구에 다다르자 게이트가 미끄러져 열리며 한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크고 건장한, 흰머리와 곧은 걸음걸이의 나이 지긋한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순찰대의 지휘관 로렌스 와츠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둘은 악수를 나눴다. 와츠는 미소를 지으며 해리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거구의 장년이었다. 양 어깨에 금색 견장을 반짝이며 짙은 남색의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여전히 당당하고 곧아 보였다.
“오는 길은 편안했나요?” 와츠가 물었다. “안으로 들어와서 음료 한 잔 하세요. 저 큰 거울 때문에 굉장히 더워지곤 하거든요.”
“목성 말씀이세요?” 해리스는 그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신호 탑의 내부는 시원하고 어두워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중력이 테라와 왜 이렇게 비슷하죠? 캥거루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니게 될 줄 알았어요. 인공인가요?”
“아니요. 혹성의 중앙에 초고밀도의 핵이 있어요, 금속의 침적물 같은. 그래서 다른 곳을 제쳐두고 이 혹성을 선택한 것이기도 하고요. 건설이 훨씬 쉬워지기도 하고, 혹성에 공기와 물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언덕은 보셨나요?”
“언덕이요?”
“신호 탑의 위쪽으로 올라가면 건물들 전체가 내려다보일 거예요. 자연이 만든 근사한 공원이 있어요. 평범한 작은 숲이죠, 웬만한 건 다 갖춘. 이쪽으로 와요, 해리스. 제 사무실이에요.” 노인은 빠른 걸음걸이로 코너를 돌아 크고 잘 갖추어진 아파트로 들어갔다. “썩 괜찮죠? 이 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를 최대한 안락하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물론, 도이치가 그렇게 가버리고 나니, 여기에 영원히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런.” 그는 어깨를 들썩했다. “여기 앉으세요, 해리스.”
“고맙습니다.” 해리스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뻗었다. 그는 와츠가 복도로 난 문을 닫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새로운 환자가 또 나왔나요?”
“오늘만 두 명이요. 이제 거의 서른 명이 되어가요. 여기 정류장에 총 삼백 명이 있으니까, 이 속도면-“ 와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휘관님, 혹성에 숲이 있다고 하셨죠. 선원들이 원하면 숲도 출입이 가능한가요? 아니면 건물과 부지에만 머물도록 통제하나요?”
와츠는 턱을 비볐다. “글쎄요, 사실 조금 난처한 상황이에요, 해리스. 가끔씩은 부지를 떠날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건물에서 숲이 바로 보이는데, 나가서 쉴 수 있는 멋진 장소가 보이면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거든요. 열흘에 하루는 쉬는 날이에요. 다들 나가서 마음껏 즐기죠.”
“그러고 나서 그 일이 벌어지는 거죠?”
“네,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숲이 보이면 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에요.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이해합니다. 지휘관님을 문책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숲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사람들은 뭘 하나요?”
“무슨 일이 일어나냐고요? 저기 나가서 잠시 쉬면 다시 돌아와서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거죠. 쓸데없는 일에 현혹되는 거예요. 땡땡이치는 거죠. 일을 하기 싫으니까, 나가는 거예요.”
“그럼 그들이 가진 망상은요?”
와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봐요 해리스. 전부 허튼소리라는 건 당신도 나도 알잖아요. 나나 당신만큼 저들도 식물이 아니에요. 그저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죠. 제가 사관생이었을 때는 사람들을 일하게 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었어요. 예전처럼 매질이 허락되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그러면 그저 게으름 피우는 거라고 생각하신다는 거죠?”
“그렇지 않나요?”
“네. 저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식물이라고 믿고 있어요. 고주파수의 충격 요법을 써봤어요, 충격 상자라고 부르는데, 신경계 전체가 마비되고 모든 억제 요소가 사라져요. 그러면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게 되죠. 모두가 같은 이야기, 그 이상을 말해요.”
와츠는 뒷짐을 지고 방을 걷기 시작했다.
“해리스, 당신이 의사니까 더 잘 알겠죠. 하지만 이 상황을 보세요. 여기는 순찰대예요, 아주 좋은 최신식의 순찰대요. 아마 전체 행성계에서 가장 최첨단일 거예요. 과학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새로운 기기와 도구가 여기에 있어요. 해리스, 순찰대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나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은 기계의 부품이고, 각자의 역할이 있어요. 유지보수팀, 생물학자들, 사무직들, 관리팀.
한 명이 자기 맡은 바 임무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세요. 모든 것이 삐걱대기 시작해요.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없으면 문제를 다룰 수도 없어요. 보고서를 쓰고 재고를 확인하는 사람이 없으면 직원들을 위한 음식을 주문할 수 없어요. 부지휘관이 나가서 하루 종일 햇살을 쬐고 있으면 아무 일도 지휘할 수가 없어요.
서른 명이면 순찰대의 십 분의 일이에요. 하지만 그들이 없으면 이 곳은 돌아가지 않아요. 순찰대는 그렇게 짜여 있어요. 몇몇 부속을 빼면 건물 전체가 무너지죠. 누구도 떠날 수 없어요. 우리는 모두 여기 속해있고, 다들 그걸 잘 알고 있죠. 그렇게 맘대로 떠나버릴 권리는 없다는 걸 다들 알아요. 더 이상 누구도 그런 권리는 없죠. 우리는 각자 제멋대로 행동하기에는 서로서로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대다수인 나머지에게 불공평한 일이에요.”
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휘관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뭔가요?”
“혹성에 거주자들이 있나요? 원주민이요?”
“원주민이요?” 와츠가 고민했다. “네, 저쪽에 토착민들이 살고 있을걸요.” 그는 창 밖으로 모호하게 손짓했다.
“어떤 사람들인가요? 본 적이 있나요?”
“네, 봤어요. 적어도, 처음에 여기를 왔을 때는 봤었죠. 얼마간 주변에서 머물면서 우리를 관찰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사라졌어요.”
“죽은 건가요? 질병 같은 걸로?”
“아뇨. 그냥- 그냥 사라졌어요. 숲 속으로. 어딘가에 아직 있을 거예요.”
“어떤 사람들이죠?”
“글쎄요, 원래는 화성에서 왔다고 하던데. 하지만 화성인처럼 생기지 않았어요. 피부색이 어두워요, 약간 구릿빛처럼. 가늘고. 그들 방식으로 굉장히 날렵하죠. 수렵과 낚시를 해요. 문자는 없고요. 그들에게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그랬군요.” 해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지휘관님, 피리 부는 이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나요?”
“피리 부는 이들? 아뇨. 왜요?” 와츠가 얼굴을 찌푸렸다.
“환자들이 피리 부는 이들을 언급했거든요. 브래드쇼의 말에 의하면, 피리 부는 이들이 그에게 식물이 되라고 가르쳤대요. 그들에게서 배웠대요, 어떤 깨달음 같은 건가 봐요.”
“피리 부는 이들. 어디에 있나요?”
“아직 모릅니다.” 해리스가 대답했다. “지휘관님이 혹시 아실까 했어요. 첫 번째 가정은 원주민이라는 거였죠. 하지만 방금 묘사한 것을 들으니 확신이 없어지는군요.”
“원주민들은 아주 원시적인 미개인들이에요. 그들은 가르침을 줄 게 없어요, 특히나 일류 생물학자에게는.”
해리스는 머뭇거렸다. “지휘관님, 제가 직접 숲으로 가서 조사를 해볼까 하는데요.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준비를 도와드릴게요. 사람 한 명을 붙여서 길을 안내하도록 하죠.”
“혼자가 나을 것 같아요. 위험한가요?”
“아니요, 제가 알기로는 괜찮아요. 그저-”
“그저 피리 부는 이들이 있다는 거죠.” 해리스가 대신 답했다. “압니다. 어쨌든, 그들을 찾을 방법은 하나뿐이죠, 직접 가는 것. 위험을 무릅써 봐야죠.”
“한 방향으로 계속 걸으면 여섯 시간 정도면 다시 순찰대로 돌아올 거예요. 아주 작은 혹성이에요. 시내와 호수가 간간히 있으니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고요.” 와츠 지휘관이 말했다.
“뱀이나 독이 있는 곤충은요?”
“그런 건 보고된 바 없어요. 처음에는 풀을 많이 밟고 다녔는데, 지금은 원래대로 다시 다 자라났어요. 위험한 생물체랑 마주친 적은 없어요.”
“고맙습니다, 지휘관님.” 해리스가 말했다. 둘은 악수를 나눴다. “해 떨어지기 전에 다시 뵙죠.”
“행운을 빌어요.” 지휘관과 무장한 두 명의 수행원은 뒤를 돌아 언덕을 건너 수비대를 향해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해리스는 그들이 건물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무가 무성한 작은 숲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가 걸어가는 길 주변의 숲은 굉장히 고요했다. 그의 양 옆으로 나무가 높이 치솟아 있었다. 유칼리툽스와 유사한 짙은 녹색의 커다란 나무였다. 발아래 땅은 바닥으로 떨어진 뒤 다시 흙으로 분해된 수많은 나뭇잎들로 푹신했다. 시간이 지나자 키 큰 나무의 숲은 지나가고 태양 아래 잔디와 잡초가 갈색으로 타버린 건조한 초원을 지나고 있었다. 마른 잡초더미에서 나온 곤충들이 그의 주변에서 웅웅거렸다. 무언가가 그의 앞에서 덤불 사이로 재빠르게 종종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는 더듬이를 흔들며 미친 듯이 허둥지둥 도망가는 다리 많은 회색의 둥근 물체를 보았다.
초원의 끝에서 언덕이 시작되었다. 그는 이제 점점 위로, 더 위로 올라갔다. 그의 앞에는 끝이 없는 녹색, 드넓은 야생 식물의 밭이 펼쳐졌다.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마침내 정상에 올라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나아갔다. 이제는 깊은 협곡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나무만큼 크게 자란 고사리류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그는 살아있는 쥐라기 공원, 끝없이 펼쳐진 고사리의 밭으로 입장하는 중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주변 공기가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협곡의 바닥은 축축하고 조용했다. 발아래 흙은 거의 젖어 있었다.
그러다가 평평한 평지로 나왔다. 사방에서 자라는 고사리, 빽빽하고 조용하고 움직임이 없는 고사리로 주변이 어두컴컴했다. 그는 오래된 시냇길로 보이는 길을 발견했다. 거칠고 돌이 많았지만 따라가기 쉬웠다. 공기는 두텁고 답답했다. 고사리들 뒤로 다음 언덕, 상승하는 녹색의 초원이 보였다.
회색의 무언가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돌멩이, 층층이 쌓인 바위 무덤이 여기저기 흩어지고 쌓여있었다. 시냇길은 바로 그곳으로 이어졌다. 이 곳은 예전에 물웅덩이이자, 시냇물의 시작점이었던 것 같았다. 그는 어정쩡한 자세로 첫 번째 바위더미를 더듬거리며 올랐다. 꼭대기에 오르자 잠시 멈춰 쉬었다.
아직까지는 운이 없었다. 원주민을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피리 부는 이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원주민들은 사람들을 빼앗아 가는 그 신비한 존재들을 만나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원주민을 찾아서 대화를 나눠보면 무언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은 굉장히 고요했다. 옅은 바람이 고사리 사이로 불며 바스락 소리를 냈지만, 그게 전부였다. 원주민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딘가에 터를 잡고 있을 것이다. 빈 터에 오두막 같은 집들을. 혹성은 작았다. 해가 지기 전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바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는 더 많은 바위산이 펼쳐져 있었고 그는 다시 바위산을 올랐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추어 귀를 기울였다. 아주 멀리,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물가에 다가가고 있는 걸까? 그는 소리를 찾으려고 애쓰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바위를 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 말고는 고요함만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쩌면 폭포나, 흐르는 물인지도. 시냇물. 시냇물을 찾는다면 원주민을 찾게 될지도 몰랐다.
바윗길이 끝나고 다시 시냇길이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마른 길이 아니라 바닥이 진흙과 이끼로 덮여있었다.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냇물이 흘렀을 것이다. 어쩌면 우기에. 그는 고사리와 넝쿨을 밀어내며 시내 옆으로 올라갔다. 그의 앞으로 금색 뱀이 유유히 미끄러져갔다. 앞에서 무언가가 빛을 냈다. 고사리 너머에서 뭔가 반짝이고 있었다. 물. 연못. 그는 속도를 내서 넝쿨을 밀어내며 빠져나갔다.
그는 연못의 끝에 서 있었다. 회색 바위산 가운데에 구멍에 깊은 연못이 고사리와 넝쿨에 둘러싸인 모습을 드러냈다. 물은 맑고 투명했고, 흐르다가 폭포로 떨어졌다. 아름다운 모습에 그는 멈추어 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며 손 닿지 않은 모습에 감탄했다.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곳. 아마도 언제나 그랬던 모습 그대로. 혹성의 수명만큼 오랫동안. 그가 제일 처음으로 발견한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연못은 고사리에 뒤덮여 꽤나 깊숙이 숨겨져 있었다. 소유욕과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물 쪽으로 몇 발짝 나아갔다.
그리고 그때 그녀를 보았다.
여자는 연못의 반대쪽에서, 굽힌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물을 보고 있었다. 그는 보자마자 그녀가 목욕을 하고 있었던 걸 알아챘다. 여전히 젖은 그녀의 구리색 몸은 태양 아래 수분을 머금고 반짝였다. 그녀는 아직 그를 보지 못했다. 그는 멈춰서, 숨을 참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다웠다. 짙은 색의 긴 머리가 어깨와 팔을 감쌌다. 몸은 가늘고, 굉장히 호리호리하며, 온갖 형체에 익숙한 그의 시선도 사로잡을 만큼의 유연한 우아함이 있었다. 그리고 어찌나 조용한지! 조용한 부동자세로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시간이, 이상하게 변치 않는 시간이 지나갔다. 어쩌면 시간은 멈춘 건지도 몰랐다. 바위 위에 앉아 물을 바라보는 여자와, 그녀의 뒤로 자라는 거대한 고사리는 한 폭의 그림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갑자기 여자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해리스는 침입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갑자기 자각했다. 그는 한 발짝 물러섰다. “죄송합니다. 저는 수비대에서 왔어요. 방해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어도 괜찮을까요?”해리스는 이내 물었다.
“네.”
테라의 언어를 하는구나! 그는 연못을 둘러 그녀에게 약간 다가갔다. “제가 조금 방해해도 괜찮을까요. 혹성에 오래 머물지는 않을 거예요. 오늘 왔어요. 테라에서 막 도착했어요.”
그녀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의사입니다. 헨리 해리스라고 해요.” 그는 햇살 아래 빛나는 그녀의 가는 구리색 몸과, 팔과 허벅지에 남아있는 물기를 내려다보았다. “제가 여기 왜 왔는지 궁금해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잠시 멈추었다. “어쩌면 저를 도와주실 수 있을지도.”
그녀가 살짝 올려다보았다. “그래요?”
“저는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네. 물론이죠.”
“다행이네요. 제가 여기 앉아도 될까요?” 그는 주변을 둘러 납작한 바위를 찾아 앉았다. 그는 천천히 자리를 잡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담배 피우세요?”
“아니요.”
“저는 한 대 필게요.” 그는 불을 붙이고 깊게 들이마셨다. “그러니까, 지금 수비대에 문제가 있어요. 사람들 몇 명에게 어떤 증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점점 퍼지는 중이 거는요. 원인을 찾지 못하면 수비대를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할 거예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나 소리 없이 조용한지!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다. 마치 뒤의 고사리들 같이.
“음, 저는 그들에게서 몇몇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었는데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띄었어요. 그들은 무언가 피리 부는 이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 원인이라는 거예요. 피리 부는 이들이 가르쳐 준-“ 그는 말을 멈추었다. 그녀의 작고 짙은 얼굴에 묘한 표정이 스친 것을 보았다. “피리 부는 이들을 아세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스는 격렬한 만족감을 느꼈다. “아세요? 원주민은 알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는 다시 일어섰다. “정말 피리 부는 이들이 존재한다면 원주민들은 분명히 알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들은 존재하는 건 맞죠?”
“존재해요.”
해리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숲 속에 있어요?”
“네.”
“그렇군요.” 그는 황급히 담뱃불을 껐다. “혹시 저를 그들에게 데려다줄 수 있을까요?”
“데려다줘요?”
“네. 문제가 있어서 해결해야 해요. 그러니까, 테라의 기지 지휘관이 이 피리 부는 이들에 대한 문제를 저에게 맡겼거든요. 해결해야 해요. 그리고 그건 제 책임이고요. 그러니까 저에게는 그들을 찾는 일이 무척 중요해요. 아시겠어요? 이해하시나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를 데려다주겠어요?”
여자는 말없이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머리를 무릎에 기댄 채 앉아서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스는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다리 한쪽에 기대어 섰다가 다른 쪽에 기대어 섰다가 하며 몸을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래서, 데려가 줄 건가요?” 그는 다시 물었다. “수비대 전체에게 무적 중요한 문제예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는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보답으로 뭔가 드릴 수도 있어요. 가진 게 뭐가 있더라...” 그는 라이터를 꺼냈다. “제 라이터를 드릴 수 있어요.”
여자는 천천히, 우아하게, 움직임이나 애쓰는 모양 없이 일어섰다. 해리스의 입이 떡 벌어졌다. 한 번의 동작으로 미끄러지듯 서는 이 여인의 유연한 자태라니! 그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녀는 전혀 힘을 쓰지 않고, 변화의 감각도 없이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한순간에는 앉아있다가 다음 순간에는 서 있었다. 서서 작은 얼굴에 표정 하나 없이 그를 태연하게 보았다.
“데려가 줄래요?” 그가 물었다.
“네. 따라오세요.” 그녀는 뒤를 돌아 고사리 밭으로 향했다.
해리스는 급하게 따라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휘청거렸다. “좋아요. 정말 고마워요. 피리 부는 이들을 어서 만나보고 싶어요. 어디로 데려가는 거죠, 당신들의 마을? 해 질 녘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요?”그가 말했다.
여자는 답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고사리 밭에 있었고, 해리스는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의 움직임이 어찌나 조용하고 매끄럽던지!
“잠시만요.” 그가 불렀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자는 멈추어서, 가늘고 아름다운 몸을 돌려 조용히 돌아보며 그를 기다렸다.
그는 그녀를 따라 바쁘게 고사리 사이로 들어갔다.
“이야, 세상에!" 콕스 지휘관이 말했다. “정말 금방 돌아왔군요.” 그는 한 번에 두 계단씩 뛰어내려왔다. “짐 이리 주세요.”
해리스는 무거운 슈트케이스를 질질 끌며 씩 웃었다. 가방을 내려놓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할 건 아닌 거 같아요. 짐을 좀 포기해야겠어요.” 그가 말했다.
“이리 들어와요. 하사관, 좀 도와주게.” 순찰병이 달려와 슈트케이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세 남자는 들어가서 해리스의 방을 향해 복도를 걸어 내려갔다. 해리스가 잠긴 문을 열자 순찰병은 슈트케이스를 안에 두었다.
“고마워요.” 해리스가 말했다. 그는 다른 슈트케이스를 그 옆에 두었다. “돌아오니 좋네요. 잠시 동안이라도.”
“잠시 동안이요?”
“일처리를 하려고 잠시 온 것뿐이에요. 내일 아침에 Y-3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럼 아직 문제를 찾지 못한 건가요?”
“찾았죠, 하지만 치료하지는 못했어요. 돌아가서 바로 착수할 거예요. 할 일이 많아요.”
“하지만 문제가 뭔지 알아냈다는 거죠?”
“네. 그들이 말한 바로 그거였어요. 피리 부는 이들.”
“피리 부는 이들이 정말로 존재하던가요?”
“네. 존재해요.” 해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었다. 그리고는 건너가서 창문을 열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는 침대에 앉아 뒤로 기대었다.
“피리 부는 이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바로 순찰대의 사람들의 머릿속에 말이죠! 그들에게 피리 부는 이들은 실존해요. 단체로 만들어낸 거죠. 군중 최면이자, 군중 투영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 정도는 다르지만 어느 정도 지니고 있어요.”
“어떻게 시작된 거죠?”
“Y-3의 직원들은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했고, 고강도의 훈련을 거친 뒤 특별한 능력을 인정받아 거기로 보내진 거죠. 그들은 평생을 복잡하고, 빠르고, 사람 간의 교류가 많은 현대 사회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랐어요. 어떠한 목표, 해내야 하는 일에 대해 끝없는 압박을 받아왔죠.
그러다가 그들이 갑자기 굉장히 원시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원주민들이 사는 혹성에 오게 된 거예요. 완전히 식물 같은 삶이죠. 목표나, 목적에 대한 개념도 없고, 그러니까 계획을 짤 능력도 없죠. 원주민들은 동물처럼 살아요,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나무에서 과일을 따 먹으면서. 고난이나 갈등이 없는 에덴동산 같은 삶이죠.”
“그래서요? 그렇다고 해도-”
“순찰대의 직원들은 원주민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이 현대 사회에 편입되기 전의 어린 시절, 걱정도 책임도 없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 거예요. 태양 아래 누워있는 태아 같은.
하지만 이런 생각을 스스로조차 납득할 수 없었던 거예요! 자신이 원주민처럼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자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죠. 그래서 피리 부는 이들을 창작해내는 거예요. 숲 속에 사는 신비한 무리가 그러한 삶으로 자신을 인도한 거라는 생각을. 그렇게 되면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인을 비난할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숲의 일부가 되도록 자신을 ‘가르친’ 거라고.”
“하지만.” 해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숲은 아무런 잘못이 없죠. 문제의 해결법은 정신치료예요. 그래서 바로 돌아가야 해요, 가자마자 시작해야 하니까요. 피리 부는 이는 자기 안에서 나온 거라고 깨달아야 해요. 책임을 회피하라고 유혹한 건 자신의 무의식적인 목소리라고. 그들은 적어도 마음 밖에는 피리 부는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야 해요. 숲은 무해하고 원주민들은 가르칠만한 게 없어요. 그들은 원시적인 미개인이에요, 문자조차 없어요. 이건 일을 내려놓고 그저 쉬고 싶은 순찰대원들의 단체 투영이에요.”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그렇군요.” 마침내 콕스가 말했다. “뭐, 말 되네요. 돌아와서 환자들에게 뭔가 치료를 해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가 일어서며 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해리스는 동의했다.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결국에는, 자기 인식을 높여주면 되는 문제이니까요. 그렇게 되면 피리 부는 이들은 사라질 거예요.”
콕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서 가서 짐을 풀어요, 선생님. 저녁 식사 때 뵙죠. 그리고 내일 아침에 떠나기 전에도 가능하면 보고요.”
“좋습니다.”
해리스가 문을 열어주자 지휘관은 복도로 나갔다. 해리스는 지휘관 뒤로 문을 닫고 다시 방 건너편으로 갔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저녁이었다. 공기가 점점 차가워졌다. 그가 보는 동안 해가 지며 병원을 둘러싼 건물 뒤로 사라졌다. 그는 해가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두 슈트케이스 쪽으로 갔다. 여행은 그를 굉장히 피곤하게 했다. 어마어마한 피로가 그를 덮치고 있었다. 할 일이 많았다, 정말 너무나도 많았다. 어떻게 그걸 다 해낼 수 있을까? 다시 혹성으로. 그러고 나서는?
그는 눈을 감으며 하품을 했다. 어찌나 졸린지! 침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 끝에 앉아 신발을 벗었다. 할 일이 많아, 내일 말이지.
그는 신발을 방구석에 두었다. 그리고는 몸을 굽혀 슈트케이스 하나의 잠금쇠를 철컥하고 풀었다. 그는 슈트케이스를 열었다. 거기서 불룩한 마대를 하나 꺼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마대 안의 것을 바닥에 쏟아부었다. 흙, 부드럽고 비옥한 흙. 그곳에서의 마지막 시간 동안 모은 흙이었다. 조심스럽게 모은 흙이었다.
흙이 바닥에 퍼지자 그는 그 가운데에 앉았다. 그는 몸을 펴서 뒤로 기댔다. 자세가 완전히 편안해지자 손을 가슴 위에 접어 얹고 눈을 감았다.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물론, 나중에. 내일. 흙이 어찌나 따뜻한지...
그는 금세 잠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