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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 글: 저작권이 풀린 영문 단편들을 번역합니다. 적은 글: 짧은 글을 씁니다. monglim.work@gmail.com

  •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 진 헨더슨, All in the mind, Gene L. Henderson, 1954
    옮긴 글/머릿속에서 일어난 일, 진 헨더슨 2020. 6. 7. 23:21
    원문링크: www.gutenberg.org/files/32434/32434-h/32434-h.htm
     

    The Project Gutenberg eBook of All In The Mind, by Gene L. Hend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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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은 이제껏 느껴본 중 가장 깊고, 강렬한 어둠 속에서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눈을 떠보려고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찌르는 고통이 느껴질 뿐이었다. 기억의 조각조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그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고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기억해내려 애썼다.

    떠오르는 마지막 기억은 산속 오래된 광산 터널에 숨겨진 작은 연구소에 대한 것이었다. 외딴곳이지만 도심에서 운전해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거기서 뭘 하고 있었지? 아 그래, 닐과 또 싸우고 있었지. 정확한 대사까지 떠올랐다.

    “젠장, 멜.” 그의 파트너가 말했다. “동물의 뇌로는 해볼 수 있는 만큼 다 해봤다고. 이제는 인간의 뇌를 구할 차례야."

    “그건 안돼.” 멜은 반대했다. “우리가 한 동물 실험에 대해서도 만약 밖으로 새어나간다면 난리가 날 텐데. 병원에서 사망 즉시 뇌를 기증한다고 동의하는 사람을 구한다고 쳐도, 언론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하지만 우리 연구소는 아주 꽁꽁 숨어 있다고. 절대 알아내지 못할 거야.”

    “어차피 소용없어. 그렇게 구한 뇌는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서 손상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그럼 우리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가는 거야. 더 최악의 상황은, 신선하고 좋은 뇌에서는 성공할 실험이 그런 뇌로는 실패의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거야.”

    “어쨌든 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거잖아” 닐은 검은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격정적으로 말했다. “모아둔 자금이 언제까지고 남아나는 건 아니라고.”

    멜은 파트너에게 등을 돌린 채 개에서 얻은 가장 최근의 실험용 뇌가 생명 보존 액체와 함께 담긴 수조 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조 뒤 오 실 리스 코프 화면에 반짝이는 긴 선이 뇌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표식이었다. 그다음에 어떻게 되었더라? 기억해내려 애쓰자 날카로운 통증과 극심한 두통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때 기절하거나 뭔가 사고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터널이 무너져내려 연구소의 콘크리트 벽이 넘어진 걸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지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처음에는 희미하다가 점차 뚜렷해졌다. 그는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내용이 들릴만큼 뚜렷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소리가 멎었다. 그는 다시 소리가 들릴 때까지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다. 이번에는 문장의 부분 부분이 들려왔다.

    “… 이걸 먼저 연결하고…”

    “아니야, 조심해. 전압이 너무 높아지면 다 망치는 거라고, 그러면…”

    “이건 어디에 연결하나요? 여기?” 두 번째 목소리가 갑자기 커다랗게 울렸고, 강한 진동에 뇌가 깨질 것만 같았다. 목소리에서 패닉이 느껴졌다.

    “아니, 아니, 이 멍청아, 그러면 안돼…”

    멜의 머릿속에 칼로 찌를듯한 고통이 침투했고 그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들리는 건 시끄럽게 웅웅대는 소음뿐이었다. 그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기꺼이 놓아버렸다.

    그는 다시 돌아오는 정신을 힘겹게 붙잡으며, 단조롭게 그를 반복해서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멜, 멜 칼슨. 내 목소리 들려, 멜? 멜, 멜 칼슨. 내 목소리 들려, 멜?” 그는 온 정신을 그 소리에 집중하며,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까 들리던 목소리 중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몸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팔다리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산 채로 묻힌 느낌이었다. 도와달라고 소리치려 했지만 목소리를 잃은 듯했다. 그를 부르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멜, 멜 칼슨, 내 목소리…” 목소리는 뚝 끊겼다가, 다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들리는구나, 멜. 들리는 거 보여.”

    멜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상대방이 급히 경고했다.

    “놀라지 마. 아직 목소리는 작업 중이니까. 그냥 좀 쉬고 있어.” 멜은 순간 그 목소리의 주인이 닐이라는 것을 깨닫고 안도했다. 그렇다면 터널이 무너져서 다친 게 분명했다. 닐은 업무적인 톤으로 유감을 표했다.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게 된 건 유감이야. 하지만 그대로 접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건 프로젝트였어.” 멜의 머릿속에 공포심과 깨달음이 서서히 피어났다. 닐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인 곡선이 뛰었군. 이제 상황 파악이 되나 보네. 이렇게 해야만 했어, 멜. 어쨌든 네가 죽은 건 아니잖아. 몸이 없어졌을 뿐. 네 뇌는 앞으로 몇 백 년을 살 수도 있어. 상상해봐, 이제 너는…” 무의식의 늪이 다시 멜을 삼켰다.

     

    멜은 다시 한번 구름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감각이 굉장히 짜릿하게 느껴졌다. 그는 벨벳처럼 부드러운 어둠 속을 헤엄칠 수 있을지 궁금해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지만 실패했다. 그의 눈 앞에 흐릿한 불빛이 나타났고 낮은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그 순간 사태 파악이 되었고, 그는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힘겹게 싸워야 했다.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목소리의 주인이 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정신이 돌아왔네. 전압 너무 높이지 마, 지난번에 어떻게 됐는지 알잖아.” 짧은 침묵 후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멜, 내 말 들리는 거 알아. 잘 들어. 나는 몇 가지 가설을 세운 뒤 실행해봤고, 그래서 네가 지금 내 말을 들을 수 있게 된 거야. 잠시 후에는 시각을 연결해 줄 계획이야. 목소리는 아직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어.” 빛이 점점 밝아지며 안구가 아파왔다. 동시에 멜은 울적한 마음으로 더 이상 그에게는 안구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으려 했고 그러자 두통이 심해졌다. 그는 다시 떠다니는 감각을 느끼고 싶어 긴장을 완전히 풀어보았다.

    “그래, 좀 낫네.” 닐이 좋아하며 말했다. “뇌파가 좀 진정됐어. 멜, 네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는 한 팀이 되어 일할 수 있을 거야.” 뿌연 안갯속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초점은 맞지 않았지만 형체가 점점 뚜렷해지자 닐이 컨트롤 패널 앞에서 몸을 숙이고 앞에 놓인 오실리스코프 화면의 널뛰는 녹색 선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몇 가지를 조정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뇌 속에 강한 분노가 치밀자 녹색 선이 격하게 날뛰었다. 닐의 손이 본능적으로 빨간 뚜껑이 달린 스위치로 향했다. 동시에 멜의 뇌가 든 수조를 힐끗 쳐다보았다. 수조는 멜의 시야에 겨우 들어왔다.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한 온전하고 고통스러운 이해가 닿자 그는 다시 한번 의식을 잃을 뻔했다. 그때 닐의 얼굴이 그의 시야에 어렴풋이 들어왔고 닐의 마음속에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강한 증오심이 끓으며 그의 뇌파를 표시해주는 녹색 선이 최고 단계까지 올라갔다.

    그의 뇌는 팔과 다리를 통제하는 말단 신경에 신호를 보냈다. 마치 팔다리가 아직 있기는 하지만 마비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정신은 이제껏 살아온 중 가장 맑고 날카로운 상태로 깨어있었다. 그는 복수할 방법을 찾기 위해 그의 새로운 정신적 능력치를 세세하게 파악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몇 주 동안, 멜은 오직 닐에 대한 증오심 하나로 이성을 잡고 있었다. 스스로의 암담한 미래에 대한 자각에서 온 공허함은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원래 그의 성대와 거의 유사하게 기능하는, 뇌의 말단 신경으로 통제하는 기계 목소리가 완성되었다. 새로운 목소리로 스스로 다양한 보조 장치에 업그레이드나 솔루션을 입력해 회복에 힘쓸 수 있게 되었다. 멜은 자신의 꾸준한 지적 능력의 향상이 놀라웠다. 그는 이것이 원래 그의 무의식 속 잠재되어있던 능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신체를 잃자 숨어있던 지적 능력이 발현된 것이다. 게다가 수조 속 영양제가 충분히 공급되는 동안에는 휴식이 전혀 필요 없다는 점도 큰 몫을 했다.

     

    마지막 사실은 닐 덕에 알게 되었다. 그의 전 파트너는 그를 최대한으로 활용해 먹을 계획인 게 분명했다. 처음에 닐은 태양광을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새로운 형태의 페인트에 관한 문제를 가져왔다. 멜은 문제를 공부하고 해결책을 고안해내면서 스스로의 잠재력을 가늠하게 되었다. 그는 이에 대해 바로 말을 꺼내보았다.

    “수익은 어떻게 나눌 예정이야?” 그가 물었다.

    “수익?” 닐이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어디 좋은 데라도 가시려고?”

    멜은 처음으로 그의 단조롭고 감정 없는 목소리가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 순간 치밀어 오른 격한 분노를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알잖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네가 살인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우리의 파트너십은 아직 유효할텐데.”

    닐은 웃음을 터뜨리고는 답했다.

    “그러네. 물론 나는 연구비를 언제 어디서든 뽑아 쓸 수 있지. 하지만 만약 경찰이 네 실종 상태를 조사해본다면, 도시에 네 개인 계좌가 하나 열려있는 걸 발견할 거야. 너는 그냥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방문해서 뽑아 쓰면 돼.”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가,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는 경고했다. “우리는 너를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지난 몇 달간을 쉬지 않고 매달렸어. 나는 점점 더 많은 일을 가지고 올 거야.”

    그가 이어서 설명했다.

    “나는 시내에서 공학 컨설팅 서비스를 시작했어. 이 페인트 제작법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홍보가 될 거야.”

    그는 설치된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일에 몰두하는 척했지만 멜은 그가 오실로스코프를 곁눈질하며 뇌의 반응을 살피는 것을 보았다. 멜은 몇 주 전에 뇌파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닐에게서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그의 파트너는 실망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태도가 더 이상 거슬리지 않나 봐?”

    멜의 기계 목소리가 대답했다.

    “네가 내 몸을 파괴하는 순간, 내 감정도 모두 사라졌어.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하지만 윤리적인 문제는…”

    “네가 날 과학자들에게 보내면 그다음이 어떻게 될지는 충분히 잘 알고 있어. 나는 실험 대상이 되겠지. 나는 세상에 그 정도의 빚을 진 적은 없어.”

    “좋아.” 닐은 만족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의욕적으로 말했다. “너를 위한 계획을 아주 많이 세워놨어.”

    멜은 근육 조절에 관한 몇 가지 실험을 통해 짧은 라디오 파장으로 전기 테이블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360도로 돌아가는 '눈'을 테이블에 장착해 멜의 시신경으로 정보를 보냈다. 기계 팔을 장착했고, 모두가 연구실을 떠난 뒤에 밤새도록 팔을 정확히 조종하는 법을 연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기계 팔을 그의 실제 팔과 똑같이, 아니 더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무기다. 거치된 칸막이에서 제어 카트를 꺼내는 것은 쉬웠다. 연구실에 출입이 허락된 유일한 조수 젠킨스가 어느 아침에 열쇠 뭉치를 테이블 위에 두고 갔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의 노력으로 바퀴를 굴려가서 열쇠를 숨겼다. 젠킨스는 한 시간 동안 미친 듯이 열쇠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기계실로 가 새로 열쇠를 맞추었다. 그전에 닐에게 말하지 말라고 멜에게 경고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멜이 알겠다고 약속하자 그는 아양을 떨다시피 하며 고마워했다.

    그는 이틀 밤 내내 연구소를 뒤져 책상 서랍에 보관하던 권총은 닐이 가져갔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계 실험을 통해 뭐든지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새로운 총을 만드는 건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이다. 칼은 그가 다루기에는 아직 서투른 무기라 일찌감치 포기했다. 압축 공기나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강철 다트를 튜브로 쏘는 방식도 고려했지만 결국 그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그는 이제 기계의 장단점을 지닌 존재다. 더 이상 사람처럼 생각하는 법을 버려야 한다. 그러니까 연구실에서 가장 흔한 소재를 활용해서 무기를 제작하는 것이 맞다. 바로 전기 말이다.

     

    목표의 방향성을 정하고 나자, 아직 탐색하지 못한 자신의 뇌가 가진 잠재력에 다시 한번 감탄이 일었다. 무기는 그의 카트에 장착할 것이고 전기는 조달하거나 자급식으로 만들면 된다. 이동성을 위해 배터리로 결정했다. 무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구체화되어서 어째서 이제껏 아무도 발명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특별 제작된 콘덴서가 배터리의 용량을 초당 백만 볼트 이상으로 높여주었다. 전력은 양극을 지닌 아주 가느다란 봉에 대기하고 있다가 공기보다 질량이 높은 대상을 만나면 위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작동 순서는 거의 동시적으로, 하나의 이어진 빔보다는 전기적 발산에 가까웠다.

    그는 손전등과 비슷하게 생긴 이 무기를 그의 '눈' 아래 숨겨 그가 보고 있는 곳 어디든 쏠 수 있게 만들었다.

    호신용 무기를 갖추자 안심은 되었지만 미래의 방향성을 잃은 상태가 되었다. 젠킨스와 닐을 죽이면 복수는 이루겠지만 그다음은?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도 있지만 세상에 신기한 변종으로 알려져서 수백수천의 호기심의 대상이 될 생각을 하자 머릿속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계획을 채 실행해보기도 전에 일이 터졌다. 닐이 유난히 일찍 출근한 어느 날 아침이었다. 그는 멜에게 철의 내구성과 알루미늄의 가벼운 성질을 합친 새로운 강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주었다. 멜은 그의 뇌와 전기적으로, 물리적으로 연결된 것과 다름없는 전산기를 돌렸다. 그는 닐이 왜 그리 초조해 보이는지 의아했다. 닐은 뒷짐을 진 채 방 안을 쉼 없이 구석구석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닐은 풀던 문제에 푹 빠져들어 방 안의 다른 존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은 채 몰두했다.

    "아하!"

    닐이 카트를 내려다보다가 허리를 펴 일어나서 일그러진 미소와 함께 외마디 외쳤을 때, 처음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이를 듣고 놀란 멜이 내린 첫 번째 추측은 상대가 그의 비밀 무기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렌즈를 돌려 무기로 닐을 겨냥하려 했지만, 방에 심어둔 다른 카메라를 통해 카트에 장착된 렌즈가 동작하지 않는 걸 확인했다. 기계 팔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예 카트 자체가 작동을 멈추었다.

    "전원을 뽑았어." 닐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완전히 숨기고 있다고 믿었겠지." 닐이 얼마큼 알아냈는지 모르는 멜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닐은 미소를 지우고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판단력이 좀 흐려졌나 봐? 전기 회사에서 보낸 청구서에 전력 소모량이 지나치게 높게 나왔을 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챘어. 그 후로는 매일 밤과 다음날 아침에 직접 계량기를 확인했지. 밤마다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멜은 계속 침묵했다.

    "좋아. 그렇게 나온다면." 닐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는 수조 끝을 향해 걸어갔고 멜은 뇌가 손상 후 아직 복구되지 않은 신경 조직에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게 느껴졌다. 그는 닐이 그의 뇌 속 세포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투입하는 화학품 조절 밸브로 손을 뻗는 것을 보았다. 밸브에 연결된 릴레이는 액체에 적당한 양의 산소를 공급하는 데에 쓰였다. 닐은 밸브를 살짝 돌리고는 오실로스코프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멜은 불과 몇 초도 안되어 정신이 흐릿해지는 걸 느꼈다. 오실로스코프의 선이 뭉그러졌고, 그는 애써 다시 초점을 맞추었다. 그의 뇌파량을 표시하는 곡선이 매우 낮아진 것을 보았다.

    "상태는 좀 어때?" 닐이 가식적인 목소리로 걱정하는 척 연기했다.

    그가 밸브를 원래대로 돌려놓자 멜의 상태는 즉시 좋아졌다.

    "네가 그렇게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아주 약간의 맛을 보여 준거야." 상대가 경고했다. "밸브를 조금만 더 돌리면 네 뇌는 바로 쓰레기통 행이야. 물론 내가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네 뇌가 죽어버리기 전에 하고 싶은 실험들이 몇 개 더 있거든."

    파트너의 괴팍한 성격을 잘 아는 닐은 그가 충동적으로 사고를 쳐버리기 전에 입을 열기로 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대한 우화를 기억해."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여전히 너를 위해 많은 걸 할 수도, 혹은 안 할 수도 있어." 그는 상대의 얼굴에서 분노가 지워지고 교활함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잊을 뻔했네." 닐이 말했다. "널 위한 깜짝 선물을 하나 더 준비했지."

    그는 중앙 전산기 옆에 있는 며칠 전 직접 짠 회로를 향해 걸어갔다. 전산기의 모든 부품이 밖으로 노출되어 있었고, 유동 콘덴서가 주요 조절 장치로 보였다. 전에 전산기가 전력 조절 문제를 겪은 적이 있어서 멜은 저항기가 그와 관련된 장치일 거라고 짐작했다.

    닐은 저항기에 손을 올리고는 수조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네가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난 널 설득하기 위해 이걸 쓸 수밖에 없어." 그가 제어 장치를 아주 살짝 건드리자 멜의 뇌 속에 찌르는 듯한 고통이 지나갔다. 얼얼한 기운을 남기며 고통은 잦아들었다.

    "그게 낮은 전압이었어." 닐이 만족하며 말했다. "하지만 뇌파가 펄쩍 뛴 걸 보니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나 봐, 그렇지?"

    "네가 이겼어." 멜은 방금 전의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렇게까지 상대방에게 자신의 운명이 달려있는 무기력한 처지는 처음이었다. 그는 자신이 신생아보다도 더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었다. 적어도 신생아는 손을 휘두르고 발을 찰 수는 있으니까. 준비된 날이 올 때까지 그저 이성을 붙잡고 인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잘 생각했어." 파트너는 멜이 백기를 드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이라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혹시 그 생각을 잊을지도 모르니, 오늘 밤에는 아무것도 못하게 카트를 꺼놓는 게 좋겠어."

    그는 갑자기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며 말했다.

    "자 그럼, 페인트 솔루션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오늘 새로 들어온 일이 아주 많아. 대체로 하던 대로 척척 진행하면 되는 것들이지만 최대한 일을 질질 끌어서 돈을 많이 받아낼 계획이야. 몇몇 아이템은 네가 솔루션을 내면 그걸 복사해두고 해결이 불가능했다고 전할 거고."

     

    카트가 없어지니 생각보다 더 아쉬움이 컸다. 어린 시절 다리가 부러져서 몇 주간 침대 신세가 되었을 때 같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내면에 집중했다. 그가 돌파구를 찾아내 상상보다 더 높은 상태로 진보한 건 순전히 우연한 행운에서 비롯했다. 그는 할 일 없이 쉬면서 고정된 렌즈를 통해 방 전체를 관망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빠른 움직임이 그의 눈에 띄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작은 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연구실 안 그의 방까지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지루한 일과에 나타난 변화에 반가운 마음으로 작은 생물체가 먹을 것을 찾아 방 안을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지켜보았다. 멜은 몇 번씩 목소리 상자로 소리를 내서 쥐가 실체 없는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숨어 있을 곳을 찾아 미친 듯이 도망치게 하며 즐거워했다. 같은 장난이 반복되자 쥐는 소리에 익숙해졌는지 말을 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쥐는 몇 분간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멜이 장비 사이에 둥지를 튼 건지 궁금해하던 찰나에 전산기 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닐이 그의 뇌에 썼던 전기 제어 장치 근처였다. 전기가 주었던 격렬한 고통을 떠올리며, 멜은 쥐가 호기심 어린 코를 노출된 장비 사이로 내미는 것을 걱정스레 지켜보았다. 쥐가 더 많은 관심을 보일수록 멜은 점점 더 걱정이 되었다. 쥐가 섬세한 릴레이 하나를 건드려서 회로를 닫아버릴 우려도 있었지만, 메인 전력 공급 장치가 누전될 위험도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뇌세포가 영구적으로 손상되거나 극심한 고통으로 미쳐버리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젠킨스를 찾았다가 닐을 불러보았지만, 그들이 무슨 특별 장비를 구하러 간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그가 무력하게 바라보는 사이, 쥐는 몸을 뻗어 릴레이를 건드렸다.

    그 즉시 날카로운 고통이 그의 뇌를 찔렀고, 거대한 소리가 귀에 울렸다. 그게 바로 자신의 비명 소리라는 건 잠시 후에야 알아차렸다. 크고 지속적인 소리에 쥐도 놀라 릴레이에서 몸을 뗐다. 그러나 무슨 이상한 의지가 생긴 건지, 멜이 첫 번째 자극으로부터 회복하기도 전에 쥐는 릴레이에 다시 몸을 댔다. 멜은 카트가 켜져 있어 그가 움직이는 소리를 내거나 기계 팔로 이 작은 고문관을 릴레이 근처에서 떼어 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는 다른 모든 것을 잊은 채 오직 쥐가 점점 주요 지점에 다가가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쥐가 릴레이에 닿으려는 순간 그의 뇌세포 속에 격렬한 혐오가 일었고 쥐가 갑자기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것을 놀라 바라보았다. 바닥에 미동 없이 누워있는 쥐를 한참 동안 지켜보고서야 죽었다는 것을 깨닫고 안도했다. 충격으로 인한 고통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잠잠해지고 그는 비로소 무슨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에게 충격적인 고통을 준 전기의 전압은 사실 굉장히 낮은 수준이라 전류가 조금 통했다고 쥐가 그렇게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쥐가 전산기 위에서 날아가기 직전의 시점까지 모든 과정을 분석해 보았다. 몇 번을 확인해도 같은 결론, 처음에는 차마 믿기를 거부했던 결론, 바로 그의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조금 더 깊이 고민해보자 그의 생각이 분명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건 분명하지만, 정신력 자체는 쥐에게 힘을 가할 물리적 완력으로 작용이 될 수 없고 대신 쥐의 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동물의 뇌가 근육에 경련을 주어 어떠한 외부의 완력이 그걸 바닥에 던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덜떨어진 젠킨스는 죽은 쥐를 처음 발견하고는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저게 어떻게 저기 있을 수 있지?" 그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다는 듯 말했다. "근데 뭐가 저걸 죽인 걸까?"

    멜은 갑자기 젠킨스가 걱정하게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둔한 그도 호기심이 동하면 쥐를 해부해볼 수도 있고, 그럼 닐이 의심할만한 증거를 찾아낼지도 모른다.

    "내가 어제 그 쥐를 봤어." 그가 말했다. "재밌기도 하고 혼자 있기 심심하기도 해서 별 말 안 했어. 오늘 보니까 움직임이 굼뜨고 힘이 없어 보이더라. 굶어 죽은 거 같아. 먹을 것도 없이 안에 갇혀 있었으니."

    "그러게요." 상대는 동의를 표하며 쥐를 주워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그는 대답에 만족했는지 평소의 일과로 돌아갔다.

     

    첫 발견의 흥분이 가시자, 멜은 조심스럽게 그 힘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을 젠킨스에게 집중해 보았고 바로 반응이 왔다. 찰나 동안, 그의 뇌를 누르는 듯한 저항력을 느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 힘에 대항했고 저항하는 힘이 무너지면서 젠킨스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수는 멍한 표정으로 작업대 위에 기댔다.

    "무슨 일이야?" 멜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상대는 손으로 옆머리를 누르며 말했다. "뭔가가 머리를 때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지금은 좀 욱신거려요. 빨리 감기를 낫든지 해야지."

    그는 손을 머리에 댄 채 방을 나갔다.

    새로운 힘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해지자 멜은 보다 천천히 실험을 이어갔다. 실험 대상이 젠킨스뿐이라 그 외의 저항력이 무너지기 직전까지의 힘을 재서 강도를 줄이는 법을 배워 나갔다. 아쉽게도 이 힘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을 방법은 없는 건지, 아니면 그가 아직 방법을 찾지 못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거칠게나마 상대의 행동을 통제할 수는 있었다.

    젠킨스가 점점 더 불안해했기에 멜은 더더욱 신중을 가했다. 그는 젠킨스가 한가할 때를 기다려 다리를 꼬게 하거나 한쪽 손을 올려 머리를 긁게 했다. 마침내 아주 매끄럽고 정확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자 실험이 주는 흥미요소는 사라졌다.

    그는 점점 더 범위를 넓혀갔다. 나무나 콘크리트는 아무런 저항력이 없었다. 알루미늄을 제외한 금속은 힘을 대략 절반 정도로 약화했다. 멜이 처음으로 닐의 뇌에 접근했을 때는 젠킨스도 방에 함께 있을 때였다. 그의 파트너의 정신적 저항이 훨씬 더 강했기 때문에 그는 아주 천천히 순차적으로 힘을 가해 돌파의 순간이 통제 하에 오도록 했다. 놀랍게도, 닐의 뇌가 젠킨스의 뇌보다 훨씬 통제가 쉬웠다.

    그즈음 그는 숙주의 시야를 공유하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지만, 상대가 뭘 하는 중인지 무엇을 보는 중인지 아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건물 밖까지 탐색 범위를 넓혀보았지만, (지나가는 아주 작은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소소한 저항력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연구실이 외진 협곡 속 동굴 안에 숨겨져 있으니 이 곳을 우연히 맞닥뜨리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다음 목표물은 가끔 마주치는 동물들로 정했다. 처음 몇 번 시도했을 때에는 너무 갑자기 완전하게 저항이 무너져서, 그의 강한 공격에 동물이 그만 죽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는 더 조심스럽게 시도해나갔고 처음으로 동물의 시각을 공유하게 되었을 때 뛸 듯이 기뻐했다.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연구실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아름답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한 번은 토끼에 접속해 있는 동안 머리 위로 독수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독수리로 숙주를 바꿨고, 새가 너무 멀리까지 날아가서 접속이 끊어지기 전까지 어딘가에 숨어있는 둥지를 훑던 새의 탁 트인 시야를 즐겼다. 그는 심지어 저 멀리 도시까지도 볼 수 있었다.

     

    몇 번은 닐이 방에 들어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멜은 (비록 간접적이지만) 새롭게 얻은 자유를 만끽했다.

    "그나저나 너 요즘 대체 무슨 일이야?" 어느 날 그의 전 파트너가 같은 질문을 두 번 반복해야 하자 그를 추궁했다. "툭하면 정신이 어디 딴 데 가있더라. 대체 요즘 뭘 하고 있는 건데?"

    "아무것도." 멜은 갑작스레 들어온 위협 신호에 바짝 긴장하며 대답했다. 그러나 이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었다.

    "그냥 취미로 만들고 있던 수학식 몇 가지에 대해 고민 중이었어. 네가 카트를 뺏어가고 나서 할 일이 없어졌거든. 넌 과제를 충분히 가져오지 않고. 왜?"

    닐이 뭔가를 감추는 듯한 낌새를 보이자 멜은 그가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닐은 꾸며낸 거짓 웃음을 지었다.

    "왜냐고? 나는, 아니 우리는, " 그가 정정했다. "벌써 프로젝트를 받아 제공한 솔루션으로 꽤 많은 수수료를 받았고, 특허로도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다고. 우리가 너무 눈에 띄게 잘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해내면 의심을 살지도 몰라."

    말이 되는 소리이긴 했지만 멜은 참지 못하고 더 캐물었다.

    "그럼 네 말은 지금 우리가 내는 성과를 이전에 내던 성과와 비교해보면 경찰들이 캐보기 시작할 수도 있다는 거야?" 그가 물었다. 상대가 답이 없었으므로 그는 이어 추궁했다.

    "아니면 내가 너무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벌써 주변을 캐기 시작했나?"

    "몇 가지 질문을 하긴 했어." 상대가 인정했다. "하지만 잘 대답한 것 같아. 그렇긴 해도 너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어."

    "하지만 이 연구실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걸." 멜이 항의했다.

    "적어도 전기 회사는 알지. 계량기가 도로 저쪽 끝에 있기는 해도. 처음부터 발전기를 직접 만들었어야 했어. 그리고 증서도 있고. 이 땅은 우리 공동 명의로 되어 있다고."

    "엄청 손이 많이 가는 일이 될 텐데." 멜이 지적했다. "날 옮기려면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거고, 그러면 새로운 장소는 절대 비밀로 할 수 없을 거야. 조금만 삐끗해도 다 끝장날 거라고."

    상대의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는 멜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 물론 조심해야지." 닐이 동의했다. "다행히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해도 우리가 손해 볼 건 없어. 이미 돈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으니까."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론을 내렸다.

    "실은, 지금은 아무런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없어. 네가 혼자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 이사하는 게 괜찮은 생각 같아."

    "난 그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 멜이 딱 잘라 말했다. "며칠 동안 고민해보고 싶어."

    "원하는 만큼 실컷 고민해봐." 닐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는 전산기 쪽으로 걸어가서 충격 장치 근처를 두드렸다.

    "하지만 네 허락은 필요 없다는 사실은 기억해둬." 닐은 멜의 반응을 기대하는 듯 기다렸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멜은 자신이 대비하고 있는 한 상대가 어떤 공격도 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사실에 만족했다. 그러나 이제는 비로소 행동을 취할 시간이 왔다.

    멜은 파트너가 떠나고 나서도 정신적 접속 상태를 켜 두었다. 닐은 바로 자신의 사무실로 가더니 책상 중간 서랍의 자물쇠를 열었다. 그 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빠르게 훑어보더니, 몇몇은 돌려놓고 몇몇은 빼두었다. 멜은 둘의 공동 명의 아래 들어있는 계좌 목록과 그 안에 저축된 금액을 보고 속으로 놀란 숨을 들이마셨다. 닐의 개인 계좌에 돈이 많다는 건 분명했지만, 멜이 그의 눈을 통해 본 바에 의하면 자금을 옮기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미 둘 다 백만장자나 마찬가지지만 그는 닐이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상대의 눈을 통해 멜의 시야는 책상에서 문으로 옮겨갔다. 그는 젠킨스가 방금 방으로 들어와 입을 움직이는 걸 보았다. 젠킨스의 입술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 같았다. 젠킨스는 말을 멈추고 닐의 말을 듣더니, 표정이 바뀌며 입술은 무언가에 대해 항의하는 말을 뱉으며 움직였다. 멜의 시야는 방금 연 다른 책상 서랍으로 옮겨갔고 그의 사라진 총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닐은 총을 꺼내 젠킨스를 겨눴다. 조수는 뒷걸음질 치며, 총알을 막겠다는 듯 양 손을 앞으로 올렸다. 그러더니, 긴장한 얼굴로 회유하는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빠르게 놀렸다. 입술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멜은 읽어낼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닐은 대답에 만족했는지 총을 다시 내렸다.

     

    멜은 연결을 끊고 자신의 방과 그의 눈이 되어주는 고정된 비디오 스캐너로 돌아왔다. 젠킨스가 연구실로 들어왔다. 그의 태도에서 그가 굉장한 압박감 아래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작업대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서서히 멜의 뇌가 있는 수조 근처로 다가갔다.

    "젠킨스." 멜은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했다.

    조수는 놀라서 펄쩍 뛰었고 손에 들고 있던 금속 부속품을 떨어뜨렸다.

    "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나와 같은 처지가 되는 게 얼마나 저주스러운 일인지 생각해본 적 있어?"

    "아-아-아니요,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왜요?"

    "너도 날 이렇게 만드는 데 한몫했잖아."

    "저는 그냥 지시에 따랐을 뿐이에요. 저는-"

    "알았어, 알았어. 나도 닐이 사람들을 어떻게 부려먹는지 잘 아니까. 하지만 넌 날 도울 수도 있어."

    "어떻게요?" 그가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난 아무한테도 이 일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거예요. 원하는 게 혹시 그거라면."

    "아니, 그런 부탁을 하려는 게 아니야. 나는 그저 그 퓨즈를 다시 카트에 꽂기 바랄 뿐이야. 그럼 나도 다시 움직이는 기분이 들 테고 이 무료함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지금은 그 어떤 감옥의 독방보다도 최악이라고."

    "안돼요." 조수는 단칼에 거절했다. "어차피 소용없어요. 그건 그저-" 그는 말을 끊으며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다는 듯 입을 손으로 막았다.

    "왜 그래, 젠킨스?" 멜은 최대한 부드럽게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데?"

    "저도 몰라요." 젠킨스가 우울하게 대답했다.

    "퓨즈를 다시 카트에 꽂아." 멜이 명령했다. 동시에 그는 젠킨스의 정신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압박을 가했다.

    "안돼!"

    그는 손쉽게 젠킨스의 머릿속을 가르며 그를 해하지 않으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적당한 힘을 썼다. 멜이 해본 중 가장 완전한 통제였다. 젠킨스의 다리는 줄로 연결된 꼭두각시 인형처럼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튀어나올 듯한 그의 눈동자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그는 강제로 카트 쪽으로 밀리고 밀려 결국 그 옆까지 다다랐다.

    "젠킨스, " 멜은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 들려?"

    젠킨스의 머리가 아주 살짝 씰룩이며 그렇다는 표시를 하자 멜은 지시를 내렸다.

    "젠킨스, 홀더에 여분의 퓨즈가 하나 있을 거야. 그걸 꺼내서 메인 회로에 연결해. 그렇게 하면 널 풀어줄게. 필요하면 난 널 지금 당장 죽일 수도 있어. 퓨즈 말이야, 젠킨스." 그는 힘을 살짝 풀어주었지만 젠킨스는 복종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멜은 계속했다.

    "젠킨스, 그 죽은 쥐 기억나지? 그거 내가 그런 거야. 퓨즈를 꺼내, 내가 인내심을 잃기 전에."

    그가 힘을 더 가하자 상대의 손이 비틀대며 카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힘을 살짝 풀었지만 젠킨스는 시킨 일을 이어서 했고 곧이어 멜은 카트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잠시 젠킨스에 대해 잊은 사이 조수는 공포의 비명을 지르며 문을 향해 달려갔다. 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손쉽게 통제할 수 있었기에 그저 흥미롭게 그런 그를 지켜보았다. 젠킨스가 문에 다다르기 직전에 벌컥 열리며 닐이 들어섰다. 젠킨스는 그대로 얼어붙어 그의 고용주를 바라보았다.

    "뭐야." 상대가 조바심을 내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려 젠킨스? 네가-"

    "아니, 젠킨스가 아니야." 멜이 대답했다. 동시에 그는 카트를 옆으로 돌려 비디오 스캐너가 닐을 바라보게 했다.

    "흠." 닐은 겁에 질린 젠킨스에게 시선을 돌리며 비난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네가 내 지시를 따르는 방식인가 보지?"

    "저 자가 시켰어요, 사장님. 저 자가 시킨 거예요." 닐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자 젠킨스가 허둥지둥 말을 쏟아냈다. 눈 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보고 있던 멜이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짧고 날카로운 탕탕 소리가 두 번 울렸고 젠킨스는 팔을 천천히 복부에 갖다 대더니 고통스럽게 앞 뒤로 몸을 흔들다가 바닥에 쓰러져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제 네 차례야." 닐이 멜의 권총으로 수조를 겨누며 말했다. 멜은 황급히 파트너의 머릿속을 두드렸지만 저항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탕 소리가 한 번 더 울렸고 사방에서 저릿저릿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그의 뇌가 다친 것 같았다. 그 충격에 그는 온 힘을 다해 정신을 잃지 않는데 집중했다. 닐은 총을 살짝 내리고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젠킨스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위로를 해보자면 어차피 일어날 일을 조금 더 앞당긴 것일 뿐이야. 너를 처리하고 나면 젠킨스도 제거할 계획이었으니까."

    그는 다시 권총을 들어 올렸고 얼이 빠져있던 멜은 본능적으로 카트에 전기를 공급했다. 그의 눈은 닐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에너지 총이 발사하며 아주 미약한 쉿 소리를 냈다. 닐의 몸에 나타난 효과는 아주 느리고 끔찍했다. 그의 몸은 점점 부어올라 팽창하더니 결국에는 붕괴해버렸다.

     

    멜은 서서히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는 잽싸게 카트를 가져와 총탄에 맞은 피해를 살폈다. 그는 공포에 질려 스스로를 샅샅이 훑어보았는데 다행히 총알이 수조를 뚫어 생명을 보존하는 액체가 바닥으로 흘러나가고 있을 뿐인 걸 발견했다. 탱크를 빠르게 살피자 납으로 된 탄환이 그의 뇌를 맞춘 것은 아니고, 액체에 가해진 압력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카트를 작업대로 가져가 뾰족한 나무 조각을 가져왔다. 기계 팔로 나무를 구멍에 넣고 새어 나오던 액체가 멈출 때까지 밀어 넣었다. 보다 영구적인 수습 방법을 찾을 때까지 일단은 버텨줄 것이다. 그는 즉시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고 그의 금속 "몸체"가 자동으로 신속히 액체를 채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먼저 카트를 통해 화학물의 공급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은 수조로 채워 넣었다. 확인해보니 그가 적어도 한 달은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원료가 남아있었다. 너무 늦기 전에 젠킨스를 시켜 카트를 되살린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게 없었다면 닐은 분명 그를 죽일 수 있었을 거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카트를 몇 개 더 만드는 것이다. 카트마다 각각 비디오 스캐너를 달 계획으로, 그중 하나는 다른 것들보다 크게 만들어야 한다. 그 카트는 부패가 시작된 두 구의 시체를 버리는 데 쓸 것이다. 그는 매일 거의 24시간씩 일하며 지하 연구소의 모든 방에 통신 시스템을 달아 그에게 직통으로 연결되게 했다. 심지어는 전화선을 연결해 밖으로도 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드디어 모든 일을 끝마치고 더 이상 할 일이 남지 않은 날이 왔다. 연구소의 모든 기능이 그의 뇌와 완벽하게 통합되어, 건물 전체가 쇠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몸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제는 최대한 미뤄온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일주일. 경찰에 자진 신고해서 세상의 과학자들에게 그의 현상태가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 보다 간단한 선택지다.

    그러나 연구소가 난장판이 될 생각을 하니 극도로 두려워졌다. 과거의 친구들은 병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들이닥칠 것이 뻔했다. 게다가 그가 지닌 잠재력이 외부로 알려지면, 수많은 일들이 주어질 것이다. 그에게 큰 해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될 가능성도 컸다. 수천수백 명의 사람들이 아마 이를 요구할 테고 국가 안전국이 그를 거두거나 요구는 이행되거나, 둘 중 하나의 결말이 날 것이다.

    연구소 밖 동물들을 만나고 하늘을 나는데 하루를 허비했다. 코요테와 사슴과 숲 속을 달렸다. 과학자들이 그를 다른 장소로 옮긴다면 새로운 수조에 방어망을 씌워 지금 같은 여유를 즐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모두 과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겠지.

    한 편, 만약 그가 손 닿을 수 있는 곳에 필요한 모든 재료가 배달되게 할 수 있다면 지금처럼 존재하는 방법도 있다. 그는 인류를 위해 그가 해결할 수 있을 많은 문제들을 의욕적으로 떠올렸다. 파트너와 공동 명의로 소유한 특허로 자금은 영구적으로 들어올 테니, 사색만으로 풀 수 있는 많은 문제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해결할 문제는 생존에 대한 부분이다. 모든 원자 폭발을 무력화할 전기적 수신 방해선을 고안할 것이다. 그 후에는 전 세계 사람들의 건강 문제에 집중해 모든 질병을 퇴치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를 방해하는 장애물에서 자유롭다는 전제 하에 가능했다. 그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사흘도 안되었다. 그가 잡아둔 최소한의 위험 수위에 다다른 날짜였다. 그가 전화선을 열자 교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번호를 말씀하세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워링 화학 물품 공장이요."

    그는 곧 주문장을 제출했고, 그러자 여름방학을 맞은 소년처럼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체 제작한 기계 손가락의 섬세한 움직임으로 원래 그의 필체대로 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몇 주만 노력하면 세포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면 스스로를 위한 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닐이 파괴한 원래의 몸보다 훨씬 뛰어난 몸으로.

    그 순간 만약 연구소에 누가 있었다면 눈 앞에 벌어진 광경에 무척 놀랐을 것이다. 멜은 사무실에서 바퀴 달린 기계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춤을 추게 만들었다. 그의 삶에 새로운 페이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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