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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미지근하게적은 글 2020. 4. 20. 21:02
<벌새>를 봤다. 영화에서 내 롤모델을 찾았다고 하면 영지 선생님을 떠올리겠지만 아니다. 나는 유리에게 반해버렸다. 은희에게 수줍지만 적극적으로 다 가던 유리, 은희의 전 남자 친구의 등장에도 은희의 얼굴만을 보던 유리, 선물을 들고 병문안을 간 유리. 솔직하게 직진하는 유리. 어느 날 은희가 학교에서 유리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하자 유리는 그녀를 모른 척 외면한다. 은희가 황당해하며 너 나 좋아한다며, 하고 묻자 은희는 무슨 이상한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말한다.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감탄했다. 아, 롤모델이다. 지난 학기의 사랑은 지난 학기의 사랑으로 잊어버리는 쏘 쿨한 성격. 그에 반해 나는 '쿨함'과는 거리가 멀다 못해 앞사람이 일어난 뒤 버스 좌석에 남은 엉덩이의 온기처럼 뜻뜨미지근하다. 유리는 아마 글 같은 건 쓰지 않을 것이다. 고백과 수치와 반성이 가득한 일기나 편지는 쿨하지 못한 사람들의 것이다.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그녀는 뒤돌아볼 필요가 없다. 아마도 세상의 많은 영화, 글, 그림, 노래들은 뒤에 남아 머뭇거리던 은희들이 만든 것이 아닐까.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나는 나를 스쳐 지나간 것들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두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짧고 강렬하게 다가와 내게 무언가를 남기고, 혹은 빼앗고 지나간 시간, 장소, 사람들. 유리의 말에 얼이 빠진 얼굴로 서 있던 은희와 같은 마음으로.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아마도 너다.
너는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새까맣고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해서 다크한 백설공주 같았다. 함께 입사한 17명의 신입사원 중 가장 어렸고 나이 차이도 꽤 났지만, 어리니까 발랄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대체로 무표정했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던 날 다른 애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이제 다 잊어버렸는데, 살면서 네가 겪었던 가장 극적인 순간에 허리가 아프다는 생각만 했다는 얘기를 한 건 기억한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하던 네 얘기를 들으며 축하와 흥분으로 격정적이었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허리의 아픔을 느끼며 두 발을 땅에 곧게 딛고 서 있었을 너를 상상했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다. 아마 나머지 15명도 그랬을 거다.
그 친구와 많이 친했나요? ...아니요, 그건 아니었어요. 상담 선생님 앞에서 나는 머뭇거리다 나왔다. 내게 주어진 한 시간을 채우지 못했다. 침묵이 여러 번 흘렀다. 조금도 후련해지지 못한 채 상담실을 나온 뒤 다음 예약을 잡지 않았다. 나는 너에 대해 아는 듯 이야기하기도, 모르는 척 하기도 애매한 위치의 사람이었다. 서로에 대한 호감은 있었지만 절친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네가 힘들다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나였던 것은, 내가 너의 새하얀 얼굴이 점점 더 피곤해지는 것을 눈치챈 것처럼 너도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지친 눈빛을 자주 교환했다.
배치된 팀에 부장이 세 명, 진급에 누락해서 부장을 달지 못한 차장이 한 명, 차장이 또 한 명, 대리가 한 명, 사원이 한 명 있었다. 그 위에 팀장이 있었고, 그 아래 내가 있었다. 부장 1은 매일 자신이 입고 온 옷을 내 앞에서 자랑했고 내가 창의적으로 칭찬하지 못하면 욕을 했다. 하루 종일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회식자리에서는 추근거렸다. 부장 2는 사건 사고가 많았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파일을 날려먹거나, 컴퓨터가 고장 날 때마다 수습을 해주어야 했다. 부장 3은 내게 얼굴과 가슴 성형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부장같이 구는 차장은 회사에서 새로 받은 나의 새로운 컴퓨터를 가져가고 자신의 낡은 것을 내게 주었다. 그는 일을 할 때 절대 손을 쓰지 않았는데, 내 뒤에 붙어서 입으로 작업 지시를 내렸고 낡은 컴퓨터가 과부하로 멈추면 내게 짜증을 냈다. 가져간 나의 새 컴퓨터로는 드라마를 봤다. 어느 주말, 엄마가 쓰러져서 혼비백산해 있는 순간에 대리에게 전화가 왔다. 정신없이 지금 엄마가 쓰러지셔서요, 라고 하자 잠시 침묵 후 그런데 문서를 좀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구급차를 기다리며 파일을 보냈다. 팀장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신입사원은 0명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자주 했다. 회식 자리에서 음식이 남으면 내가 다 먹어 치울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주지 않았다. 내가 겪은 일을 나열하는 이유는 나는 네가 겪은 일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가 겪은 시간이 나와 같았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 밤. 회사는 조용했고 너와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각자의 회의실에서 노트북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침묵이 흐르는 방에서 나는 너와 몰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너무 힘들다, 피곤해 죽겠다, 부장이 집에 가지 않아서 퇴근을 못한다, 너도니 나도야, 미친 부장들. 우리는 각자의 부장을 욕했고 세상 모든 부장들을 저주했다. 너는 도저히 못 참겠다며 먼저 회사를 나섰고 나도 한 시간 정도 후에 집에 갈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의 엘리베이터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보고 말했다.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제주도에 휴가를 다녀와서요. 뭐 그렇게 오래 걸렸어, 세월호 타고 왔냐? 나는 그런 저질스런 농담을 던지는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서 흘끗 쳐다보았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끔찍한 말이었는지 그때는 그도 몰랐을 것이다. 미친, 속으로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자리에 가방을 놓고 회사의 카페로 갔다. 동기 한 명이 불안한 얼굴로 네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주말에 말없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백방으로 찾고 있으며 아직 이 사실은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나는 네가 멀리멀리 달아나고 있는 상상을 했다. 회사에서는 볼 수 없는 얼굴로 활짝 웃고 있던, 친구들과의 사진 속 너처럼. 델마와 루이스처럼. 반나절 뒤, 나는 커피 심부름을 가다가 네 소식을 듣고 비상계단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이 가득한 장례식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유니클로에서 급하게 사서 품이 맞지 않던 검은색 니트의 허리춤을 잡아당겼다. 주말 내내 이상하게 네 생각이 났던 걸 떠올렸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네게 해주려던 말이 있었는데,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회사에 둘 비상약들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떤 말들은 생각났을 때 하지 않으면 영영 기회를 잃는다는 걸, 그때 배웠다. 네가 요즘 잠을 통 못 잔다는 얘기를 했던 게 생각났다. 불면증도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걸 나는 원래 알고 있었다. 왜 그 두 가지를 연결 짓지 못했을까. 회사에서 네 자리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고 했다. 네가 운영하던 블로그가 있었는데, 글이 다 사라졌고 작별 인사만이 남아있다고 했다. 네가 있던 팀의 차장이 페이스북에 네가 "신입답지 않아서" 맘에 들지 않는다는 글을 썼다고 했다. 집안이 원래 화목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네가 원래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했다. 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네 자취집이 얼마나 작은지, 고향 친구들과 떨어져서 사이가 멀어졌는지, 남자 친구와는 어떻게 헤어졌는지, 가족들과 연락은 얼마나 자주 했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건 네가 남긴 부장 욕뿐. 회사에서의 고됨 뿐.
나중에 너에 대한 아주 짧은 기사가 나왔다. 수많은 경쟁을 뚫고 고졸로는 최초로 큰 회사의 정규직 신입사원이 된 네가 부딪힌 현실의 벽과 좌절, 그로 인한 우울증과 자살. 한 문장 한 문장은 틀린 게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맞는 것이 없는 기사였다. 너는 회사에는 무표정으로 다녔지만 인터넷 유머와 짤방을 섭렵한 네티즌이었다. 90년대생 너의 노래방 18번은 네 아버지의 나이와도 비슷한 명국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였다. 이 노래는 대체 왜 아는지 물어보면 너는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어리다고 해서 편의를 바라지 않았고 고집 있게 네 가치를 증명해내려 애썼다. 나는 너의 선택이 싫지만, 내가 그 주말에 먼저 말을 걸었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언제나 궁금해하겠지만, 네가 나약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졌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너를 길게 바라봐주었다면 너의 시간도 한 편의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거다.
매년 숫자가 줄어드는 동기들은 해마다 국화를 사서 회사 옥상에서 너를 기린다. 나도 회사를 나왔기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내 꽃을 대신 놓아준다. 처음의 17명은 지금 3명이 되었다. 우리가 너를 기리는 때는 또한 온 나라가 수백의 죽음을 슬퍼하고 추모하는 때다. 나는 수많은 노란 리본을 보며 그 마음들에 너를 살짝 올려본다. 내가 조금 더 세심했더라면, 내가 조금 더 기억력이 좋았다면, 내가 조금 더 글을 잘 썼다면 너를 더 잘 기록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너를 생각하는 동안에 나는 쿨하지 못한 내가 싫지 않다. 나는 너를 오래도록 미지근하게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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