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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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즈&이어즈> 숨가쁘게 변화하는 세상, 그리고 트랜스 휴먼적은 글/보고 적은 글 2021. 4. 8. 17:51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로 뒷목은 뻣뻣해지고 팔다리는 천근만근인 날들이 지속되면, 확실히 몸뚱이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아니 그뿐인가. 가시지 않는 편두통으로 도저히 집중하기 어려울 때, 암만 진통제를 들이부어도 생리통이 사라질 줄 모를 때, 내일이 없다는 듯 마신 대가로 숙취에 시달리며 물 한 모금 넘기기도 괴로울 때… 계속해서 나열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이 아쉽고, 통제되지 않는 생리현상이 불편했던 적도 많다. 먹고 마시고 배출하고. 먹어서 찌우고 움직여서 다시 빼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만 고장 나고 삐그덕 대는 부분을 관리하고 고치고. 육체라는 것은 정말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히 고장 나지 않는 몸을 바라는 것이 20세기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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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허버트 조지 웰스, The Star, H.G. Wells, 1897옮긴 글/별, 허버트 조지 웰스 2017. 3. 13. 20:02
*원문링크: http://www.online-literature.com/wellshg/17/ 새 해 첫날, 거의 같은 시각에 세 관측관에서 새로운 사실을 공표했다.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들 중 가장 바깥 행성인 해왕성이 매우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오길비는 이미 지난 12월에 해왕성의 궤도가 느려진 것 같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대다수가 해왕성의 존재조차 모르는 세상에서 이러한 소식은 큰 뉴스거리가 될 수 없었기에, 이후에 혼란에 빠진 행성 근처에서 아주 희미하고 미약하게 빛나는 점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가지는 일반인도 없었다. 그러나, 과학계 종사자들은 새롭게 발견된 사실을 처음부터 중요하게 다루었다. 새로운 물체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크기와 밝기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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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곳으로의 여행, 커트 보니것, The Big Trip Up Yonder, Kurt Vonnegut, 1954옮긴 글/머나먼 곳으로의 여행, 커트 보니것 2016. 10. 14. 14:43
*원문 링크: http://www.gutenberg.org/ebooks/30240?msg=welcome_stranger 포드 할아버지는 지팡이의 구부러진 끝에 손을 올리고 그 손 위에 턱을 괸 채, 방 안을 가득 채운 1.5미터 크기의 텔레비전 화면을 성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화면에는 뉴스 아나운서가 오늘의 사건 사고를 보도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30초마다 지팡이를 바닥에 쿵 찍으며, "망할, 백 년 전에 이미 다 한 거라고!" 하고 소리를 질렀다. 에메랄드와 루는 서기 2185년에는 사라져 버린 가치인 사생활을 찾아 잠시 발코니로 피했다가 돌아와 가장 뒷줄에 가서 앉았다. 둘 앞으로는 루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형수,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손주며느리, 손녀와 손주 사위, 증손자와 증손주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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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R02B, 커트 보니것, 2BR02B, Kurt Vonnegut, 1962옮긴 글/2BR02B, 커트 보니것 2016. 9. 24. 06:54
*원문 링크 http://www.gutenberg.org/files/21279/21279-h/21279-h.htm 더할 나위 없는 세상이다. 감옥도, 빈민가도, 정신 병동도, 장애도, 가난도, 전쟁도 없다. 질병은 정복된 지 오래다. 노화 역시 마찬가지다. 사고사를 빼면, 죽음은 지원자들이나 떠나는 모험이 되었다. 미국의 인구는 4천만 영혼으로 유지된다. 어느 화창한 아침, 시카고 산부인과에서 에드워드 K. 웰링 주니어라는 이름의 남자가 부인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자는 그가 유일했다. 이제 하루에 태어나는 생명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웰링은 쉰여섯 살이다. 평균 나이가 백이십구 세인 세상에서 젊은이에 속한다. 그는 엑스레이 검사로 부인이 곧 세 쌍둥이를 낳을걸 알고 있었다. 그의 첫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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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뒤의 일, 필립 K. 딕, Beyond the Door, Phillip K. Dick, 1954옮긴 글/문 뒤의 일, 필립 K. 딕 2016. 9. 6. 16:25
*원문 링크 http://www.feedbooks.com/book/3863/beyond-the-door 그날 밤, 저녁 식사 때 그는 그것을 꺼내와 그녀의 그릇 옆에 올려놓았다. 도리스는 손을 입에 갖다댄 채 한참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게 뭐야?”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그를 올려다 보았다. “글쎄, 열어봐.” 네모난 상자의 리본과 포장지를 날카로운 손톱으로 뜯어내는 도리스의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 래리는 서서 그녀가 상자를 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담뱃불을 붙이고는 벽에 기대어 섰다. “뻐꾸기 시계!” 도리스가 외쳤다. “우리 어머니가 갖고 있던 것 같은 진짜 옛날 뻐꾸기 시계네.” 그녀는 시계를 이리 저리 돌려보았다. “피트가 아직 살아있을 때,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거랑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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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계곡, 허버트 조지 웰스 Valley of Spiders, H.G. Wells, 1903옮긴 글/거미 계곡, 허버트 조지 웰스 2016. 9. 6. 14:19
*원문 링크: http://www.online-literature.com/wellshg/21/ 정오 무렵, 말라버린 계곡 바닥을 따라 달리던 세 명의 추격자는 넓은 골짜기를 발견하고 급히 방향을 돌렸다. 도망자들을 쫓아서 한참을 달려온 험난하고 굽이진 자갈 도랑은 넓은 경사길로 펼쳐졌고, 이에 세 남자는 충동적으로 길에서 벗어나 올리브 나무가 있는 작은 언덕으로 향했다. 앞서가던 두 남자가 멈춰 서자 뒤를 따르던 은장식이 달린 굴레를 멘 말을 탄 남자도 함께 멈추었다. 추격자들은 눈을 번뜩이며 눈앞의 넓은 계곡을 살폈다. 계곡은 갈수록 황량해졌다. 삐쩍 마른 가시나무 덤불이 드문드문 있었고, 물기가 사라진 시냇물의 희미한 흔적이 누런 풀밭을 갈랐다. 자색 땅은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푸른 언덕, 여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