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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번째 유형, 필립 K. 딕, Second Variety, Philip K. Dick, 1953
    옮긴 글/두 번째 유형, 필립 K. 딕 2021. 3. 30. 12:19

    *원문 링크: www.gutenberg.org/files/32032/32032-h/32032-h.htm

     

     

    집게란 존재들은 태초부터 유해했다.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작고 고약한 살인 로봇. 하지만 그들이 창조자를 흉내내기 시작한 순간, 인류는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찾아야 할 때가 왔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면!

     

     

    러시아 병사는 언제든 발사할 준비가 된 총을 들고 황폐한 언덕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그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굳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끔씩 목에 흐른 땀을 닦고 코트의 깃을 내리기 위해 장갑 낀 손을 올렸다.

    에릭은 리온 하사에게 말했다. "직접 하실래요? 아니면 제가 할까요?" 그는 모니터를 조정해 러시아인의 얼굴이 화면을 채우도록 만들었다. 화면 위의 선이 그의 날카롭고 침울한 이목구비를 가로질렀다.

    리온은 잠시 고민했다. 러시아인은 거의 뛰는 듯한 걸음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쏘지 마. 기다려." 리온은 긴장했다. "우리가 공격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

    러시아인이 앞에 놓인 먼지와 재를 발로 차며 속도를 냈다. 언덕 꼭대기에 도착하자 숨을 헐떡이며 멈추어 서서 주변을 응시했다. 하늘은 회색 입자로 이루어진 구름이 잔뜩 껴 흐렸다. 삐죽 솟은 벌거벗은 나무의 몸통이 드문드문 보였다. 땅은 평평하고 휑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빛바랜 해골처럼 여기저기 서 있었고, 사방이 파편으로 가득했다.

    러시아인은 불안해 보였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벙커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에릭은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리온을 흘끗 바라보며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걱정 마." 리온이 말했다. "여기까지 못 올 거야. 그것들이 처리할 테니까."

    "확실해요? 꽤 멀리까지 왔는데."

    "그것들은 벙커 근처에 포진하니까. 이제 영역 안으로 진입하고 있어. 준비!"

    러시아인은 속도를 내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부츠가 회색 재에 파묻혔고, 총을 들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는 잠시 멈춰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우리를 보고 있는데요." 에릭이 말했다.

     

    러시아인이 다가왔다. 두 개의 파란색 돌멩이 같은 그의 두 눈이 보였다. 살짝 벌어진 입도 보였다. 턱이 거뭇거뭇한 것이, 면도가 필요해 보였다. 툭 불거진 뺨 한쪽에는 네모난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다. 테이프의 가장자리가 푸르렀다. 진균 감염. 코트는 더러웠고 헤져 있었다. 장갑은 한쪽만 끼고 있었다. 그가 달려오자 벨트의 끝이 통통 튕기며 그의 몸을 때렸다.

    리온이 에릭의 팔을 잡았다. "저기 한 놈 온다."

    금속 소재의 작은 물체가 정오의 칙칙한 햇살에 반짝이며 벌판을 건너왔다. 금속 공. 그것은 러시아인을 쫓아 빠른 속도로 언덕을 올랐다. 크기가 작았다. 소형 중 하나였다. 그것은 집게를 내밀고 있었고 두 개의 돌출된 칼날이 빠르게 회전해 흐릿한 하얀 디스크로 보였다. 러시아인은 소리를 듣고 곧바로 몸을 돌려 총을 발사했다. 공이 산산이 분해되었다. 그러나 벌써 다음 물체가 나타나 처음의 그것을 따라가고 있었다. 러시아인은 다시 한번 총을 쐈다.

    세 번째 공이 찰칵찰칵 웅웅 소리와 함께 러시아인의 다리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어깨 위까지 올라갔다. 회전하는 칼날이 러시아인의 목 안으로 사라졌다.

    에릭은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뭐, 됐네. 맙소사, 저 망할 것들 진짜 소름 끼쳐요. 가끔은 저것들이 생기기 전이 나았던 것 같다니까요."

    "우리가 발명하지 않았다면, 저쪽이 했을 거야." 리온은 떨리는 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러시아 병사가 무슨 일로 여기까지 혼자 왔지? 엄호하는 일행이 없던데."

    스콧 중위가 터널을 기어 벙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화면에 뭔가 잡혔어."

    "러시아 병사요."

    "한 명?"

    에릭이 스크린을 돌렸다. 스콧이 들여다보았다. 목이 잘린 시체 주변으로 십 수개의 금속 공이 기어 다녔다. 거친 금속 공들은 찰칵찰칵 웅웅 소리를 내며 러시아인을 토막 내 운반했다.

    "집게들 수가 엄청난데." 스콧이 중얼거렸다.

    "파리떼같이 모여들어요. 이제 사냥감이 별로 없다 보니."

    스콧은 역겹다는 표정으로 스크린을 밀어냈다. "파리떼같이. 저 자는 저기  나와 있었던 거지? 이쪽에 집게들이 있다는 건 저들도 알잖아."

    더 큰 사이즈의 로봇 하나가 작은 공들의 모임에 합류했다. 돌출된 렌즈가 장착된 길고 뭉툭한 튜브같이 생긴 그것이 다른 집게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병사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집게들은 남은 시체의 잔해를 들고 언덕을 내려갔다.

    "대위님, " 리온이 말했다. "괜찮다면 나가서 한 번 살펴보고 싶습니다."

    "왜?"

    "어쩌면 뭔가를 가지고 왔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스콧은 잠시 고민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탭이 있으니까요." 리온은 팔목에 두른 메탈 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는 괜찮을 거예요."

     

    그는 소총을 집어 들고 부러지고 구부러진 콘크리트 덩어리와 쇠 막대를 피해 조심스럽게 벙커의 입구로 걸어갔다. 지면의 공기가 차가웠다. 그는 푹신한 재를 밟으며 남아있는 병사의 유해를 향해 땅을 가로질러 갔다. 주변에 바람이 불자 회색 입자가 얼굴 쪽으로 날아올랐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집게들이 뒤로 물러났고, 몇몇은 아예 동작을 멈추었다. 그는 탭을 매만졌다. 저 러시아인은 이게 얼마나 갖고 싶었을까! 탭에서 발산되는 짧고 강한 방사선이 집게들을 무력화해 작동을 멈추게 했다. 길쭉한 두 눈을 가진 커다란 로봇조차 그의 앞에서 얌전히 물러났다.

    그는 병사의 조각조각 난 시체 위로 허리를 숙였다. 장갑 낀 손이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안에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리온은 손가락을 열어보았다. 밀봉된 알루미늄 케이스. 아직 반짝반짝했다.

    그는 물건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벙커로 돌아왔다. 그가 지나가고 난 후의 자리에서 집게들이 다시 작동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속 공들은 각각 짐을 들고 일렬로 회색 재를 가르며 움직였다. 리온은 그것들이 땅을 밟으며 내는 마찰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주머니에서 빛나는 튜브를 꺼내는 모습을 스콧이 주시했다. "그가 가지고 있었나?"

    "손 안에요." 리온이 뚜껑을 돌려 열었다. "직접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중위님."

    스콧은 물건을 받아 들었다. 그는 손바닥 위로 튜브 속 내용물을 꺼내놓았다. 세심하게 접은 작은 실크 종이 조각이었다. 그는 조명 옆에서 접힌 종이를 펼쳤다.

    "뭐라고 적혀있나요?" 에릭이 물었다. 몇몇 병사들이 터널을 기어올라왔다. 헨드릭스 소령이 다가왔다.

    "소령님, " 스콧이 말했다. "이거 한 번 보시죠."

    헨드릭스가 종이 조각을 받아 읽었다. "지금 막 받은 거야?"

    "파병 한 명이 가져왔어요. 방금 전에."

    "어디에 있어?" 헨드릭스가 날카롭게 물었다.

    "집게들에게 당했어요."

    헨드릭스 소령이 끙 소리를 냈다. "자" 그가 동료들에게 종이를 건네주었다. "우리가 기다려온 게 바로 이거지. 참 오래도 걸렸네."

    "그러니까 이제 협상을 하고 싶다는 거죠?" 스콧이 말했다. "우리도 동의할 건가요?"

    "그건 우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헨드릭스가 앉으며 말했다. "통신병 어딨나? 달 기지랑 연결하고 싶은데."

    통신병이 벙커 위 상공에 러시아 비행선은 없는지 스캐닝하며 외부의 안테나를 조심스럽게 올리는 동안 리온은 생각에 잠겼다.

    "소령님, " 스콧이 헨드릭스를 불렀다. "갑자기 이러는 게 너무 수상한데요. 집게를 무기로 쓴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요. 그런데 이제야 한 발짝 물러나겠다니요."

    "어쩌면 집게들이 그쪽 벙커들로 침투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지."

    "큰 집게, 긴 자루 눈 달린 집게 하나가 지난주에 러시아 벙커에 들어갔어요." 에릭이 말했다. "그들이 입구를 봉쇄하기 전에 한 소대를 다 해치웠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친구가 말해줬어요. 그 집게가 남은- 남은 유해를 가지고 돌아왔다고."

    "달 기지입니다, 소령님." 통신병이 말했다.

    스크린에 달 기지의 얼굴이 등장했다. 그의 잘 다려진 말끔한 군복이 벙커 속 군복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깨끗이 면도한 얼굴이었다. "달 기지입니다."

    "전진 책임자 L-휘슬입니다. 지구입니다. 톰슨 장군과 연결해주세요."

    모니터가 어두워졌다가 톰슨 장군의 진한 이목구비에 초점이 맞춰졌다. "무슨 일인가, 소령?"

    "집게들이 메시지를 전달하러 온 러시아 병사 하나를 저격했습니다. 메시지에 응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수법을 쓴 적이 있어서요."

    "내용은?"

    "외교 권한을 가진 우리 쪽 병사 하나를 그쪽 전선으로 보내길 바란답니다. 회의를 하자고요. 회의의 성격은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말로는 문제가-" 그는 쪽지를 읽었다. "-문제가 굉장히 시급하기 때문에 UN 군 대표와 직접 소통 창구를 여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그는 장군이 읽을 수 있도록 쪽지를 스크린에 올려주었다. 톰슨의 눈이 좌우로 움직였다.

    "어떻게 할까요?" 헨드릭스가 물었다.

    "병사 한 명 보내시게."

    "함정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럴지도. 하지만 저들이 준 전방의 위치가 맞아떨어져. 적어도 시도해볼 만하다."

    "병사 한 명 보내겠습니다. 복귀하는 대로 보고하겠습니다."

    "알았네, 소령." 톰슨이 연결을 끊었다. 스크린이 꺼졌다. 지면 위에서 안테나가 서서히 내려왔다.

    헨드릭스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종이를 돌돌 말았다.

    "제가 가겠습니다." 리온이 말했다.

    "외교 권한이 있는 사람을 원하고 있어." 헨드릭스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외교 권한. 몇 달간 밖에 못 나가봤는데. 바람 좀 쐬고 오면 좋겠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헨드릭스는 렌즈를 올려 들여다보았다. 러시아 병사의 유해는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시야에 잡히는 것은 단 한 개의 집게뿐이었다. 집게는 몸을 접어 재 속으로 게처럼 숨어들었다. 아주 소름 끼치는 금속 게처럼...

    "딱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는데." 헨드릭스가 손목을 만지며 말했다. "이걸 차고 있는 동안에는 안전할 거야. 하지만 저것들에는 뭔가가 있어. 난 저것들이 혐오스러워. 애초에 발명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포기를 모르는 망할-"

    "우리가 발명하지 않았다면 러시아인들이 했을 거예요."

    헨드릭스는 렌즈를 치워버렸다. "어쨌든, 저것들이 전쟁을 이겨주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좋은 거겠지."

    "소령님도 러시아인들 만큼이나 초조해하기 시작하신 것 같군요." 헨드릭스가 손목시계를 점검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지금 바로 출발해야겠군."

     

    그는 깊은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회색 잔해의 땅으로 발을 디뎠다. 잠시 후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죽은 풍경이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평선 너머 수십 킬로미터까지 끝이 없는 재, 찌꺼기, 건물의 잔해가 이어졌다. 잎과 가지가 하나도 없는 몸통뿐인 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그의 위로는 무한한 회색의 구름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떠돌고 있었다.

    헨드릭스 소령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오른쪽으로 무언가 금속으로 된 둥근 것이 바쁘게 움직였다. 뭔가를 발견하고 호들갑을 떠는 집게였다. 아마도 쥐 같은 작은 동물을 쫓아가는 거리라. 그것들은 쥐도 사냥했다. 취미 같은 것이랄까.

    그는 작은 언덕의 꼭대기에 도착해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러시아 전방이 몇 킬로미터 앞이었다. 그곳에 그들의 전방 지휘대가 있었다. 파발꾼의 출발지였다. 물결치는 팔을 가진 앉은뱅이 로봇이 궁금한 듯 팔을 휘저으며 지나갔다. 로봇은 가다가 먼지 아래 모습을 감추었다. 헨드릭스는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처음 보는 형태의 로봇이었다. 갈수록 보지 못한 형태가 늘어나는 것 같았다. 지하 공장에서 점점 더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것들이 기어 올라왔다.

    헨드릭스는 담뱃불을 끄고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흥미로운 일이다. 전쟁에서 인공 지능을 쓴 다는 것은 말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필요에 의하여. 전쟁은 늘 시작한 쪽이 유리한 편이고 초반에는 소련도 그랬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이 폭발로 날아가고 없었다. 물론 반격도 빨랐다. 전쟁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하늘은 정찰 중인 미사일로 가득했다. 몇 년째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워싱턴 상공에 폭탄을 장착한 전투기가 도착하고 몇 시간이 채 안되어 러시아 상공도 미사일로 가득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워싱턴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국 연합정부는 첫 해에 달 기지로 이전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유럽은 멸망했다. 재와 뼈에서 짙은 잡초가 자라는 고철 더미로 전락했다. 북미대륙의 대부분이 황폐화되었다. 아무것도 심을 수 없었고, 누구도 살 수 없었다. 몇 백만 명의 사람들이 캐나다 쪽으로, 혹은 남미 대륙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둘째 해에 러시아에서 낙하산 병사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몇으로 시작해서 점점 숫자가 늘어났다. 그들은 최초로 실질적 효과가 있는 방사능 방어복을 입고 있었다.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미국의 생산사들은 정부와 함께 달로 옮겨갔다.

    남은 건 군대뿐이었다. 이쪽에 몇 천 명, 저쪽에 소대 하나. 남겨진 병사들은 최대한 잘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했다. 아무도 자기가 있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지낼 수 있는 곳에 지내고, 밤에 이동하고, 건물 잔해, 하수도, 지하 창고에 쥐와 뱀과 함께 숨어 지냈다. 전쟁은 곧 러시아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달에서 매일 발사하는 미사일 몇 대를 제외하면, 그들을 상대로 쓸 수 있는 무기가 없었다. 그들은 원하는 대로 오고 갔다. 전쟁은, 실질적으로는, 끝이 났다. 그들에게 맞설 무기가 없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집게들이 나타났다. 하룻밤 사이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 집게들은 처음에는 동작이 서툴렀다. 굼떴다. 러시아인들은 집게들이 지하 터널에서 기어 나오는 족족 부셔버렸다. 그러나 그것들은 점점 빠르게, 교묘하게 발전했다. 온 지구에 분포해 있던 공장들에서 집게를 생산했다. 깊은 지하 속 공장, 러시아 전선 너머의 공장, 한 때 핵 미사일을 만들던, 잊혀가던 공장에서도.

    집게들은 점점 빨라지고 커졌다. 새로운 종류가 등장했다. 촉수가 있는 것도 있었고, 날아다니는 것도 있었다. 몇몇은 겅중겅중 뛰어올랐다.

    달에 있는 최고의 기술자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디자인은 갈수록 섬세하고 다양해졌다. 그리고 기괴해졌다. 러시아인들은 그것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작은 집게들은 재 속을 파고들어 누워 기다리며 숨는 법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집게들이 러시아 벙커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환기를 위해 뚜껑이 열렸을 때 숨어 들어가 내부를 탐색했다. 회전하는 칼날과 쇠로 된 구형 집게 하나가 벙커 안에 들어갔다. 하나면 충분했다. 하나가 들어가자 나머지도 뒤따랐다. 그런 무기가 있는 한 전쟁은 오래갈 수 없었다.

    어쩌면 전쟁은 이미 끝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곧 그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소련이 백기를 들기로 결정했는지도. 너무 오래 걸렸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6년. 그런 전쟁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다. 수백, 수천 대의 자동 반격 무기가 러시아 전역을 굴러다녔다. 박테리아 광석들. 러시아 군이 통제하는 미사일이 빠르게 공기를 갈랐다. 연쇄 폭탄이 터졌다. 그리고 이제는 이것들까지. 로봇들, 집게들 말이다-

    집게는 다른 무기와는 달랐다. 그것들은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면 생물체로 보는 것이 맞았다. 정부에서는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말이다. 그것들은 기계라고 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회전하고, 기어 다니고, 회색 잿더미에서 갑자기 몸을 털며 일어나 사람을 향해 돌진해서는 몸을 타고 기어올라가 목을 겨누는, 살아있는 것들이었다.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것이었다. 집게의 임무.

    그것들은 임무를 아주 잘 수행했다. 특히나 새로운 디자인이 계속 만들어지는 요즘에는 말이다. 이제는 스스로 수리할 수도 있었다. 독립적 존재가 된 것이다. 방사능 탭이 UN 병사를 보호해 주었지만, 만약 병사가 탭을 잃어버린다면 그는 집게에게 사냥감이 되고 말 것이다. 입고 있는 전투복의 종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면 아래 자동 기계가 그것들을 찍어냈고, 인간들은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다. 너무 위험했다. 아무도 집게 근처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집게들은 집게들끼리 지내도록 내버려졌다. 그리고 그렇게 잘 지내는 듯 보였다. 새로운 디자인의 집게들은 더 빠르고 정교했다. 더 효율적이었다.

    아무래도 전쟁에서 이긴 건 집게들인 것 같았다.

     

    헨드릭스 소령은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우울한 풍경이었다. 재와 잔해뿐인 광경.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생명체. 오른쪽으로 마을의 잔해가 보였다. 무너진 벽과 파편 더미. 그는 쓰고 난 성냥을 던지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다 한순간 긴장하며 멈춰 서서 빠르게 총을 꺼내 들었다. 얼핏 무언가가- 무너진 건물의 뼈대 뒤에서 인물의 형체가 망설이는 듯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헨드릭스는 눈을 깜박였다. "거기 서!"

    소년은 멈춰 섰다. 헨드릭스는 총을 낮췄다. 소년은 말없이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몸집이 작고 어려 보였다. 여덟 살 정도? 확실하지는 않았다. 남아있는 아이들은 대체로 나이에 비해 작았다. 아이는 먼지가 잔뜩 묻은 빛바랜 푸른색 스웨터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길고 떡져 있었다. 갈색의 머리카락이 얼굴과 귀를 덮었다. 손에 뭔가가 들려 있었다.

    "손에 든 거 뭐야?" 헨드릭스가 날카롭게 물었다.

    소년은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장난감이었다. 곰 인형. 소년의 눈은 컸지만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헨드릭스는 긴장을 풀었다. "괜찮아. 가지고 있어."

    소년은 다시 곰 인형을 안았다.

    "어디 살아?" 헨드릭스가 물었다.

    "저기요."

    "폐허에서?"

    "네."

    "지하에?"

    "네."

    "몇 명이 살아?"

    "몇- 몇 명?"

    "몇 명이서 사냐고. 얼마나 모여 있어?"

    소년은 대답이 없었다.

    헨드릭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혼자 사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살고 있어?"

    "음식 있어요."

    "어떤 음식?"

    "여러 가지."

    헨드릭스는 그를 뜯어보았다. "몇 살이니?"

    "열세 살."

     

    불가능했다. 아닌가? 소년은 마르고 발육이 덜 되어 있었다. 아마도 불임일 것이다. 몇 년간 지속해서 방사능에 노출되었을 테고, 체구가 작은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팔다리가 가늘고 울퉁불퉁한 것이 꼭 모루 철사 같았다. 헨드릭스는 소년의 팔에 손을 댔다. 피부가 건조하고 거칠었다. 방사능에 노출된 피부. 그는 허리를 숙여 소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무표정했다. 크고 짙은 두 눈을 가지고 있었다.

    "시력을 잃었니?" 헨드릭스가 물었다.

    "아뇨. 조금은 보여요."

    "집게들에게서 어떻게 도망쳤니?"

    "집게들?"

    "둥근 물체들. 굴러다니고 땅을 파는 것들."

    "이해가 안 가요."

    어쩌면 여기엔 집게가 없는지도 모른다. 아직 괜찮은 곳이 많았다. 집게는 대체로 사람이 있는 벙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것들은 온도를 감지하도록 만들어졌다. 생명체의 온도를.

    "운이 좋았네." 헨드릭스는 허리를 펴며 말했다.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 가니? 다시- 다시 저쪽으로??"

    "따라가도 돼요?"

    "나를?" 헨드릭스는 팔짱을 꼈다. "나는 멀리 가야 해. 몇 킬로미터를 갈 거야. 서둘러야 하고." 그는 시계를 보았다. "해지기 전까지 도착해야 하거든."

    "같이 가고 싶어요."

    헨드릭스는 담배값을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그럴만한 곳이 아냐. 자." 그는 가지고 있던 식료품 캔을 그에게 던져 주었다. "이거 가지고 돌아가. 알았지?"

    소년은 말이 없었다.

    "이쪽으로 돌아올 거야. 하루 이틀 정도 후에. 그때도 여기 있으면 데려갈게. 알았지?"

    "지금 같이 가고 싶어요."

    "먼 걸음이야."

    "걸을 수 있어요."

    헨드릭스는 불편한 마음에 몸의 무게를 한쪽 발에서 다른 쪽 발로 옮겼다. 두 명이 함께 가면 타깃이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라면 발걸음이 더뎌질 것이다. 하지만 이 길로 다시 오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정말로 소년이 혼자 있는 거라면-

    "알았어. 따라와."

     

    소년은 그의 곁에 나란히 섰다. 헨드릭스는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소년은 곰 인형을 끌어안고 말없이 걸었다.

    "이름이 뭐니?" 헨드릭스가 얼마 후에 물었다.

    "데이비드 에드워드 데링."

    "데이비드?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어떻게 되셨어?"

    "죽었어요."

    "어떻게?"

    "폭발."

    "얼마 전에?"

    "육 년 전."

    헨드릭스는 속도를 늦추었다. "육 년 동안 혼자 지냈다고?"

    "아니요. 얼마 동안은 다른 사람들도 있었어요. 다들 가버렸어요."

    "그리고는 혼자 남겨진 거야?"

    "네."

    헨드릭스는 아래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말수가 적었다. 내성적이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아이들은 대체로 그랬다. 조용하고, 욕망이 없었다. 어떠한 체념 같은 것이 그들을 지배했다. 무엇에도 놀라지 않았다. 일어나는 일은 전부 받아들였다. 더 이상 기대할만한 정상적이거나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건 없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관행, 습관, 교육을 관하는 모든 힘이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동물적 경험에 의해서만 습득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너무 빠르니?" 헨드릭스가 물었다.

    "아니요."

    "날 어떻게 발견했어?"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다려?" 헨드릭스는 혼란에 빠졌다. "뭘 기다리고 있었는데?"

    "잡으려고."

    "뭘 잡으려고?"

    "먹을 것이요."

    "아." 헨드릭스는 울적하게 입술을 다물었다. 쥐, 다람쥐, 그리고 반쯤 썩은 캔 음식을 먹고사는 열세 살 소년. 폐허가 된 마을 아래 구덩이에 사는 아이. 방사능 호수와 집게들이 있고, 하늘 위로는 폭탄을 실은 러시아기가 상공을 떠도는 곳에서.

    "어디로 가요?" 데이비드가 물었다.

    "러시아 전방으로."

    "러시아?"

    "적군. 전쟁을 시작한 사람들. 처음에 핵폭탄을 터뜨린 게 그들이야. 이 모든 걸 시작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미국인이야." 헨드릭스가 말했다.

    대답이 없었다. 헨드릭스는 살짝 앞서고 데이비드는 더러운 곰 인형을 가슴팍에 꼭 끌어안은 채 따라가며, 둘은 걸음을 이어갔다.

     

    그들은 오후 네 시쯤 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길을 멈추었다. 헨드릭스는 콘크리트 벽 사이 빈 터에 불을 지폈다. 잡초를 뽑아내고 나무 조각을 쌓았다. 러시아 전선이 머지않았다. 그를 둘러싼 곳은 한 때는 긴 계곡으로, 과일나무와 포도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던 공간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메마른 그루터기 몇 개와 지평선 저 너머까지 펼쳐진 산등성이뿐이었다. 잿더미가 만든 구름이 바람을 따라 건물의 잔해, 듬성듬성 서있는 벽, 한 때는 도로였던 길 위를 떠다녔다.

    헨드릭스는 커피를 내리고 삶은 양고기와 빵을 덥혔다. "자." 그가 빵과 양고기를 데이비드에게 건넸다. 데이비드는 하얗고 울퉁불퉁한 무릎을 드러낸 채 불 곁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는 음식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다시 돌려주었다.

    "됐어요."

    "됐어? 안 먹고 싶어?"

    "네."

    헨드릭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면 소년은 특별한 음식을 섭취하는 새로운 종의 인간인지도 몰랐다. 상관없다. 배가 고파지면 알아서 먹을 걸 찾겠지. 소년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이상한 변화로 가득했다. 삶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다시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인류는 이를 받아 들아야 했다.

    "너 좋을 대로 해." 헨드릭스가 말했다. 그는 혼자 빵과 양고기를 삼키고 커피로 씻어 내렸다. 음식을 소화하기 힘들어 천천히 씹었다. 다 먹고 나서 일어나 발로 불을 비벼 껐다.

    데이비드는 애늙은이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일어났다.

    "출발하자." 헨드릭스가 말했다.

    "네."

    헨드릭스는 손에 총을 들고 걸어갔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그는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어떤 일에도 마음의 준비를 하려 노력하며 긴장했다. 러시아인들은 아마도 그들이 보낸 파병에 답하는 이쪽의 파병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동시에 그들은 교활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일이 잘못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콘크리트 더미, 재, 언덕, 불에 타고 남은 나무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드문드문 서 있는 콘크리트 벽. 하지만 저 너머 어딘가에 러시아의 최전방 벙커이자 전장 지휘대가 있었다. 잠망경의 렌즈와 총구 몇 대만 드러낸 채 지하 깊은 곳에 숨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안테나도.

    "다 와가요?" 데이비드가 물었다.

    "응. 힘드니?"

    "아니요."

    "그럼 왜?"

    데이비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잿더미 위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며 따라왔다. 그의 다리와 신발은 회색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수척한 얼굴의 창백한 피부 위로는 회색 재가 물결무늬 선을 그렸다. 얼굴에 핏기 하나 없었다. 창고, 하수도, 그리고 지하 방공호에서 자란 어린이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헨드릭스는 속도를 늦추고 망원경을 들어 앞에 펼쳐진 땅을 들여다보았다. 저기 어딘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들이 러시아 군인을 지켜봤던 것처럼 저쪽도 지금 나를 지켜보고 있을까?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어쩌면 그들은 그의 병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장전한 총을 들고 언제든 필요하면 그를 죽이려고 대기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헨드릭스는 멈추어 서서 얼굴의 땀을 닦았다. "젠장." 긴장되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가 올 걸 기다리고 있다. 지난번과는 상황이 다르다.

    그는 양 손으로 총을 힘껏 잡고 잿더미 위를 걸어갔다. 데이비드가 그를 뒤쫓았다. 헨드릭스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 일이 터질지 몰랐다. 어느 순간에 깊숙이 숨겨진 콘크리트 벙커 안에서 잘 조준한 백색 섬광이 번쩍이며 날아올지.

    그는 한쪽 팔을 들어 둥글게 원을 그렸다.

    움직임이 없었다. 그의 오른쪽으로는 죽은 나무 그루터기가 늘어선 긴 언덕이 있었다. 야생 넝쿨이 나무 위로 자랐다. 한때는 나무 그늘이 드리웠을 산책로의 흔적. 그리고 무한히 늘어선 거뭇한 잡초들. 헨드릭스는 언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저 위에 뭔가 있는 걸까? 망을 보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그는 조심스럽게 언덕을 향해 걸었다. 데이비드가 말없이 그를 따라왔다. 그러면 저 위에 보초를 세워 그들의 영역에 침입하는 군을 감시하도록 했을 것이다. 물론, 이곳이 그의 지휘장이었다면 주변에 방호용 집게가 가득했겠지.

    그는 양 손을 허리에 얹고 다리를 크게 벌려 섰다.

    "도착했어요?" 데이비드가 물었다.

    "거의."

    "왜 멈춘 거예요?"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서." 헨드릭스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언덕은 그의 오른쪽 바로 옆에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그 위에 러시아 병사가 있다면 그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다시 한번 팔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그들은 캡슐 편지에 화답하는 UN 유니폼을 입은 병사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함정이 아니라면.

    "내 뒤에 바짝 따라붙어." 그가 데이비드를 돌아보았다. "뒤처지지 마."

    "뒤에?"

    "내 바로 옆에! 거의 다 왔어. 실수하면 안 돼. 어서."

    "나는 괜찮아요." 데이비드는 여전히 곰 인형을 끌어안고 몇 걸음 뒤에 머물렀다.

    "너 좋을 대로 해." 헨드릭스는 순간 긴장하며 망원경을 들어 올렸다. 잠깐- 뭔가 움직였나? 그는 언덕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사방이 조용했다. 죽어있었다. 저 위에는 아무런 생명체도 없다. 축은 나무 그루터기와 재뿐. 쥐 몇 마리 정도는 있을지도. 아직 집게에 잡히지 않은 커다란 검은 쥐. 새로운 종이다. 쥐들은 재와 침을 이용해 스스로 집을 지었다. 회반죽 같은 소재로. 적응의 모습. 그는 다시 움직였다.

     

    위쪽 언덕에서 키가 큰 형체가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나타났다. 회녹색 코트. 러시아 병사다. 그의 뒤로 두 번째 병사, 또 한 명의 러시아인이 등장했다. 둘 다 총을 들어 그에게 겨누었다.

    헨드릭스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가 입을 열었다. 두 병사는 무릎을 꿇고 언덕면 아래를 겨누고 있었다. 세 번째 인물이 그들 옆 언덕 꼭대기에 나타났다. 역시나 회녹색 빛의 옷을 입은 조금 더 작은 체구였다. 여자. 그는 앞선 둘 뒤에 섰다.

    헨드릭스는 겨우 입을 뗐다. "잠깐!" 그가 그들을 향해 미친 듯이 손을 흔들었다. "나는-"

    러시아 병사 둘이 총을 발사했다. 헨드릭스 뒤로 희미하게 펑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뜨거운 바람이 날아와 그를 바닥으로 때려눕혔다. 날아오른 재가 그의 얼굴을 때리며 눈과 코로 들어갔다. 그는 콜록대며 무릎으로 일어섰다. 함정이다. 그는 이제 죽은 목숨이었다. 그는 이곳에 제물처럼 죽기 위해 바쳐진 것이다. 병사들이 부드러운 재를 타고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와 그에게 왔다. 헨드릭스는 멍했다. 머리가 얼얼했다. 그는 어색하게 몸을 일으켜 총을 겨누었다. 총이 마치 천 톤처럼 느껴졌다. 손에 제대로 쥐기도 어려웠다. 코와 뺨이 따끔거렸다. 발사된 총탄의 코를 찌르는 탄내가 사방에 가득했다.

    "쏘지 말아요." 첫 번째 러시아인이 억양이 강한 영어로 말했다.

    러시아인 셋이 그에게 다가와 그를 둘러싸고 섰다. "양키, 총 내려." 다른 병사가 말했다. 헨드릭스는 멍했다. 모든 일이 너무 빠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붙잡힌 것이다. 그들은 소년을 쏘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데이비드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잔해가 땅에 흩어져 있었다.

    러시아인 셋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뜯어보았다. 헨드릭스는 앉아서 코피를 닦고 몸에 붙은 재를 떼어냈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정신을 차리려 했다. "왜 그랬어요?" 그가 웅얼거리며 물었다.

    "저 소년."

    "왜요?" 병사 하나가 그를 부축해 일으켜 주었다. 그가 헨드릭스를 돌려 뒤로 보게 했다.

    "봐요."

    헨드릭스는 눈을 감았다.

    "보라니까!" 러시아인 둘이 그를 앞으로 잡아당겼다. "자. 어서. 양키, 시간이 없어!"

    헨드릭스가 눈을 떴다. 그리고 놀라 숨이 넘어갈 뻔했다.

    "알겠어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데이비드의 유해에서 금속 바퀴가 굴러 나왔다. 빛나는 금속 재질의 릴레이. 부품, 와이어. 러시아인 한 명이 잔해 더미를 발로 찼다. 바퀴, 용수철, 그리고 막대 같은 부품들이 튀어나와 굴러갔다. 반쯤 불에 탄 플라스틱 조각이 떨어졌다. 헨드릭스는 떨리는 몸을 굽혔다. 데이비드의 머리 앞쪽이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그는 복잡하게 생긴 뇌를 찾아낼 수 있었다. 와이어, 릴레이, 작은 튜브와 스위치, 수천 개의 미세 못들이 뒤엉킨-

    "기계예요." 그의 팔을 잡아주던 병사가 말했다. "당신에게 따라붙은 걸 봤어요."

    "따라붙어요?"

    "그게 그들 방식이에요. 그렇게 따라붙죠. 벙커 안으로. 그렇게 들어오는 거예요."

    헨드릭스는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이쪽으로." 그들은 그를 언덕 쪽으로 이끌었다.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위험해. 이 주변으로 수 백이 모여들었을 거예요."

    셋은 재 위에서 미끄러지고 비틀거리며 언덕 한 편으로 그를 끌어올렸다. 여자는 언덕 꼭대기에 먼저 올라 그들을 기다렸다.

    "최전방 지휘대." 헨드릭스는 중얼거렸다. "저는 소련군과 협상을 하러-"

    "이제 최전방 지휘대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들이 침투했거든. 이따 설명할게요." 그들은 언덕 꼭대기에 다다랐다. "남은 건 우리뿐이에요. 우리 셋. 나머지는 벙커에 있었거든요."

    "이쪽으로. 이쪽으로 내려와요." 여자가 바닥에 있는 회색 맨홀 뚜껑의 나사를 풀어 열었다. "들어가요."

    헨드릭스는 몸을 굽혀 내려갔다. 그의 뒤로 병사 둘과 여자가 뒤따라 사다리를 내려왔다. 여자는 뚜껑을 닫고 나사를 돌려 잠갔다.

    "우리가 발견해서 다행이지." 두 병사 중 하나가 말했다. "그건 당신에게 끝까지 따라붙었을 거예요."

     

    "담배 한 대만 줘요." 여자가 말했다. "미국 담배 못 핀 지 몇 주가 됐어."

    헨드릭스는 담뱃갑을 여자에게 내밀었다. 그는 한 개비를 꺼내고는 담뱃갑을 나머지 둘에게 건넸다. 작은 방 한 구석에서 조명이 깜빡이며 빛났다. 천장은 낮고, 방은 좁았다. 방 한편에 더러운 접시 몇 개가 쌓여있었다. 낡은 커튼 뒤로 두 번째 방이 반쯤 보였다. 간이침대의 한쪽 귀퉁이와 담요 몇 장, 그리고 옷걸이에 걸린 옷가지가 보였다.

    "우리는 여기 있었거든요." 뒤에 서 있던 병사가 말했다. 그는 헬멧을 벗고 드러난 금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저는 루디 맥서 하위입니다. 폴란드에서 왔어요. 이년 전에 소련 군에 징용되었죠." 그가 손을 내밀었다.

    헨드릭스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손을 잡았다.

    "클라우스 엡스타인입니다." 다른 병사도 그의 손을 청했다. 머리숱이 적은, 체구가 작고 피부가 짙은 사내였다. 엡스타인은 긴장한 듯 귀를 잡아당겼다. "오스트리아 사람입니다. 징용된지는 언제인지도 모르겠네요. 기억이 안 나요. 저와 루디는 타쏘와 함께, 여기에 셋이 같이 있었어요." 그가 여자를 가리켰다.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죠. 나머지는 벙커에 있었죠."

    "그- 그것들이 침투한 건가요?"

    엡스타인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하나였죠. 당신에게 따라붙은 것과 같은 유형이었어요. 그것이 다른 것들에게 문을 열어줬어요."

    헨드릭스는 눈이 번쩍 뜨며 말했다. "유형? 여러 유형이 있다는 말입니까?"

    "어린 소년이요. 데이비드. 곰인형을 든 데이비드. 그게 세 번째 유형이에요. 가장 효과적이죠."

    "다른 유형은 어떤 것들이 있죠?"

    엡스타인은 코트 주머니를 뒤적였다. "여기." 그가 끈으로 묶은 사진 꾸러미를 테이블 위로 던졌다. "직접 보시죠."

    헨드릭스는 끈을 풀어냈다.

    "이제, " 루디 맥서가 말했다. "우리가 어째서 휴전을 원했는지 알겠죠. 러시아군 말이에요. 일주일 정도 되었어요. 당신네 집게들이 새로운 유형의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낸 지. 스스로 창조해낸 유형이죠. 더 뛰어난 유형이고. 우리 전선 뒤에 위치한 당신들의 지하 공장에서. 당신들은 집게들이 스스로 창조해내고, 개조할 수 있게끔 두었죠. 갈수록 더 정교해지도록. 이 모든 건 당신들 책임이에요."

     

    헨드릭스는 사진을 살펴보았다. 급하게 찍은 사진들이었다. 초점이 나가고 흔들려 있었다. 처음 몇 장은 데이비드가 찍혀있었다. 혼자 길을 걷는 데이비드. 데이비드와 다른 데이비드. 세 명의 데이비드. 모두 똑같이 생긴 데이비드. 각각 곰인형을 들고.

    불쌍한 모습으로.

    "다른 사진도 보세요." 타쏘가 말했다.

    다음 사진은 아주 원거리에서 찍은 것으로 부상을 입은 병사가 붕대 감은 팔을 어깨에 메고, 잘려나간 한쪽 다리를 편 채 허접한 목발을 무릎에 올리고 길가에 앉아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두 명의 부상 입은 병사가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 나란히 서 있는 사진도 있었다.

    "첫 번째 유형이에요. 부상 입은 병사." 클라우스가 손을 뻗어 사진을 집어 들었다. "알다시피, 집게들은 인간에게 접근하기 좋게 제작되었어요. 인간을 찾아내기 위해. 유형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성과가 좋아졌죠. 점점 더 깊숙이, 더 가까이, 우리의 방어막 대부분을 뚫고 침투해 왔어요. 하지만 어쨌든 간에 집게들이 집게와 뿔과 촉수로 만들어진 금속 구체 형태의 기계인 이상, 다른 물건과 마찬가지로 쏘아버리기 쉬웠죠. 눈에 띄는 순간 바로 살인 병기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어요. 우리가 그것들을 일단 발견해낸다면-"

    "첫 번째 유형이 북쪽 구역을 완전히 파괴해버렸어요." 루디가 말했다. "누군가 눈치채기까지 한참이 걸렸죠. 마침내 알아차렸을 땐, 이미 너무 늦었어요. 부상당한 병사들은 다가와서 문을 두드리며 제발 들여보내 달라고 빌었어요. 그래서 들여보내 주었죠. 그것들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공격을 시작했어요. 우리가 경계하던 건 기계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한 가지 유형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죠." 클라우스 엡스타인이 말했다. "다른 유형도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어요. 사진이 속보로 왔죠. 파병을 보냈을 때는 한 가지 유형만 알고 있을 때에요. 첫 번째 유형. 위대한 부상당한 병사. 그게 다인 줄 알았죠."

    "그럼 당신들 전선이 무너진 건-"

    "세 번째 유형이었어요. 곰인형을 든 데이비드. 심지어 더 효과적이었죠." 클라우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병사들은 아이라면 맥을 못 추니까. 우리는 데이비드를 데려와 음식을 주려고 했죠. 그렇게 그것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뭐, 적어도 그때 벙커에 있던 사람들은 말이죠."

    "우리 셋은 운이 좋았어요." 루디가 말했다. "클라우스와 나는 그 일이 벌어졌을 때 타쏘를 방문하고 있었어요. 여기가 타쏘의 거주지거든요." 그가 큰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이 작은 지하실 말이에요. 우리는 방문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려고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언덕에서 목격했죠. 그것들이 벙커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을. 한창 싸움이 진행되는 중이었어요. 곰인형을 든 데이비드 수 백 개가 몰려들어서. 사진은 클라우스가 찍었어요."

    클라우스는 사진을 다시 동여맸다.

     

    "같은 일이 이쪽 전선 전체에서 일어난 건가요?" 헨드릭스가 물었다.

    "네."

    "그렇다면 우리 쪽은?" 그는 무의식적으로 팔에 달린 탭을 만졌다. "그것들은-"

    "그 방사능 탭도 소용이 없어요. 러시아인이건 미국인이건 폴란드인이건 독일인이건, 그것들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죠.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집게들은 원래 만들어진 목적대로 행동할 뿐이에요. 태초에 주입된 생각을 실행하는 거죠. 생명을 찾아낸다. 어디에 있건."

    "열추적이에요." 클라우스가 말했다. "당신들이 처음에 제작한 바로 그 방식이죠. 물론 당신들이 만들었을 땐 손목의 그 방사능 탭으로 막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 본 이것들은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아요. 새로운 유형은 안쪽이 납으로 덧대여 있거든요."

    "나머지 한 유형은 뭐죠?" 헨드릭스가 물었다. "데이비드, 부상당한 병사- 그리고 남은 하나는?"

    "우리도 몰라요." 클라우스가 벽 위쪽을 가리켰다. 벽에는 모서리가 헤진 철판 두 개가 걸려있었다. 헨드릭스는 몸을 일으켜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철판은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흠집이 나 있었다.

    "왼쪽이 부상당한 병사에게서 나온 거예요, " 루디가 말했다. "한 대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거든요. 이전 벙커를 향해 가고 있었죠. 당신에게 따라붙은 데이비드를 잡은 방식 그대로 저 언덕에서 잡았어요."

    철판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었다: I-V. 헨드릭스는 나머지 철판을 매만졌다. "그리고 이게 데이비드 유형에서 나온 거고요?"

    "네." 철판에는 III-V라고 새겨져 있었다.

    클라우스는 헨드릭스의 넓은 어깨너머로 철판을 들여다보았다. "이제 우리의 상대가 어떤 건지 알겠죠. 유형이 하나 더 있어요. 어쩌면 사용하지 않기로 했는지도 모르죠.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하지만 두 번째 유형이 있는 건 분명해요. 첫 번째와 세 번째가 있으니까."

    "당신은 운이 좋았어요." 루디가 말했다. "당신을 따라온 데이비드는 당신의 손 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당신이 어딘가의 벙커로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겠죠."

    "한 개가 들어오는 순간 게임 끝이에요." 클라우스가 말했다. "집게들은 아주 신속하게 움직이죠. 진입한 하나가 다른 것들을 들여보내요. 융통성이라고는 없어요. 단 하나의 목적을 지닌 기계들이니까. 단 하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는 입술에 흐른 땀을 닦았다. "우리는 봤어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양키, 담배 한 대만 더 줘요." 타쏘가 말했다. "확실히 맛있네. 얼마나 맛있는지 잊고 있었어."

     

    밤이 되었다. 하늘이 새카맸다. 굴러다니는 재구름을 뚫고 보이는 별은 없었다. 클라우스는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 헨드릭스가 밖을 내다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루디가 암흑 속을 가리켰다. "저쪽에 벙커가 있어요. 우리가 원래 있던 곳이죠. 여기서 1 킬로미터도 되지 않아요. 그 일이 벌어졌을 때 저와 클라우스가 거기 없었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나약함 때문에. 욕망이 우리를 살린 거죠."

    "나머지 병사들은 모두 죽었을 거예요." 클라우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순식간이었죠. 오늘 아침에 공산당 정치국이 결정을 내렸어요. 부대에 명령을 내렸죠. 바로 파병을 보냈어요. 그가 당신들 전선으로 출발하는 걸 봤어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엄호했죠."

    "알렉스 라드리브스키라는 자였어요. 우리 둘 다 아는 사이였죠. 여섯 시쯤 시야에서 사라졌어요. 동이 튼 직후였어요. 클라우스와 저는 정오 즈음에 한 시간 정도 휴식 시간을 가졌어요. 우리는 벙커에서 몰래 기어 나왔어요.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여기로 왔어요. 여기는 원래 마을이 있던 곳이에요. 집 몇 채랑, 거리 하나. 이 지하실은 큰 농가의 일부였어요. 타쏘가 이곳의 작은 은식처에 있을 거라는 걸 알았죠. 예전에도 왔었거든요. 벙커의 다른 병사들도 여기를 찾아오곤 했어요. 그날은 마침 우리 차례였을 뿐이에요."

    "우릴 살린 건, " 클라우스가 말했다. "우연이예요. 살아남은 건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었어요. 우리는, 그러니까, 일을 끝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와 다시 언덕을 따라 돌아가고 있었어요. 그때 보았어요. 데이비드들을. 보자마자 알아차렸어요. 첫 번째 유형인 부상당한 병사 사진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코미사르가 우리에게 사진을 나눠주며 알려주었죠. 한 발짝이라도 더 갔으면 우리는 발각됐을 거예요. 다시 돌아오기 위해 데이비드 둘을 쏴야 했어요. 수백 개가 사방에 줄지어 있었거든요. 마치 개미 떼 같았어요. 우리는 사진을 찍은 다음에 다시 이곳으로 몰래 돌아와 뚜껑을 굳게 잠갔죠."

    "집게는 하나만 있을 때는 별 거 아니에요. 우리가 그들보다 빠르거든요. 하지만 그것들은 집요해요. 살아있는 생명체와는 다르죠. 그들은 우리를 향해 돌진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쏴버렸죠."

    헨드릭스 소령은 뚜껑의 가장자리에 기대 쉬며,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뚜껑을 열어도 괜찮긴 한가요?"

    "조심하면 괜찮아요. 그렇지 않으면 송신기를 어떻게 작동하겠어요?"

    헨드릭스는 느린 동작으로 작은 벨트형 송신기를 들어 올려 귀에 갖다 댔다. 차갑고 축축한 금속이 피부에 느껴졌다. 그는 마이크를 한 번 훅 불고는 안테나를 올렸다. 귀에 희미한 윙윙 소리가 들렸다. "맞는 말이네요."

    하지만 그는 여전히 머뭇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바로 아래로 잡아 내릴게요." 클라우스가 말했다.

    "고마워요." 헨드릭스는 잠시 송신기를 어깨에 대고 기다렸다.

    "흥미롭군요, 안 그래요?"

    "뭐가요?"

    "이것들. 새로운 유형들이요. 새로운 종류의 집게들. 우리는 완전히 그들의 지배 하에 있잖아요, 안 그래요? 아마 지금 쯤이면 집게들은 UN 전선까지도 나아갔겠죠. 어쩌면 우리가 새로운 종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래의 종. 진화. 인류를 대체할 종."

     

    루디가 중얼거렸다. "인류를 대체할 종은 없어요."

    "없다고? 왜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인간의 종말과 새로운 사회의 탄생을."

    "저것들은 새로운 생명체가 아니에요. 그저 살생 기계일 뿐이죠. 파괴를 위해 만들어진.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에요. 하나의 목적을 가진 기계인 뿐이라고요."

    "지금은 그렇게 보이겠죠. 하지만 나중에는요? 전쟁이 끝나고 나서 말이에요. 어쩌면, 더 이상 파괴할 인간이 한 명도 남지 않았을 때, 저들의 진짜 잠재력이 드러날지도 모르죠."

    "마치 저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얘기하는군요!"

    "아닌가요?"

    침묵이 흘렀다. "저것들은 기계예요." 루디가 말했다. "사람처럼 생겼지만, 기계일 뿐이에요."

    "소령님, 송신기를 사용하시죠." 클라우스가 말했다. "여기 계속 머무를 수는 없어요."

    헨드릭스는 송신기를 손에 꽉 쥔 채 지휘대 벙커의 코드를 눌렀다. 그는 송신음을 들으며 기다렸다. 답변이 없었다. 돌아오는 소리는 침묵뿐이었다. 그는 전선을 꼼꼼하게 살폈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었다.

    "스콧!" 그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내 목소리 들리나?"

    침묵. 그는 음량을 최대로 높이고 다시 시도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잡음뿐이었다.

    "신호가 없네요. 내 소리는 들리지만 답을 하기 싫은 것일 수도 있어요."

    "비상사태라고 전해요."

    "그러면 내가 협박을 받고 연락했다고 생각할 거예요. 당신들 명령에 따라." 그는 자신이 여기서 보고 들은 바를 간략히 전하며 다시 한번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송신기에서는 옅은 잡음 소리 외에 다른 반응이 들려오지 않았다.

    "방사능이 대부분의 전파를 방해예요." 클라우스가 잠시 후에 말했다. "어쩌면 그게 원인인지도 몰라요."

    헨드릭스는 송신기를 껐다. "소용없어요. 답이 없네요. 방사능 때문에? 그럴지도. 아니면 내 소리는 들리지만 답하지 않기로 결정했을지도. 솔직히 나라면 그렇게 했을 거예요. 우리가 보낸 파병이 소련 전방에서 연락을 했다면 말이죠. 그런 이야기를 믿을 이유가 없으니까. 내 말이 들려도-"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죠."

    헨드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뚜껑을 닫죠." 루디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쓸데없이 위험을 자초하지는 말자고요."

     

    그들은 천천히 터널을 기어 내려왔다. 클라우스는 조심스럽게 뚜껑의 나사를 조였다. 그들은 주방으로 내려왔다. 주변을 둘러싼 공기가 무겁고 답답했다.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었을까요?" 헨드릭스가 물었다. "내가 벙커를 떠난 게 정오였어요. 고작 열 시간 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지?"

    "그것들이 착수하는 데는 얼마 안 걸려요. 첫 번째 집게가 일단 침투하면 말이죠. 난장판이 벌어져요. 작은 집게들이 어떤지 알잖아요. 단 하나의 집게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하죠. 손가락 하나하나에 달린 톱날. 광기예요."

    "알겠어요." 헨드릭스는 조바심을 내며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는 등을 돌리고 섰다.

    "왜 그래요?" 루디가 물었다.

    "달 기지. 세상에, 만약 저것들이 거기까지 갔다면-"

    "달 기지?"

    헨드릭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달 기지까지는 가지 못했을 거예요. 어떻게 거기까지 갈 수 있겠어요? 그건 불가능해. 그런 일은 믿을 수 없어요."

    "달 기지가 대체 뭐죠? 소문은 들었는데, 정확히 아는 바는 없어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요? 걱정하는 듯 보이는군요."

    "우리는 달에서 물자를 공급받아요. 정부 기관이 모두 거기에 있죠. 달의 표면 아래. 사람도 산업도. 그래서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거예요. 만약 집게들이 지구를 떠나 달로 가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딱 하나만 성공하면 끝장나는 거예요. 하나가 침입하는 순간 나머지를 들여보내죠. 수백 개의 똑같이 생긴 것들이. 그 광경을 봐야 해요. 똑같이 생긴 것들이 개미 떼 같이 우글대는 모습을."

    "완벽한 사회주의죠." 타쏘가 말했다. "공산주의 국가의 이상적 모습이에요. 모든 시민이 교체 가능한."

    클라우스가 화를 내며 중얼거렸다. "그만하면 됐어.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헨드릭스는 작은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걸었다. 공기에 음식과 땀 냄새가 진동했다. 나머지는 그런 그를 지켜보았다. 타쏘는 커튼을 들추고 다른 방으로 갔다. "낮잠을 좀 자야겠어."

    그의 뒤로 커튼이 닫혔다. 루디와 클라우스는 테이블에 앉아 계속해서 헨드릭스를 바라보았다.

    "당신에게 달려있어요." 클라우스가 말했다. "우리는 그쪽이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까."

    헨드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예요." 루디는 녹슨 주전자에서 자신의 컵으로 커피를 따라 마셨다. "당분간 여기 머물면 안전하겠지만, 영원히 있을 수는 없어요. 음식도 물자도 충분하지 않아요."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밖으로 나가면 저것들이 우리를 잡으러 오겠죠. 아니 잡으러 올 수도 있죠. 멀리 가지는 못할 거예요. 소령님, 당신 쪽 지휘대의 벙커는 얼마나 떨어져 있죠?"

    "5-6 킬로미터 정도 되어요."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어요. 네 명이라면. 네 명이서 사방을 엄호하는 거예요. 우리 뒤에서 몰래 쫓아와 달라붙지는 못하겠죠. 우리에게 총이 세 대 있어요. 폭약 총이죠. 타쏘는 제 권총을 쓰면 되고요." 루디가 벨트를 두드렸다. "소련군은 신발은 없어도 총은 늘 지니고 있어요. 우리 넷 다 무기를 들고 출발하면 적어도 우리 중 하나는 당신네 벙커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가능하면 그게 당신인 게 가장 좋겠죠, 소령."

    "그것들이 이미 거기 있다면?" 클라우스가 물었다.

    루디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그러면 다시 여기로 돌아와야겠지."

     

    헨드릭스는 걷기를 멈추었다. "그것들이 벌써 미국 전방에 침투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음, 어려운데요. 꽤 되겠죠. 저들은 체계적으로 움직여요.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죠. 목표물이 잡히면 메뚜기 떼처럼 달려들어요. 빠르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해요. 은둔과 속도가 바로 저들의 무기니까. 기습적으로 공격해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때 이미 침투가 시작되죠."

    "그렇군요." 헨드릭스가 중얼거렸다.

    저쪽 방에서 타쏘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소령?"

    헨드릭스가 커튼을 젖혔다. "네?"

    타쏘는 간이침대에 여유롭게 누워 그를 올려다보았다. "미국 담배 남은 거 있어요?"

    헨드릭스는 방으로 들어가 그의 맞은편 나무 스툴에 앉았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아뇨. 다 펴버렸네요."

    "아쉽네요."

    "국적이 어떻게 돼요?" 헨드릭스가 잠시 후에 물었다.

    "러시아인이에요."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됐죠?"

    "여기?"

    "여기는 원래 프랑스가 있던 자리였어요. 노르망디 지역의 일부였죠. 소련군과 함께 왔나요?"

    "왜 묻죠?"

    "그냥 궁금해서요." 헨드릭스는 타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타쏘는 코트를 벗어 간이침대 끝에 던졌다.

    그는 스무 살 정도로 어려 보였다. 날씬했다. 긴 머리가 침대 위에 펼쳐져 있었다. 그는 짙고 큰 두 눈으로 말없이 헨드릭스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해요?" 타쏘가 말했다.

    "아무것도. 나이가 어떻게 되죠?"

    "열여덟." 타쏘는 계속해서 그를 관찰했다. 양 팔로 팔베개를 한 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러시아 군용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녹회색. 방사능 측정기와 카트리지가 달린 두꺼운 가죽 벨트. 의료 키트.

    "소련 군 소속인가요?"

    "아뇨."

    "그 군복은 어디서 났어요?"

    타쏘는 어깨를 으쓱했다. "받았어요." 그가 대답했다.

    "여기- 여기 왔을 때는 몇 살이었어요?"

    "열여섯."

    "그렇게 어릴 때?"

    타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뜻이죠?"

     

    헨드릭스는 손으로 턱을 비볐다. "전쟁이 없었다면 당신 인생이 많이 달랐을 거란 뜻이죠. 열여섯이라니. 열여섯에 이 곳에 왔다고요. 이렇게 살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으니까요."

    "판단하려는 게 아니에요."

    "당신 인생도 달라졌을 건 매한가지예요." 타쏘가 중얼거렸다. 그는 몸을 숙여 한쪽 부츠 끈을 풀고는 발로 차 바닥에 벗어던졌다. "소령, 저쪽 방으로 가줄래요? 졸리네요."

    "결국 문제가 생길 거예요. 우리 넷이 여기 머무르면. 이 작은 공간에서 살기는 힘들 거예요. 이 두 방이 전부예요?"

    "네."

    "원래 지하실은 얼마나 컸어요? 여기보다는 컸나요? 잔해에 덮인 다른 방도 있나요? 그중 하나를 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럴지도. 잘 모르겠어요." 타쏘는 벨트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고 간이침대에 편한 자세로 자리 잡으며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담배 더 없는 거 확실해요?"

    "그 한 갑이 마지막이었어요."

    "안됐네요. 당신 쪽 벙커에 가게 되면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나머지 한쪽 부츠가 벗겨졌다. 타쏘는 조명의 스위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잘 자요."

    "잘 거예요?"

    "네."

    방이 어두워졌다. 헨드릭스는 일어나 커튼을 지나 부엌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루디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벽에 붙어 서 있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닫혔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클라우스가 그의 앞에 서서 루디의 배에 권총의 총구를 대고 있었다. 둘 다 움직임이 없었다. 클라우스는 굳은 표정으로 총을 꽉 쥐고 있었다. 루디는 창백한 얼굴로 말없이 양 팔을 벌린 채 벽에 기대서 있었다.

    "무슨-" 헨드릭스가 입을 열었지만 클라우스가 그의 말을 잘랐다.

    "조용히 해요, 소령님. 이쪽으로 와요. 총. 총 꺼내 들고."

    헨드릭스가 총을 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이 자를 주시해요." 클라우스가 그에게 앞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제 옆에서. 어서요!"

    루디가 팔을 내리며 약간 움직였다. 그는 입술을 적시며 헨드릭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눈의 흰자가 광인처럼 빛났다. 이마에서 땀이 떨어져 뺨을 타고 흘렀다. 그는 헨드릭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소령, 클라우스가 제대로 미쳤어요. 좀 막아주세요." 루디의 목소리는 가늘고 쉬어있어 겨우 들릴 정도였다.

    "이게 무슨 일이죠?" 헨드릭스가 물었다.

    클라우스는 총을 겨눈 채 대답했다. "소령, 아까 우리가 했던 얘기 기억해요? 세 가지 유형에 관한? 첫 번째와 세 번째 형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고 했죠. 하지만 두 번째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죠.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에요." 클라우스의 손가락이 권총의 손잡이를 감쌌다.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 알게 된 거예요."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총에서 흰색 불덩이가 굴러 나와 루디를 강타했다.

    "소령, 이 자가 바로 두 번째 유형이에요."

     

    타쏘가 커튼을 젖히며 들어왔다. "클라우스! 무슨 짓이야?"

    클라우스는 바닥으로 점점 내려앉는 검게 탄 형체에게서 등을 돌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두 번째 유형이야, 타쏘. 드디어 알게 된 거야. 세 가지 유형 모두를 발견한 거야. 조금 덜 위험해졌어. 난-"

    타쏘는 클라우스 너머에 있는 한 때는 루디였던 형체를 바라보았다. 검은 숯이 되어 피어오르는 조각들과 옷가지. "그를 죽였어."

    "그를? 그것이라고 해야 맞지. 눈여겨보고 있었어. 이상한 느낌은 받았지만, 확신이 없었거든. 그러니까, 이전까지는. 하지만 오늘 저녁에 확신이 들었어." 클라우스는 긴장해서 권총의 총구를 비볐다. "운이 좋았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한 시간만 늦었어도-"

    "확신이 들었다고?" 타쏘는 그를 밀치고 몸을 굽혀 연기가 피어오르는 바닥의 흔적을 내려다보았다. "소령, 직접 와서 보세요. 뼈. 살."

    헨드릭스도 그의 옆에서 몸을 구부렸다. 인간의 잔해였다. 화상을 입은 살점, 숯이 된 뼛조각, 해골의 일부. 인대, 내장, 피. 벽 옆에 고여가는 피 웅덩이.

    "바퀴가 아니야." 타쏘가 차분하게 말하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바퀴도, 부품도, 릴레이도 없어. 집게 하나 없다고. 두 번째 유형이 아니야." 그는 팔짱을 꼈다. "제대로 해명해야 할 거야."

    클라우스는 급격히 창백해진 얼굴로 식탁 앞에 앉았다. 그는 손에 얼굴을 파묻고 앞뒤로 몸을 흔들었다.

    "정신 차려." 타쏘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왜 그랬어? 왜 죽인 거야?"

    "겁이 났어." 헨드릭스가 말했다.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난, 이 모든 일에."

    "그런지도 모르지."

    "모르지? 그러면 왜일 거라 생각하는데요?"

    "루디를 죽일만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아주 좋은 이유 말이죠."

    "무슨 이유?"

    "루디가 뭔가를 알아냈는지도 모르죠."

    헨드릭스는 타쏘의 무표정한 얼굴을 뜯어보았다. "무엇을?" 그가 물었다.

    "자신에 대해서. 클라우스에 대해서 말이에요."

     

    클라우스는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타쏘가 무슨 말하려는지 알겠죠. 제가 두 번째 유형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소령? 이제는 소령이 내가 일부러 그를 죽인 거라고 믿게 하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럼 왜 죽였는데?" 타쏘가 말했다.

    "말했잖아." 클라우스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집게인 줄 알았어. 확실하다고 생각했어."

    "왜?"

    "그를 관찰하고 있었어. 의심했거든."

    "왜?"

    "뭔가를 봤다고 생각했어. 뭔가를 들었다고. 나는-" 그는 말을 멈추었다.

    "계속 해."

    "우리는 식탁에 앉아서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어. 둘이 다른 방에 있는 동안. 고요했어. 그때 그가 내는- 기계음을 들은 것 같았어."

    침묵이 흘렀다.

    "이 말이 믿어져요?" 타쏘가 헨드릭스에게 물었다.

    "네. 믿어지네요."

    "저는 못 믿겠어요. 저는 클라우스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루디를 죽였다고 생각해요." 타쏘는 방 한 구석에 세워져 있던 장총에 손을 댔다. "소령-"

    "안돼요." 헨드릭스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그만 하죠. 한 명으로 충분해요. 클라우스가 그랬듯, 우리도 겁을 먹은 거예요. 지금 그를 죽이면 그가 루디를 죽인 것과 같은 짓을 하는 거예요."

    클라우스는 다행스럽다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고마워요. 저는 겁을 먹었을 뿐이에요. 이해하죠, 그렇죠? 이제는 타쏘가 제가 그랬던 것처럼 겁을 먹은 거예요. 저를 죽이고 싶어 해요."

    "더 이상의 살인은 없어야 해요." 헨드릭스는 사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저는 위로 올라가서 송신기를 한 번 더 시도해 볼게요. 실패하면 내일 아침 우리 쪽 전선으로 이동하죠."

    클라우스가 빠르게 일어났다. "같이 올라가서 도울게요."

     

    밤공기가 찼다. 지구가 서서히 식고 있었다. 클라우스는 숨을 깊게 들이마셔 폐를 가득 채웠다. 그와 헨드릭스는 터널 밖으로 나와 땅을 딛고 섰다. 클라우스는 총을 들고 양 발을 넓게 벌리고 서서 주변을 살폈다. 헨드릭스는 터널의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송신기 주파수를 맞췄다.

    "뭐가 잡히나요?" 클라우스가 물었다.

    "아직."

    "계속 시도해보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쪽에 전해야죠."

    헨드릭스는 몇 번 시도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는 결국 안테나를 내렸다. "소용없어요. 들리지 않나 봐요. 아니면 들리긴 하지만 답을 하지 않기로 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더 이상 대답할 사람이 없는지도."

    "한 번만 더 해볼게요." 헨드릭스는 안테나를 다시 올렸다. "스콧, 내 말 들리나? 응답해!"

    그는 귀를 기울였다. 들려오는 것은 잡음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로-

    "스콧 응답합니다."

    헨드릭스의 손가락이 송신기를 세게 감싸 쥐었다. "스콧! 스콧 맞아?"

    "스콧 응답합니다."

    클라우스가 곁에 쭈그려 앉았다. "소령의 부하인가요?"

    "스콧, 들어봐. 내 말 알아들었어? 집게에 대해서 말한 거. 내 메시지 받았어? 내 말 들렸어?"

    "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음성이었다.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내 메시지 받았어? 벙커는 별 일 없고? 집게들이 침투하지 않았어?"

    "여기는 괜찮습니다."

    "집게들이 공격해오지 않았어?"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아니요."

    헨드릭스는 클라우스에게 말했다. "괜찮다고 하네요."

    "공격받았대요?"

    "아니요." 헨드릭스는 송신기를 귀에 더 가까이 댔다. "스콧, 네 말이 잘 안 들려. 달 기지에 연락해봤어? 그들도 알고 있어? 그쪽도 경고를 받은 거야?"

    답이 없었다.

    "스콧! 내 말 들려?"

    침묵.

    헨드릭스는 긴장이 풀려 축 쳐졌다. "소리가 잦아들었어요. 방사능 때문인가 봐요."

     

    헨드릭스와 클라우스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 다 말이 없었다. 시간이 얼마 흐른 후 클라우스가 말했다.

    "당신 쪽 사람들이 맞는 것 같나요? 목소리를 들으니 알겠던가요?"

    "소리가 너무 작아서."

    "그럼 확실하지 않은 거예요?"

    "네."

    "그렇다면 그들은 어쩌면-"

    "모르겠어요. 확신이 없어졌어요. 어서 내려가서 뚜껑부터 닫읍시다."

    그들은 천천히 사다리를 타고 따뜻한 지하 창고로 내려갔다. 클라우스는 뚜껑의 볼트를 조였다. 타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소득이 있었어요?" 그가 물었다.

    둘 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침내 클라우스가 입을 열었다. "소령, 어떻게 생각해요? 당신 사람인가요, 아니면 집게인가요?"

    "모르겠어요."

    "그럼 이전과 달라진 게 없네요."

    헨드릭스는 입을 꽉 다문 채 바닥을 노려보았다. "가봐야겠죠. 확실히 하려면."

    "어쨌든, 여기에는 식량이 몇 주치 밖에 없어요. 어느 쪽이든 그 후에는 이 곳을 떠나야 해요."

    "그러네요."

    "뭐가 문제죠?" 타쏘가 물었다. "당신 쪽 벙커와 연락이 된 거예요? 뭐가 문제예요?"

    "내 사람 중 하나였을 수도 있고, " 헨드릭스가 뜸을 들이며 말했다. "아니면 저것들 중 하나였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기 이렇게 서서는 영영 알 수 없겠죠."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일단 눈을 좀 붙여둡시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할 테니."

    "일찍?"

    "집게를 뚫고 가려면 아침 일찍이 가장 유리해요." 헨드릭스가 말했다.

     

    상쾌하고 맑은 아침이었다. 헨드릭스 소령은 망원경으로 들판을 살폈다.

    "뭐가 보이나요?" 클라우스가 말했다.

    "아무것도."

    "우리 벙커 보여요?"

    "어느 쪽이에요?"

    "이쪽." 클라우스가 망원경을 가져가 초점을 맞추었다. "어디를 봐야 하는지 제가 알아요." 그는 말없이 천천히 렌즈를 들여다보았다.

    타쏘가 터널을 타고 올라와 땅 위로 올라섰다. "보이는 게 있어?"

    "아무것도." 클라우스는 망원경을 다시 헨드릭스에게 건넸다. "시야에 잡히는 집게는 없어. 출발하죠. 여기 있지 말고."

    셋은 재 위로 미끄러져 가며 언덕 옆 내리막을 걸었다. 납작한 바위 건너편으로 도마뱀이 기어갔다. 그들은 즉시 얼음이 되어 동작을 멈추었다.

    "뭐였어?" 클라우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마뱀."

    도마뱀은 잽싸게 잿더미를 가로질러갔다. 그것은 재와 완벽히 같은 색을 띠고 있었다.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이네." 클라우스가 말했다. "우리 생각이 맞았다는 증거로군. 그러니까, 리센코의 생각이."

    그들은 언덕 아래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까이 모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두릅시다." 헨드릭스가 출발하며 말했다. "걷기에는 꽤 먼 거리예요."

    클라우스가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타쏘는 약간 떨어져 따라가며 총을 들고 엄호했다. "소령,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클라우스가 말했다. "데이비드는 어떻게 만난 거예요? 소령을 따라왔던 데이비드 말이에요."

    "오는 길에 만났어요. 폐허에서."

    "그게 뭐라고 말하던가요?"

    "별 말 안 했어요. 일행이 없다고 했어요. 혼자라고."

    "기계인걸 알아볼 수 없었어요? 살아있는 사람같이 말을 했고요? 의심은 들지 않았나요?"

    "말이 별로 없었어요. 딱히 특이한 점도 없었고요."

    "이상해요, 너무 사람 같아서 깜박 속아 넘어가게 하는 기계라니.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대체 어디까지 발전할까요."

    "당신 미국인들이 설계한 대로 행동하고 있는 거예요." 타쏘가 말했다. "당신들이 그것들을 생명체를 사냥하고 파괴하도록 만들었지. 인간 생명체를. 찾는 대로 전부 다."

     

    헨드릭스는 클라우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왜 물어요? 질문의 의도가 뭐죠?"

    "없어요." 클라우스가 물었다.

    "클라우스는 당신이 두 번째 유형이라고 생각해요." 타쏘가 뒤쪽에서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당신을 지켜보기 시작한 거지."

    클라우스가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 안돼? 우리는 미군에 파발꾼을 보냈고, 돌아온 건 이 자였어. 어쩌면 이곳에 사냥감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르잖아."

    헨드릭스는 거칠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UN 벙커에서 왔어요. 거기엔 사람들밖에 없었고."

    "어쩌면 소련 전방으로 침투할 기회를 엿보았는지도 모르죠. 지금이다 싶었는지. 아니면-"

    "소련군은 이미 공격을 당한 후였어요. 내가 우리 쪽 벙커를 떠나기 전에 점령당했지. 그걸 잊으면 안 되죠."

    타쏘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건 증거가 못 되어요, 소령."

    "왜죠?"

    "서로 다른 유형들 사이에는 교류가 거의 없는 걸로 보이거든요. 그들은 각각 다른 공장에서 만들어져요. 협업하지 않아요. 다른 유형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소련 전선을 향해 왔다는 것도 모르죠. 심지어 다른 유형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집게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죠?" 헨드릭스가 물었다.

    "난 그것들을 직접 봤어요. 관찰해왔죠. 소련 벙커에 침투하는 걸 지켜봤어요."

    "너는 상당히 많은 걸 알고 있긴 해." 클라우스가 말했다. "실제로 본 건 그렇게 많지 않은데 말이야. 그 정도로 자세하게 관찰하고 있었다니 수상해."

    타쏘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날 의심하는 거야?"

    "그만합시다." 헨드릭스가 말했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걸었다.

    "계속 이렇게 걸어서 가는 거예요?" 타쏘가 얼마 후에 물었다. "걷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요." 그는 주변으로 끝없이 펼쳐진 재의 들판을 둘러보았다.

    "참 우울한 풍경이군."

    "계속 이럴 거야." 클라우스가 말했다.

    "가끔은 공격을 받았을 때 네가 벙커에 있었으면 싶기도 해."

    "내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너와 있었겠지." 클라우스가 중얼거렸다.

    타쏘는 웃으며 양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랬겠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잿빛 들판을 주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헨드릭스는 타쏘와 클라우스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손짓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클라우스는 쭈그려 앉으며 총을 세워 놓았다.

    타쏘는 콘크리트 슬라브 위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쉬니까 좋네."

    "조용히 해." 클라우스가 날카롭게 말했다.

    헨드릭스는 앞장서서 언덕 꼭대기로 올랐다. 전날, 러시아 파병이 올라온 바로 그 언덕이었다. 헨드릭스는 배를 깔고 누워 망원경을 통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들여다보았다.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오직 재와 드문드문한 나무뿐. 그러나 바로 그곳, 오십 미터도 안 되는 곳에 전방 벙커가 있었다. 그가 출발했던 바로 그 벙커. 헨드릭스는 말없이 주변을 관찰했다. 움직임이 없었다. 생명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클라우스가 그의 옆으로 기어 왔다. "어디에 있어요?"

    "저기 아래." 헨드릭스는 그에게 망원경을 건네주었다. 저녁 하늘에 재구름이 흘러갔다. 세상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햇빛은 길어봐야 한두 시간 후면 완전히 사라질 테다. 아마 그 정도도 안될 것이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클라우스가 말했다.

    "저기 저 나무요. 나무 그루터기. 벽돌더미 옆에. 입구가 벽돌들 바로 오른편에 있어요."

    "그냥 그런 걸로 알고 있을게요."

    "타쏘랑 당신이 여기서 엄호해요. 여기부터 벙커 입구까지 시야가 트여 있으니까."

    "혼자 내려가려고요?"

    "손목 탭이 있으니까 안전할 거예요. 벙커 주변에 집게가 득실거리거든요. 재 아래 숨어 있어요. 게처럼. 탭이 없으면 절대 지나갈 수 없어요."

    "그렇겠네요."

    "아주 천천히 걸어갈게요. 상황이 확실해지면-"

    "집게들이 벙커 안을 이미 침략한 후라면 다시 올라오지 못할 거예요. 그것들은 엄청나게 빨라요. 눈치챌 새도 없이 가는 거예요."

    "그럼 다른 의견 있어요?"

    클라우스는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어요. 땅 위로 유인해야 하나. 시야에 들어오도록."

    헨드릭스는 벨트에서 송신기를 꺼내 안테나를 올렸다. "그럼 시작해보죠."

     

    클라우스는 타쏘에게 신호를 보냈다. 타쏘는 그들이 앉아있는 언덕면으로 능숙하게 기어올라왔다.

    "혼자 내려간대." 클라우스가 말했다. "우리가 여기서 엄호할 거야. 소령이 우리 쪽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면 그 너머로 발사해. 잽싸게 공격해올 테니."

    "확신이 별로 없어 보이네." 타쏘가 말했다.

    "그래, 없어."

    헨드릭스는 총의 개머리를 열어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어쩌면 벙커 안은 별 문제없는지도 몰라."

    "그 광경을 당신이 못 봐서 그래요. 집게 수백 개가 다가오는 모습을. 똑같이 생긴 것들이. 개미처럼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말이에요."

    "끝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거예요." 헨드릭스는 총을 장전해 한 손에 꽉 쥐고 다른 손으로는 송신기를 들었다. "그럼, 행운을 빌어줘요."

    클라우스가 손을 내밀었다.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내려가지 말아요. 위에서 먼저 불러봐요. 그쪽에서 먼저 모습을 보이도록."

     

    헨드릭스는 일어서서 언덕의 능선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잠시 후 그는 죽은 나무 그루터기 옆 벽돌과 먼지더미 사이를 천천히 걸어갔다. 전방 벙커의 입구를 향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송신기를 들어 버튼을 눌러 켰다. "스콧? 내 말 들리나?"

    침묵.

    "스콧! 헨드릭스다. 내 말 들려? 지금 벙커 밖에 서 있다. 화면에 내가 보일 거야."

    그는 송신기를 꽉 쥔 채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잡음뿐.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집게 하나가 잿더미를 헤치고 나와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다가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뚝 서더니 슬며시 물러났다. 그다음으로 촉수가 달린 커다란 집게가 나타났다. 그를 노려보며 다가오던 집게는 다시 뒤로 물러나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그의 뒤를 얌전히 따라왔다. 잠시 후 또 다른 큰 집게가 합류했다. 집게들은 벙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그를 조용히 따라왔다.

    헨드릭스가 멈추자 그의 뒤를 따라오던 집게들도 멈춰 섰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벙커의 계단이 바로 눈 앞이었다.

    "스콧! 내 말 들리나? 지금 바로 위에 서 있어. 밖에. 지상에. 내 목소리 들려?"

     

    그는 옆구리에 총을 끼고 송신기를 귀에 바짝 댄 채 기다렸다. 시간이 흘렀다. 소리를 듣기 위해 애를 썼지만 침묵뿐이었다. 침묵, 그리고 희미한 잡음.

    그러다가, 멀리서, 기계음과 함께-

    "스콧입니다."

    감정 없는 목소리. 건조한.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송신기 너머의 소리가 너무 작았다.

    "스콧! 잘 들어. 나 지금 바로 위에 서 있어. 지상에서 벙커 입구를 내려다보고 있어."

    "네."

    "나 보여?"

    "네."

    "화면으로? 화면이 나를 잡고 있어?"

    "네."

    헨드릭스는 생각에 잠겼다. 집게들의 회색빛 메탈 몸체가 원을 그리며 그를 둘러쌌다. "벙커에 별 일 없었어? 아무 일 없었어?"

    "별 일 없었습니다."

    "그럼 지면으로 올라오겠어? 잠시 얼굴을 보고 싶어서." 헨드릭스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 내가 있는 곳으로 올라와봐. 얘기를 하고 싶으니까."

    "내려오세요."

    "명령이야."

    침묵.

    "올라오고 있나?" 헨드릭스는 귀를 기울였다. 답이 없었다. "지상으로 올라오라는 명령이다."

    "내려오세요."

    헨드릭스는 입을 꽉 다물었다. "리온 바꿔줘."

    긴 침묵이 흘렀다. 그는 잡음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가늘고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의 목소리와 같았다. "리온입니다."

    "헨드릭스다. 지금 지면에 있어. 벙커 입구에. 너희 둘 중 하나가 올라왔으면 좋겠어."

    "내려오세요."

    "왜 내려오라는 거지? 내가 지금 명령하잖아!"

    침묵. 헨드릭스는 송신기를 내렸다. 그는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입구가 눈 앞에 있었다. 거의 발 바로 밑이었다. 그는 안테나를 내리고 송신기를 벨트에 장착했다. 조심스럽게 총을 양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는 한 걸음 씩 앞으로 내디뎠다. 그들이 보고 있다면 그가 지금 입구를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알 것이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는 첫 계단을 밟았다.

    데이비드 둘이 그를 향해 올라왔다. 똑같은 무표정의 얼굴을 하고. 그는 둘을 먼지로 날려버렸다. 그러자 한 무리가 위로 달려 올라왔다. 모두 똑같이 생긴 것들이.

    헨드릭스는 뒤를 돌아 벙커를 등지고 언덕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언덕 위에서 타쏘와 클라우스가 총을 발사했다. 작은 금속 구형의 집게들이 이미 재를 가르며 그들을 향해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헨드릭스는 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무릎을 꿇어 총을 뺨에 대고 벙커의 입구를 향해 조준했다. 데이비드들은 곰인형을 안고 무리를 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가늘고 울퉁불퉁한 다리를 힘차게 움직이며 지상으로 달려왔다. 헨드릭스는 무리의 중심을 향해 발사했다. 그들은 폭발하며 바퀴와 스프링을 사방으로 튕겨냈다. 헨드릭스는 터져 나오는 부품 사이로 계속해서 총을 발사했다.

    그때 거대하고 어색한 형체 하나가 휘청거리며 벙커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헨드릭스는 놀라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남자 병사였다. 다리 하나가 없고 목발을 짚고 있었다.

    "소령!" 타쏘의 외침이 들려왔다. 발사되는 총소리. 거대한 형제는 앞으로 움직였고, 데이비드들이 그 주변으로 득실댔다. 헨드릭스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첫 번째 유형이다. 부상당한 병사.

    그는 총을 겨눠 발사했다. 병사는 부품과 릴레이로 분해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이제 수십 개의 데이비드들이 벙커에서 먼 곳까지 퍼져있었다. 그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몸을 숙여 총을 조준해 계속해서 쏘아댔다.

    클라우스는 언덕에서 아래를 겨눈 채 계속해서 총을 발사했다. 언덕면은 기어오르는 집게들로 가득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헨드릭스는 몸을 수그린 채 달려 언덕으로 후퇴했다. 타쏘는 클라우스에게서 떨어져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며 언덕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갈색 머리가 눈을 덮은, 하얗고 작은 데이비드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그의 곁으로 슬며시 다가왔다. 그러더니 팔을 벌리며 갑자기 몸을 앞으로 숙였다. 들고 있던 곰인형이 땅을 가로지르며 그를 향해 날아왔다. 헨드릭스는 총을 발사했다. 곰과 데이비드가 함께 산산이 분해되었다. 그는 눈을 깜박이며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여기에요!" 타쏘가 불렀다. 헨드릭스는 그를 향해 올라갔다. 타쏘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로 보이는 콘크리트 기둥 쪽에 서 있었다. 그는 클라우스가 준 권총으로 헨드릭스 너머를 가격했다.

    "고마워요." 헨드릭스는 숨을 고르며 타쏘 곁으로 갔다. 타쏘는 그를 콘크리트 뒤로 잡아끌며 벨트 쪽을 매만졌다.

    "눈 감아요!" 그가 허리춤에서 구형 물체를 꺼내며 말한 뒤 빠르게 뚜껑을 돌려 잠금장치를 풀었다. "눈 감고 엎드려요."

     

    그가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정확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구르고 튕겨서 벙커의 입구에 떨어졌다. 부상당한 병사 둘이 어쩔 줄 몰라하며 벽돌 더미 근처에 서 있었다. 그들 뒤로는 데이비드들이 계속해서 떼를 지어 지면으로 올라왔다. 부상당한 병사 하나가 폭탄 근처로 다가가 그것을 주워 올리기 위해 어색하게 몸을 굽혔다.

    그때 폭탄이 터졌다. 헨드릭스의 몸이 충격파에 날아가 얼굴을 바닥에 부딪히며 넘어졌다. 그의 위로 뜨거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콘크리트 너머에 선 타쏘가 느리고 기계적인 동작으로 불타는 하얀 불구덩이의 구름을 뚫고 나오는 데이비드들을 쏘아버리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뒤쪽에는 클라우스가 좁혀 들어오는 집게 무리와 싸우고 있었다. 그는 뒤로 조금씩 후퇴하며 집게들에게 총을 발사해 원형 대열에 구멍을 만들어보려 했다.

    헨드릭스는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머리가 띵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불타고 흔들리며 그를 휘감았다. 오른쪽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타쏘가 그를 잡아당겼다. "가요. 어서."

    "클라우스- 아직 위에 있어요."

    "어서!" 타쏘는 헨드릭스가 콘크리트 기둥에서 떨어지도록 잡아끌었다. 헨드릭스는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타쏘는 그를 빠르게 끌고 갔다. 폭발을 피해 살아남은 집게가 있나 두리번거리는 눈빛이 강렬하게 반짝였다.

    데이비드 하나가 불구덩이 사이로 튀어나왔다. 타쏘는 바로 발사했다.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클라우스. 클라우스는 어떡해요?" 헨드릭스는 걸음을 멈추고 비틀대며 멈추어 섰다. "그는-"

    "어서 가요!"

     

    그들은 벙커에서 점점 멀리 후퇴했다. 몇몇 작은 집게들이 쫓아왔지만 결국 포기하고 왔던 길로 돌아갔다.

    타쏘는 마침내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잠시 숨 좀 돌리죠."

    헨드릭스는 먼지 더미 위에 앉아 목에 젖은 땀을 닦아내며 숨을 헐떡였다. "클라우스를 두고 왔어요."

    타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총구를 열어 새로운 총탄을 집어넣었다.

    헨드릭스는 멍하니 타쏘를 바라보았다. "일부러 두고 왔군요."

    타쏘는 총을 다시 조립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의 먼지 더미를 살폈다. 마치 뭔가를 찾는 듯했다.

    "뭐예요?" 헨드릭스가 물었다. "뭘 찾고 있어요? 뭔가 오고 있나요?" 그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뭔가를 기다리는 건가?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는 재와 폐허, 몇 그루의 잎도 가지도 없는 벌거벗은 나무 밑동뿐이었다. "뭐-"

    타쏘가 그의 말을 잘랐다. "조용히 해요."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더니 갑자기 총을 들었다. 헨드릭스는 그의 시선을 따라 몸을 돌렸다.

     

    그들이 온 길을 따라 형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그들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옷이 찢어져 있었다. 천천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절뚝이며 다가왔다. 가끔씩 멈추어 쉬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모으는 것 같았다. 한 번은 거의 넘어질 뻔했다. 잠시 멈추어 서서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그리고 다시 다가왔다.

    클라우스.

    헨드릭스는 몸을 일으켰다. "클라우스!" 그가 형체를 향해 걸어갔다. "대체 어떻게 거기서-"

    타쏘가 총을 발사했다. 헨드릭스는 뒤로 물러났다. 타쏘는 다시 총을 쐈고, 뜨거운 빔이 헨드릭스의 옆을 스쳤다. 그 빔이 클라우스의 가슴에 명중했다. 그의 몸이 폭발하며 기어와 바퀴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주 잠깐 동안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움직였다. 그러더니 앞뒤로 흔들리다가 팔을 벌린 채 바닥으로 넘어졌다. 바퀴 몇 개가 굴러 나왔다.

    그리고 침묵.

    타쏘가 헨드릭스를 보며 말했다. "이제 그가 왜 루디를 죽였는지 이해하겠죠."

    헨드릭스는 다시 천천히 앉았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멍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알겠어요?" 타쏘가 말했다. "이해했어요?"

    헨드릭스는 말이 없었다. 모든 것이 그에게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어둠이 그를 엄습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헨드릭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온몸이 쑤셨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팔과 어깨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는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셨다.

    "일어나지 말아요." 타쏘가 말했다. 그는 몸을 숙여 차가운 손으로 헨드릭스의 이마를 짚었다.

    밤이었다. 떠다니는 재구름 너머로 몇몇 개의 별이 빛을 내며 모습을 보였다. 헨드릭스는 이를 꽉 문채 등을 대고 누웠다. 타쏘는 그를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무와 잡초를 가져와 불을 지폈다. 불은 미약하게 타오르며 위에 걸린 쇠 컵을 지지는 소리를 냈다. 사방이 고요했다. 불 뒤로는 미동 없는 어둠이 펼쳐졌다.

    "그가 두 번째 유형이었군요." 헨드릭스가 중얼거렸다.

    "의심하고 있었어요."

    "왜 더 일찍 그를 없애버리지 않았죠?" 그는 알고 싶었다.

    "당신 때문에." 타쏘가 불 너머로 쇠 컵을 들여다보았다. "커피예요. 곧 있으면 마실 수 있을 거예요."

    그는 돌아와 헨드릭스 곁에 앉았다. 그리고는 권총을 꺼내 분해해 작동 원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총이네." 타쏘가 혼잣말을 하듯 읊조렸다. "구조가 아주 정교해."

    "이제 그것들을 어떡하죠? 집게들 말이에요."

    "폭발로 대부분이 망가졌을 거예요. 섬세한 기계들이에요. 무척 잘 조직되어 있겠죠, 아마도."

    "데이비드도?"

    "네."

    "어떻게 그런 폭탄을 가지고 있었죠?"

    타쏘는 어깨를 으쓱했다. "직접 제작했어요. 우리 쪽 기술을 얕보지 말아요, 소령. 그 폭탄이 아니었으면 우리 둘 다 없는 목숨이니까."

    "굉장히 유용하네요."

    타쏘는 다리를 뻗어 불 곁에서 발을 녹였다. "그가 루디를 죽이고 나서도 당신이 이해를 하지 못하길래 조금 놀랐어요. 그럼 대체 그가 왜 그랬을 거라고-"

    "얘기했잖아요.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요? 있잖아요, 나는 사실 한동안 당신을 의심했어요. 당신이 클라우스를 죽이지 못하게 해서. 그를 보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타쏘는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는 안전한 건가요?" 헨드릭스가 물었다.

    "당분간은요. 다른 지역에서 집게들이 지원을 오기 전까지는." 타쏘는 걸레 조각으로 총의 내부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는 청소를 마치고 기계를 원래대로 조립해 넣었다. 그리고는 총을 닫고 손가락으로 총열을 매만졌다.

    "운이 좋았어요." 헨드릭스가 중얼거렸다.

    "맞아요. 굉장히 좋았죠."

    "나를 끌고 와줘서 고마워요."

     

    타쏘는 대답이 없었다. 헨드릭스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에 불빛이 비춰 반짝였다. 헨드릭스는 팔을 움직여보려 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옆쪽 전체에 감각이 없는 듯했다. 몸 안쪽에서 둔한 고통이 지속적으로 느껴졌다.

    "몸은 어때요?" 타쏘가 물었다.

    "팔을 다쳤어요."

    "다른 데는?"

    "내상이 있어요."

    "폭탄이 터질 때 엎드리지 않았어요."

    헨드릭스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타쏘가 컵에서 납작한 금속 팬으로 커피를 붓는 것을 지켜보았다. 타쏘는 팬을 그에게 갖다 주었다.

    "고마워요." 그는 커피를 마시려고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애를 썼다. 삼키는 게 힘들었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아 팬을 밀어냈다. "지금은 이 정도밖에 못 마시겠어요."

    나머지는 타쏘가 전부 들이켰다. 시간이 흘렀다. 재구름이 그들 위로 펼쳐진 짙은 하늘을 가로질렀다. 헨드릭스는 아무 생각 없이 쉬었다. 잠시 후 그는 타쏘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왜 그래요?" 그가 웅얼거렸다.

    "좀 나아졌나요?"

    "약간."

    "있잖아요, 내가 당신을 끌고 오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그것들에게 잡혔을 거예요. 죽었겠죠. 루디처럼."

    "알아요."

    "내가 왜 당신을 끌고 온 줄 알아요? 저는 당신을 버릴 수도 있었어요. 그곳에 두고 올 수도 있었어요."

    "왜 데려왔는데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곳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에요." 타쏘는 차분하게 불을 바라보며 작대기로 쑤셔댔다. "이곳은 이제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어요. 집게의 지원 병력이 도착하면 우리는 바로 죽은 목숨이에요. 당신이 쓰러져 있는 동안 고민해봤어요. 우리한테 남은 시간은 세 시간 남짓이에요."

    "내가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뜻인가요?"

    "맞아요. 당신이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뜻이죠."

    "왜 저죠?"

    "왜냐하면 나는 방법을 모르니까." 어두운 불빛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밝게 빛났다. "당신이 우리를 여기서 탈출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세 시간 안에 집게들에게 당할 거예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소령? 어떻게 할 건가요? 나는 밤새 기다렸어요. 당신이 쓰러져 있는 동안 여기 앉아서 귀를 기울이며 기다리고 있었죠. 이제 곧 동이 틀 거예요. 밤이 저물고 있어요."

     

    헨드릭스는 생각에 잠겼다. "이상하네요."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상하다고?"

    "내가 이 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안다고 생각하는 게.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궁금해요."

    "우리를 달 기지로 데려갈 수 있나요?"

    "달 기지로? 어떻게?"

    "뭔가 방법이 있겠죠."

    헨드릭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내가 아는 방법은 없어요."

    타쏘는 말이 없었다. 흔들림 없던 눈빛에 잠시 동요가 일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더니 갑자기 돌아섰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커피 더 줄까요?"

    "아니요."

    "좋을 대로 하세요." 타쏘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헨드릭스에게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누워 집중하려 노력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아직까지 머리가 아파왔다. 얼얼한 기운이 여전히 그를 지배했다.

    "어쩌면 한 가지 방법이 있을지도." 그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래요?"

    "동이 트려면 얼마나 남았죠?"

    "두 시간. 곧 있으면 해가 떠오를 거예요."

    "근처에 우주선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존재한다는 건 알아요."

    "어떤 우주선이요?"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로켓 순항선."

    "우리를 데려갈까요? 달 기지로?"

    "그게 용도이기는 해요. 비상 상태에 대비한." 그가 이마를 문질렀다.

    "왜 그래요?"

    "머리가 아파서. 생각하기가 힘들어요. 집중하기가- 집중하기가 어려워요. 폭탄 때문에."

    "우주선이 이 근처에 있어요?" 타쏘가 그의 곁으로 미끄러져 와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얼마나 멀리 있어요? 어디 있어요?"

    "생각 중이에요."

    타쏘의 손가락이 그의 팔을 눌렀다. "가까워요?" 목소리가 쇠처럼 날카로웠다. "어디에 있을까요? 지하에 있을까요? 지하에 숨겨져 있을까요?"

    "네. 보관소에."

    "어떻게 찾죠? 암호가 있나요? 그걸 분간하기 위한 비밀 코드 같은 것?"

    헨드릭스는 생각을 집중했다. "아니오. 없어요. 비밀 코드 같은 것은 없어요."

    "그러면, 어떤?"

    "표식."

    "어떤 표식?"

     

    헨드릭스는 답하지 않았다. 그의 멍한 두 눈은 흔들리는 불빛 속에서 시각이 없는 두 개의 유리구슬 같았다. 타쏘의 손가락이 그의 팔을 감싸 쥐었다.

    "무슨 표식? 어떤 거예요?"

    "생각- 생각을 못하겠어요. 좀 쉬게 해 줘요."

    "알겠어요." 그가 손을 놓고 일어섰다. 헨드릭스는 눈을 감고 다시 땅에 누웠다. 타쏘는 손을 양 주머니에 넣은 채 그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땅에 놓인 돌멩이를 발로 차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암흑 같던 밤하늘이 벌써 회색으로 옅어지고 있었다. 아침이 오는 중이었다.

    타쏘는 권총을 단단히 쥔 채 불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왔다 갔다 했다. 바닥에는 헨드릭스 소령이 눈을 감고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하늘 위 회색 빛이 점점 더 높게 퍼져나갔다. 주변의 풍경이, 사방으로 뻗어있는 재의 들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재와 건물의 잔해, 드문드문 세워진 벽, 콘크리트 더미, 그리고 벌거벗은 나무 그루터기까지.

    공기가 차고 날카로웠다. 저 멀리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희미한 울음소리를 냈다.

    헨드릭스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가 눈을 떴다. "새벽이에요? 벌써?"

    "네."

    그는 몸을 살짝 일으켰다. "뭔가 알고 싶어 했죠. 나한테 뭔가 물어보고 있었는데."

    "기억나요?"

    "네."

    "뭐예요?" 타쏘의 몸이 굳어졌다. "뭐냐고?" 그가 날카롭게 반복했다.

    "우물. 무너진 우물이에요. 우물 아래에 보관 창고가 있어요."

    "우물." 긴장했던 타쏘의 몸이 약간 풀어졌다. "그럼 우물을 찾으러 가죠." 그가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한 시간쯤 남았어요, 소령. 한 시간이면 찾을 수 있을까요?"

     

    "나 좀 일으켜 줘요." 헨드릭스가 말했다.

    타쏘는 권총을 집어넣고 그를 잡아 일으켰다. "험난한 길이 되겠네요."

    "맞아요." 헨드릭스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멀리 못 갈 것 같아요."

    그들은 걷기 시작했다. 방금 떠오른 새벽 해가 약간의 온기를 전했다. 땅은 평평하고 황폐했다. 시야가 닿는 곳까지 온통 죽은 듯한 회색이었다. 그들 위로 새 몇 마리가 천천히 원을 그리며 조용히 비행했다.

    "보이는 게 있나요?" 헨드릭스가 말했다. "집게?"

    "아니요. 아직은."

    그들은 우뚝 선 콘크리트와 벽돌만 남은 폐허 몇 군데를 지나쳤다. 시멘트로 된 건축 토대. 쥐들이 바쁜 걸음으로 도망쳤다. 타쏘는 힘 없이 뒤로 물러났다.

    "원래는 여기에 작은 도시가 있었어요." 헨드릭스가 말했다. "마을. 시골 마을. 한 때 여기가 전부 포도밭이었죠.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곳 말이에요."

    그들은 잡초와 갈라진 땅이 지그재그를 그린 무너진 도로에 맞닥뜨렸다. 오른쪽으로는 돌로 된 굴뚝이 튀어나와 있었다.

    "조심해요." 그가 경고했다.

    뚫린 지하로 이어진 우묵한 구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비틀리고 구부러진 들쭉날쭉한 파이프의 끝이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들은 옆으로 넘어진 욕조가 보이는 집의 일부를 지나쳤다. 부서진 의자, 숟가락 몇 개와 조각난 도자기 접시들. 거리의 한가운데가 밑으로 움푹 꺼져 있었다. 그 공간은 잡초와 먼지와 뼈로 채워져 있었다.

    "이쪽." 헨드릭스가 웅얼거렸다.

    "이쪽이요?"

    "오른편으로."

    그들은 대형 탱크의 잔해를 지나쳤다. 헨드릭스의 벨트가 불길하게 딸각거렸다. 탱크는 방사는 폭격을 맞은 것 같았다. 탱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입이 멀어진 몸이 미라화 된 채 널부러져 있었다. 도로 너머에는 평평한 들판이 펼쳐졌다. 돌멩이, 잡초, 그리고 부서진 유리 조각. 

    "저기." 헨드릭스가 말했다. 

     

    부서지고 허물어진 돌우물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위로 나무판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우물의 대부분이 파편으로 부스러지고 없었다. 헨드릭스는 그쪽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타쏘가 뒤따랐다.

    "여기가 확실해요?" 타쏘가 말했다. "뭐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확실해요." 헨드릭스는 입을 꽉 다문채 우물 한편 위로 앉았다. 숨이 가빴다. 그는 얼굴의 땀을 닦았다. "부대의 지휘권자가 달아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예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벙커가 침략당할 경우에 말이죠."

    "그게 당신인가요?"

    "네."

    "우주선은 어디에 있어요? 여기 있어요?"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우주선 바로 위예요." 헨드릭스는 우물의 돌로 된 표면을 손으로 매만졌다. "홍채 잠금장치는 나에게만 반응해요. 다른 사람은 안되죠. 이건 내 비행선이에요. 뭐, 원래는 그랬죠."

    날카로운 찰칵 소리가 났다. 아래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뒤로 물러나요." 헨드릭스가 말했다. 그들은 우물에서 물러섰다.

    바닥의 일부가 미끄러지며 열렸다. 잿더미에서 메탈 프레임이 벽돌과 잡초를 천천히 밀고 올라왔다. 우주선의 코가 모습을 드러내며 움직임이 멈추었다.

    "바로 이거예요." 헨드릭스가 말했다.

    작은 우주선이었다. 뭉뚝한 바늘같이 생긴 우주선은 망사 프레임 위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우주선이 있었던 어두운 구멍 안으로 재가 우수수 떨어졌다. 헨드릭스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망사에 올라 해치의 잠금을 풀어 뒤로 당겼다. 우주선 내부의 계기판과 압력 의자가 보였다.

     

    타쏘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우주선 안을 들여다보았다. "우주선 조종은 못해봤는데."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헨드릭스는 슬쩍 타쏘를 곁눈질했다. "비행은 내가 해요."

    "그래요? 좌석이 하나뿐인걸요, 소령. 딱 한 사람만 타도록 만들어진 우주선이네요." 그가 천천히 말했다.

    헨드릭스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우주선의 내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타쏘의 말이 맞았다. 좌석은 하나뿐이었다. 우주선은 일인용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군요." 그가 천천히 말했다. "그 한 사람이 당신이라는 말이죠."

    타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왜요?"

    "당신이 갈 수는 없으니까요. 살아서 도착 못할 수도 있잖아요. 당신은 부상을 입었어요. 아마도 무사히 도착하지 못하겠죠."

    "재밌는 주장이군요. 하지만 나는 달 기지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당신은 모르죠. 어쩌면 몇 달 동안 우주에서 헤매기만 하고 기지를 찾지 못할 수도 있어요. 달 기지는 잘 숨겨져 있거든요. 어떻게 찾아가는지 모르면-"

    "해봐야 아는 거죠. 어쩌면 못 찾을 수도 있죠. 혼자서는. 하지만 나는 당신이 나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줄 것 같은데요. 당신 목숨이 거기 달렸으니까."

    "어째서요?"

    "내가 달 기지를 시간 내에 찾는다면, 그쪽에 얘기해서 당신을 데려올 우주선을 하나 더 보내게 할 수도 있겠죠. 만약에 내가 기지를 시간 내에 찾아낸다면 말이죠. 아니라면, 당신에겐 아무런 희망이 없어요. 우주선 안에는 필요한 구호품이 갖춰져 있겠죠. 그거면 얼마간은 충분히-"

    헨드릭스는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부상당한 팔이 그를 배신했다. 타쏘는 몸을 숙여 공격을 피하고 옆으로 민첩하게 미끄러졌다. 그의 손이 빠르게 올라왔다. 헨드릭스는 총의 손잡이가 그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다가오는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타쏘가 더 빨랐다. 총손잡이가 그의 머리 옆쪽, 귀 바로 위를 강타했다. 얼얼한 고통이 퍼져나갔다. 고통과 암흑의 구름이 몰려왔다. 그는 바닥으로 미끄러지며 주저앉았다.

     

    헨드릭스는 타쏘가 발끝으로 그를 툭툭 차며 내려다보는 것을 희미하게 느꼈다.

    "소령! 일어나요."

    그가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내 말 잘 들어요." 타쏘는 몸을 숙여 총구를 그의 얼굴에 겨눈 채 말했다. "서둘러야 해요. 시간이 얼마 없어요. 우주선은 이륙할 준비가 되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필요한 정보를 주어야 해요."

    헨드릭스는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어서! 달 기지는 어디에 있어요? 어떻게 찾을 수 있죠? 뭘 보면 알 수 있죠?"

    헨드릭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

    "미안해요."

    "소령, 이 우주선에는 식량이 충분히 들어있어요. 못해도 이 주는 항해할 수 있을 거예요. 난 결국에는 기지를 찾아낼 테고. 당신은 반 시간이면 죽은 목숨이에요. 당신이 살아날 유일한 희망은-" 그는 말을 멈추었다.

    언덕 위 허물어진 폐허 속에 뭔가가 움직였다. 잿더미 속에 뭔가가 있었다. 타쏘는 빠르게 몸을 돌려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발사했다. 불덩이가 날아갔다. 뭔가가 잿더미 속을 구르며 도망쳤다. 그는 다시 한번 발사했다. 집게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바퀴가 날아갔다.

    "봤죠?" 타쏘가 말했다. "탐색 집게예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나를 데리러 오라고 할 거예요?"

    "네. 최대한 빨리."

    헨드릭스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진심이에요?" 그의 얼굴에 열띤 굶주림 같은, 기묘한 표정이 드러났다. "나를 데리러 올 거예요? 나를 달 기지로 데려다줄 거라고?"

    "당신을 달 기지로 데려다 줄 거예요. 하지만 그게 어딘지 먼저 얘기해줘요! 시간이 없어요."

    "좋아요." 헨드릭스는 몸을 일으켜 앉아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는 재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타쏘가 그의 옆에 서서 돌멩이 끝에서 완성되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헨드릭스는 러프한 달의 약도를 그리고 있었다.

     

    "이게 아펜니노 산맥이에요. 그리고 여기 아르키메데스 분화구가 있고. 달 기지는 아펜니노가 끝나는 지점에서 약 300 미터 더 가서 있어요. 정확한 위치는 나도 몰라요. 지구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아펜니노 위에서 빨간색 화염을 한 번, 초록색 화염을 한 번, 그다음에 빠르게 빨간색 화염 두 번을 쏘아 신호를 보내요. 기지의 모니터가 신호를 읽을 거예요. 기지는 물론 지면 아래 숨겨져 있죠. 자석으로 된 닻이 올라와 아래로 안내할 거예요."

    "그리고 계기판은? 내가 조종할 수 있을까요?"

    "거의 자율 주행이나 마찬가지예요. 적당한 때에 놓치지 않고 신호를 줄 일만 걱정하면 돼요."

    "그럴게요."

    "이륙의 충격파는 좌석이 거의 다 흡수할 거예요. 공기와 온도는 자동으로 조절되고. 우주선은 테라를 떠나 우주로 날아갈 거예요. 달과 일렬로 정렬한 뒤 약 1600미터 상공에서 달의 궤도를 탈 거예요. 궤도를 타고 기지 위로 날아가면 돼요. 아펜니노 산맥 위에 다다르면 신호 로켓을 쏴요."

    타쏘는 우주선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압력 의자 위에 앉았다. 팔 잠금장치가 자동으로 내려와 그를 감쌌다. 그는 계기판을 매만졌다. "당신이 가지 못하게 되어 유감이에요, 소령. 이 모든 게 당신을 위해 여기 준비되어 있는데, 당신은 가지 못하는군요."

    "권총을 내게 줘요."

    타쏘는 벨트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는 총을 손에 든 채 생각에 잠겨 말했다. "이 지점에서 멀리 가지 말아요. 지금으로도 이미 찾기 어려울 테니까."

    "그래요. 이 우물 옆에 있을게요."

    타쏘는 착륙 스위치를 쥐고는 매끄러운 금속 표면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아름다운 우주선이네요, 소령. 아주 잘 만들어졌어요. 세공 기술이 대단해요. 당신들은 언제나 좋은 기술을 선보였죠. 좋은 제품을 만들었고. 당신들의 기술, 당신들의 창작품이 당신들의 가장 큰 업적이에요."

    "권총을 내게 줘요." 헨드릭스는 기다리지 못하고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는 기를 쓰며 일어났다.

    "잘 있어요, 소령." 타쏘는 헨드릭스 너머로 권총을 던졌다. 권총은 바닥에 부딪혀 튕겨 나가 굴러갔다. 헨드릭스는 급하게 권총을 쫓아가 몸을 굽혀 집어 들었다.

    우주선의 비상구가 쾅 소리와 함께 닫혔다. 볼트가 잠겼다. 헨드릭스는 다시 돌아왔다. 안쪽 문이 봉인되는 중이었다. 그는 흔들리는 총구를 겨누었다.

     

    굉음이 들려왔다. 우주선은 금속 승강대에서 솟아오르며 망사를 녹여버렸다. 헨드릭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우주선은 재구름 사이로 솟아오르며 하늘 저 멀리 사라졌다.

    헨드릭스는 자리에 서서 한 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증기가 다 사라질 때까지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주변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아침 공기는 차갑고 고요했다. 그는 왔던 길을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돌아다니는 것이 나았다. 도움이 올 때까지는 한참이 걸릴 것이다. 오기는 한다면.

    그는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찾아냈다. 그리고 울적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다들 그에게서 담배를 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담배는 귀했다.

    그의 옆으로 도마뱀 한 마리가 재를 뚫고 지나갔다. 그의 몸이 얼어붙었다. 도마뱀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 위로 해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옆에 있던 납작한 돌 위로 파리 몇 마리가 내려앉았다. 헨드릭스는 파리를 발로 차 버렸다.

    기온이 올라가고 있었다. 얼굴에서 땀이 흘러내려 옷깃을 적셨다. 목이 탔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흙더미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비상 키트를 꺼내 알약 몇 개를 삼켰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그의 앞에 무언가가 있었다. 땅에 펼쳐진 무언가.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헨드릭스는 급하게 총을 뽑아 들았다. 사람의 형태였다. 그는 마침내 기억해냈다. 클라우스의 잔해구나. 두 번째 유형. 여기는 바로 타쏘가 그를 쏜 곳이었다. 헨드릭스는 바퀴, 릴레이, 금속 부품들이 잿더미 위에 늘어져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금속에 비춰 반짝거렸다.

    헨드릭스는 일어나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움직임 없는 형체를 발로 차 뒤집었다. 금속 커버, 알루미늄 갈비뼈와 버팀목이 보였다. 와이어 선이 핏줄 같은 모양새로 쏟아져 나왔다. 와이어, 스위치, 릴레이가 무더기를 이루었다. 모터와 막대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가 몸을 굽혔다. 넘어지면서 뇌를 감쌌던 케이지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인공 뇌가 보였다. 그는 그것을 살펴보았다. 회로로 만들어진 미로 같은 모양새였다. 작은 튜브. 머리카락 굵기의 와이어. 그가 뇌 케이지를 건드렸다. 그러자 케이지가 옆으로 휙히고 열렸다. 이름 플레이트가 드러났다. 헨드릭스는 플레이트를 읽었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IV-IV.

    그는 한동안 플레이트를 보고 서 있었다. 네 번째 유형. 두 번째가 아니었다. 그들은 틀렸다. 더 많은 유형이 있었다. 세 가지가 다가 아니었다. 어쩌면 훨씬 더 많을지도 몰랐다. 최소 넷. 그리고 클라우스는 두 번째 유형이 아니다.

    하지만 클라우스가 두 번째 유형이 아니라면-

    그는 긴장했다. 언덕 너머에서 무언가가 재를 뚫고 걸어오고 있었다. 뭐지? 그는 형체를 알아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형체들. 형체들이 재를 뚫고 천천히 다가왔다.

    그를 향해 다가왔다.

    헨드릭스는 빠르게 몸을 수그리고 총을 들었다. 땀이 흘러 눈에 들어갔다. 그는 형체가 다가올수록 치미는 공포를 누르려 노력했다.

    첫 번째는 데이비드였다. 데이비드는 그를 보자 속도를 높였다. 다른 것들도 뒤따랐다. 두 번째 데이비드. 세 번째. 똑같이 생긴 세 개의 데이비드가 소리도 표정도 없이 얇은 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그에게 다가왔다. 곰인형을 끌어안고.

    그는 총을 조준해 발사했다. 앞의 두 데이비드가 잔해가 되어 사라졌다. 세 번째는 계속해서 다가왔다. 그리고 그 뒤의 형체. 회색 재를 뚫고 조용히 그를 향해 다가왔다. 데이비드에 그늘을 드리우며 다가오는 부상당한 병사. 그리고-

     

    부상당한 병사 뒤로 타쏘 둘이 나란히 걸어왔다. 두꺼운 벨트, 러시아산 군복, 셔츠, 긴 머리. 방금 전에도 봤던 익숙한 형체. 우주선의 압력 의자에 앉아있던 모습.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마르고 조용한 형체.

    그들은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데이비드가 갑자기 몸을 숙이며 곰인형을 떨어뜨렸다. 곰인형은 바닥을 가로질러 갔다. 헨드릭스의 손가락이 반사적으로 트리거 주변에서 움찔했다. 곰은 안개 사이로 사라지고 없었다. 두 개의 타쏘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란히 회색 재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거의 눈 앞까지 왔을 때, 헨드릭스는 권총을 허리춤까지 올려 발사했다.

    두 개의 타쏘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미 대여섯 개의 똑같이 생긴 타쏘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 줄을 이룬 그들은 그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그는 타쏘에게 우주선과 암호를 알려주었다. 타쏘가 달로, 달 기지로 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가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폭탄에 대한 그의 생각이 맞았다. 폭탄은 다른 유형들, 데이비드 유형과 부상당한 병사 유형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클라우스 유형도.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하에 위치한 공장 중 하나, 인간과는 떨어진 곳에서 제작되었다.

    한 줄을 이룬 타쏘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헨드릭스는 차분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익숙한 얼굴, 벨트, 묵직한 셔츠, 그리고 잘 넣어둔 폭탄.

    바로 그 폭탄-

    타쏘들이 그에게 다가온 순간, 헨드릭스의 머릿속에는 마지막으로 아이러니한 생각이 스쳤다. 그 생각에 기분이 약간 나아졌다. 폭탄. 다른 유형을 파괴하기 위해 두 번째 유형이 만들어낸 폭탄.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폭탄.

    집게들은 벌써 서로에게 쓸 무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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