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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산병과 3 킬로그램, 티벳 여행기.
    적은 글 2020. 4. 13. 23:47

    2018년 여름, 티벳 여행을 다녀왔다. 하늘과 가장 가깝다는 영적 지역에서 나는 내 몸뚱이의 무게를 여실히 느끼는 가장 육체적인 체험을 하고 왔다. 약간은 고생스러운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 친구 둘,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여행을 계획했다. 나는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을 좋아해서, Y는 팟캐스트 <지대넓얕>에서 티벳 소개를 듣고, N은 에베레스트를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로 티벳에 가고 싶었고 동시에 모두가 같은 이유로 여행을 두려워했다. 이유는 고산병.

     

    고산병은 고지대에 가야만 걸린다는 확실한 원인이 있지만 사람마다 증상과 강도가 다르게 나타나서 병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과 가설이 난무했다. 비아그라를 먹으면 괜찮다는 조언(처방받을 수 있는 고산병 예방약은 따로 있다), 평소에 안 좋은 부분에 증상이 나타난다는 말(꽤나 그럴듯하다), 흡연자는 평소에도 산소량이 부족해서 오히려 괜찮다는 설(말해준 이는 물론 흡연자다), 근육량이 많으면 오히려 더 안 좋다는 이야기(운동을 하지 않을 핑계일까?) 등등 “카더라” 식 정보가 많았다. 고산병 경험자, 레지던트를 하고 있는 친구,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 모아본 정보로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뿐이었다. 고산병은 복불복이라는 것.

     

    어릴 때부터 좀 허약하고 체력이 부족한 편인 나는 당시에 살아온 중 가장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수영, 스피닝, 발레, 필라테스를 거쳐 요가에 정착해서 하루에 한 시간 반씩 요가를 했고 슈퍼푸드가 잔뜩 들어간 샐러드가 주식이었다. 워낙 허약 체질이어서 건강해졌다고 해봐야 남들의 평균 수준에 미칠까 말까 했겠지만, 어느 때보다도 몸이 가볍고 힘찬 느낌에 자신감에 차 있었다. 고산병이 복불복이라면 나는 ‘복’ 쪽이 아닐까? 직장 동료 중 신혼여행으로 티벳 여행을 다녀왔다는 분이 있었다(여행을 다녀와서야 이들 부부가 얼마나 대단하고 무모했는지 알았다. 다녀와서도 여전히 부부인 것이 다행이었다). 그는 자신은 괜찮았는데 부인은 엄청 고생했다고 전했다. 복, 그리고 불복. 나는 Y와 N을 보며 속으로 나는 ‘복’ 일 것 같다는 은밀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찼다.

     

    서울 해발 38m, 당시 내가 살고 있던 베이징 해발 44m. 그리고 티벳 구의 라싸는 해발 3600m. 평생을 땅에 붙어살다시피 한 우리가 갑자기 3500m를 뛰어넘으면 고산병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시닝(해발 2400m)에서 하루를 보내고, 거기서부터 기차를 타고 라싸까지 천천히 올라가기로 했다. 몸을 고지대에 천천히 적응하는 방법이자, 22시간의 긴 기찻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해 많은 여행객들이 선택하는 여정이었다. 비좁은 6인 침대칸에 옹기종기 모여 지낸 그 불편하고도 황홀한 시간은 티벳 여행의 훌륭한 예고편이었다. 딱딱한 침대에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찾아 몸을 뉘었다. 계속 처박혀 있다 보니 배가 고픈 줄은 몰랐지만 식사 때가 되면 밥을 먹었고, 이상하게 계속 졸음이 밀려왔고, 어쩐지 속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씻을 수는 없는데 머리는 떡져가니 챙겨간 드라이샴푸로 머리를 털고 물티슈로 고양이 세수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러워지는 기차칸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 질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멍하니 있으면 아름다운 광경이 다가왔다가 스쳐 지나갔다.

     

    22시간 후 마침내 라싸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숨이 찰까 걱정했는데, 기차 안 수백 명의 사람들이 뿜어낸 이산화탄소 가득한 공간에서 밖으로 나오니 상쾌했다. 워낙 오래 기차를 타고 와서 속은 조금 불편했지만 컨디션은 좋은 것 같았다. 가이드의 환대를 받으며 숙소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이국적인 티벳 여행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을 충족해 주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현란한 색상과 불교 미술이 뒤섞인 독특한 미감, 오래된 건물이 주는 아늑한 분위기와 나무 냄새. 꼭대기 방까지 3층의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반층마다 멈추어서 가쁜 숨을 내쉬며 쉬어야 했지만 마침내 도착한 방은 넓고 안락하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넓은 침대에 털썩 누웠다.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괜찮은데? 고산병 안 오나 봐! 차례대로 천천히 씻고 누워서 새파랗게 칠한 천장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잠든 친구들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오는 신호에 화장실로 달려가 토했다. 그날 밤 나는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네 번을 토했다. 토하고 토하다 보니 전날, 아니 전전날인가? 시닝에서 먹은 식사까지 나왔다. 1200m를 올라오며 내 위는 아무런 기능도 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불복'이었다.

     

    다음 날 아침 라싸에서 가장 성스럽다는 조캉 사원으로 가는 길, 가이드에게 부탁해 약국에서 티벳산 고산병 약을 샀다. 6시간마다 세 알씩 먹는 약의 알이 너무 커서, 급하게 약을 삼키자마자 목에 걸려 약을 싸준 봉지에 바로 또 토를 했다. 나의 고산병은 위장병과 그에 따른 두통이었다. N은 강한 햇빛을 받으면 상태가 급격히 안좋아져서 앉아 쉬어야했고, 고산병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Y는 자주 잠들었다. 아픈 와중에도 생경한 티벳의 경치와 건물이 너무 아름다워서 격한 반응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흥분하면 고산병이 심해진다) 조심조심 감탄했다. 라싸에 머무는 3일 동안 몸은 점점 적응해갔다. 증상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약을 먹으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러나 3일 뒤 우리는 티벳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라싸는 티벳에서 가장 낮은 지대에 있었다. 갈 길은... 오르막뿐.

     

    최종 목적지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해발 5200m). 티벳이 내게 던져주는 험난한 과제 같았다. 3600m가 힘들었냐? 5200m를 경험해봐라! 식사는 포기했다. 차라리 먹지 않는 것이 나았다.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목격하게 되는 화장실 상태의 변화가 나의 몸 상태와 하강의 싱크로를 맞추었다. 화장실에서 자꾸 뭔가 하나씩 사라졌다. 수세식 장치가 사라지고, 문이 사라지고, 칸을 나눠주는 벽이 사라지고, 마지막으로는 천장이 사라졌다. 벌판에 대충 돌벽을 쌓아 만든 화장실을 만났을 때는, 일어서면 머리가 튀어나와 밖에 선 사람과 눈이 마주쳐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몸뚱이를 축 늘어뜨리고는 힘 없이 웃었다. 기대했던 티벳 불교의 신비함이 주는 영적 체험이 아닌, 산소 부족과 배설욕에 시달리는 형이하학적 경험만이 있었다. 너무 힘들어질 때면 가이드가 준비해준 산소탱크를 연결에 “산소뽕”을 맞았다. 신기하게도 10분만 맞아도 속의 불편함이 사라지고, 두통이 멎고, 눈에 생기가 돌았다. 산소가 부족하면 고통스럽고, 산소가 공급되면 괜찮아졌다. 나는 산소를 맹신하게 되었다. 산소 찬양. 산소가 최고야. 산소를 믿으세요.

     

    여행의 가장 황홀한 순간과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은 나란히 붙어서 왔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근처에는 단 하나의 호스텔이 있다. 그곳의 밤은 조용하고 아주 어둡다. 휴대폰의 빛을 켜야 앞을 겨우 볼 수 있는 곳에서 태어나 가장 많은 별을 보았다. 쏟아지는 별과, 처음 목격한 은하수. 그간의 고생이 다 괜찮을 정도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서서 손 발이 얼어들어갈 때까지 별을 보고 들어와 각자 전기장판을 켜고 벅찬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극심한 두통에 잠이 깼다. 뇌에 산소 공급이 잘 되지 않으면 머리로 피가 쏠려서 위험하니까 베개를 높이 쌓아 최대한 머리를 높게 두고 자라는 가이드의 조언이 생각났다. 피를 머리로 보내려고 열심히 펌프질 하는 소리가 귀에서 울렸다. 쿵, 쿵, 쿵, 소리가 너무 커서 고막이 곧 터질 것 같았다. 영화 <킹스맨>에서 차례대로 사람들의 머리가 터지는 장면이 생각났다. 나는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겨우 산소통을 찾았다. 머리는 아프고 정신은 혼미하고 행동은 굼떠서 연결이 쉽지 않았다. 겨우 코에 산소가 들어오는 걸 느끼며 안도하려 했다. 10분이면 나아지던 상태는 그리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서 죽으면 나도 독수리의 밥이 되려나,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 말고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바로 옆에 친구들이 자고 있었지만 완벽히 고립된 기분이었다. 산소중독이 올 수 있어 40분 이상 산소통을 연결하고 있으면 안 되었다. 그날 밤 같은 고비를 세 번 겪고 나서야 겨우 동이 텄다.

     

    해가 밝아오자 다시 보이는 파란 천장을 보며, 죽지는 않았구나 생각했다.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고 나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무언가 깨달음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평소보다 몸을 조금 더 떨 뿐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신기하게도 가뿐했다. 올라오면서 너무 괴로웠던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을 지나오니 쉽게 느껴졌다. 드디어 배불리 밥을 먹고, 용기를 내서 술도 조금 마셨다. 그동안 먹지 못했던 메뉴들을 다시 잔뜩 시켰다. 여행의 마지막 이틀, 나는 비로소 관광객이 되었다. 관광객이 되자 여행은 끝이 났다. 집에 돌아오자 익숙했던 곳이 낯설게 느껴졌다. 의식하지 않고 숨을 쉬는 것이 어색했고, 뚜렷한 티벳의 색상에 비해 모든 것이 너무 하얗고 뿌옇게 보였다. 고통의 순간에서 보았던 명징함이 사라지고, 어쩐지 시야가 다시 흐릿해진 것 같았다. 열흘간의 여행에서 3kg이 빠져 돌아왔다. 사람이 죽으면 21g이 가벼워져서 그걸 빠져나간 영혼의 무게라고 한다던데. 내가 티벳에 두고 온 3kg은 무엇이었을까. 3kg의 몸뚱이, 3kg의 공포, 3kg의 고통, 3kg의 괴로움.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나중에 티벳에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곳에 두고 온 3kg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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